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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을 넘어서야 미래가 보입니다
2016.12.20
지난 10월 24일 최순실 씨의 태블릿 PC가 언론에 보도된 이후 대한민국의 모든 뉴스는 매일매일 최순실 관련기사로 도배되었습니다. 사건을 파헤칠수록 막장 드라마 같은 사실들이 꼬리를 물고 드러나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었고 광화문에서는 8차에 걸친 촛불 집회에 연인원 800만 명이 넘는 인원이 대통령의 하야를 외쳤습니다. 국민의 요구에 국회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쾌속으로 가결시켰습니다. 그리고 이제 헌법재판소의 결정만 남은 상태입니다. 촛불 집회는 헌법재판소도 압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탄핵의 이유가 없다는 답변서를 제출하면서 다시한번 불통의 아이콘임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대통령이 이제 법의 울타리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만 민주공화국의 헌법은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은 주권을 토대로 만들어지고 해석되어야 한다는 면에서 볼 때, 지지율 5%의 대통령에게 큰 희망은 없어 보입니다. 물론 그 사이에 상황을 뒤엎을 객관적이고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방송사에서 매일 뉴스를 진행하는 사람으로서, 지난 두 달 동안의 뉴스 보도를 미국의 RTNDA Code of Ethics(RTNDA; Radio Television Digital News Directors Association)를 참고해서 분석해 보았습니다. 미국의 경우 각 매체의 뉴스 종사자가 따르는 윤리규정 즉, RTNDA Code of Ethic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각 언론사마다 윤리규정이 있긴 합니다만 미국의 것이 비교적 잘 기술되어 있어서 이를 준용하려고 합니다. A4용지 세 쪽 반 분량의 RTNDA 윤리규정은 PUBLIC TRUST(대중의 신뢰), TRUTH(진실), FAIRNESS(공정), INTEGRITY(완벽함), INDEPENDENCE(독립), ACCOUNTABILITY(책임)의 다섯 가지 항목아래 구체적인 세부 사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PUBLIC TRUST의 세부 사항을 소개해 드립니다.Professional electronic journalists should(전문적인 전자매체 언론인은 반드시 아래의 조항들을 지켜야 한다):1. Understand that any commitment other than service to the public undermines trust and credibility(대중에 대한 서비스 외의 다른 보도 행위는 언론의 신뢰와 신용을 약화시킨다는 것을 명심하라).2. Recognize that service in the public interest creates an obligation to reflect the diversity of the community and guard against oversimplification of issues or events(대중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공동체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의무를 수반하며 사건과 이슈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것을 경계하여야 한다).3. Provide a full range of information to enable the public to make enlightened decisions(사건의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대중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데 기여한다).우선 최순실 태블릿 PC를 보도한 행위는 권력에 대항해 대중만을 바라본 서비스 행위였으며 그로 인해 해당 언론사는 대중의 신뢰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됩니다. 다만, 공동체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의무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잘 훈련된 언론인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것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촛불 집회에 200만이 모였더라도 한쪽에서 몇백 명이 반대 집회를 한다면 그 뉴스 역시 하나의 사실(fact)로 다루는 이유가 바로 공동체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그 이유는 커뮤니케이션의 ‘침묵의 나선형 이론’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다수의 표출된 의견이 ‘대통령 하야’일 경우 하야를 반대하는 소수들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소수 의견인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가 혹시 입게 될지도 모르는 피해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선택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언론이라면 이러한 소수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물론 다수가 옳을 수도 있고, 소수가 옳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판단은 대중과 역사에 맡겨야 합니다.지난 두 달 동안 각종 뉴스매체는 최순실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최순실로 끝을 맺었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이면을 파헤쳐서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와 구조상의 문제를 지적해서 사건이 재발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1%의 노력을 했다면 나머지 99%는 “최순실이 청와대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김밥을 싸달라고 해서 가져갔다.”는 식의 시시콜콜한 이야깃거리를 전달하는 데 치중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이야기가 팔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뉴스의 중심에 있는 인물에 대해서는 대중이 시시콜콜한 것까지 알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대중은 싫은 사람은 더 싫어하고 싶고 좋은 사람은 더 좋아하고 싶어합니다. 이러한 대중의 심리는 언론이 마녀사냥을 할 수도 있고 반대로 킹 메이커 역할도 할 수 있는 힘의 원천입니다. 아무리 사실에 근거해도 사건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에 좋고 싫음의 감정적 판단까지 결합시키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은 ‘대통령의 권력을 이용해서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그 죄가 막중합니다. 하지만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로 본말이 전도될까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특히 병원의 출입 기록을 뒤지고 약물을 투여한 내용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날것’에 해당하는 정보를 그대로 공개하는 행위는 너무 무책임해 보입니다. ‘full range of information(정보의 모든 범위)’를 제공한다는 뜻은 단편적이 퍼즐을 마구 나열하는 것이 아닌 제대로 아귀가 맞아서 반박할 수 없는 모든 정보가 모아진 다음에 제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보도행태는 이러한 원칙과는 상반되게 관계자의 증언에만 의지한 ‘폭로전’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또한 RTNDA Code of Ethics의 INTEGRITY(완벽함) 항목 중에 Use technological tools with skill and thoughtfulness, avoiding techniques that skew facts, distort reality, or sensationalize events(숙련되고 사려 깊게 기술적 도구들을 사용하여야 한다. 특히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곡해하거나 사건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기술적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대통령을 탄핵에 이르게 한 최순실 국정논단 사건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보도하여 국민의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시킨 면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짚어봐야 할 문제입니다.이제는 보다 냉철하게 사태를 바라봐야 할 시점입니다. 대통령을 권좌에서 내려오게 하는 일은 4년 전 국민의 선택을 되돌리는 일입니다. 당시 국민의 선택이 잘못됐다면 잘못된 선택을 한 국민 역시 이 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국민 역시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제대로 반성을 해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국정농단 사건의 구조적 문제를 파악해서 제대로 처방을 내려야 합니다.우리나라는 4·19와 87년 민주항쟁을 통해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런데 뽑아놓은 대통령마다 임기 후반에 잡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직도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고, 노태우 전 대통령도 수천억 원의 비자금이 탄로 났습니다. YS는 소통령이라 불리던 아들의 전횡이 있었고, DJ도 두 아들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봉하대군이 문제였고, MB는 형님이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아마 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모두 비선의 문제가 있었는데 왜 나만 탄핵을 당해야 하나?”하며 억울해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정치인들의 탐욕스런 거짓말과 횡포에 지쳐버린 국민에게는 이제 정치인들의 작은 흠결이라도 대충 넘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다고 해서 이 고질적인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선 패거리를 이루어 서로 물고 뜯는 가신(家臣) 정치의 잔재를 청산해야 합니다. 그리고 재벌의 정경유착 관행을 뿌리째 뽑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오너는 바뀌어도 기업은 지속되는 구조로 체질을 개선해야 합니다. 이러한 잘못을 감시하는 제대로 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고 정치와 돈의 힘에서 언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사람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안전망을 만들어야 합니다. 800만이 모여서 한 목소리를 낸 이 거대한 힘이 결국 대안적 정치세력의 정권 욕구만 충족시키고 끝난다면 우리는 언젠가 또 다시 촛불을 들고 일어나게 될지 모릅니다. 민주주의도 실현해봤고 정권교체도 해봤습니다. 그런데도 어제나 오늘이나 국민은 늘 힘 없는 설움을 겪으며 팍팍하게 살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싸움이 되겠지만 탄핵상황을 넘어 이 지긋지긋한 후진적 정치·경제 체계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 지금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 '모닝와이드'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