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경(賢愚經)
칠병금시품(七甁金施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비구들은 제각기 다른 나라에서 마음대로 안거하였다. 그들은 90일 동안의 안거를 마치고 부처님께 나아가 거룩한 가르침을 받았다.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과 오랫동안 헤어져 있었기 때문에 인자한 마음으로 가엾이 여겨, 곧 손바닥에 천 폭 바퀴 무늬가 있는 손을 들어 그들을 위로하시고 뜻을 낮추어 물으셨다.
“너희들은 먼 벽지에 있으면서 음식과 공양에 불편은 없었느냐?”
부처님의 공덕은 세상에 그 짝이 없는데 지금 뜻을 낮추시어 비구들을 보시고 특별히 겸손함을 품고 공경하셨다. 아난은 그것을 보고 매우 괴이하게 여겨 곧 여쭈었다.
“세존께서 세상에 나오심은 가장 특별한 일이고, 또 공덕과 지혜는 세상에 보기 드뭅니다. 그런데 지금 뜻을 낮추시어 비구들을 위로하여 물으시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세존께서 그처럼 겸손한 말씀을 하시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 뜻을 알고 싶으냐? 자세히 듣고 잘 명심하라.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아난은 분부대로 잘 듣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먼 옛날 수없고 한량없으며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에 이 염부제에 큰 나라가 있었는데, 이름이 바라내였다.
그 때 어떤 사람은 집안 살림을 잘 다스렸다. 그러나 금을 특히 좋아하여 힘을 다해 금을 모을 때에 괴로움을 돌보지 않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부지런히 노동하여 거기서 생긴 돈은 모두 금을 사는 데 썼다. 그래서 한 병을 채워서는 집안에 땅을 파고 감추어 두었다.
이렇게 갖가지로 몸을 괴롭혀 여러 해가 지나도록 옷도 변변히 입지 않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않으면서 쉬지 않고 금을 모아 마침내 일곱 병을 채워 모두 묻어 두었다.
그 뒤에 그는 병에 걸려 목숨을 마치고는, 금에 너무 집착했기 때문에 한 마리 독사가 되어 그 집에 돌아와 그 금병을 지켰다. 여러 해가 지나 그 집이 허물어지고 거기서 사는 사람은 없었으나, 그 독사만은 그 금병을 지키고 있었다. 목숨이 다하여 몸을 버리고도 금을 사랑하는 마음을 쉬지 않아, 다시 본래 몸을 받아 그 몸으로 금병(金甁)들을 감고 있었다.
이렇게 계속하여 수만 년을 지내고 최후로 독사 몸을 받았을 때에는 그 몸에 싫증이 생겼다. 그는 그 원인을 생각하였다.
'이 금 때문에 이런 나쁜 몸을 끊임없이 받았다. 이제는 이것을 좋은 복밭에 보시하여 세세생생에 그 복의 갚음을 받으리라.'
이렇게 생각을 결정하고는 길가 풀 속으로 달아나 몸을 숨기고 기다리면서 만일 누가 오면, '나는 그에게 이 사정을 말하리라'라고 생각하였다.
마침 그 때에 독사는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독사는 그를 불렀다. 그는 부르는 소리를 듣고 좌우를 둘러보았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리므로 그대로 걸어갔다. 그제야 독사는 몸을 나타내어 부르면서 말하였다.
'여보십시오, 내게로 가까이 좀 오십시오.'
사람은 대답하였다.
'네 몸에는 독이 있다. 나를 왜 부르느냐, 내가 너에게 가까이 가면 반드시 해를 입을 텐데.'
독사는 말하였다.
'내가 진실로 나쁜 마음을 가졌다면 당신이 오지 않더라도 해칠 수 있습니다.'
그는 겁이 나서 독사에게로 갔다.
독사는 그에게 말하였다.
'지금 여기 금병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당신에게 주어 공양함으로써 복을 지으려 하는데 될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당신을 해칠 것입니다.'
그는 할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뱀은 그 사람을 데리고 금 있는 곳으로 가서 금병을 파내어 그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당신은 이 금을 가지고 스님들에게 공양하되, 음식을 베푸는 날에는 잊지 말고 아수제(阿輸提)를 가지고 와서 나를 메고 그리로 가 주십시오.'
그는 그 금을 가지고 절에 가서 유나승(維那僧)에게 위의 사정을 자세히 말하였다.
'그 독사는 공양을 베풀고자 합니다. 날을 빨리 정하십시오.'
스님은 그 금을 받아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였다. 공양하는 날이 되어 그는 조그마한 아수제를 가지고 뱀 있는 곳으로 갔다. 뱀은 그를 보고 매우 기뻐하면서 수고에 감사한 뒤에, 곧 아수제 위에 올라가 몸을 도사렸다.
그는 천을 그 위에 덮어 그것을 메고 절로 갔다. 길에서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오십니까, 안녕하십니까?'
그는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두 번 세 번 물었으나 그는 한 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메었던 독사는 화를 내어 성한 독을 머금고 그를 죽이려 하다가 도로 성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이 사람은 왜 이처럼 예의를 모르는가. 남은 호의로 정중하게 안부를 세 번이나 묻는데 한 마디 대답도 없으니, 어찌 그리 무심한가.'
이렇게 생각하자 화가 치밀어 올라 또 죽이고 싶어 막 독을 토하려 하다가 다시 생각하였다.
'이 사람은 나를 위해 복을 짓는데 나는 아직 은혜를 갚지 못하였다.'
이렇게 재삼 되풀이하다가 도로 성을 참고는 생각하였다.
'이 사람은 내게 큰 은혜가 있다. 비록 죄를 지었더라도 참는 것이 도리에 마땅하리다.'.
가다가 호젓한 곳에 이르러 뱀은 그에게 말하였다.
'나를 땅에 내려 놓으십시오.'
뱀은 그를 몹시 나무라고 또 법답게 훈계하였다. 그는 그제야 잘못을 뉘우치고 겸허한 마음이 생겨 모든 것을 가엾이 여기었다. 뱀은 거듭 훈계하여 말하였다.
'다시는 그러지 마십시오.'
그는 뱀을 메고 절에 가서 그것을 스님들 앞에 내려놓았다.
그 때에 스님들은 공양 때가 되어 줄을 이어 서 있었다. 뱀은 그를 시켜 그들에게 차례로 향을 피우게 하고, 스스로는 믿는 마음으로 향을 받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그것이 끝나도록 자세히 바라보면서 눈을 떼지 않았다.
스님들이 앞에서 인도하여 탑을 두루 돌았다. 그는 물을 가지고 와서 스님들의 손을 씻어 주었다. 뱀은 공경하는 마음으로 손 씻는 사람을 보되 조금도 염증을 내지 않았다.
스님들은 공양을 마치고 뱀을 위하여 널리 설법하였다. 뱀은 더욱 기뻐하여 다시 보시할 마음이 생겨 유나승을 데리고 금병이 있는 곳으로 가서 나머지 여섯 병을 모두 스님들에게 보시하였다.
이렇게 복을 짓고는 이내 목숨을 마치고 그 복덕으로 말미암아 도리천에 났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알고 싶으냐? 그 때의 그 뱀을 메던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이 내 몸이요, 그 독사는 바로 지금의 사리불이니라.
나는 옛날 뱀을 메고 갈 때에 뱀의 꾸지람을 듣고 부끄러워하면서 서원을 세웠다. 겸허한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보리라고.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아직 한 번도 중단한 일이 없었느니라.”
그 때 여러 비구들과 아난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