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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노란우체통[2013~2017] 원문보기 글쓴이: 이혜숙
교사, 허수아비와 무뇌아 교육 | ||||||
‘슬픈 표정 짓지 말아요.’ 선생님 하면 겹쳐지는 여러 모습 중에서 ‘처진 어깨에 주눅이 든 얼굴’, ‘힘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진 않는가. 여러분은 혹시 대부분의 교사들이 자기주장이 약할 뿐더러 자기주장을 펼치는 것을 애써 외면한다는 인상을 받지는 않았는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안고 있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이런 상태라면 무엇인가 단단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분노가 있었지만 슬픔에 눌려 있었다. ‘교사는 이 나라의 국민도 아닌가, 교사는 도대체 사람이기나 한 것일까?’라는 자조이기도 했다. 투표용지에 기표할 권리 외에는 어떠한 정치적 권리도 허용되지 않고 표현의 자유, 언론 집회 결사 출판의 자유 등 기본권이 심각하게 제한되고 유린된 투명인간의 이름이 교사였기 때문이다. 이제 ‘슬픈 표정’을 지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야만적인 권리박탈의 당사자가 집단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수치이자 굴욕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무엇을 말함인가? 정권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그들은 전교조를 탄압한다. 사람들은 전교조가 왜 탄압받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깨어있는 다수의 국민은 우리 교육을 위한 전교조의 정의로운 저항을 생각해낼 것이다. 그러나 전교조 탄압에 대한 근본적인 답은 아주 단순하게 주어지기도 한다. 전교조가 아니 교사 집단이 더 나아가 모든 교사와 공무원이 정치권력에 ‘복종’하지 않을 때, 정권이 국민들에게 ‘복종’과 ‘순응’을 요구하고 싶을 때의 수단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권력은 가장 정치적인 목적으로 교사들을 도구화하며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 공무원의 정치기본권을 거세하고 있는 자체가 수구 보수 권력의 정치이며, 정권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전교조를 왜곡된 보수 이데올로기의 제물로 만들어내는 토양이자 시스템인 것이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선의에 의한 공적인 표현이 교사라는 개인과 집단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박탈하는 데 동원되는 사이에 2014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다시 실종의 위기에 놓여 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헌법에 의해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치적 중립의 의무’가 아니라 헌법에 의해 부여받은 권리가 ‘교육의 정치적인 중립’인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제 11조(1)는 그 누구도 신분에 의해 정치의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확하게 하고 있다. 교육과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은 헌법 제11조에 의해 교사라는 신분으로 정치적으로 차별받지 않으면서 헌법 제31조에 의해 정치적 중립을 보장받는 교육활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헌법 제7조(2)에서 보장하는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과도 같은 맥락이다. 만약 교육과 교사의 ‘정치적 중립’이 헌법적인 ‘권리’가 아니라 ‘의무’라고 한다면 ‘~보장한다’가 아니라 ‘~을 준수한다’ 또는 ‘~의무를 진다’라고 했을 것이다.
역대 독재정권들은 교육을 정권의 이데올로기 선전장으로 여겼고 교사들을 정권의 나팔수로 내몰았다. 그 시대 교사들이 맡았던 교육은 왜곡되고 윤색된 민주주의 그리고 전체주의를 내면화한 기형적인 세대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각인으로 남았다. 서슬 퍼런 독재 권력이 과거가 되고 민주주의가 형식을 갖추며 변화를 이끌어 온 30여년이 지나도록, 대한민국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우리 사회의 발목에 채워진 쇠사슬 같은 것. 일인 독재 권력의 우상화, 자본과 개발에 대한 일방적 찬양, 친일을 은폐하거나 미화하고 분단을 고착화하며 동원한 수구냉전의 기형적인 민족논리가 그것이다. 반노동 반인권 반민주의 시대가 그것이다. 그 정당화와 합리화의 최전선에 교육과 교사가 있었다. 장면 부통령 후보의 유세에 교사와 학생이 참가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4.19교원노조가 들어섰지만 박정희 5.16쿠데타 정권은 이들을 반공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운 폭력으로 철저하게 탄압하고 해체했다. 그리고 유신이 왔다. 교사들은 털털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빈 도시락의 딸그락 소리를 내면서 마을 곳곳을 ‘가정방문’해야 했다. 유신헌법 찬성 투표 독려! 그리고 아침마다 학생들에게 ‘유신 과업을 실천하는 멸공애국 정신을 기른다’로 시작하는 유신과업완수 5대 과제를 외우게 했다. 그렇게 학생들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과제를 안고 이 땅에 다시 태어나야 했다. 피로 얼룩진 5공 정권에서는 교장이 교무실에서 민정당 당원 가입원서나 선거등록원 서명을 받고 다니는 일도 공공연히 벌어졌다. 4.19 이후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교사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권리를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제약하는 근거로 삼으려는 것은 따라서 교육과 교사를 여전히 정치적인 도구로 활용하려는 정치권력의 힘의 논리일 뿐인 것이다. 생활이 정치이고 정치가 생활이라면서 교육은 이제 공적으로도 생활에서도 가장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고 국민 대다수가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각종 선거에서 교육공약은 빠짐없이 주요 의제가 되고 직선 교육감이 여론의 중심에 놓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교육정책을 내놓고 고민하고 주장해야 될 교사와 교원단체의 정치기본권은 ‘박탈’ 수준에 있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교육의 전문성은 사실상 학교 안에서만 묶여 있다. 거의 모든 교육정책이 정치와 정권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에서 현장의 교육전문성은 정치권력의 곁다리로 있어야만 한다. 이런 구조에서 교육백년대계는 공염불이다. OECD 수준의 학급당 학생 수 감축과 교사 증원을 요구하고 대학서열화 해체를 주장하는 것도 질식 상태에 있는 공교육을 숨 쉬게 할 시급한 처방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모두가 교육현장의 교사들의 전문성으로부터 나온 것들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선거철이 지나고 나면 모르쇠로 일관한다. 생활이 정치라면서 교육의 전문성으로 생활하는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인정하지 않는 반인권, 반문명적인 현실이 공교육의 파괴까지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전교조 중앙집행위원들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발표했으나 이마저도 박근혜 정권은 탄압의 빌미로 삼고 있다. 그러나 탄압을 각오하지 않는 한 ‘정치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한 교사들’은 이에 대해 침묵해야 하는 것이다. 정치기본권이 박탈된 교사들의 제한적인 노동기본권 보장조차 그 실체를 갖기 어렵다는 것 또한 작년 박근혜 정권의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 사태에서도 알 수 있다. 민주주의를 생활 속에서 가르쳐야 할 교사들에게 정치기본권이라는 민주주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것은 교사에게 영혼이 없는, 가치관도 없는 허수아비가 되라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가치와 영혼이 없는 무뇌아 교육을 하라는 것이다. 야만에서 문명으로 세계 주요 국가들은 교원의 정치활동을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3) 북유럽 국가들은 제한 법률 자체가 없고, 영국은 하위직 공무원과 교사에게 거의 제한 없이 허용하며 프랑스·독일·미국 등은 공직선거 출마도 허용하고 있다. 일본도 정당 가입과 후원을 허용하고 있다. 교육의 전문성을 가진 교사들이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며 교육정책을 직접 생활의 정치로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교육활동 중에 불편부당함이 없으며 공무수행에 지장이 없으면 되는 것이다. 또한 2013년 6월 ILO총회에서 ILO기준적용위원회도 “정치적 견해에 따른 유치원 및 초중등 교원에 대한 차별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5)했다. 이는 같은 교원이면서도 대학 교원에게만 정치활동을 허용하는 차별을 해소하라는 것이기도 했다. 국가공무원복무규정으로 아예 정부 정책에 대한 집단적인 비판을 봉쇄하는 것이나, 미성숙한 유초중고생을 담당하고 있으니 ‘교사는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라고 강요’하는 헌법을 넘어서는 법률들은 모두 야만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정치적 판단의 미숙아인가. 초등학생들은 무상급식이나 민주주의에 대해 토론하면 안 되는 것일까.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에 따라 학생, 교사를 포함한 누구나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다. 각 종교는 지고지선의 가치임에도 학교에서 특정 종교를 선교, 비난, 강요하지 못한다. 교사의 정치기본권도 그렇다. 이제 권위주의 시대의 교육통제는 불가능하다. 교사들이 학부모들이 눈을 크게 뜨고 있다. 보수 교원단체인 한교총도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박탈된 앵무새를 누가 교사라고 하겠는가. 아니 국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2010년 2월 대전지방법원은 전교조 시국선언 관련 1심 무죄 판결문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교사·공무원의 정치적인 의견 표명 행위를 인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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