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산으로 올라가기를 바란다면 흑선풍을 죽이시오. 그래서 나의 분노를 풀어주면 그렇게 하겠소.”
이규가 듣고서 크게 노하여 말했다.
“왜 나만 물고 늘어지는 거야! 조개, 송강 두 형님의 명령이 아니었으면 내가 뭐 하러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겠어!”
주동이 노기가 발동하여 이규와 싸우려고 하자, 세 사람이 겨우 말렸다. 주동이 말했다.
“만약 흑선풍이 있으면, 나는 죽어도 산에 올라가지 않겠소!”
시진이 말했다.
“그건 쉬운 일입니다. 내게 방도가 있습니다. 이형은 여기에 남고, 세 분만 산으로 올라가서 조개와 송강 두 분의 뜻을 만족시켜 드리십시오,”
주동이 말했다.
“이제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부윤이 필시 운성현에 공문을 보내 추적하고 우리 가족을 잡아가려 할 건데, 어쩌면 좋습니까?”
오용이 말했다.
“족하는 안심하십시오, 지금쯤 이미 송공명께서 가족들을 모두 산으로 데려갔을 겁니다.”
주동은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시진이 술을 내어 대접하고, 세 사람은 그날 저녁에 양산박을 향해 떠났다. 시진은 장객들을 불러 말 세 필을 준비하게 하고, 성 밖까지 나와 전송했다. 오용이 이규에게 분부했다.
“자네는 조심하게. 대관인의 장원에 머무는 동안 절대로 소란을 피워서는 안 되네. 몇 달쯤 기다려 주동의 화가 가라앉으면 다시 산으로 부르겠네. 아마 그때쯤이면 시대관인에게도 입당하라고 청할 걸세.”
세 사람은 말에 올라 떠나갔다. 창주 경계를 벗어나자 장객들은 말을 가지고 돌아갔고, 세 사람은 양산박을 향해 걸어갔다. 주귀의 주점에 당도하여 먼저 사람을 산채로 보내 알렸다. 조개와 송강은 사람들을 이끌고 북을 울리고 피리를 불면서 금사탄으로 나와 영접하였다. 일행이 모두 인사를 나눈 뒤 말을 타고 올라가 취의청에 당도하였다. 옛 얘기를 나누다가 주동이 말했다.
“제가 지금 부름을 받고 산채에 올라왔는데, 창주부윤이 필시 운성현으로 공문을 보내 우리 가족을 체포하려고 할 것이니, 어찌하면 좋습니까?”
송강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아우는 마음 놓으시게. 제수씨와 아들이 여기 온 지 며칠 됐네.”
“지금 어디 있습니까?”
“우리 부친을 모시고 쉬고 있으니, 자네가 가서 위로해 주게.”
주동은 크게 기뻐하였다. 송강은 주동을 송태공의 처소로 인도하여 가족들을 만나게 했다. 주동의 부인이 말했다.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이 서신을 가져와서 당신이 이미 산채에 입당했다고 해서, 가산을 수습하여 밤새워 이곳으로 왔어요.”
주동은 여러 두령들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송강은 주동과 뇌횡을 산정의 성채로 청해서 연회를 열고 새로 온 두령들을 축하했다.
한편, 창주 부윤은 저녁이 되어도 주동이 아이를 데리고 오지 않자, 사람들을 사방으로 보내 밤중까지 찾게 하였다. 다음 날, 어떤 사람이 숲속에서 아이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부윤에게 알렸다. 부윤은 크게 노하여 친히 숲속으로 가서 보고, 통곡하고 관을 준비하여 화장하였다.
다음 날, 부윤은 등청하여 공문을 각처로 보내 주동을 체포하라고 하였다. 운성현에서는 주동의 가족이 이미 가산을 가지고 도망쳤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부윤은 각 주와 현에 상금을 걸고 주동을 체포하라는 명을 내렸다.
한편, 이규는 시진의 장원에 한 달 동안 머물렀는데,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서신을 가지고 황급히 장원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시대관인은 그를 맞이하여 서신을 보더니 크게 놀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한번 가봐야겠다.”
이규가 물었다.
“대관인! 무슨 일입니까?”
시진이 말했다.
“나에게 시황성이란 숙부가 계신데, 현재 고당주에 살고 계시네. 그런데 고당주 부윤 고렴의 처남인 은천석이란 놈이 화원을 빼앗으려고 해서 화병에 걸려 누어 계시는데, 상태가 위중하여 나에게 유언할 것이 있으니 오라고 하시네. 숙부에게는 자식이 없으니 내가 가보지 않으면 안 되네.”
“대관인께서 가신다면, 저도 따라가는 것이 어떨까요?”
“이형이 가겠다면 같이 가지.”
시진은 즉시 행장을 수습하고 좋은 말 10여 필을 선발하고 장객 몇 명을 데리고 가기로 하였다.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시진과 이규는 장객들과 함께 말을 타고 장원을 떠나 고당주를 향해 떠났다. 하루도 안 걸려 고당주에 당도하여 성으로 들어가 곧장 시황성의 저택으로 갔다. 이규와 장객들은 바깥방에서 기다리게 하고, 시진은 침실로 들어갔다. 시진은 숙부를 보고 침상 앞에서 소리 내어 통곡했다. 시황성의 후처가 나와 시진을 달래며 말했다.
“대관인께서 말을 타고 오느라 힘드셨을 건데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진이 인사를 하고 사정을 묻자, 후처가 대답했다.
“신임 부윤 고렴은 동경 고태위의 사촌형제인데, 고태위의 권세를 빌어 이곳에서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그리고 은천석이란 처남을 데리고 왔는데, 사람들은 모두 은직각이라고 부릅니다. 이놈은 나이도 어린데 매형의 권세를 믿고 멋대로 행패를 부려 사람을 해칩니다. 그런데 그놈에게 아부하여 자리를 하나 얻으려고 하는 놈이, 우리 집 뒤편의 화원과 연못가의 정자가 좋다고 그놈에게 얘기한 모양입니다. 그러자 그놈이 간사한 놈들 2~30명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들어와 화원을 보고는, 우리를 내쫓고 자기가 살겠다고 했습니다.
황성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집안은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선조 때부터 단서철권이 있어 그 누구도 함부로 업신여길 수 없소. 당신이 어찌 감히 우리 집을 강탈하려고 하는가? 우리 가족을 어디로 쫓아내려 하는가?’ 하지만 그놈은 그 말을 듣지도 않고 우리더러 집을 나가라고만 했습니다. 황성께서 그놈을 붙잡았다가 도리어 그놈에게 얻어맞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화병이 나서 일어나지도 못하시고, 음식도 못 드시며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곧 돌아가실 것 같습니다. 오늘 대관인께서 이렇게 오셨으니, 설혹 돌아가신다 하더라도 걱정을 덜 수 있겠습니다.”
시진이 말했다.
“숙모님은 안심하십시오. 우선 용한 의원을 청하여 숙부님을 치료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창주의 집으로 보내 단서철권을 가져오게 하여 그놈이 깨닫게 하겠습니다. 관아에 고발하여 황제께도 아뢸 것이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황성께서는 하시는 일도 아무 것도 되는 게 없었는데, 대관인께서는 이치대로 처리하시네요.”
시진은 숙부의 상태를 다시 한 번 보고, 나가서 이규와 장객들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이규가 듣고서 펄쩍 뛰며 말했다.
“도리를 모르는 놈! 내가 그놈에게 도끼 맛을 보여준 다음에 다시 상의하시죠.”
시진이 말했다.
“이형! 참게. 그럴 필요 없어. 그런 무식한 놈과 싸워 뭐 하겠나? 그놈이 비록 권세를 업고 사람을 괴롭히지만, 우리 가문에는 황제께서 보호하라고 한 성지(聖旨)가 있네. 그놈과 이치를 따져 안 되면, 경성에 가서 그보다 더 높은 사람에게 고해서 법규에 따라 명백하게 밝혀 소송할 것이네.”
이규가 말했다.
“법규! 법규? 법규대로 됐다면 천하가 이렇게 혼란해졌을까? 난 우선 그놈을 패고 나서 생각하겠습니다. 만약 그놈이 관아에 고발하면, 좆같은 관원도 한꺼번에 다 베어버리지 뭐!”
시진이 웃으며 말했다.
“주동이 자네와 싸우면서도 얼굴을 보지 않겠다고 한 심정을 알 것 같네. 여기는 엄중한 성안인데, 산채에서처럼 멋대로 행동할 수 있겠는가?”
“엄중한 성이 뭐 어떤데? 강주 무위군이라고 해서 내가 사람을 죽이지 못 했는 줄 아시오?”
“내가 형세를 봐서, 이형이 필요할 때가 되면 요청하지. 지금은 별 일 없으니 방안에 앉아 있게.”
얘기하고 있는데, 안에서 시첩들이 황망히 달려와 황성께서 대관인을 보고 싶어 한다고 알렸다. 시진이 안으로 들어가 침상 앞으로 가자, 황성이 두 눈에 눈물을 흘리며 시진에게 말했다.
“조카는 뜻이 굳세니 조상을 욕되게 하지 말게. 나는 오늘 은천석에게 맞아 죽지만, 자네는 골육의 체면을 봐서 직접 서신을 갖고 경성으로 가서 황제께 아뢰어 내 원수를 갚아주게. 내가 구천(九泉)에 가서라도 조카의 은혜를 잊지 않겠네. 조심, 또 조심하게! 이제 더 이상 부탁하지 못하겠네.”
말을 마치자 숨을 거두었다. 시진은 한 바탕 통곡하였고, 후처는 시진이 혼절할까 두려워 달래며 말했다.
“대관인! 슬퍼하는 것은 다른 날로 미루고 먼저 다음 일을 생각하십시오.”
시진이 말했다.
“단서철권이 집에 있는데,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보내 밤새 가져오게 하여, 동경으로 가서 고소해야겠습니다. 숙부님의 시신은 관을 마련하여 염하고, 상복을 입은 다음에 다시 상의하시지요.”
시진은 관제에 의거하여 내관과 외곽을 준비하고 예에 따라 위패를 설치했다. 가문 사람들이 모두 상복을 입고 애도했다. 이규는 바깥에서 곡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주먹을 비비며 기운을 돋우고 있었는데, 하인들에게 사정을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집안에서는 승려를 불러 의식을 행했다.
사흘째 되는 날, 은천석이 말을 타고 건달 2~30명을 데리고 성 밖에 나가 놀면서 술이 반쯤 취했는데, 완전히 취한 척하면서 시황성의 저택으로 왔다. 말을 세우고는 집사 나오라고 안에다 소리 질렀다. 시진이 듣고서 상복을 입은 채로 황망히 나가 인사했다. 은천석이 말 위에서 물었다.
“너는 누구냐?”
시진이 대답했다.
“저는 시황성의 조카 시진입니다.”
“지난번에 내가 너희들에게 이 집에서 나가라고 분부했는데, 어째서 내 말을 듣지 않는 거냐?”
“숙부께서 병환이 나셔서 감히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간밤에 돌아가셨으므로 49재를 지내면 나가겠습니다.”
“방귀 뀌는 소리 하지 마라! 사흘 내로 나가라! 만약 사흘 내로 나가지 않으면 먼저 본보기로 네놈부터 곤장 백 대를 맛보여 주겠다!”
“함부로 하지 마시오! 우리 가문은 황제의 자손으로 선조 때부터 단서철권을 가지고 있는데, 누가 감히 공경하지 않는단 말이오?”
은천석이 소리쳤다.
“어디 보여 봐라!”
“현재 창주의 집에 있는데, 사람을 보내 가지러 갔소.”
은천석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이놈이 헛소리 하고 자빠졌네! 단서철권이 있다 한들 내가 무서워할 줄 아냐? 여봐라! 이놈을 두들겨 패라!”
건달들이 손을 쓰려고 할 때, 방안에서 문틈으로 엿보고 있던 흑선풍 이규가 방문을 박차고 큰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와 은천석을 말에서 끌어내려 주먹으로 한 방 갈겼다. 건달들이 달려들었지만, 이규가 휘두르는 주먹에 대여섯 명이 나가떨어지자 모두 달아나고 말았다. 이규는 은천석을 붙잡아 일으키고는 다시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찼다. 시진이 말렸지만, 은천석은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시진은 ‘아이고!’ 소리치며 이규를 후당으로 데려가 상의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자네는 여기 있으면 안 돼. 관아에는 내가 적당히 둘러댈 테니, 자네는 빨리 양산박으로 돌아가게.”
이규가 말했다.
“내가 달아나면, 대관인이 연루될 건대요.”
“나는 단서철권이 보호해 줄 거네. 자네는 바로 떠나게. 지체하면 안 돼.”
이규는 쌍도끼를 들고 여비를 챙겨 뒷문으로 나가 양산박으로 달려갔다.
얼마 후, 2백여 명이 칼과 창봉을 들고 시황성의 집을 포위하였다. 시진이 밖으로 나가서 말했다.
“내가 관아로 함께 가서 해명하겠소.”
사람들은 먼저 시진을 포박하고, 집안으로 들어가 수색했지만 시커먼 덩치는 보이지 않았다. 시진을 관아로 끌고 가서 대청 앞에 무릎을 꿇렸다. 부윤 고렴은 처남 은천석이 맞아 죽었다는 것을 듣고 대청에서 이를 부드득 갈면서 분노하고 있는 중이었다. 시진을 계단 아래에 엎어놓고 소리쳤다.
“네놈이 감히 우리 은천석을 때려 죽였느냐?”
시진이 고했다.
“소인은 시세종의 적파자손으로, 가문에 태조께서 하사하신 단서철권이 현재 창주의 제 거처에 있습니다. 숙부 시황성의 병환이 위중하여 뵈러 왔는데, 불행히도 간밤에 운명하시어 지금 상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은직각이 2~30명을 데리고 와서 저희를 집에서 쫓아내려고 하였습니다. 제가 변명하려 했으나 듣지 않고서 사람들에게 명령해 저를 때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장객 이대가 저를 보호하려다가 그만 사람을 때려죽이게 되었습니다.”
고렴이 소리쳤다.
“이대는 지금 어디 있느냐?”
“겁이 나서 달아났습니다.”
“그놈이 장객이라면, 어찌 너의 명령 없이 감히 사람을 때려죽인단 말이냐? 네놈이 고의로 그를 달아나게 해 놓고서, 관아를 속이려 하느냐! 네놈이 얼마나 맞아야 제대로 불겠느냐? 여봐라! 저놈을 있는 힘껏 때려라!”
시진이 소리쳤다.
“장객 이대가 주인을 구하려고 하다가 실수로 사람을 때려죽인 것이니, 제가 관여한 일이 아닙니다. 태조께서 하사하신 단서철권이 있는데, 어찌 형법에 의거하여 나를 함부로 때릴 수 있습니까?”
“단서철권이 어디 있느냐?”
“이미 사람을 창주로 보내 가져오게 했습니다.”
고렴은 크게 노하여 소리쳤다.
“저놈이 관아에 항거하는구나! 여봐라! 매우 쳐라!”
옥졸들이 매를 내리쳐, 시진은 살갗이 찢어지고 살이 터져 선혈이 흘러내렸다. 시진은 하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장객 이대에게 은천석을 때려죽이라고 명령했다고 진술하였다. 고렴은 25근짜리 사형수 칼을 씌우고 감옥에 가두게 하였다. 은천석의 시신은 검사한 후에 관에 넣어 장례를 치렀다. 은부인은 형제의 원수를 갚고자 남편 고렴을 시켜 시황성의 가산을 몰수하고 가족들을 감금했으며 저택도 점거했다. 시진은 감옥 안에서 고통을 겪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