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는 불광(佛光)이라는 두 글자를 쓰기 위해 버린 파지가 벽장에 가득 했다.
시 한줄 쓰기 위해 파지 몇장 버리면서 힘들어 못쓰겠다고 중얼 거린다.ᆢ
추사의 불광 편액에 깃든 이야기를 듣고 천양희 시인이 남긴 파지의 일부분이다.
은해사는 추사체로 유명한 김정희 글씨의 야외 전시장으로 불릴 정도로 추사 글씨 현판이 많은 곳이다.
불광.대웅전.보화루.은해사.일로향각.산해숭심.등의 편액이 있고 백흥암에는 시홀방장 편액과 주련작품이 걸려 있다.
은해사에 남아 있는 작품들은 모두 추사의 대표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1848년 추사가 제주유배에서 풀려난 이후 1851년 북청 유배길에 오르기 전에 쓰여진 작품 들이기 때문이다.그 중에서도 불광 편액은 추사의 작품 중에 초 대형작이며 대표적 수작으로 손꼽는다.
당시 은해사 주지스님은 새로 지은 건물을 불광각이라 이름짓고 편액 글씨를 추사에게 특별히 부탁했다.
그런데 사람을 몇차례 보내 독촉해도 써주지 않았다.
주지는 안되겠다 싶어 선물로 불상을 하나 들고 가서 간청했다.그러자 추사는 크게 웃으면서 불상을 사양하고는 시자를 시켜 벽장속에 가득 써놓은 불광이라는 글씨중 잘 된것을 골라 오라고 했다.추사는 골라온 작품이 맘에 안드는지 자신이 직접 골라 왔다.
당대 최고의 서예 대가 추사지만 그리고 60세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건지기 위해 수없는 실패를 마다 하지 않았던 것이다.은해사 주지가 편액 글씨를 나무에 판각할려고 하니 갈등이 생겼다.
불(佛).자의 세로 획이 유별나게 길어 편액 형태에도 맞지 않을것 같고 거는데도 어려움이 있을것 같아서 고민 끝에 불(佛).자의 긴획을 광(光).자에 맞춰 잘라 버린채 편액을 만들어 걸었다.
나중에 은해사를 방문한 추사가 그 편액을 보게 되었다.추사는 아무 말없이 편액을 떼어 오게 하였다.
편액을 가져오자 추사는 절 마당에서 불을 질러 태워 버렸다.
주지는 추사가 크게 화를 내는 이유를 알아 채고는 ,정말 잘못했다.며 용서를 빌고 다시 원본 글씨대로 판각을 해서 불광각에 걸었다.
그뒤로 불광각은 불타 없어 졌지만 불광각에 걸린 추사 편액 불광은 불길에도 살아 남아 부처의 빛을 전하고 있다.
현재는 은해사 성보 박물관에 봉안되어 있다.
사진 1번 추사의 불광 글씨는 가로 1.55미터 세로 1.35미터의 대작이다.
현존하는 추사의 작품중에 가장 큰 대작이다.
사진 2번 추사의 편액 대웅전이다.
사진 3번 추사의 편액 보화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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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불광 편액에 깃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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