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합조개 잡던 날
1963년쯤 내 중학교 시절이었던가?
고뿌래(花望마을)*의 여러 아주머니와 함께 화락산(花落山, 해발 206.9m) 남쪽 산자락 아래 계곡, 개랑을 타고서 이웃 마을(보령군 웅천면 노천리)로 내려갔고, 노천천을 따라서 마을을 빠져나왔다. 노천리 사그내, 가라티 앞에 펼쳐진 웅천천(熊川川)*의 강하구 뚝길을 따라서 황교리 광암(廣巖) 갯벌에서 대합조개(大蛤 참조개)*을 잡으러 갔다.
강물과 바닷물이 합수되는 진흙탕 펄밭 갯고랑으로 내려섰고, 급하게 바다 쪽으로 빠지는 썰물 속에 들어갔다. 가슴까지 차오른 강물 속에서도 발바닥에 와닿은 미끄러운 느낌이 날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는 한 손으로 꺼내 올리는 조개잡이도 나중에는 지루해서 싫증이 났다.
쌍둥이 형제는 갯벌 바깥으로 나온 뒤 갯바닥에 난 갯길을 따라서 해안가 서편으로 나갔다. 서해바다 북편 쪽에 있는 웅천면 관당리 무창포해수욕장 쪽으로 방향을 두고 걸었다. 가파른 갯암석으로 막혀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좁다란 틈 사이로 빠져나갔다
조개잡이에 온통 정신을 빼앗겨버린 어머니와 아주머니들은 두 쌍둥이가 보이지 않아서, 찾기 시작했다.
다급하여 황망히 주변을 살필 때 까마득히 먼 거리에서, 갯바위를 후려쳐서 치켜오르는 파도에 두 형제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모두가 고함을 지르며 순식간에 일어난 참사에 기겁했다. 졸지에 갯물에 휩쓸려 나간 두 아들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혼절할 것 같은 울부짖음. 갯벌을 급히 빠져나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만조(滿潮)되어 넘실거리는 바닷물만 출렁일 뿐이었다. 도저히 바닷길(갯고랑)이 있을 것 같지 않는 바닷가에서 생긴 영락없는 인명사고였다. 가슴을 후려치고 땅을 치고, 망연자실한 어머니였다.
서너 시간 뒤에서야 조개 잡는 현장에 홀연히 되돌아온 쌍둥이 형제.
두 아들을 발견한 어머니의 절규에 가까운 환성과 함께 자식의 등짝을 후려치는 아픔이란...
쌍둥이의 등짝을 후려패면서, 울면서도 희희낙락하던 날의 조개잡이었다.
사실 말이지 파도가 넘실거리는 기암괴석 틈새로 겨우 빠져나가기란 모험이었고, 아찔한 상황이었다. 파도가 물러나는 순간에 한 발씩 한 발씩 건너뛰어 빠져나가서 산모퉁이를 돌아갔으니 멀리에서 보면 영락없이 파도에 휩쓸려 나가는 형상이었다.
쌍둥이 형제가 되돌아올 때는 산속 송림(松林)을 겨우 빠져나와서 조개잡이 현장에 갑자기 나타났으니 아무도 쌍둥이 형제의 가고 되돌아옴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머니는 혼겁한 상황에서 벗어난 뒤에서야 빈 대나무 바구니만 겨우 챙기고는 귀가했다.
이 사건 이후에는 어머니는 광암지역의 조개잡이를 중단하고 말았다.
강물과 바닷물이 합수되는 펄갯벌 지역은 지금은 간석지(干潟地)가 되었다. 갯벌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고 대신에 넓은 경지가 조성되었고, 강하구에는 방조제를 쌓아올려서 강물을 가둬서 농업용으로 활용했다.
더욱이 최근에는 부사방조제*를 추가로 쌓아올려서 갯벌을 계속 메꾸고 있었다. 하동시절(河童時節) 강물과 바닷물이 합수되는 강하구(江下口)에 얽힌 추억은 개발이란 명목으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갯벌문화는 그 당시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조금 남았다. 강물과 바닷물이 합수되는 강해안의 간척지(간사지) 개발이 때로는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고 나는 말한다. 갯벌은 풍부한 해양 생물자원의 보고이며, 육지와 바다를 풍요롭게 가꾸어준 귀중한 자연유산이기에 이를 지키고, 보존해야 한다. 많은 것들이 사라진 뒤에서야 예전의 지나간 기억과 추억들이 꿈인 양 아쉽다.
1999. 5. 15.
* 펄갯벌 : 모래질이 차지하는 비율이 10% 이하이며, 반대로 펄 함량은 90% 이상인 갯벌
* 웅천천 : 충남 부여군 외산면 문신리에서 시작해 보령시 성주면 성주산 보령호, 웅천읍 노천리까지 이어지는 금강서해권 수계의 강. 길이 34.3km이며 유로 연장은 39.03km.
* 곱부레(花望마을) :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1리 화망
* 부사방조제 : 충남 서천군 서면 부사리에 있는 방조제로 1986년에 착공하여 1997년에 완공
- 서천군 서면 도둔리와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를 연결하는 방조제
- 서해바다에서 밀려드는 조수(潮水)의 피해를 막고자 웅천읍 일대의 농경지를 보호하기 위해 건설
* 부사호 :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와 서천군 서면 부사리로 흐르는 웅천천(熊川川)을 막아서 조성한 부사지구 간사지
- 부사호(방조제로 막음)가 생기기 이전에는 노천리(가라티, 사그내 등) 앞에는 강 줄기(갯펄지대)가 아주 넓게 펼쳐졌음. - 밀물 때에는 갯물은 산골 또랑으로도 역류하여 올라갔음
- 갯벌의 참게, 농게, 칠게, 방게, 달랑게, 뱀장어 등이 개랑물을 거슬러서 내륙 산천인 화망마을로 올라왔음
- 노천교(다리) 하단 일대에는 갯뻘이 있던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었으나 지금은 농경지로 조성되었고, 담수호가 된 웅천천은 벼재배 농업용수로 공급되고 있음
* 간사지 : 표준어는 간석지(干潟地). 밀물 때에는 물속에 잠겨 있다가 썰물이 되어 바닷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갯벌
* 대합조개(大蛤 참조개) : 백합조개. 백합목 백합과에 속하는 조개로 크기는 약 8cm. 맛이 훌륭하여 고급 조개로 취급하며, 조리할 때에는 조개구이, 죽으로 만들어 먹음
//////////////////////////////////////////
1
사진은 인터넷에서 검색.
독자를 위해서 올렸기에 용서해 주실 게다.
며칠 째 컴이 작동 불량해서.. 내 실력으로는 카페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어제 밤중에 작은아들이 컴퓨터를 고쳤기에 ....
오래 전에 쓴 내 글을 퍼서 여기에 올린다.
어제 내과병원에서 당뇨 검진하고는 당뇨약을 구입했다.
당뇨약을 먹고는 곧 자야겠다.
2022. 12. 11.
첫댓글 곱부레마을 이야기 잘 보았어요 건강하세요
댓글 고맙습니다.
충남 서천군 서면 춘장대에서 북쪽(보령 웅천읍) 사이에 있었던 갯벌을 막은 부사방조제 일대이지요.
어린시절 위험한
순간을 잘 보았습니다.
가감없는 모정
감명깊게 읽었습
니다.
아찔합니다.
저도 당뇨약을
오랜기간 먹고
있지만 당뇨에는
약 외엔 별 도리가
없습니다.
음식으로 관리가
어렵지유.
잠자다가 깼으니
다시 잠자러 갑니
다.
댓글.
고맙습니다.
사실은 저도 종합병원이지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내 남은 인생후반에서는 건강이 가장 좋은 축복일 겁니다.
김일제 소설가님도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최윤환 최선생님 고맙습니다.
응원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부사방조제.... 서천군 춘장대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지요.
부사방조제는 보령시와 서천군의 경계선상에 있지요. 서천지역의 면적이 훨씬 더 넓고...
보령시 대천해수욕장, 남포해수욕장, 무창포해수욕장, 장안해수욕장, 서천의 동백정 , 마량포구 지역을 걸어다녔지요.
모두 꿈같은 젊은날의 이야기이네요.
지금은 많이도 변해서.... 자동차를 타면 금방인데도 지금은 무릎이 아프다는 핑게로 거의 외출하지 않지요.
보령 서천지방을 어슬렁거리던 어린시절, 젊은날이 이제는 꿈꾸는 것 같습니다.
내년 봄에 한번 서천군 갯바다, 금강하구까지 다녀와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