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 추어탕
혹심하던 더위 기세가 한결 꺾인 구월 하순 수요일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날이 밝아오는 이른 아침 자연학교 등굣길에 나섰다. 추분이 지나자 하루가 다르게 해가 짧아져 감을 실감한다. 5시 조금 지나 현관을 나서니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미명이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난 정류소에서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원이대로 간선 급행버스 정류장에서 31번으로 갈아탔다.
31번은 대방동을 출발해 동읍에서 주남저수지를 비켜 대산 들녘을 가로질러 본포 강가로 가는 버스였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을 거쳐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를 지났다. 일교차가 큰 아침이면 짙은 안개가 끼기 마련인데 운무가 엷게 끼려는 기미를 보였다. 대기 중 습도는 갖추었으나 간밤 낮은 구름이 끼고 일교차가 그리 크지 않은 관계로 안개가 끼도 짙게 끼지 않을 듯했다.
동읍 행정복지센터에서 주남삼거리를 지나 화목과 동전을 거치니 차창 밖으로 주남저수지가 드러났다. 벼농사를 대신한 저지대 연근 경작지는 잎을 넓게 펼쳐 꽃을 피웠던 연은 갈색으로 시들어갔다. 벼가 익으면 누렇게 황금빛 들판으로 바뀌듯이 연근도 뿌리가 다 자라면 잎이 시들었다. 봉강에서 용연을 지난 산남을 거쳐 죽동에서 메타스궤이아 가로수길이 끝난 윗대방에서 내렸다.
인적이 없는 들판에서 농로를 북쪽으로 나아가면서 동녘 하늘을 바라보니 옅은 구름 사이로 아침 해가 솟아올랐다. 지평선이 드러난 평야가 아니라도 엷게 끼는 안개로 수평선에서 뜨는 해를 보는 듯했다. 논에는 벼들이 고개를 숙여 익어가는데 일부 구역에서는 벼멸구가 기승을 부려 잎줄기가 일찍 말라버려 농부의 시름을 더할 듯했다. 며칠 전 폭우에 쓰러진 벼가 보이기도 했다.
들판 가운데 꽤 넓은 경작지에 단감 과수원이 나왔다. 산지를 개간해 단감을 가꿈이 일반적이나 드물게 평지 과수원이었는데 과육이 굵고 품질이 좋을 듯했다. 까치가 날아와 감을 쪼지 못하도록 넓은 과수원에는 단감 그루 높이보다 더 위에 성근 그물망이 둘러쳐 있었다. 산수유가 줄지어 자라는 죽동천에 놓인 다리를 건너 구산마을 앞으로 가니 강 건너편은 수산 아파트가 보였다.
시야를 조금씩 가리려던 안개는 극성을 부리지 못하고 아침 햇살에 밀려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들녘 한복판에는 다다기 오이를 가꾸는 대규모 비닐하우스단지가 나왔다. 엊그제 거기를 지나다가 선별에서 제외된 처진 하품이 가득해 보조 가방에 챙겨 이웃과 잘 나누었었더랬다. 그때 남겨둔 처진 오이들은 농사 부산물을 모아 두엄으로 삼는 곳으로 치웠는지 빈 상자만 보였다.
풋고추 비닐하우스단지를 지나자 머스크멜론을 수확한 농장이 나왔다. 선별 작업실을 겸한 농막에는 상품 포장에서 밀려난 하품이 아직 뒹굴고 있었다. 농장주를 만났으면 인사를 나누고 싶었지만 얼마간 기다려도 보이질 않아, 그중에 외피가 깨끗한 세 개를 골라 손에 들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모산으로 나가 마을버스를 들녘 농로를 따라 가술까지 걸어 멜론은 편의점에 맡겼다.
이른 아침 가게를 연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테이크아웃으로 받아 행정복지센터 인근 공원에서 쉬었다. 며칠 전까지만도 얼음 조각이 든 냉커피를 마셨는데 기온이 서늘해짐이 분명했다. 업무가 시작되길 기다린 마을도서관을 찾아 최근 등록된 신착 도서 가운데 눈길을 끈 역사 비평서를 집었다. EBS 강사를 지내기도 한 저자가 쓴 ‘역사의 쓸모’에 이은 ‘다시 역사의 쓸모’를 펼쳤다.
한글 문해반 강좌 할머니들과 같은 열람실에서 독서삼매에 빠졌다가 점심때가 되어 밖으로 나왔다. 국숫집이 휴무라 추어탕으로 한 끼 때웠다. “사대강 치수 사업 논란이 있다마는 / 길고 긴 강둑으로 자전거 내달리고 / 둔치는 파크골프장 동호인들 붐빈다 // 가술리 국도변에 식당이 성업인데 / 메기탕 어탕집이 빠질 리 있겠는가 / 도서관 머물다 나와 추어탕을 시켰다” 대산 추어탕. 24.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