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각기 사정이야 다르겠지만 요즘은 각방을 쓰고 있는 부부들이 종종 있다. 우리 집은 한 3년 가까이 되니까 취미생활을 자유롭게, 특히 밤에 늦도록 불을 켜 놓을 수 있고 음악도 마음대로 들을 수 있어 참 좋다.
그런데 남편한테 재작년부터 不整脈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울대학병원 내과교수의 처방대로 그 일이 일어나면 약을 먹고 4-5시간 후면 정상으로 돌아오니까 죽을 때까지 반복하면 그때 그때 대응하면서 순응하려 한다.
어제 아침, 그의 비교적 늦은 출근시간을 감안하더라도 아직도 식탁 앞에 나타나지 않아 안방을 열어보니 남편이 자리에 누워 자기 손목의 맥박을 재고 있다. 그게 나타났냐고 물어보니 머리를 끄덕인다. 내가 만져보니 불규칙맥박에다 손목까지도 Cold Sweating이 있음을 느낀다. 약은 벌써 먹었다고 하기에 내가 전날 체기가 있어 끓여놓은 죽을 들도록 하고 맥박이 빨리 정상으로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 내일 토요일, 모래 일요일에도 진전이 없으면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저녁 운동도 생략하고 같이 기다리는데 밤 10시 가까이에서 남편이 좋아졌다고 한다. 아이고! Motor도 시원치 않은 사람아! 서로 웃어버리고 만다.
~~~~~ ~~~~~ ~~~~~ ~~~~~ ~~~~~ ~~~~~
오늘 아침 인터넷창에 자기 이름을 넣어보라고 해서 넣었더니 전 번 전 전대통령이 내야할 국고환수금 납부에 관해서 상의하러 남편이 소속된 법무법인의 원로번호사와 함께 연희동을 방문한 뒤에 올라온 글이 있는데 성이 같은 全씨라고 本이 다른데도 무슨 종친회기사까지 나오고 이래서 신문기자가 소설 쓴다는 말이 나오는가 싶다.
거기에 또 보태서 나의 이름에다 김주평선생님의 글이 보여서 2004년 일이 새삼 반갑고 또 월남에서 그렇게 훌륭한 일을 시작하신 뒤에 얼마나 발전이 있으셨나? 알고 싶어졌다. 강조웅선생님도 많은 일을 하신 줄 안다.
여기 2004. 10.22에 Dr. Jupyung이 나의 질문에 대답한 글을 복사해서 우리 Cafe’에 다시 올리며 주평-천사를 칭송하고 싶어진다.
Hi;
Thank you for being interested in my story. In fact, it may be a mistery for many of you what made me (to) make such a change in this stage of life. I will make it as short as possible.
A couple of years ago, I met a Korean missionary working in Saigon, Vietnam through an elder in Miami. I made a visit to Saigon to see his work and to find out what I could do to make his clinics better equipped because I was told that they were in very poor condition (He had several clinics attended by Vietnamese doctors in Saigon suburbs.). I was also fascinated about the fact that he had built over 30 churches (by now over 40 churches) in and around Saigon. You may not know this but evangelical activities of Protestant churches are illegal in Vietnam. On top of that, he is very handicapped physically due to his 10 months in coma about 20 years ago.
Indeed, the clinics were in poor condition. Remember, that Vietnam is still a communist country and I could see that the South is still ruled by North.
On the way back home while waiting a plane in Seoul airport, I called 강조웅 and asked him if he could help me to get one ambulance for this clinic in small town where they were delivering about 40 babies a month and did not have even one car in the whole town. We delivered the ambulance last year (Ask 조웅이 more about that story.).
After coming back in Miami, I was busy to find medical equipments and supplies to be sent to Vietnam and in one afternoon I received a phonecall from an agent looking for an Orthopedic surgeon for small town (This is really a small town) in West Virginia. She made all arrangements and we (my wife and I) visited and we decided to make this work here our domestic mission for those old women who break their hips and had to travel 75 miles to have surgery. Not an ordinary decision, I still feel it was more of a spiritual than logical one. We are very happy and made many good friends. I am very famous(?) and they all seem to like me (I am an only Orthopedic surgeon in 75 mile radius and about 50,000 people.). I am very satisfied about my contribution to the area and very thankful to Him to offer me this opportunity of being wanted and useful. I will be taking care of these people until I could not work any more. They all expect me to live in this town for at least 30 years (30 in Korea, 30 in Miami, 30 in Petersburg).
I sent one containerful of medical equipments and supplies to Vietnam last year and now am working on a plan to build a small hospital in Vung Tao area.
I hope that I answered your question sufficiently enough that you understand that my head is still functioning properly and my hands are doing surgeries well. I hope that you can, matter of fact any of you, visit me here and see this beautiful place some day.
So long, Jim
<댓글> 강조자 04.10.22. 12:34
Thanks for giving me an answer in detail more than I've expected! I have already known that You and your wife are devout christians, but your activity in "there" is just great ! Please, be happy and healthy. Give my best regards to your wife !
며칠 전 12월 17일 서울의대 총동창회장에서 임웅생선생님은 그가 늘 하던 대로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1. 해금의 줄이 몇 개인가? 2. 기침을 독일어로? 그런데 3. “Auf Wiedersehen”의 뜻이 뭔지 아느냐? 는 질문에 속으로 정말 못 참겠다. 꾀꼬리!
그래서 그 단어는 Beethoven Piano Sonata No. 26 라고 했다.
Piano Sonata No. 26 in E flat major: "Les Adieux"; "Das Lebewohl, Abwesenheit und Wiedersehen"; called Opus 81a
I: Das Lebewohl II: Die Abwesenheit III: Das Wiedersehen
|
첫댓글 오랜만에 들어오니 아이디, 비밀번호등이 가물 가물~~
한 두 달간 댓글도 안쓰고 살아 미안 합니다.
새해에도 두분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싶군요. 전 장군님의 심장박동이 항상 건강하게 뛰기 기원합니다. 올해 나온 베스트 앨범 20개 중에 윤디의 베토벤 소나타집- Appasonata, Moonlight, Pathetiques등-이 12등을 했군요. 혜조의 포스팅으로 익숙해져서 눈에 띄었습니다. 참고로 1등은 라키르도 샤이의 브람스 심포니들의 녹음-게반트하우스입니다. 자주 듣는 영국에서 송출되는 클라식 fm에서 얻은 소식입니다.
음악소식, 반갑습니다!
그리고 병 자랑하라는 말대로 했는데 제 남편 동기들 중엔 부정맥환자가 좀 있어요.
그 분들 운동도 잘하고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누님과 형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오래 건강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내년초 한겨울에 우리동기몇 부부가 오란도로 방문하시면 어떨가요?? 너무 먼 거릴까요??
고맙습니다, 그럴 수 있을가요?
노부부가 손을잡고 걸어가는것을 보고
"두분은 연로하시면서도 참으로 다정하십니다" 하고 말했더니
"아니요. 우리중 하나가 넘어지면 잡아줄라고 그럽니다" 하더라더니
나이 먹어 갈수록 부부간에 서로 의존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김주평/강조웅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하였읍니다.
연말연시에 귀감이 될만한 이야기 입니다.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고맙습니다.
외국에 살고계시면서 우리글로 정확하게, 그리고 감미롭게 표현하시는 노선생님께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제가 한 동안 댓글을 안 쓰고 지내 미안하고요!
웨스트 버지니아에 온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혜조가 어딜 갔나 궁금했는데,이렇게 오래된 글을 올려 놓고 나타나니 나도 새삼 이곳에 오던때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는 많이 젊었었다. 지금은 늙었다는 말은 아니고. 지난 10년간 베트남의 교회들은 40에서 218을 넘었다. 의료병원도 13개가 운영 되고 있다. 모든것이 장요나 목사의 목숨을 건 사역의 결과이다. 나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여 미안할 뿐이다. 이곳 산골에 아직도 잡혀있으니 말이다. 이곳도 사정은 많이 딱하다. 가난한 시골은 부자 나라에서도 불쌍하다. 아마도 일년 후면 이곳을 떠날수 있기를 기대하며 일하고 있다. 혜조, 부군의 건강을 빕니다.
이렇게 빨리 나오시다니 매우 기쁩니다. James는 그 동안 기막힌 役事를 하신거에요.
그리고 제 남편은 아무일도 없었던 듯이 저를 체력관에 데려갔다 - 왔다합니다.
염려해주시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