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운대 형제섬
여름 뒤끝에도 폭염으로 시달리던 구월이 가는 토요일이다. 근교 산자락을 찾아 가을에 피어날 야생화 탐방을 나서려다 마음을 바꾸었다. 이틀 뒤 시월로 든다만 계절의 시계추는 여름에 멈춰 가을이 빗장을 열지 못하는 형국이다. 어느 산모롱이를 돌아가면 쑥부쟁이나 구절초가 피어날 듯도 하다만 연장전을 펼친 더위로 풀꽃들은 가을의 도래를 감지하지 못했을 예감이 들어서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미명에 현관을 나서 퇴촌교 삼거리로 나가 창원대학 앞에서 장유로 가는 좌석버스 첫차를 탔다. 시내를 관통해 남산터미널을 거쳐 창원터널을 빠져나간 장유 농협 앞에서 내려 김해 풍유동에서 오는 220번 버스로 갈아탔다. 율하와 수가를 거쳐 조만포를 지난 녹산 경마장에서 부산 강서로 들어섰다. 을숙도 문화회관에서 내려 하루 도보 여정 기점으로 삼았다.
철새가 찾아올 때가 아닌지라 을숙도 산책로 탐조대로 나가는 걸음은 줄이고, 차량이 질주하는 하굿둑 보도를 따라 걸어 하단으로 향했다. 강 건너편 바라보인 승학산 봉우리는 장마철에나 흔히 걸쳐질 안개가 휩싸고 돌아 구월 끝자락에도 무더위가 남았음이 느껴졌다. 웅장한 수문 밖은 바다가 연상되는 탁 트인 시야였는데 물길이 아스라이 끝난 곳에는 을숙도대교가 걸쳐 지났다.
사하구 하단에서 닿아 하굿둑 수문을 빠져나온 물길을 따라 강변대로 산책로로 걸었다. 조금 앞서간 한 아가씨는 작은 수첩을 꺼내 갈맷길 도보 탐방을 인정받는 스탬프에 도장을 찍었다. 차도와 분리된 자연석으로 꾸며 놓은 산책로는 간간이 오가는 이들이 보였다. 주택지와 상당한 거리를 둔 낙동강 하구인지라 모두 각자 생활권에서는 서로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 접근한 경우였다.
산책로에서 맞은편은 을숙도가 지척에 바라보였고 명지 포구와 인접한 강서구 일대는 고층 아파트가 숲을 이루었다. 더 먼 곳으로 부산 신항 크레인이 드러나고 가덕도가 에워쌌다. 바다를 메워 신공항이 들어설 대항 연대봉 해안선은 거제 연안으로 이어져 아득해졌다. 을숙도 남단을 거쳐온 해상 교량은 장림에서 남항을 거쳐 영도에서 북항으로 이어져 광안대교와 연결되지 싶다.
장림과 홍티 포구에는 조업을 나가지 않은 어선이 닻을 내려 있었다.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은 경사면에 태공이 몇 보였는데 세월을 잊으려는 낚싯대를 드리운 듯했다. 하굿둑을 빠져나온 물길은 모래톱이 쌓여 바닷물과 교접하는 기수역이었다. 철새들이 노닐 진우도를 비롯한 몇몇 모래 등은 지도에 나타난 섬으로 명명되나 무인도로 일반 탐방객은 발길이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고니나루에서 간식을 꺼내 먹으면서 폰 카메라 앵글에 담은 사진을 지기들에 보내면서 안부를 전했다. 쉼터에 일어나 다대포로 향해 가니 모래톱을 비킨 수평선에 형제섬이 가물가물했다. 해저에서 분출하는 지자기가 뭉친 바윗돌이었다. 몰운대에서 떨어져 나온 두 개 바위 더미는 억겁 세월이 흐르면서 흙살은 씻겨나가 앙상한 뼈만 남아 서로는 마주 바라보며 풍랑을 버텨 이겨냈다.
수변공원으로 꾸며진 다대포 해수욕장 모래톱 가장자리는 산책객이 거닐었다. 모래사장으로 내려서지 않고 관찰자가 되어 원경으로 바라봤다. 산책로 따라 솔숲을 걸어 몰운대로 나가도 되겠으나 지하철 1호선 종점에서 자갈치로 갔다. 생선 좌판 노점과 생선구이 골목을 지나 남항 포구를 둘러보고 선짓국으로 시장기를 달래니 대구에서 내려온 중년 사내들이 우르르 옆자리 앉았다.
선도가 좋아 뵈는 갈치와 고등어를 사면서 전갱이도 한 무더기 보탠 아이스팩을 손에 들었다. 하단에서 장유행 버스를 타고 ‘몰운대 형제섬’을 남겼다. “하굿둑 수문 바깥 모래톱 등을 눕혀 / 낙조가 곱에 물들 다대포 수변공원 / 몰운대 지척에 두고 지자기가 뭉쳤다 // 마주한 형제섬은 지나온 억겁 세월 / 풍랑에 맞서면서 암반을 드러낸 채 / 밤이면 등대 깜박여 저체온증 버틴다” 24.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