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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 선풍 이어 반야지혜 증득” | ||
법주사 총지선원, 수좌 26명 동안거 결제 하루 10시간 정진…“은산철벽 타파” 다짐 | ||
[법보신문] 4 |
신라 진흥왕 14년(553) 의신 스님이 창건한 미륵신앙의 요람 속리산 법주사. 속세를 떠난(俗離·속리) 깨달음의 자리(法住·법주)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總持·총지) 선불장 총지선원이 있다.
경인년 동안거 결제일을 이틀 앞둔 11월 18일. 법주사 총지선원에는 지난 3개월간 만행에 나섰던 운수납자들이 다시 생사해탈의 일대사를 해결하기 위해 속속 모여들었다. 이번 동안거에는 선원장 덕암 스님을 비롯해 26명의 눈 푸른 납자들이 “금오 선사의 선풍을 이어 반야지혜를 증득할 것”을 서원하며 하루 10시간 가행정진에 들어간다.
총지선원은 스스로를 깨닫고 세상의 등불이 되고자 용맹정진하는 선불장이다. 총지선원은 1969년 당시 법주사 주지 월남 스님과 재무 탄성 스님이 “근대적 시설을 갖춘 선방을 건립하라”는 금오 스님의 유훈을 받들어 금오 스님의 맏상좌 월산 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개원했다. 처음 총지선원은 대웅전 옆 향로전을 개조해 선문을 열었으나, 1997년 선원이 완공되면서 현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대웅전 뒤편에 위치한 이곳은 근대 한국선의 중흥조인 경허, 만공 스님의 법맥을 이은 금오 스님의 활발발한 면모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선리(禪理)가 없다면 불법의 명맥이 끊기는 것이다. 자유를 찾아가는 길은 선뿐이다”며 평생토록 선을 강조한 금오 스님의 일성(一聲)은 지난 40여 년간 월남, 탄성, 월만, 혜정, 이두, 정일, 월탄, 월성, 진광, 제우, 함주 스님 등에 의해 계승돼 왔다. 때문에 매년 안거 때면 금오 스님의 선풍을 잇고, 구경경지의 법열을 만끽하려는 선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법주사가 눈 밝은 납자들의 정진도량으로 역할을 수행해 온 것은 비단 근현대의 일만은 아니다. 법주사는 조선 중기 이후 선찰(禪刹)로서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러한 사실은 1998년 궁현당 해체 보수 시 발견된 상량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상량문에 따르면 300여 년 전 정유재란으로 법주사의 대웅전, 팔상전 등의 모든 당우가 소실된 후 가장 먼저 복원된 것이 선당이었다. 이후 법주사에는 부휴 스님의 법맥을 이은 벽암 각성 스님을 비롯해 수많은 선지식들이 주석하며 후학을 제접했고, 근래 금오 스님에 의해 또 한 번 선찰 법주사로서 중흥을 맞이했던 것이다.
금오 스님이 입적할 때까지 13년간 스님을 시봉했던 법주사 선덕 월성 스님은 금오 가풍에 대해 “스승과 제자 사의의 치열하고도 장중한 인가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스님 역시 이러한 가풍을 이어 끊임없는 탁마로 후학을 제접하고 있다.
스님은 이날 “대신심, 대분심, 대의심으로 화두를 밀어붙여 하나의 의심을 타파하면 1700공안이 일시에 무너진다. 삼동결제, 온갖 반연을 끊고 화두에 목숨을 걸어 명안납승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며 결제대중에게 오직 화두 타파를 위해 일념으로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스님은 또 동안거를 맞는 재가불자의 마음가짐에 대해 “부처님의 가르침은 마음의 근본자리를 깨달아 성불을 이루도록 하는 데 있다”며 “재가불자들도 동안거를 맞아 염불을 생활화하는 등 성불의 씨앗을 심는다는 마음으로 정진하라”고 조언했다.
법주사 주지 노현 스님은 “이번 동안거에는 총지선원 26명을 비롯해 산내암자 복천암 복천선원 10명, 수정암 수정선원 14명 등 60여 명이 은산철벽을 타파하기 위해 일대사에 몰두한다”며 “치열한 정진 열기로 가없는 법향을 피우고 고통 받는 사바세계를 맑고 향기롭게 만드는 선지식이 배출되기를 바란다”고 기대를 전했다.
한편 11월 20일 경인년 동안거 결제를 맞아 전국 100여개 선원에서는 2300여명의 수좌 스님들이 일제히 3개월간의 용맹정진에 들어간다. 결제대중은 동안거 입제 하루 전인 11월 19일 각자의 소임을 정하는 용상방(龍象榜)을 작성하고, 11월 20일 사찰별로 방장 스님 등 큰스님의 결제 법문을 청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안거를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