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의 참된 회복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성령을 부어 주실 때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32장은 이사야 29–31장에서 이어진 긴 경고의 말씀 뒤에 주어지는 놀라운 전환의 장입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애굽으로 내려갔던 백성을 향해 하나님은 마침내 회복의 그림을 보여 주십니다. 그러나 그 회복의 시작은 제도나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는 사건입니다. 1절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통치의 모습을 선포하십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이는 단순한 정치 개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세우시는 통치, 곧 하나님의 뜻이 중심이 되는 질서를 의미합니다. 참된 회복은 위에서부터 내려옵니다. 그 결과는 백성의 삶에 분명히 나타납니다. 2절에서 그 왕의 통치 아래 있는 사람들은 “바람을 피하는 처소, 폭우를 가리는 곳, 마른 땅의 냇물, 곤비한 땅의 큰 바위 그늘”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는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존재로 변화됨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 자신이 다스리실 때 공동체의 성격 자체가 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회복이 자동으로 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십니다. 9절 이하에서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안일한 자들을 부르십니다. “안일한 여자들아 일어나 들을지어다.” 평안하다고 착각하는 신앙,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는 태도는 반드시 무너지게 된다고 경고하십니다. 하나님 없는 평안은 가장 위험한 착각입니다. 당시 유다는 성전이 있고, 제사가 있고, 예루살렘이 있다는 이유로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평안을 깨뜨리십니다. 들판은 황폐해지고, 기쁨의 소리는 사라질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 자신 없이 유지되는 신앙 체계는 결국 광야로 변한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32장의 중심은 15절에 있습니다. “마침내 위에서부터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여기서 모든 것이 바뀝니다. 광야가 옥토가 되고, 옥토가 숲으로 여겨집니다. 회복은 인간의 노력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께서 성령을 부어 주실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성령이 부어질 때 나타나는 열매는 분명합니다. 16절과 17절에서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옥토에 머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며, 그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입니다. 참된 평안은 상황이 좋아져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주어집니다.
한 성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신앙이 메말라 있다고 느꼈습니다. 환경은 나쁘지 않았고, 교회 생활도 꾸준했지만 마음은 늘 광야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기도 중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방법만 찾았지 하나님 자신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결과를 요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기다리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그의 삶에 평안과 분별력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광야가 옥토로 바뀌는 과정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사야 32장은 오늘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회복을 원한다면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제도 개혁이 아니라, 마음의 변화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자신께서 성령을 부어 주실 때, 우리의 광야 같은 삶은 반드시 옥토로 변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성령을 부어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광야 같은 신앙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 자신이 주시는 옥토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오늘도 성령을 기다리며, 하나님 자신 앞에 잠잠히 머무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