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바리새인의 기도,
혐오스러운 기도이다.
자신의 모습을 못 본 가식적인 기도이다.
토색과 불의와 간음을 하지 않았다는 거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자들이다.
바리새인이 ‘구별된 자’란 뜻이기도 하다.
정작 본질적인 뜻을 모르기 때문이다.
성경의 가르침을 단순히 도덕과 윤리 수준으로 알았던 거다.
몸의 규례 정도로 말이다.
토색(討索, 약탈)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는 이들을 강도와 절도라 하신다.
맡겨진 양들의 영혼을 사냥하였던 거다.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요10:8)
불의(不義)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는 이들에게 불법(不法)하였다 하신다.
하나님의 법인 진리를 모르고 율법 조문에 매여 외식으로 갔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3)
간음하지 않았다.
본질적인 간음은 참 남편이신 그리스도 외에 다른 남자를 받아들이는 거다.
진리 외에 비진리를 받아들이는 거 말이다.
어찌 스스로 의롭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제대로 하나님을 몰랐던 거다.
성경의 글자는 아나 그 안에 담긴 영적인 뜻을 몰랐던 거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7:3)
들보를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