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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어제, 밴드영화를 봤습니다. 진작에 보고 싶었던 영화 '런어웨이즈'
70년대 남자의 세계라 여겨졌던 록밴드분야에 진출하여 큰 족적을 남긴 그룹 '런어웨이즈'에 대한 영화입니다.
영화 포스팅은 웹진에 기사가 잘 나와있어서 퍼왔습니다. 록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할수 있는 영화입니다. 못보신분 강추.
록 음악에 '관한' 영화라면 아무래도 '록 밴드 멤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겠지'란 생각이 퍼뜩 떠오른다. 아무래도 록은 밴드 중심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2010년에 개봉한 <런어웨이즈(The Runaways)>는 이런 선입견에 딱 들어맞는 영화다. 여성 록 그룹의 선구자 역할을 한 런어웨이즈의 탄생과 영광, 몰락을 그리는 이 작품은, 밴드의 일대기를 다루는 영화답게, 록 무비의 공식과 정석을 그대로 따른다.
1975년 로스엔젤리스.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먼 십대 소녀들이 모여 록 밴드를 만든다. 그룹 이름은 영화 제목이기도 한 런어웨이즈. 밴드의 출발은 크리스틴 스튜어트(Kristen Stewart)가 연기하는 리듬 기타리스트 조안 제트(Joan Jett)로부터 비롯된다.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하드 록 스타 자리에 오른 수지 쿼트로(Suzi Quatro)의 영향을 깊게 받은 그녀는 일렉트릭 기타를 배우며 여성만의 록 밴드를 결성하려 애쓴다.
조안 제트는 당시 LA에서 글리터록의 요람으로 꼽히던 클럽, 로드니 빙엔하이머스 잉글리시 디스코(Rodney Bingenheimer’s English Disco)에서 유명 록 프로듀서이자 작곡가/매너저인 킴 파울리(Kim Fowley, 마이클 섀넌(Michael Shannon)이 연기)를 만난다. 그의 제안으로 드러머 샌디 웨스트(Sandy West, 스텔라 매브(Stella Maeve)가 연기)와 의기투합한 조안의 구상은 차츰 록 밴드 형태를 갖춰 나간다.
이들은 클럽에서 우연히 체리 커리(Cherie Currie, 다코타 패닝(Dakota Fanning)이 연기)를 만나는데, 그녀는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에 심각하게 빠진 글램록 마니아였다. <Aladdin Sane>(1973) 앨범 재킷의 데이비드 보위와 똑같이 메이크업을 하고 고교 장기자랑 무대에 등장해 관객의 아유를 한 몸에 받았을 정도다. 킴 파울리는 체리 커리에게 스타성이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밴드의 프론트걸로 끌어들인다.
이렇게 평범한 소녀들은 팀을 결성하고, 무대에 오르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거듭한다. 당시 십대소녀로만 이루어진 록 밴드는 무척 드문 사례였기 때문에, 런어웨이즈는 남자들만의 세계라 해도 과언이 아닌 록 음악계에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야 했다. 이들이 정체성과 개성을 갖추는 데는 예술가 정신과 장사꾼 기질이 괴이하게 뒤섞인 인물인 킴 파울리의 공로가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학대에 가까운 트레이닝을 받고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든 런어웨이즈는 예상보다 순탄하게 경력을 쌓아나간다. '십대소녀 록 밴드'라는 강력한 특성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들은 메이저 음반사 머큐리와 계약을 맺고 싱글 'Cherry Bomb'을 발표한다. 이 곡은 당시 여성 록의 포문을 연 기념비이자 런어웨이즈의 섹슈얼리티를 극대화한 대표곡이 되었다.
이렇게 런어웨이즈는 음반을 발표하고 열정적으로 공연 활동하며 승승장구하는데, 특히 일본 순회공연에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게 된다. 하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함께 찾아오는 법. 밴드 내부에 균열이 일어난다. 성적 매력을 발산해 인기를 모으는 스타로 떠오른 체리 커리와, 음악성을 인정받아 진지한 뮤지션의 길을 걷고 싶은 조안 제트 사이의 갈등이 팀의 앞날을 불투명하게 만든다.
여기에 섹스·마약·알코올이라는 흔하지만 치명적인 요인도 등장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우한 가정사에 시달리는 체리 커리는 시간이 갈수록 밴드에서 마음이 멀어지고 차곡차곡 쌓이던 갈등은 마침내 폭발한다. 자신을 '란제리 룩'의 섹시 스타로만 몰아가는 상황에 깊은 상처를 입은 체리 커리는 녹음을 하던 스튜디오에서 뛰쳐나가고, 다시는 밴드로 돌아오지 않는다. 회복하기 어려운 치명타를 입은 런어웨이즈는 자연스럽게 해체를 맞이한다.
(그런데 영화 내용과 달리, 실제 런어웨이즈는 체리 커리가 탈퇴한 뒤에도 조안 제트를 중심으로 활동을 계속했다. 영화에서 묘사된 체리 커리가 밴드를 나간 이유도 사실과 다르다. 포토 세션 중 가족만 신경 쓰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 체리 커리와 이에 격분한 리드 기타리스트 리타 포드(Lita Ford) 사이의 불화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리타 포드가 영화에서 자신을 부각시키지 말라고 제작진에게 요구했기 때문에 이런 내용으로 각색되었다.)
세월은 흘러 1982년. 'I Love Rock 'n' Roll'이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하며 스타덤에 오른 조안 제트는, 클럽 운영자에서 영향력 있는 디제이가 된 로드니 빙엔하이머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다. 청취자와의 대화 시간. 폐인의 나락까지 떨어졌다가 간신히 회복 중인 체리 커리가 전화를 건다. 함께 여러 무대를 누볐고, 동료로서의 우정과 연인으로서의 애정 사이 묘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던 두 사람은 방송을 통해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달콤 쌉쌀한 미소를 짓는다.
사실 <런어웨이즈>는 록 무비라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플롯을 착실하게 밟는다. 물론 주연을 맡은 다코타 패닝과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보여준 파격적인 변신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며 색다른 지점에서 차별화를 시도하는데, 귀엽고 순진한 이미지와 자연스러운 연기로 명성을 얻은 이 두 배우는 <런어웨이즈>에서 섹스·마약·로큰롤의 화신으로 열연한다. 어엿한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하려는 파격을 보인 것이다.
물론 1976년 당시, 나이에 비해 상당히 성숙한 매력의 체리 커리와 양성적 분위기의 조안 제트를 2010년의 젊은 배우들이 완벽하게 재현하기엔 다소 힘들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비교적 안정된 연기를 펼쳐냈다. 그런데 영화는 귀염둥이 여배우들이 관능적인 록 뮤지션으로 변신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실제 런어웨이즈가 록음악계에서 이룬 성취를 지나친 면이 크다. 조안 제트와 체리 커리도 이 점을 상당히 아쉬워했다는 후문.
록의 역사에서 런어웨이즈는 결코 반짝 스타로만 치부될 수 없는 존재로 자리잡고 있다. 무엇보다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록 밴드는 당시에도 유례를 찾기 힘들었다. 선각자의 길.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런어웨이즈가 LA펑크(LA Punk) 확산에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대표곡인 'Cherry Bomb'은 펑크록의 애티튜드와 작법에 대단히 충실한 노래로, 주로 지적이고 실험적인 뉴욕펑크와 달리, LA펑크는 원초적이고도 무자비하게 공격적인 록의 경지를 열었다. 1976년에 감행한 영국 투어는 라몬즈(The Ramones)와 더불어 런던펑크의 폭발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런어웨이즈 주위를 맴돌던 두 명의 '빠돌이', 다비 크래시(Darby Crash, 본명 잰 폴 빔(Jan Paul Beahm))와 팻 스미어(Pat Smear, 본명 조지 루덴버그(George Ruthenberg))는 이들이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광경을 보고 감명을 받아 밴드를 결성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렇게 탄생된 팀이 바로 LA펑크씬에서 가장 중요한 밴드로 꼽히는 점스(The Germs)다. 조안 제트는 이들의 유일한 정규 음반 <(GI)>(1979)를 제작했으며, 이 레코드는 역사상 최초의 하드코어 펑크 앨범으로 기록된다.
이와 더불어 런어웨이즈는 영국 헤비메탈 밴드 걸스쿨(Girlschool)과 함께 여성 록 밴드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고스(The Go-Go’s)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 록 밴드들이 이들에게 깊은 감화를 받았으며 이 흐름은 훗날 1990년대 라이어트 걸(riot grrrl) 운동으로 이어졌다.
아울러 런어웨이즈 멤버들도 여성 록 밴드의 흐름에 중추로 자리매김했다. 조안 제트와 리타 포드는 1980년대 여성 록 뮤지션의 상징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초기 런어웨이즈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던 미키 스틸(Micki Steele)은 뱅글스(The Bangles)에 참여해 대성공을 거둔다. 체리 커리 또한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배우를 겸업하며 나름대로 음악 활동을 지속했다.
결과적으로 영화 <런어웨이즈>는 여성 록밴드의 흥망성쇠라는 독특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만듦새를 평이하게 풀었다는 아쉬움이 있는데, 한편으로는 당시의 거칠기 그지없던 록의 세계에서 여성 록커의 포문을 열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칫 잊힐 처지에 놓였던 개척자들의 발자취를 조명했다는 데서 가치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 웹진 [weiv] 게재(201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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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영화 봤는데 왜 생각이 안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