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을 보낸 날
구월 중순 든 추석 연휴에도 열대야가 기승을 부렸고 낮에는 연일 30도를 웃돌아 폭염경보가 발령되었다. 그렇게 뜨거웠던 날들로 기억에 남은 구월이 하순에 이르자, 열흘 전 남녘 해안으로 스쳐 지나간 태풍이 엄청난 비를 쏟아붓고는 더위 기세는 한풀 꺾였다. 유래를 찾을 수 없던 열기는 가을의 진입을 막으면서 연장전까지 펼쳤다. 무더웠던 구월을 보내는 날은 월요일이었다.
한 달 전 구월이 시작되던 첫날은 일요일이었는데 달천계곡으로 들어가 봤다. 여름 강수량이 적어 암반 계곡 냇물은 줄어 바닥을 드러낸 채 물소리는 내지 않고 흘렀다. 여름 끝자락을 장식하던 물봉선과 벌개미취꽃은 남아 있었지만 함안 경계 고개를 넘어 칠월 산정마을로 나가면서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꽃은 한 송이 만나지 못했다. 가을이 오는 길목 흔히 보는 꽃은 쑥부쟁이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고 내일 시월에 드는 월요일 이른 아침 자연학교 등굣길에 나섰다. 추분이 지나 해가 점차 짧아져 어둠이 가시지 않은 여명에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원이대로로 가는 버스로 도계동에서 31번 버스로 갈아탔다. 만남의 광장을 거쳐 용강고개를 넘어간 버스는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났다. 주남저수지를 비켜 봉강에서 용연과 죽동을 거쳤다.
메타스퀘이아가 줄지은 찻길을 지나니 차창 밖으로 멀리 한림 무척산 방향에서 아침 해가 떠올랐다. 대산 일반산업단지를 둘러 가술에서 모산을 거친 제1 수산교를 지난 신성마을에서 마지막 손님으로 내렸다. 앞서 북모산에서 같은 버스를 타고 간 파크골프를 치려는 한 사내가 내렸고, 정류소에는 베트남 여성 여럿이 어디론가 일터로 가려고 농장주가 차를 몰아 나타나길 기다렸다.
인적이 없는 신성마을 안길에서 농로를 따라 들녘으로 드니 벼농사 지대와 함께 비닐하우스에는 겨울에 풋고추를 따낼 어린 모종이 자랐다. 간밤은 일교차가 그리 크지 않은 날이라 이즈음 들녘에 자욱하게 끼는 안개는 엉기는 듯하다가 눈이 부신 햇살에 밀려 흩어지고 말았다. 강 건너편 수산의 덕대산 기슭으로만 엷은 안개가 띠를 이루다 세력을 더 확장하지 못하고 사그라졌다.
들녘은 벼들이 익어 곧 수확을 앞둔 때였는데 콤바인이 굴러간 탈곡 이후는 뒷그루 작물로 당근 농사를 지었다. 농가에서는 벼농사보다 더 수익 창출이 나올 작목으로 계약 재배여서 생산 이후 수확과 판로는 외지 업자가 나타나 해결했다. 나는 계절적으로 가을 이후 겨울에는 강변이나 들녘으로 산책을 자주 나와 현지 사정을 잘 아는데 올해는 봄부터 여름에도 지켜볼 여건이 되었다.
꽤 넓은 비닐하우스단지 다다기 오이 수경재배 구역으로 가니 새로이 딴 게 적어 포장에서 처진 하품이 나오지 않았더랬다. 일 주 전에는 보조 가방에까지 가득 채워 이웃으로도 보냈는데 이번에는 건너뛰고 다음 방문을 기약했다. 차분한 성품에 신농씨처럼 농사를 잘 짓는 주인장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수확이 끝난 머스크멜론 농장에는 베트남 청년 둘이 부산물을 정리했다.
모산마을을 지나다 한 농부가 빈 밭에 두엄을 뿌려 인사를 건넸다. 참깨 뒷그루로 마늘 심을 자리라면서 내 인상착의를 아래위 훑어보면서 앞으로 추수가 끝나면 자기네 농장 일을 도와줄 수 있겠느냐 물어왔다. 어릴 적 지게로 나무도 해 날랐다니 구술 면접은 통과였다. 주인은 칠십이 넘어도 정정했는데 일손이 필요하면 연락할 거라면서 전화번호를 입력해 두라고 해 남겨놓았다.
가술 거리에 닿아 일찍 문은 연 카페에서 테이크아웃 따뜻한 커피를 받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마을도서관으로 들었다. 문해교육반 두 할머니와 같은 공간에서 책장을 넘겼다. 작가 정찬주가 쓴 ‘다산의 사랑’을 펼쳐 읽었다. 정약용은 제자들이 드나든 유배지 초당 동암에서 인연이 닿은 한 여인 사이 ‘홍임’이라는 딸을 두었고 술을 즐긴 혜장스님과 차를 즐긴 초의선사와도 교류했다. 24.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