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비치로드
예년에 볼 수 없던 여름 폭염은 가을이 와도 물러가지 않고 시달리던 구월을 보내는 끝자락이다. 토요일은 낙동강 하구로 나가 을숙도에서 다대포로 향해 걸으면서 탁 트인 강변과 포구를 바라보며 자연을 완상했다. 산책에서 본 풍광은 생활 속 남기는 글감으로 삼고 특히 다대포 바깥 두 개 바위섬 ‘형제섬’으로 시조를 엮어 일요일 아침 지기들에게 안부로 사진과 함께 날려 보냈다.
새벽에 잠을 깨 오늘 다녀올 동선을 구상하면서 어제 걸었던 다대포 강변도로 산책길 잔영으로 시조를 한 수 더 다듬어 놓았다. “하굿둑 가로지른 을숙도 바깥 물길 / 수문을 빠져나온 부유물 가라앉아 / 켜켜이 퇴적층 쌓여 모래톱이 생겼다 // 기수역 얕은 수심 어부는 배를 띄워 / 바닷물 교접하는 염도가 짭조름해 / 숭어가 모여드는지 낚싯대를 던진다” ‘모래톱 낚싯배’ 전문이다.
구산면 갯가 난포에서 옥계 연안으로 걸을 트레킹 행장을 꾸려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는 타고 가다가 마산역 근처에서 내렸다. 역 광장으로 오르는 노점에는 토요일만큼 성하지는 않아도 저자가 형성되어 오가는 손님들을 맞았다. 제철 과일과 푸성귀가 펼쳐진 가운데 토실한 알밤이 흔했다. 누군가 손길에 채집했을 도토리도 보여 눈길을 끌었다.
가려는 난포 옥계 연안은 마창대교 바깥 한적한 갯가라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을 즐겨 가는 내게 알맞은 데라 가끔 들리곤 했다. 가을이 오는 길목이면 갯가라도 쑥부쟁이를 비롯한 야생화들도 볼 수 있었다. 마산역 광장 모퉁이 농어촌버스 출발지에 닿으니 구산 구복으로 가는 61번이 먼저 따나 그것을 탔다. 콰이강의 다리로 알려진 연륙교를 건너 비치로드로 가는 차편이었다.
어시장과 댓거리를 지난 가포에서 덕동과 수정을 거쳐 백령고개를 넘어갔다. 내포에서 곧장 반동으로 가질 않고 욱곡 연안을 둘러와 반동삼거리에서 구복 연안으로 갔다. 근년 들어 사람들이 흔히 찾는 저도는 가보지 않았는데, 차창 밖은 식당이나 카페가 늘어 예전과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버스 종점도 연륙교를 건너간 저도 조밭골이었는데 혼자 타고 간 나는 다리목에서 내렸다.
상판을 이치형 구조물로 지탱시킨 신 교량 곁에는 앙상한 철골로 콰이강의 다리를 연상하게 하는 옛 다리는 유적처럼 보존했다. 교량 상판에는 투명 유리를 깔아 산책객은 바닷물을 바라보며 거닐도록 했다는데 고소 공포가 심한 나는 그 근처로는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저도 용두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들머리는 전에 없던 농장이 꾸며져 농막에는 색소폰을 부는 인기척이 들렸다.
등산로 초입에서 참취와 단풍취가 피운 꽃을 봐 계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이른 시간이라 탐방객이 없어 호젓해 좋았다. 산마루로 오르는 길섶에는 조경으로 심은 차나무에서도 하얀 꽃을 봤다. 용두산 정상을 저만치 두고 거기는 오르지 않고 해안으로 난 바다 구경 길로 내려섰다. 뒤늦게 산행을 나선 이들이 줄지어 올라와 역시 외부로 널리 알려진 탐방 코스임을 실감했다.
오르막 내리막을 거듭하는 바다 전망대는 휴일을 맞은 탐방객을 더러 만났다. 해송과 활엽수가 섞인 숲길에서 한 군데 바위에 올라 다도해 섬과 고성 연안 바다를 조망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교직 말년을 보낸 거제에 딸린 유인도 가조도가 눈앞이었다. 거제는 옥녀봉이 세 곳인데 눈앞에 빤히 바라보인 가조도 옥녀봉에도 올라 봤다. 그날 풀숲 진드기에 물렸던 기억이 남았다.
산마루를 넘다가 멧돼지가 놀다 떠난 황토 진흙 구덩이를 봤다. 길섶에서 이질풀꽃과 삭은 참나무에 붙은 버섯을 찾아냈다. 한적한 갯가 하포에는 대규모 위락 시설이 들어서고 있었다. 조밭골 종점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오르니 더러 보였던 탐방객은 승용차로 와 혼자 타고 나왔다. 귀로에 교육단지 도서관을 찾아 한동안 머물다 집에서 읽을 책 세 권은 대출받아 배낭에 챙겼다. 24.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