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 한림 들녘을 지나
구월 하순 목요일 아침이다. 평소와 달리 자연학교 등교 교통편을 열차로 타고 갈 참이다. 아주 드물게 경전선 일부 구간을 짧게 이용하는 경우다. 이른 아침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퇴촌교 삼거리로 향했다. 창원대학 앞 창원천 상류 냇바닥은 큰물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이 뚜렷했다. 뜨거웠던 여름 열기를 종식시킨 지난 주말 상당한 강수량으로 불어난 냇물이 휩쓸고 간 자국이었다.
도청 뒷길을 돌아 역세권 업무 빌딩이 들어선 상가를 지나 창원중앙역에 이르러 기본요금에 해당할 한림정역까지 표를 구했다. 진주를 출발 동대구로 가는 열차는 통근족이 상당수 타고 와 내렸다. 밀양을 거쳐 대구로 가는 이들이 탔는데 연이어 수서행 SRT를 타려는 이들과 겹쳐 승차장이 혼잡했다. 비음산터널을 통과한 진례역에서 SRT를 먼저 보낸다고 잠시 대피선에서 쉬었다.
차창 밖으로는 벼가 익은 들녘과 공장지대가 한눈에 들어왔는데 수서행 열차가 지나지 다시 출발 진영역을 지나자 화포 습지는 고였던 흙탕물이 빠진 흔적으로 나뭇잎과 풀들은 얼룩이 져 있었다. 냇바닥이 아주 넓은 화포천은 큰비가 내렸을 경우 낙동강 배후에서 유수 저수지 기능을 담당했다. 일시 채워진 냇물은 대형 펌프로 낙동강으로 퍼 넘겨 인근 농경지는 침수되지 않는다.
한림정역에서 내려 역전의 신봉마을에서 북쪽으로 펼쳐진 들녘으로 나갔다. 최근 한림 가동에서 생림까지 부분 개통된 국가지원 60번 국가지원 지방도는 오가는 차량이 한산한 편이었다. 미개통인 유등과 북부리 일대가 완공되면 북면 온천장까지 자동차로는 금세 닿을 여건이었다. 장방에서 흘러온 수로를 건너 신촌으로 향했는데 드론 동호인들이 나타나 여가를 즐기던 장소가 나왔다.
장방은 엊그제 세상을 떠난 장기표 선생이 자란 곳이다. 그분은 선대부터 살던 밀양 상남 남산에서 태어나 부친이 강을 건너와 한림 장방에서 살게 되었는데 동시대 인물 노무현 대통령과는 봉화산을 등진 지척의 거리다. 노 대통령은 상업학교를 나와 독학으로 사법고시를 통과했고 장기표는 공고를 나와 서울대로 진학해 한평생 군사 독재 정권과 맞서 민주화 운동으로 생을 마쳤다.
한림 들녘은 벼농사와 비닐하우스 딸기 농사가 혼재했다. 벼를 거둔 뒷그루로 심을 양파는 모판에 씨앗을 파종해 어린싹이 자랐다. 신촌을 앞둔 들녘 축사 근처에서 방향을 바꾸어 시산으로 나아갔다. 강변 야트막한 산이 숟가락을 엎어둔 형상이라 시산(匙山)으로 불리는데 우리말인 술뫼가 더 친근감이 있었다. 강 너머 둔치는 ‘술뫼생태공원’으로 명명된 규모가 큰 파크골프장이다.
강둑으로 올라 드넓은 둔치를 바라보니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뒷기미에서 밀양강이 합수되어 삼랑진으로 빠졌다. 강 건너 명례에는 전주 이씨 재실 낙주재가 보였다. 낙주재 인근 명례성당은 구한말 병인박해 때 순교한 손석복 생가는 경남 최초 천주교회 본당으로 지금도 운영이 된다. 소금장수였던 손석복은 대구 감영에서 순교했는데 교황이 방문했을 때 성인 복자로 시복되었다.
술뫼 언덕 지인 텃밭을 찾아가니 농막에 부재중이라 발길을 돌렸다. 둔치 파크골프장에는 동호인들이 운집해 여가를 즐겼고 둑길을 따라 걸으니 풀을 자르는 인부들이 수고했다. 트럭 적재함에 쓰레기를 싣고 나타난 건장한 사내 셋은 강둑 언저리를 순찰했는데 낙동강유역환경청 유니폼을 입은 정규직 근무자였다. 가동에서 낮은 언덕을 돌아 유등으로 가는 강둑을 따라 계속 걸었다.
유등 배수장 근처 말을 사육하는 승마클럽에는 창원 동읍 소재 초등학교에서 체험학습 나온 아이들이 승마 체험을 즐겼다. “한 반에 예닐곱 될 소규모 시골 학교 / 또래와 함께 나선 승마장 체험학습 / 조교가 고삐 끌어준 말 안장에 오른다 // 동무 앞 무릎 짚고 고개를 수그려서 / 등에다 올라타던 말타기 떠올리니 / 요즈음 자라는 아이 귀족으로 모신다” ‘말타기 놀이’ 전문. 24.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