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하나고등학교는 2010년 개교 때부터 주목을 받았다. 첫 졸업생을 배출한 2013년도 대입은 ‘하나고 센세이션’이었다. 졸업생 절반 이상이 SKY 등 명문대에 진학했기 때문이다.
이 학교의 재단은 ‘하나금융그룹’이다. 막강한 자본력이 뒷받침돼 있다. 그런데 불편한 시선이 있다. 하나고에 기부하는 기업들이 모두 하나은행과 긴밀한 관계라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2010년 하나고 개교 당시 금융권이 만든 ‘귀족학교’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특히 하나고의 한 해 등록금이 1200만원을 상회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은 가중됐다. 그러나 이런 논란과 무관하게 하나고는 ‘명문고’의 이미지를 굳혀갔다.
재단의 지원과 각계각층의 기부금 등 막강한 자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평가다. 그런데 하나고의 기부금을 두고 숱한 뒷말이 나오고 있다. 도마에 오른 건 기업들이 내놓은 돈이다. 이 기업들이 유독 하나고에만 집중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은성·우회적 지원 의혹
기업들의 기부는 분명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럼에도 여기에 불편한 시선이 존재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기부 기업들이 모두 하나은행과 금융거래 및 협력 관계이기 때문이다. 대가성 기부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하나고는 기부금을 상시 모급하고 있다. 기부금의 종류는 장학금과 시설비, 연구교육비, 비지정 등으로 구분된다. 기부 약정 시 후원자가 용처를 지정할 수 있다. 기부자는 교내 ‘명예의 홀’에 명의를 기재하고, 주요행사에 초청 받는 등의 예우를 받는다.
기업들이 하나고에 기부하는 이유
기부를 한 회사들은 단 한 곳도 빠짐없이 하나은행과 협력 및 금융거래 관계를 맺는다. ‘대가성 기부’라는 불편한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광고사인 이노션과 디자인하우스, 웰콤퍼블리시스월드와이드 등이 그 예다.
먼저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이노션은 하나금융지주와 2011년부터 거래를 맺어오고 있다. 2011년부터 매년 TV광고 제작을 대행하고 있다. 여기에 올해부터는 하나은행과 거래를 하고 있다.
디자인하우스는 하나은행의 사외보와 사내보 등 다양한 기업홍보물을 제작하고 있다. 특히 28년 전부터 문화예술 계간지인 ‘하나은행’을 제작해 제공하고 있다. 2009년 8월 ‘웅진에듀프리 하나카드’를 출시했다. 이는 웅진씽크빅 제품을 구매하거나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할 경우 카드 포인트를 적립하거나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카드다.
두레시닝도 마찬가지다. 하나은행 행우회와 하나대투증권이 출자해 만든 두레시닝은 소모성 자재를 납품하는 이른바 MRO(Maintenance Repair Operation) 기업이다. 이 회사는 하나금융지주 계열사를 통해 매출의 90% 이상을 의존하고 있다. 금융지원에 대한 ‘보은성’ 기부도 눈에 띈다.
동부메탈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룹 내 또다른 계열사인 동부하이텍의 주식매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지적이다. 동부하이텍은 2010년 차입금 상환을 위해 보유 중인 동부한농주식 5000만주(78.32%)를 매각했다.
당시 계열사와 총수일가가 주식 18.32%를 매입해 동부 측 총지분율을 40%로 만들었다. 나머지 60%는 재무적 투자자들이 매입했다. 이 때 하나은행은 다른 투자자들과 공동으로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지분 37.8%를 인수했다. CJ그룹도 2011년 대한통운 인수 자금 모집 과정에서 수혜를 입었다. 당시 CJ그룹은 다수의 은행으로 구성된 차관단 차입자에게 융자해 주는 ‘신디케이트론’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이 과정에서 CJ그룹은 하나은행으로부터 500억원을 차입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오너가 경영권 방어에 도움을 받았다. 미국계 펀드인 템플턴이 최대주주에 등극한 후 경영참여 범위를 대폭 확대하자 정몽규 회장 등 기존 대주주 측이 지분율을 확대하면서 맞대응에 나섰다. 이때 정 회장에 자금지원을 해준 게 하나은행이다. 중앙건설도 하나은행으로부터 적잖은 혜택을 봤다.
하나은행은 이 회사가 건설 중인 부동산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2008년 최대주주의 보유지분을 담보로 150억원을 빌렸다. 또 2011년 말 경영악화로 자금줄이 막혀있던 중앙건설에 270억원을 내어주기도 했다. 부영주택도 하나은행과 끈끈하다. 하나은행은 그동안 부영주택에 무한신뢰를 보내며 갖은 금융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에 화답하듯 부영주택은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자금 마련을 한몫 거들며 긴밀한 관계를 재확인시키기도 했다.
대한제당은 원화자금을 장기로 조달할 때 은행을 활용해 왔다. 산업·하나·씨티·SC제일은행에서는 사모사채를 발행했다. 중장기 대출 땐 국민·우리·신한·하나·외환은행과 농협, 수협 등을 찾았다. 두 가지 모두를 지원해준 건 하나은행이 유일하다. 원창흥업은 하나은행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그러나 지주사인 동화홀딩스가 하나은행과 금융거래를 하고 있다. 시몬느와 세아상역, 서한사, 동강메디칼시스템, 동강메디피아, 경신금속, 서부티엔디, 동양석판, STS반도체통신 등도 하나은행과 금융거래 관계다.
이밖에 삼익악기 기부의 경우 이형국 대표의 출신과 연관 짓는 시선이 많다. 이 대표는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을 거친 금융권 출신이다. 태산엘시디는 2009년 말 통화옵션계약 관련 채무에 대한 출자전환으로 하나은행이 최대주주가 됐다.
하나은행과 금융거래·협력 관계
상황이 이렇다보니 재계 안팎에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나은행이 금융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기부를 종용하거나 강제한 것이 아니냐는 시선이 있다. 반대로 혜택을 받은 기업에서 보은을 위해 ‘자진 납세’ 했다는 시각도 있다. 그 배경과 별개로 향후 기부금이 늘어나리란 견해가 많다. 하나금융그룹의 자금 지원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하나금융 자회사인 외환은행이 하나고에 250억여원을 출연하려다 은행법 위반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당시 은행법은 은행이 대주주의 특수관계인에게 자산을 무상으로 양도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법이 은행의 공익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일었다. 그러자 정부는 법을 고쳐 출연에 대한 반대급부인 임직원전형만 금지시켰다. 하나고는 임직원전형을 유지하는 대신 후원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당연히 학교 운영자금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를 메우기 위해 금융 및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모금’에 나설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게 재계 안팎의 견해다.
하나금융 홍보실 관계자는 “기부금에 대해서는 자세히 아는 바가 없다”는 간단한 입장을 취했다. 하나고 측이 자세히 안다는 것. 하나고 기획홍보실 관계자는 “기부금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며 행정실로 안내했다. 행정실 관계자는 대가성 기부금 의혹에 대해 “기부금은 순수하다”며 “하나금융그룹의 참견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법인에 따라 교육청 감사도 받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강조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하나고의 재정에 일부 부족한 부분이 생겨 학교법인 하나학원 이사장인 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자금 조달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기업의 기부를 이끌어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교육가치 훼손하는 귀족학교 카르텔
현재 하나고는 막강한 자본력으로 자사고계의 별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 안팎의 자금이 끊임없이 들어오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나고는 시작부터 귀족학교 논란에 휩싸였다. 기업들의 수상한 기부내역은 귀족학교의 민낯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줬다.
막강한 자본력 앞세우는 귀족학교의 존재는 공교육의 가치를 점점 위협하고 있다. 자사고 본래의 목적은 수업을 다양화함으로써 양질의 교육을 전하는 데 있다. 설립목적이 아무리 좋다 해도 지금의 자사고는 ‘귀족학교’라는 논란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현재 기업이 세우고 운영하는 곳은 대표적으로 하나고(하나금융그룹), 포항제철고(포스코), 현대청운고(현대중공업), 인천하늘고(인천공항공사) 등이 있다. 자사고 평균 학비는 연 700만원 이상으로 알려진다. 결국 이러한 교육도 가정형편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 형편이 어려우면 엄두도 못 낸다.
반면 형편이 좋은 가정의 자녀는 높은 진입장벽을 뚫고 입학한다. 이들은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국내 명문대는 물론 해외 명문대까지 뻗어가며 그 존재감을 공고히 하고 있다. 일반고 학생들과 출발선상이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공교육의 정상화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미 공교육의 교육가치는 심하게 훼손됐다. 이 같은 교육계의 현상은 날이 갈수록 더욱 더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의 공교육은 공허한 메아리만 들리는 공(空)교육이 됐다.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그들만의 ‘카르텔’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힘은 한국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계급화와 계층화에 따르는 갈등은 더욱 더 심해질 것이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한편 3월에 개교할 예정인 삼성의 충남삼성고는 정원의 70%나 되는 신입생을 임직원 자녀 중 우선 선발할 계획으로 알려지면서 공교육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 이런 일이 자사고 특성상 가능한 일이긴 하나, 폐쇄적 행보로 인한 여론의 화살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글•이광후 경제전문 기자로, 지구시민교육 강사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