( 삼성 호암미술관에서 기증한 고려시대 비로나자불)
인천 용화선원
우리가 이 정법을 안 만나고 그럭저럭 했으면
생사윤회를 면치 못할 것이고
결국은 지은 업에 따라서 삼악도에 떨어질 수도 있고
인간으로 태어났어도 재산이나 명예나 권리나 그런 것이 인생의, 인생에 목적으로 삼아가지고
그러헌 속에 얽혀서 참나를 깨달라서 해탈도로 가는 길을 모르고 일생을 살 수도 얼마나,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은,
형제자매 여러분들은 최상승법을 만나서
이제 열심히만 허면 결정코 우리는 생사해탈을 헐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두를 들되 올바르게 들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뭣고?’ 알 수 없는 의심,
이, ‘이 뭣고?’
이 자리에 무자화두를 한 분은,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또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판치생모를 분석해가지고 ‘판때기는 앞니빨을 말한 것이다’, 또는 ‘판때기가 무엇인가?’ 그걸 가지고 분석허고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오직 그 「어째서?」 라고 허는 거기에 의심의 눈을 박어야 하는 것이고,
무(無)자도 무, 무라고, 무니 유니 유무를 가지고 따져가지고 알아들어갈라고 해서는 안 되는 거고,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다못 그 알 수 없는 의심이 화두에 근원이고 핵심인
것입니다. 이 뭣고?’
앉아서도 ‘이 뭣고?’ 서서도 ‘이 뭣고?
자기 위해서 누워서도 심호흡을 허면서 ‘이 뭣고?’
그러면서 언제 잠이든 중 모르게 잠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허다보면 꿈속에서도 화두를 들게 되는
거고,
그렇다고 해서 좋아할 것도 없고,
‘내가 꿈속에서 화두를 든 것 보니까 머지 안 해서
깨닫겄구나’ 그런 생각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 화두는 정말 철저한 신심으로
나도 다행히 사람 몸을 받아서 불법을 만나서 최상승법을 만났으니, 정말 나도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을 가졌으니 틀림없이 깨달을 수 있다’고 허는 철저한 신심이 있고,
그 신심 위에 분심(憤心)이 있어야 한 것입니다.
신심만 있고 그럭저럭 분심이 없이 그럭저럭 허송생활을 헌다면 그건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분심이 있어야 그동안에 자기의 살아온 모든 것을 회고를 해볼 때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시간이 무상한 줄을
철저하게 느끼지를 못하고
생각나면 허다가 생각이 안 나면 안하다가 그럭저럭
지내가지고는 아니 된 것입니다.
이 일대사(一大事)는 분심이, 분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심 위에 분심, 분심 위에 의심을 관해야 하는,
의심으로 화두를 관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심과 분심과 의심 이 「삼요(三要)」를 갖추었을 때
저절로 공부가 되아지는 것입니다.
안된다고 허는 사람은
이 신심과 분심 의심 이 삼요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 동안에 그럭저럭 지내 와서 삼요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의단이 독로허지 못하고 타성일편이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 삼요를 갖춘다, 갖춘다며는
저절로 화두가 독로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이 삼요를 갖추어야, 삼요 중에 무엇이 부족허거나 부족허기 때문에 공부가 잘 안 되는 것이니, 공부가 잘 안된다고 느껴질 때에는 자기를 반성을 해봐야 합니다.
내가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가?
쓸데없는 시비에 걸려 들어있지 않는가?
그럭저럭 시간을 낭비허고 있지 않는가?
가끔 자기를 돌이켜보고 반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허면서
화두를 떠억 든다면 저절로 되아질 것입니다
첫댓글 일체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 나기를 발원합니다 _()_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