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장미
나희덕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자연이 얼마나 정치적인 것인지
폭격 당한 땅 위에 피어난 분홍빛 장미처럼 총탄 맞은 나무에 달린 버찌처럼 죽은 병사의 가슴에 누군가 놓아둔 라일락 한 다발처럼 폐허를 걸어가는 농부의 귓바퀴에 꽂힌 들꽃처럼
그래서 그는 썼다
밀랍 같은 병사의 얼굴과 보랏빛 라일락, 전쟁과 봄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풍경에 대해 전쟁과 죽음을 넘어선 그 힘에 대해
그는 또한 알고 있었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이 오소리나 왜가리의 습성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정치와 정원이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인지를 정치의 동물성과 정원의 식물성을
그래서 그는 심었다
꽃처럼 덧없는 존재로서 장미 몇 그루를 6펜스짜리 도러시 퍼킨스, 폴리앤서, 알버틴을
자유란 빵과 장미를 모든 사람이 가지게 되는 것
다행히 그가 심은 장미들은 오래 살아 남았다 붉거나 노란, 또는 분홍의 장미들은
* 리베카 솔닛, 『오웰의 장미』, 최애리 옮김, 반비 2022.
―월간 《현대시》 2023년 4월호 --------------------- 나희덕 /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뿌리에게』『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그곳이 멀지 않다』『어두워진다는 것』『사라진 손바닥』『야생사과』『말들이 돌아오는 시간』『파일명 서정시』 『가능주의자』 등.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문명의 바깥으로』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