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경기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야구장을 찾는 관중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죠. 그렇지만 전반기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순위싸움은 뜨거웠습니다.
●‘벌떼’는 살아 있다?
지난해 전임 LG 김성근 감독은 잦은 투수 교체로 ‘벌떼 야구’라는 별명을 얻었는데요, 올 시즌에도 LG에는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LG는 지난 3일 문학 SK전과 5일 잠실 현대전에서 무려 8명씩의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선발투수가 5이닝을 채우지 못한 것은 당연했지요. 원포인트 릴리프를 제외한 나머지 중간계투 대부분은 1이닝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강판됐습니다.
특히 5일에는 지난 2일 문학 SK전에서 더 이상 교체할 중간계투가 없자 선발로 등판했던 김광삼이 마지막투수로 마운드에 올랐지요. 이는 마운드의 붕괴에 따른 현상입니다.
이동현이 부상으로 선발로테이션에서 빠지고 최원호까지 부진해 선발이 일찍 무너지면서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는 거죠. 주위에서는 “마치 지난해 김성근 감독의 야구를 보는 듯하다”는 말도 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이광환 감독이 어떤 식으로 마운드를 운영해 어려움을 헤쳐나갈지 궁금하네요.
●쥐만 잘 잡으면 된다!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주도했던 덩사오핑 주석은 80년대 후반 ‘흑묘백묘론’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얘기로, 자본주의 방식이든 공산주의 방식이든 생산력 향상과 국가 발전만 이룰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실용주의 노선을 뜻합니다.
LG 이광환 감독도 이런 생각인 모양입니다. 4일 좌완투수 서승화를 대타로 투입해 성공을 거둔 이 감독은 6일 “잘 치고 잘 던지면 투수든 타자든 상관없다. 보직에 얽매여 선수 운용의 폭을 좁힐 필요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특정 노선(포지션-체제)을 고집하지 않고 목표(승리-생산력)를 달성하겠다는 뜻이겠습니다. 투수가 타석에 대타로 들어서는 문제에 대해 여기저기서 반발이 많은 모양입니다. 일부에서는 “선진야구를 표방한 감독이 프로야구 초창기 때나 있을 법한 일을 벌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감독은 “서승화가 타격 능력이 있으니 좌타자가 부족한 팀 사정상 계속 내보낼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를 둘러싸고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누가 이혜천 좀 말려줘요!”
좌타자가 좌투수에게 약한 것은 다들 아시죠? 삼성 양준혁에게도 천적 같은 좌투수가 있습니다. 두산 이혜천인데요. 볼은 빠른데 제구력이 들쭉날쭉해 어떤 좌타자도 쉽사리 공략하지 못하는 투수가 바로 이혜천입니다.
‘위풍당당’ 양준혁도 이혜천만 만나면 맥을 못 춥니다. 올해도 5타수 1안타로 부진한 편입니다. 가뜩이나 이혜천에게 콤플렉스가 있는 양준혁인데 지난 3일 잠실 두산전에서는 정말 어이가 없더랍니다.
삼성이 10-2로 앞서던 6회 2사 3루에서 양준혁 타석이었습니다. 이미 승부가 기운 데다 두산의 두번째투수 김승회가 그럭저럭 버티고 있던 터라 투수를 교체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요. 앞선 타석에 같은 좌타자인 이승엽이 나서자 가만히 있던 두산 코칭스태프가 자신의 타순이 되자 갑자기 이혜천을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양준혁은 순간 ‘맥주에 김 빠지는’ 느낌이 들더랍니다. 급박한 상황도 아닌데 이혜천을 내보내는 통에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는군요. 어쨌든 양준혁은 2루땅볼로 힘없이 물러났습니다.
두산 코칭스태프가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다는군요.
●값진 1승
5일 잠실 LG전을 앞둔 현대 선수단의 외야미팅 때 난데없이 박수가 터졌습니다. 이는 1년에 한두 번쯤 대기록이 나왔을 때나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요, 박수를 받은 주인공은 다름아닌 선발투수 김수경이었습니다.
김수경이 무슨 대기록을 세웠냐고요? 아닙니다. 4일 잠실 원정 첫 경기에서 선발승을 따낸 것뿐입니다.
김수경은 이날 7이닝을 1안타 4볼넷 7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해 시즌 3승을 올렸는데요, 굳이 의미를 두자면 지난 4월 30일 대구 삼성전 이후 무려 65일 만에 승리투수가 된 것입니다.
김수경이 올 시즌에 뚜렷한 이유 없이 부진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자주 봐왔던 룸메이트 정민태가 이날 격려 차원에서 선수단의 박수를 유도한 것입니다. 정민태는 “4일 밤 처음으로 수경이가 편안하게 자는 모습을 봤다. 룸메이로트서 뭔가 도와주고 싶었다”고 이유를 설명하더군요.
●설레는 페레즈와 이시온
롯데의 외국인선수 로베르토 페레즈와 이시온은 요즘 설레는 마음이랍니다. 가족들이 곧 한국으로 나들이를 와 ‘홀아비 신세’를 면하게 된 거죠. 페레즈의 부인과 아들 딸은 11일에 들어오고, 이시온의 장모와 부인, 외아들은 1주일 뒤인 18일에 도착합니다. 이들은 그동안 가족이 오기를 학수고대했죠.
페레즈는 지난 5월 말 한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멕시칸리그 디아블로에서 같이 있던 펠릭스 호세에게서 익힌 한국의 밤 문화에 관심을 보였지만 6월 초 한차례 밤거리를 거닌 뒤로는 통 흥미를 보이지 않았답니다. 이시온도 마찬가지였죠. 처음 호기심과는 달리 이들은 사실 굉장히 가정적인 스타일이라네요.
휴일에도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냈으니 그동안 얼마나 적적했겠어요. 오래간만에 가족들과의 오붓한 시간을 기다리는 페레즈와 이시온의 얼굴에는 요즘 웃음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SK 프런트의 즐거운 비명
SK가 창단 후 처음으로 올 시즌 선두를 달리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원래 팀 성적이 올라가면 구단 관계자들도 신이 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팀이 잘 나가는 바람에 오히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는 불쌍한(?) 사람이 있다고 해요. 마케팅팀의 김종상 팀장인데요, 팀이 선두를 달리자 관중수도 그에 비례해 많아져야 한다는 중압감이 아주 큰 모양이에요.
SK 마케팅팀은 이미 지난해 스포츠서울 ‘올해의 상’에서 프런트상을 받는 등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올해도 셔틀버스 운행, 인천시내 음식점과의 제휴 이벤트 등 참신한 아이디어로 LG에 이어 관중수 2위를 기록 중인데요, 김 팀장은 문학구장이 텅 비어 있는 꿈을 꿔 한밤중에 식은 땀으로 이불을 흥건히 적시기도 한답니다. 그는 “그래도 1위를 하고 있는 기쁨이 훨씬 더 크다”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이 외에도 홍보팀 박철호 차장은 올 시즌 늘어난 부상을 전달하는 일가 많아 운동장을 오가느라 무릎이 아플 지경이고, 또 다른 직원은 축하 술자리가 잦아지는 통에 집에서 바가지를 이만저만 긁히는 게 아니라고 하소연입니다.
●마지막 가는 길이 외롭지 않았던 진정필 전 대전고 코치
지난달 30일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던 진정필 전 대전고 코치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떠남으로써 다소 우울했던 한 주였습니다. 그런데 고인의 넋을 위로하고자 빈소가 마련된 천안삼거리 장례식장에 참으로 많은 사람이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와 유족들을 놀라게 했어요.
영안실에는 옛 동료였던 한화 선수단을 비롯해 모교 천안북일고 선후배, 대전고 제자 등 야구계 지인들로 3일 내내 발디딜 틈이 없었어요. 보통은 영안실을 한 칸 쓰는 데 비해 이들은 3개를 차지하고도 모자랄 정도였으니까요.
장례비를 부담한 한화 쪽의 말로는 3일 동안 다녀간 조문객이 먹은 음식에 든 비용만 1000만원이 넘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와 애도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어림잡아도 1000명은 넘는다고 봐야죠.
장례식장에 가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왔는지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죠. 평소 고인이 참 따뜻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얄미운 비야
기아는 지겹게 쫓아다니는 비 때문에 지난주 때아닌 방학을 만끽했죠.
지난달 28일 청주 한화전부터 마산 롯데전, 광주 두산전까지 9경기 중 비로 5경기를 치르지 못했어요. 29일과 2일 더블헤더를 치른 것을 제외하면 3일부터 개점휴업상태예요. 선수층이 얇은 팀이라 휴식이 보약이 될 법도 하지만 코칭스태프나 프런트 모두 울상입니다. 상대가 만만한 하위권 팀이었던 데다 밀린 경기가 후반기에 집중되면 얇은 선수층 탓에 버겁기 때문이죠. 게다가 포스트시즌 진출 길목에서 집중견제를 받을까봐 걱정이 앞섰던 거예요. 7일 현재 68경기를 치러 76경기를 치른 롯데보다 8경기나 모자라지요.
후반기에 전력의 플러스요인이 있다면 별 걱정이 없겠지만 그리 기대할 만한 게 없어 이래저래 속앓이를 하고 있어요. 그저 비가 얄미울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