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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이 셋째 봉인을 여실 때 내가 들으니 셋째 짐승이 말하기를 “와서 보라.” 하더라. 그리하여 내가 보니, 보라, 검은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위에 탄 자가 그의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계 6:5).
검은 말이 의미하는 바는 기근인데 지역적인 범위의 기근이 아닌 전세계적인 흉작을 나타내고 있다. 이 기근은 후3년 반에 발생할 나팔과 호리병 재앙과는 차이가 있는데 후자의 그 재앙들은 초자연적인 것들임에 반해 셋째 봉인의 재앙은 인위적인 원인으로 발생하는 측면이 있다. 왜 그런가, 둘째 봉인으로 인한 전쟁 재앙이 전세계적이었던 이유로 인해 농사가 제때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로 인해 세계인의 식량 산지 구실을 하는 북미, 남미라던지 남러시아, 동남아시아 등의 곡창 지대들의 작황이 좋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70년대 통일벼를 개발하여 쌀 생산량을 끌어올렸고 보릿고개를 극복하는 데 중점을 둔 여러가지 식량 증산 조치를 통해 식량 자급 국가의 반열에 올랐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식생활이 점차 서구화되면서 쌀 소비량은 감소하고 있고 이제 감소되는 쌀 생산량을 대신해서 육류, 곧 돼지나 소, 가금류 등의 공급량이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여러분도 다 아는 이야기일테지만 구제역, AI(조류독감)가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 극성을 부렸고 최근까지도 그런 추세였다. 이제 한국은 식량 자급도가 현저히 떨어진 상태이며 여기에 남북한 전쟁이라던지, 가축 전염병 확산 등을 통해 언제든 기근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에 와 있다.
한국은 주로 고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노력에 기초한 국제 무역을 통해서 OECD 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그때부터 시작된 한국의 번영과 풍족함이 앞으로 계속 유지될 거라고 많은 한국인들은 장밋빛 기대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불과 반세기 전, 50-60년대 우리 어버이, 할아버지 세대들은 보릿고개를 통과하며 헐벗고 못입고 살았었고 쌀밥이라도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인 때가 분명 있었다. 전쟁을 모르고 자란 현 세대들은 밥 한 그릇의 고마움을 인식할 줄 모르게 되었고 이제 하나님께서 분명 이 민족 앞에 준비하신 대환란, 물론 한민족만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그 환란 기간에 필연적으로 닥쳐올 대기근에 대해 이 백성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다.
검은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위에 탄 자가 그의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이 검은 말 탄 자가 든 저울은 식량을 분배하기 위한 측정 저울이다. 여러분은 지금 적어도 한국, 미국, 기타 서방국가들, 이런 나라들에서는 마켓에 널려있는 모든 먹거리들을 무제한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전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이후의 상황인 그때에는 공산국가에서 늘상 벌어지던 배급 받기 위한 기나긴 줄, 또는 UN 구호기구가 소말리아나 기타 분쟁 지역에서 난민들에게 한 주먹씩 콩이나 낱알을 나눠주듯이 배급제로 식량을 얻게 된다.
또 내가 너희의 식량봉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빵을 구워서 다시 저울에 달아 너희 빵을 너희에게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만족하지 아니하리라(레 26:26).
배고픔은 인간에게 있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될 수 있고 기근의 기억은 오래 남게 되어 있다. 한국인들이 가장 최근에 겪었던 기아에 가까운 상황은 6.25와 그 직후에 이어진 식량이 부족한 시기였다. 그때는 미국에서 많은 식량을 원조해 주어서 한국인들은 에디오피아나 남수단, 예멘처럼 대량으로 인명이 희생되는 기아는 겪지 않고 다소 고통스러운 정도로만 그 시기를 넘겼다. 그 정도의 고난도 얼마나 힘든 기억이었던지 50-60년대에 10대를 경험했던 그 세대는 "밥 굶는 것"에 대해 심각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을 정도이다. 전쟁과 기아를 경험해 보지 않은 전후세대가 이런 것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마는 하나님께서는 주기적으로 전세계 어디든지 50년 정도의 주기로 전쟁이 일어나게 하심으로 기근의 고통이 어떤지 깨닫게 하시고 그 백성들의 교만을 낮추시곤 했다. 한국 민족의 교만은 지금 너무나 높아져서 이제 현재 그들이 누리는 풍요에 대한 감사함이 전혀 없다. 그들은 자기들을 이 정도로 잘 살게 해 준, 또 외적으로부터 잘 지켜주는 대한민국을 폄하하고 조롱하며 심지어 "헬조선" 운운하면서 마치 한국이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나라인양, 분쟁국가인 시리아나 이라크보다 못한 곳인양 어마어마한 불평 불만에 가득 차 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까지도 그런 악한 세상 분위기에 휩싸여서 자기가 태어난 조국, 기독교 신앙의 자유를 제한없이 누릴 수 있는 이러한 자유 국가에 대해 고맙다는 생각을 잊어가고 있다. 그래서, 참으로 무섭고 불행한 일이 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한국 땅에도 전쟁의 바람을 점점 몰고 오고 계시며 이 땅의 전쟁이 언제 닥치든 결국은 오게 되어 있다. 이 시점에 가장 중요한 것은 원래 감사할 줄 모르고 배은망덕이 몸에 배어 있는 비그리스도인인 한국 사람들은 불평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만큼은 자기들의 나태함과 불평에 대해 회개하고 6.25 이후에 못 살던 그때 그리스도인들이 낮아졌고 겸손했던 그러한 초심으로 돌아가서 한국 땅에 재앙이 속히 오지 않도록 간구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때 네 짐승들의 한가운데서 한 음성을 들었는데, 말하기를 “밀 한 되가 한 데나리온이요, 보리 석 되가 한 데나리온이라.” 하고 또 “너는 기름과 포도주는 손상시키지 말라.” 하더라(계 6:6).
식량 부족의 양상에 대한 보다 더 세밀한 묘사가 이어지는데 천정부지의 물가 상승이 있을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다. 한 데나리온은 하루 일하고 받는 임금인데 즉 노동자가 자신의 일당 전부를 주어서 밀 한 되, 혹은 보리 석 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표준적인 한 되가 1.8L 정도인데 밀 한 되, 보리 석 되라 할때 여러분은 한 사람이 하루 먹기에는 차고 넘치는 양이 아니냐, 배부르게 먹겠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리 단순하게 생각할 게 아니라 이것을 가족 대표자인 부모가 가족들에게 분배한다고 계산해 보라. 가족 구성원 수만큼 1/N을 해야 진짜 인당 얼마가 돌아가는지 나온다. 어린 자녀가 많다면 양이 더 떨어질 것이고 결국 다이어트 식단 정도로 약소한 분량만 돌아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 서울 같은 도시 어디에서든 100m만 이리저리 걸어다녀도 식당이 밟힐 듯 널려 있는 그런 환경은 7년 환란이 진행될 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단서가 붙는 것을 보는데 특정 식자재들, 즉 기름과 포도주는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왜 그런 것인가? 우리가 자세한 사정을 본문에서 직접 알아낼 수는 없으나 유추는 가능하다. 이 기름이 올리브유 같은 기름을 의미한다면 가능한 유추는 이렇다. 올리브가 주로 재배되는 산지, 이를테면 남유럽이나 지중해권 영역은 기름을 풍족하게 계속 낼 것이다. 게다가 올리브가 많이 나는 그 지중해 지역에는 먹는 기름 말고 석유를 생산하는 산유 국가들도 다수 존재한다. 특히 리비아는 주요 산유국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이스라엘도 농산물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이고 그 근방 나라들은 다 산유국이거나 식용유를 생산한다.
다시 말해 본문의 기름이라는 게 먹거나 바르는 올리브 기름 같은 것이든, 혹은 연료로 쓰는 석유이든 간에 이 시기에 기름 종류는 부족 사태가 없을 것이라고 성령께서 알려주시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앞서 강의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데 둘째 봉인 재앙으로 인해 전세계적인 전쟁, 소요가 빈발할지라도 이스라엘과 그 인근 지역은 보존될 것이라 했었다. 내가 지난번에 빠뜨리고 얘기했지만 유럽의 주로 남부 지역들도 온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바티칸이 있는 이태리 같은 경우 적그리스도의 세계 정부 본부가 위치한 곳이므로 특히 안전하게 지켜질 것이다. 옛 로마 제국이 영토로 삼았던 그 판도 안에서는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가 지켜지고 나머지 전세계에서는 죽음의 전쟁들이 이어질 것이다. 그 결과 일어나는 것은 기름과 포도주는 지켜지고 나머지 지역의 주 작물들은 모두 망치는 것이다.
여러분은 포도주의 유명한 주 산지들이 남유럽과 지중해 인근에 있음을 알 것이다. 특히 스페인이라던지 프랑스 보르도 같은 지역들은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포도주를 생산할 것이다. 발효된 포도주는 로마 카톨릭의 미사를 치르기 위해서도 필수적이기 때문에 교황의 자리에 앉을 적그리스도는 포도주가 끊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쓸 것이다.
이제 여러분은 둘째 봉인의 재앙이 어디를 비켜갈 것이며 어디를 타격할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전세계가 전쟁 때문에 신음하고 연이어 닥쳐온 세계적 기근으로 인해 고통에 빠져드는데 오직 옛 로마의 영토에 해당하는 그 지역들만 현대 문명의 이기와 번영을 그대로 유지한 채 타격을 입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는가 하면 적그리스도가 세울 인류 최후의 문명은 중국이나 미국, 러시아 땅에서 출현하지 않고 로마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또 일곱 호리병을 가진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가 와서 나와 대화하며 말하기를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그 큰 창녀의 심판을 네게 보여 주리라. 땅의 왕들도 그녀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녀의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도다.”라고 하고(계 17:1-2).
로마와 예루살렘, 이 도시는 후3년 반 때 파괴될 것이기에 전3년 반에는 별탈 없이 넘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로마는 언제 파괴되는가, 로마 도성은 예루살렘보다 더 늦게 파괴되는데 후3년 반 중에서도 상당히 후반 어느 시점에 결정적인 초토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예루살렘은 후3년 반이 시작될 때 적그리스도가 군대를 끌고 와서 1차적으로 파괴하고, 지상 재림 직전에 또 와서 2차 파괴를 저지른다. 즉, 바티칸과 로마는 예루살렘의 1~2차 파괴 사이에 없어질 것이다.
자, 마시는 포도주 같은 경우에 그것이 있고 없고가 인간의 기본 생활과 큰 관련은 없다. 또, 먹거나 바르는 기름이야 없어도 그만인 플러스 알파 같은 존재이다. 왜 본문에서 이 두 가지가 부각되고 있는지 잘 생각해야 한다. 앞서 얘기했듯이 둘째 봉인 재앙의 화를 비켜갈 지역들이 바로 로마 제국 영토라는 것을 암시한 것이었고 또 다른 의미도 찾아낼 수 있다.
후3년 반이 되면 하나님께서 그 가증스런 신성 로마 제국의 영토 안에도 본격적인 재앙들을 들이 부으실 것인데 그때는 포도주도 기름도 더 없게 될 것이다. 포도주가 사라지면 사탄의 카톨릭 교회는 무엇으로 미사를 드려야 하는가? 인간의 직접적인 피를 갖고 할 수 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이것은 카톨릭의 종교 시스템에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들의 미사 의식은 상징이 아닌 구원의 장치이기 때문에 포도주가 없어지는 것은 심각한 사태라는 얘기다. 그래서 두 증인이 활동하면서 로마 제국에 기근이 닥치면 사탄의 교회인 카톨릭 사제들은 유대인들을 목베어서 그 피로 미사를 바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후3년 반에 유대인을 잡아 바치는 인신 제사가 보편화되는 것이다.
기름이 없으면 또 무슨 일이 생기는가, 성체(미사에 쓰는 동그란 밀가루 빵)를 굽기 위해서 기름이 필요할 수 있다. 만일 기름을 구할 수 없다던지 심지어 밀가루조차 더 없다면 그때는 무엇을 쓰게 될까? 유대인의 피로 포도주를 대신했듯이 유대인의 살코기로 인육 성체를 만들게 될 것이다.
또한 자동차를 달리게 하는 석유가 끊어진다면, 그 일은 후3년 반의 어느 시점에 일어날 것인데 석유를 운송하는 송유관이 지진들로 인해 파괴되고 바다가 피가 되어 유조선들이 가라앉으면 그때는 기름이 있어도 쓸수 없게 될 것이고 결국 동방에서 오는 2억의 군대는 트럭 대신 말을 타야 할 것이다.
그들은 가난한 자를 옷 없이 벗은 채로 가게 하며 주린 자들에게서 곡식단을 빼앗고 이들은 담 안에서 기름을 짜며 포도즙틀을 밟으니 목이 말라 고생하는도다(욥 24:10-11).
적그리스도는 후3년 반이 시작될 때 짐승의 표를 전세계에 보급하여 모든 인류를 단일 정부에 경제적으로 종속시킬 것이다. 그 후 모든 인류는 적그리스도의 로마 제국을 위해 노동을 착취당하는 신세, 즉 강제 노역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적그리스도 정부와 비슷한 체제인 북한에서는 국제적으로 금지된 유소년 노동 착취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한국 스키 선수들을 보낸다고 하는 그 마식령 스키장도 어린 아이들이 흙 파고 돌 날라가며 급조해서 만든 악명높은 아동 착취의 산물이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김정은이 아동 학대로 국제 사법 재판에 회부된다면 문재인도 그의 옆자리에 설 만한 자격이 충분히 생겼다고 보는데 모르겠다. 그 날이 오기 전에 대환란이 올 것 같으니까 아마 그 자들은 백보좌 심판석에서 하나님께 자기의 죄상을 심판받게 될 것이다.
산업 혁명 초창기에 영국에서는 북한보다 훨씬 심한 아동 착취도 용인되었고 지금도 아프리카, 동남아 등에서는 아이들이 푼돈을 받으면서 성인보다 더 고된 노동에 시달린다. 그런 일들이 지금은 북한이나 못 사는 저개발 국가에서나 발생하고 있지만 7년 환란 때는 세계 어디나 그렇게 된다. 욥 24장은 그런 비참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인데 특히 저 강제적으로 동원된 노동자들이 무엇을 위해 수고하는지 보라. 다름아닌 "기름"과 "포도주" 아닌가? 이들은 신성 로마 제국의 협동 농장에 소집되어 크메르루즈 뺨치게 가혹하고 잔인한 감시자들에게 채찍질을 당하면서 그들을 위해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대환란을 통과하게 된다면 결국 아오지 탄광의 노동자 같은 신세가 되어 666표를 받아서 밥이라도 먹여주는 것을 감지덕지 하며 목숨을 이어갈 것이다.
내가 늘상 하는 얘기 중 하나이지만 대환란 때 짐승의 표를 받는다고 해서 출세하고 잘 나가는 그런 조건을 받는 게 아니다. 일부 과잉 상상력을 발휘한 송명희의 "표" 같은 대환란 소설 때문에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666표를 대단한 훈장 아닌가 생각하고 그것을 받으면 적그리스도 정부에서 요직에라도 앉혀지는 줄 안다. 절대 그런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가축들에게 주는 낙인 같은 것이요, 죄수에게 찍는 낙인이나 문신 개념이다. 죄수 번호 1번, 2번 할때의 그런 개념이지 여러분이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는 그런 표가 아니다. 그 표를 받으면 여러분은 적그리스도가 지명한 직장에 나가서, 아마도 그 직장은 식량 생산을 위한 공산주의식 협동 농장일텐데, 거기에 출근해서 북한식 새벽별 보기 운동하듯이 새벽부터 밤까지 뼈빠지게 농사를 지어야 한다. 나중에 계 11장을 보겠지만 후3년 반 때에는 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다. 물은 호스로 지하수를 끌어다 댄다 해도 비도 안 내리는 퍽퍽한 땅을 괭이질 하는 게 무슨 삽질이겠는가? 그러나 총부리를 겨누고 채찍을 휘둘러 대는 마귀 같은 군인들과 간수들이 시키면 해야 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들도 비슷한 일을 겪었고 폴 포트 치하의 캄보디아인들도 그랬었다. 모택동의 "저 새가 나쁜 새다"라는 망발 때문에 죽음의 대기근을 겪은 공산 중국 인민들도 똑같았다. 그 노동자들은 기본적인 자급도 할 수 없는 저효율 노동에 혹사당하고 곡식을 생산해서 공산 특권 귀족들을 위해 바쳐야 했다. 그들 자신은 기아에 시달리며 굶어죽어 가면서 말이다.
어린양이 넷째 봉인을 여실 때, 내가 넷째 짐승의 음성을 들었는데, 말하기를 “와서 보라.” 하더라(계 6:7).
넷째 봉인이 열리면서 상황은 보다 엄중하고 가혹하게 되어 간다. 이 넷째 봉인의 시점이 아마도 전3년 반에서 후3년 반으로 넘어가는 전환기가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그런 이유가 다음 구절에 나온다.
이에 내가 보니, 보라, 창백한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위에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요 지옥이 그 뒤를 따르니, 그들에게 칼과 굶주림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 땅의 사분의 일을 죽일 권세가 주어졌더라(계 6:8).
창백한 말은 시체의 푸르딩딩한 색깔을 암시하는 존재인데 수많은 즐비한 시체들이 늘어져 있는 광경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최초로 말 탄 자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영어에서는 대문자로 Death라 되어 있다. 즉, 이 '사망'이라는 것은 고유 명사로 언급된 성질로서 특정한 어떤 방식의 죽음이 이 시기 만연할 것이다 하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다. 가령 20세기 초 전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이라던지 중세 유럽을 공포에 흽싸이게 한 페스트라던지 그런 일련의 유행병 같은 것들이다. 여기에 "지옥" 또한 영어 킹제임스에서는 첫 철자가 대문자로 되어 있는 Hell이다. 사망과 지옥 둘 다 고유명사화 시켜 쓰인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내 생각에는 이렇다. 이 단어들에 방점을 두고 강조하지 않았더라면 많은 독자들이 "아, 이건 상징이겠구나, 많은 사람들이 지옥 같은 고통을 받는다는 의미겠구나"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성령께서 "아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다, 진짜 지옥이 아가리를 열고 지상에 개방된다"고 말씀하시기 위해 이렇게 쓰신 것이다. 여러분이 진짜 지옥이 개방되는 장면을 보고 싶다면 계 9장으로 가서 다섯 째 천사의 나팔 이후 상황을 관찰하라. 거기에 진짜 지옥이 열리고 그 밑의 존재들이 지면으로 올라오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계 6:8의 상황과 계 9:1 이하의 상황은 사실상 동어 반복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의 봉인 체계, 나팔 체계, 호리병 체계(개역 성경에는 대접이라 되어 있으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속행되는 연대기 구조라고 착각들을 하는데 그게 절대 아니란 말이다.
계 6장은 7년의 전체 기간을 아우르는 식으로 되어 있고,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기초 그림, 데생 같은 묘사이다. 여러분은 계 6장을 보면서 7년 전체를 스케치 하듯이 대략 훑어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넷째 봉인에 이르렀을 때 지옥이 나타나고 있고 그 장면은 계 9장과 일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첫째에서 넷째 나팔 사이의 일들은 아마도 봉인으로 따지면 셋째 봉인에서 넷째 봉인 사이에 벌어진다는 얘기다. 내가 그래프와 그림으로 이야기한다면 보다 쉽겠지만 글로만 설명하다 보니 좀 어려울 것이다.
하여간 나팔 재앙들을 말할 때 이 부분은 보다 세밀하게 다룰 것이지만 첫째에서 넷째 나팔까지의 사건들을 계 8장에서 보게 되면 그 부분은 굉장히 어떤 여백 없이 쑥쑥 진행되는 긴박한 그림이 그려진다. 전3년 반의 끝무렵에 첫째~넷째 나팔이 집중 발생하고 그러고 나서 지옥문이 열리고 아바돈이 올라오면서 멸망의 아들 시대, 곧 후3년 반 기간이 개막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옥이 열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는가? 우선 여러분은 지옥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지옥의 위치, 그 번지수도 모르면서 이 장면을 해석하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많은 혼란을 겪을 것이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지옥이 다른 차원에 있다 생각하고 또 어떤 이들은 우주의 어느 먼 별에 있을 것이라 여긴다. 다 틀린 추정이고 지옥은 지구 안에, 즉 땅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요나가 사흘 낮과 사흘 밤을 고래 뱃속에 있었듯이, 인자도 그처럼 사흘 낮과 사흘 밤을 땅의 심장 속에 있을 것이라(마 12:40).
내 진노중에 불이 붙어서 가장 낮은 지옥까지 사를 것이며, 땅을 그 소산과 더불어 소멸할 것이며 산들의 기초에도 불을 놓으리라(신 32:22).
요나의 사망한 몸은 고래 뱃속에서 사흘 밤낮 머물렀고 죽은 요나의 혼은 그 시간 지옥에 떨어져서 시련을 겪고 있었다. 그 부분은 요나서에 나오기에 궁금하면 읽어보시라. 예수께서도 비슷한 경로를 거쳐 십자가와 부활 사이를 통과하셨는데 예수께서도 땅의 심장, 즉 지구의 핵이 있는 그곳으로 내려가셨다. 사실 지질학자들이 내핵, 외핵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사람들이 직접 시추공을 뚫고 확인해 본 것이 아니고 지진파로 간접 추정한 것 뿐이다. 뭐가 정확히 지구 중심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인간이 아는 바는 땅을 파고 내려가면 어느 시점에 너무나 온도가 치솟아서 그 고열은 인간의 각종 장비들을 녹여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지각의 겉표면만 알 수 있을 뿐이지 "산들의 기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없다.
많은 현대인들이 잘못된 지식, 즉 진화론과 무신론적 현대 과학에 속아서 땅 밑에는 암석과 용암만 있는 줄 아는데 불과 유황, 그리고 "빈 공간"(지옥)이 분명 이 아래에는 존재한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말씀(66권 보존된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진리요 최종 권위임을 확신한다면 위에 내가 인용한 구절들을 읽을 때 의심할 것이 하나도 없다. 지옥은 분명 땅 밑에 있다.
칼과 굶주림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 여기서 앞서 봉인들에 있었던 일이 되풀이 묘사되고 있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칼, 둘째 봉인 때 큰 칼이 있었고 그것이 사람들을 사정없이 죽였다. 칼은 인위적 재앙, 인간이 유발하는 전쟁들이다. 전쟁은 둘째 봉인 때 세계적으로 발생했지만 후3년 반이 끝나는 때 전쟁이 또 일어난다.
이 전쟁이 어떤 전쟁일지는 마 24장을 보면 쉬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리니, (읽는 자는 깨달으라.)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들로 도망하라(마 24:15-16).
적그리스도는 전격적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평화의 성역으로 남아 있던 이스라엘과 그 수도 예루살렘을 공격할 것이다. 그 일은 7년의 중간 시점에 발생할텐데 그 전쟁은 적지 않은 희생자를 낼 것이다. 마 24장에서는 이 전쟁이 매우 신속하게 종료될 것, 즉 6일 전쟁보다 더 빨리 마쳐질 것 같은 뉘앙스를 보여준다. 어쩌면 24시간밖에 걸리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래서 피난 가는 유대인들은 비행기를 잡아타고 초자연적 피난처가 준비될 요르단 페트라 지역으로 날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칼"과 6:4의 "큰 칼"은 그 단어 자체도 다르거니와 의미상 지역 전쟁으로 국한된다고 본다. "큰 칼"은 세계대전 급일 수 있으나 그냥 "칼"은 어떤 지역의 전쟁이고 내가 볼때에는 그것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는 적그리스도의 침공 전쟁이다. 어쨌건 이 전쟁으로 인해 또다시 많은 희생자와 난민들이 발생할 터이고 전3년 반 동안 그나마 피해를 안 입었던 팔레스타인 땅이 파괴되면서 "사망"이 유행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 "사망"(Death)이라는 고유명사 단어는 후3년 반 때 유행하게 될 어떤 치명적인 질병, 집단 유행병을 말하는데 그 질병은 아프리카나 유럽에서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문둥병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페스트 같기도 한 이 악랄하고 강력한 전염병은 예루살렘 제3성전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라 에스겔서에 천명되고 있다. 확인해 보자.
그가 또 내 귀에다 큰 소리로 부르짖어 말씀하시기를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도 각자 손에 파괴하는 무기를 들고 나오게 하라.” 하시더라(겔 9:1).
적그리스도는 예루살렘 제3성전에 멸망의 가증한 것, 즉 자신의 형상을 세우게 하고 유대인들을 끌고 와서 자신의 666표를 받도록 강요할 것이다. 물론 유대인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지배하는 전세계 나라에서 동시에 벌어질 일이다. 그들이 표를 받으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그러면 필리스티아인들이 이스라엘로부터 탈취해 간 언약궤로 인해 겪었던 끔찍한 피부병이 다시 유발될 것이다.
그러나 주의 손이 아스돗 사람들에게 엄중히 임하시어, 주께서 그들을 멸하시고 악성 종기로 그들을 치셨으니 아스돗과 그 지경까지더라(삼상 5:6).
그들이 그것을 옮긴 후에 주의 손이 심히 큰 멸망으로 그 성읍을 치시니라. 주께서 그 성읍의 사람들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치셨으니, 그들의 은밀한 부분에 악성 종기가 생기더라(삼상 5:9).
"악성 종기"라 되어 있는 이 질병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성을 모독한 적그리스도와 그의 666 신도들에게 내리시는 질병인데 성전의 언약궤 자리에서부터 번져나갈 것이다.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은 이것에 감염되어 욥이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신음했듯이 신음하게 될 것이며 거지 나사로가 피부병에 걸려 누워 있었듯이 생지옥에 빠져들 것이다.
또 내가 듣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를 쫓아가 성읍을 통과하여 치되 너희 눈에 아끼지도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말며 늙은이나 젊은이나, 처녀나 어린아이나 여자를 전부 죽이되 표가 있는 사람에게는 접근하지 말며 또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니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사람부터 시작하더라. 또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전을 더럽히고 살해된 자들로 뜰들을 채우라.” 하시고 “너희는 나가라.” 하시니 그들이 나가서 성읍에서 죽이니라(겔 9:5-7).
질병이 어디서 시작된다고 말했지?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그 성소에 무엇이 세워진다고 말씀하시지?
그러나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했던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서 있는 것을 볼 때면 (읽는 자는 깨달으라.)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막 13:14).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시리아 왕은 스룹바벨 성전의 지성소를 더럽히고 자신의 제우스 신상을 거기에 들여놓음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그는 패망하고 말았다. 적그리스도 또한 비슷한 일을 행하다가 "사망"이라는 병으로 공격받게 되는 것이다. 그는 "멸망의 가증한 것"(자기 형상)을 "서지 못할 곳"(제3성전 지성소)에 세울 것이며 그로 인해 겔 9장의 상황이 초래되는 것이다. 심판은 성소에서 시작되어 예루살렘 도시로 확산될 것이고 그리고 나서 이스라엘 전체, 나아가 전세계를 향해 확산되어 갈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표를 받은 자들이 머무는 도시, 촌락, 시골, 그 어디든지 빠짐없이 사망은 그의 흉한 낫을 들고(중세 페스트 유행을 묘사한 그림처럼) 검은 망토를 뒤집어 쓴 채 방문할 것이다.
그 질병은 인간의 피부를 극심하게 공격하여 문드러지게 만들고 극도의 가려움을 일으키는 성질인데 여러분이 아토피에 걸려 고통받은 적이 있다면 그 고통을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때 내가 돌이키고 눈을 들어 보았더니,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이더라. 그가 내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내가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오니, 그 길이가 이십 큐빗이고 그 너비가 십 큐빗이니이다.” 하였더라. 그러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것은 온 지면에 퍼져 나가는 저주라. 도둑질하는 자는 누구나 그것에 따라 이편에 있는 대로 끊어질 것이요, 맹세하는 자는 누구나 그것에 따라 저편에 있는 대로 끊어질 것이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내가 그것을 내어 놓으리니 그것이 도둑의 집과 내 이름으로 거짓되이 맹세한 자의 집으로 들어가리라. 또 그것이 그의 집 가운데 남아 있을 것이며, 거기에 있는 목재와 석재들과 더불어 그 집을 소멸시키리라.” 하더라(슼 5:1-4).
슼 5장에도 이 질병의 실체가 조금 나오는데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통해 질병이 운반된다. 그것은 아주 빠른 속도로 전세계에 살포되고 확산된다.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알라딘의 양탄자 형태로 생긴 UFO를 연상케 하는데 실제로 미확인 비행체들은 초자연적 비행을 하곤 하기에 사람들은 외계인이 거기 타고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다. UFO의 실체가 무엇이든간에 그 비행체는 선한 천사들이 운전하는 좋은 물건이 절대 아니다. 사람들을 죽이거나 납치하고 고통을 주는 수단이 UFO이다.
실질적으로 암흑시대에 페스트가 확산되는 경로에 UFO와 관련된 기이한 보고들이 있다. 검은 제복을 입은 아주 수상한 사내들이 도시를 돌면서 무슨 가루 같은 것을 뿌리고 다닌 뒤에 질병이 집단 발병한다던지 아예 UFO가 도시 상공을 떠 다닌 직후에 페스트가 번진다던지 했다는 이야기들이 있다. 중세 화가들이 그린 많은 성화나 그림들에는 하늘에 돌아다니는 UFO들이 아주 빈번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와 같은 취지의 진술이 슼 5장의 저러한 장면이다.
즉, 대환란 후3년 반 때 어떤 미확인 비행체 같은 것들이 전세계 상공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일종의 "켐트레일" 같은 화학 물질을 마구 뿌려댈텐데 슼 5장에 의하면 그 비행체는 하나님께서 심판을 위해 파송하신 파멸의 운반 도구이다. 그것이 뿌려지면 <부식성 문둥병>이 일어나면서 돌이고 철이고 각종 가재도구 등이 부식되기 시작하고 인간의 몸에 닿으면 극렬한 화학 작용이 일어나면서 삽시간에 문둥병 환자처럼 끔찍한 몰골이 되는 병이다. "거기에 있는 목재와 석재들과 더불어 그 집을 소멸시키리라."
너희의 재물은 썩었고, 너희의 의복은 좀먹었으며 너희의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것들의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어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마지막 날들을 위한 재물을 쌓았도다(약 5:3).
저 두루마리 질병에 의해 약 5:3의 상황이 초래된다. 금과 은을 녹슬게 하는 위력을 가진 질병이다. 인간만 오염시키는 게 아니라 돌, 철, 금, 은, 의복 같은 무생물까지 공격해서 부식시키는 강력한 "생화학테러급" 무기인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적극적 충성 분자들이 되어 갖은 악을 자행하고 잘 살게 될 대환란 때의 일루미나티 같은 부자들도 이 질병으로부터 피해 갈 수 없는 것이다.
다른 자들은 불 속에서 끌어내어 두려움으로 구원하되, 육신으로 더럽혀진 그 옷조차도 증오하라(유 1:23).
이 질병에 일단 감염되면 예수님이 문둥병자를 치유해주시듯이 그야말로 사도적 은사에 의한 기적 외에는 치유될 방법이 없다. 그냥 고통당하다가 죽어서 지옥에 가는 것인데 유다서에서는 "불 속에서 끌어내어 두려움으로 구원"이라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을 보면 이미 걸린 자들도 구제 방법이 있기는 한 것이다. 대환란 때 은사를 지닌 어떤 유대인 전도자가 그 병자들에게 안수하고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에게 물에 씻으라고 한 것처럼 조치를 취하면 살 수도 있다.
그러면 "땅의 짐승들"은 무엇일까, 공중의 짐승이 아닌 땅의 짐승이니까 사자, 호랑이, 늑대, 그런 류의 짐승 되겠다. 혹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독뱀이나 전갈 같은 류도 될 수 있겠다.
"칼과 굶주림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 이 네 가지로 인해 7년 환란 중간에 존재할 인류의 1/4이 죽게 된다. 이미 많은 인구가 전3년 반 때 죽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생각컨데 한 60억 정도는 있을텐데 그 중에서 1/4이 아주 짧은 기간 안에 사망하고 이것은 인류 역사상 극히 예외이자 기록적인 인구 감소의 사례가 될 것이다. 징기스칸이 수백 만을 죽이고 다녔고 페스트도 수천 만을 학살했지만 그런 재앙들은 수십 년 이상 기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본문의 재앙은 아마도 1년도 안 되는 기간 안에 집중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나는 넷째 봉인 재앙의 기간을 거의 1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렇다.
그때 그 여인이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았는데, 이는 그녀가 광야에 있는 자기 처소로 날아가서 그곳에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부양받으려 함이더라(계 12:14).
특별한 언급, 7년 환란 중 후3년 반에 대한 매우 이례적인 언급이다. 성경에 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표현은 세 번 등장하는데 다니엘서 7:25, 12:7, 그리고 계 12:14이다. 이 기간은 전3년 반이 아니고 후3년 반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계 12:14은 그 기간 동안 일부 유대인들이 광야로 가서 도피 생활을 한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후3년 반 동안 그 유대인 피난자들은 페트라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셋으로 구획된 기간은 "한 때", "두 때", "반 때"로 차별화되어 있다. 성경에 의미없이 이렇게 표현할 리가 없고 전달하고자 하는 무엇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범주 안에서는 어떤 기존 신학자들 가운데서도 이것에 대해 연구를 했거나 심층 분석까지는 못해도 알아내려 시도라도 한 사람이 거의 없다. 아니 사실상 없다. 내가 계시록을 해석한 신학자들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계시록을 연구한 성경 주석가 가운데 이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짚어낸 사람, 한 명도 없다. 그만큼 베일에 가려진 교리라고 볼 수 있는데 그래서 신학 역사상 거의 최초로 심층적으로 이 부분을 주석하려 시도하는 나는 사명감도 느끼고 부담도 된다. 내가 이 교리 해석의 첫 타자라면 잘못된 해석을 할 경우 그 부정적 파급 효과는 크지 않겠는가? 그러나 신중하고 조심해서 말할 수 밖에 없다.
우선, 나는 어떤 확실한 결론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으며 아직 연구는 진행 중이라는 점을 말씀드린다. 결론은 아직 없지만 짐작하는 바는 몇 가지 있고 그것이 정리되면 나중에 글로 쓸 수 있을 것이다. 그 내가 짐작하는 것 중 하나가 적어도 이 "한 때"라는 부분은 나팔 재앙의 기간이 아닐까 하는 추정이다. 그런데 계 9장에서 보면 여섯째 천사의 나팔이 2억 군대의 소환과 관련되고 있어서 이 여섯째 나팔을 "한 때"에 포함시키기에는 역부족인 부분이 있다. 아마겟돈으로 향하는 군대가 후3년 반의 초반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아직 연구는 진행중이라고 한 것이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개념을 대환란 때의 구체적인 어떠 어떠한 사건들에 결부시키기에는 아직 맞지 않는 조각 퍼즐들이 남아 있어서다.
그 네 천사가 풀려나더라. 그들은 사람들의 삼분의 일을 죽이려고 그 연, 월, 일, 시를 위하여 예비해 둔 자들이라(계 9:15).
6:8에서는 인구의 "사분의 일"이 죽었고 계 9:15에서는 "삼분의 일"이 또 언급된다. 이 두 케이스를 순차적인 진행으로 받아들인다면 1/4 먼저 죽고 남은 3/4중 1/3이 또 죽는 것이니까 결국 원래 초창기 인구의 최대 50%는 주님이 지상 재림하실 때 살아남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세대주의의 일반적 주석가들은 그렇게 순차적 인구 감소가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저 "연, 월, 일, 시"라는 게 아마겟돈 전쟁이 확실하냐 하는 것이다. 어떤 개신교 주석가들은 계 9장을 아마겟돈 전쟁으로 보지 않고 그 무슨 "유프라테스 전쟁"이니 하면서 별개의 사건으로 취급하려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간에 1/4이 죽는 6:8보다는 1/3이 죽는 9:15이 더 강력한 전쟁일 것은 뻔한 사실이고 그렇다면 이게 아마겟돈 전쟁일 것이라는 쪽에 무게는 실릴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겟돈 전쟁의 사망자 숫자가 9:15의 것보다 더 커야 하는데 막상 계 19장에서 볼 때 아마겟돈의 사상자 숫자는 통계가 나오지 않고 있어서 비교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나는 일단 계 9장의 여섯째 천사 부분을 아마겟돈으로 해석하는 편을 유지하는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해 더 확실한 것이 나오면, 혹은 이후에 계시록을 계속 해석하면서 새로운 관점이 있으면 그때 보충해서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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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렇게 해석하니까 그대로 됩디까? 계시록이 1세기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21세기 22세기용으로만 해석하러 하니까 억지가 되지요.
계시록 해석이 이제는 이렇게 되면 안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