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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산
아름다운 서리산 철쭉꽃을 구경하고 싶었으나
철쭉꽃은 맺힌채 필생각을 안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북한산 백운대 만큼이나 많았습니다
안내산악회의 관광차들과 승용차들은 2-3km 밖에서부터
좁은길에 줄지어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만복대 (1433m)
언제나 정답고 그리운곳
그리고 슬픔의 만복대 입니다
재작년 영하 22도때 비박후 2년만에 와보았습니다
만복대는 서북능선 (성삼재 - 남원 인월 덕두산까지 26km)
최고봉 입니다
영랑생가
장흥 천관산에 가다가 강진 군청옆에있는 영랑 김윤식 시인의
생가를 처음으로 가보았습니다
사진찍는분은 우리팀의 영원한리더 전주 이영진님 입니다
장천재앞
천관산에 오르다가 장천제를구경 하는중입니다
시계방향으로 리더 이영진님 (전주), 김진수님 (하동), 공용철님 (부산)
비박지
금강굴 - 천주봉 - 환희대 를거쳐서 이곳에 텐트를 쳤습니다
이곳에는 인기프로인 1박2일팀이 이곳을 다녀갔기에 강호동이 간길
은지원이 올라온길의 표시판이 이정표처럼 세워져 있있습니다
저녁이되자 찬바람이불고 추워서 큰텐트안에 께스불을 피워놓고
공용철님의 황혼의노래와 비목등 가곡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기막히게 좋은밤 이었습니다
6월달 소백산 철쭉꽃 비박 산행후
7월달 그믐쯤에는 토끼봉 중턱에 텐트를치고 멀리 반야봉 묘향대의
깜박이는 램프불빛을 보면서 어머니와 장모님께서 좋아하시던 노래를
밤새도록 불러보아야 겠습니다
연대봉
천관산 연대봉 입니다
고려 의종때 (1160년) 만든 봉수대로써 당시의 중요한 통신기지 였습니다
제주도 한라산, 해남 두륜산, 영암 월출산, 담양 추월산이 잘보인다고 했습니다
사자산 철쭉곷
사진으로보고 말로만 들었던 제암산 - 일림산에 가보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지리산 바래봉철쭉이 제일로 좋은줄 알았는데
제암산 - 일림산 30리 철쭉길이 더좋았습니다
교통이 불편해서 그렇지 소백산 황매산 서리산보다 월등 했습니다
앞으로는 매년 와보고 싶었습니다
일림산 정상
정상석 바로아래 5m지점에는 김해김씨와 나주오씨 부부의묘가 있었습니다
자손들이 성묘할려면 높은산에 올라와야하니 자손들의 건강을
생각한 것인지 명당 이라선지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묘향대 묘향암 ( 1485m)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곳에있는 절입니다
50대의 虎林스님 혼자서 수행정진 하고있는 가난하고 외로운 암자입니다
오늘은 출타하고 안계시기에 나혼자 법당에 들어가 약소한 시주를하고
부처님께 7배를 드리고 왔습니다
시주금은 조금내고 기원은 많이해서 부처님께 미안 했습니다
이사진 촬영한곳 아래는 반야봉 함박골이며 6.25때 전라남도 도당위원장이던
박영발 (1913.-1954.2.22.경북 봉화) 의 은거지가 있습니다
이은거지는 광주출신 소년빨치산으로 박영발의 전령겸 경호원으로 활동하다가
토벌대의 총상을입고 검거되어 35년 9개월간 전국 각교도소를 돌면서 복역한
김영승이 2007.2월 찾아낸 곳인데
큰바위 굴속에 사다리를타고 올라가면 장정 3명이 잠잘수있는 공간이있고
그안에는 6.25때 사용하던 약품 건전지 잉크병 고무신 토벌대가 사용하던
전선(일명 삐삐선)등이 지금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2007년 처음 발견시는 많은량이 있었는데 광주 시민단체와 기자 다큐멘타리작가
각방송국 관계자들이 기념으로 조금씩 가져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박영발은 당시 여고생으로 공산주의가 무엇인줄도 모르고 시대의 조류에 따라서 입산한
어린소녀 이정례를 비서겸 산중처로 만들어 임신하였는데 54.2.22일
군경 토벌대가 도주로를 차단하고 포위하며 공격해오자 21세의 비서를 권총으로
쏴서죽이고 자기도 자살 하였다고 합니다
전북도당 위원장인 방준표 (1906-1954.1.31.경남 거제) 는 철도 노동자였던 박영발과달리
대구사범출신의 인텔리였고 하동에서 중학교 교사도 하였다고하며
여고생 출신의 임신한 어린 산중처 신단순과함께 54.1.31일 덕유산에서 수류탄으로
자살 하였습니다
그는 몸이약해 산길을 잘못걷는 자기애인 신단순을 토벌대에 쫓겨서 도망가거나 이동할때
젊은 빨치산들한테 교대로 등에업고 다니라고해서 빨치산들이 불평 했다고 합니다
반면 이현상은 (1905.9.27.- 53.9.18.당시 전북 금산 ) 임신8개월의 산중처 하수복 (부산) 에게
백야전사의 자수권유 삐라를 쥐어주면서 하산시켜서 토벌대에 귀순 시겼다고 합니다
하수복은 임신8개월 이기에 구속도 안되고 풀려나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의 장래를위해
이씨가아닌 하씨로 호적에 올렸고 아버지 이현상을 닮아서 공부를잘한 그아들은
90년대초 40대초반에 고등학교 교감선생님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태의 남부군)
이현상은 신민당 당수를 역임한 고유진산 의원과 금산초등학교 동기 동창인데
항상1등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유진산도 공부를 잘했는데 이현상때문에 항상 2등을 하였다고 햇습니다
이끼폭포
수십m 바위절벽에 온통이끼가 자라는 우리나라 최대의 이끼폭포 입니다
뱀사골 정규 등산로에서 약2km정도 험한 계곡으로 물을 여러번 건너며
들어오기에 사진작가들이 가끔씩 몰래 들어다니는 곳이기도 합니다
재작년 사망사고 발생후 휴일에는 단속을 강화하는곳 입니다
이정표가없고 다소위험한 산길이지만 꼭 한번은 가볼만한곳 같습니다.
풍경 1
방태산 초입에있는 율곡이 심었다는 살아있는 밤나무 입니다
장정 세아름정도로 굵고 키도크며 450년 여를 살고있다는게 신기했습니다
용문산 1100년된 은행나무에 은행이열리듯 지금도 밤이 많이 열리고 있으며
다른나무 밤보다 더맛있다고 했습니다
추석후 밤이익을 무렵에는 저밤나무밑에 꼭 가볼려고 합니다
풍경 2
밤나무 설명판 입니다
반야봉
반야봉 에서는 천왕봉, 무주 덕유산, 광주 무등산, 광양 백운산이 잘 보입니다
오늘은 운무가 끼어서 무등산은 안보였습니다
지리산 종주시 반야봉에 올라가기가 퍽힘든 코스지만 산악회에서 온분들은
거의가 올라왔습니다
반야봉에서 중봉을거쳐 묘향대 이끼폭포 폭포수골 함박골이나
심마니능선과 달궁쪽으로 넘어가면 좋은데 등산로를 모르기에 거의가
노루목으로 다시 내려와서 화개재나 노고단 쪽으로 가고있었습니다
취사장 비박
화엄사 애서부터 무거운 비박 배낭을메고 03:00시부터 16:30분까지
13시간30분 걸어서 노고단과 반야봉을거쳐 연하천 산장에 왔습니다
해가 있을때 빨리왔기에 취사장에 침구를 펼수가 있었습니다
늦게온 사람들은 고르지못한 산장마당에서 비박을 했습니다
취사장은 바람도안불고 이슬도안맞고 그런데로 훈훈했습니다
코고는소리 방귀소리는 여러번 들었어도 좁은곳에서 전주팀6명 대구부부등
3팀 10명이 하룻밤 잘 잤습니다
형제봉
이른 시간이고 스마트폰이고 역광이라 흐리게 보입니다
제뒤로 보이는 나무는 크고 높은바위에서 자라는 주목 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근1000년은 되었을것 같았습니다
밑에서만 쳐다본 사람들은 낙낙장송이 어쩌고 하면서 소나무라고
하는데 실제로 올라가서보면 소나무가아닌 주목입니다
몇년전에 집사람이 저곳에 올라가서 찍은사진을 보더니
위험한곳에 왜 구잡스럽게 올라다니 느냐며 다치면 큰일나니
다시는 지리산에 가지말라고 했는데 오늘또 올라가 주목나무를 껴안아 보았습니다
칠선계곡 입구
2001년에 최고급이던 S카메라는 이사진을 찍은후 작동이 안되었습니다
이제는 조금 무겁드라도 큰카메라를 갖고다녀야 할것같습니다
나를 따라서 이곳 저곳 많이도 다녔는데 퍽 아쉽기도 합니다
이곳 칠선계곡은
한라산 탐라계곡
설악산 천불동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계곡인데
3대계곡중 가장 길고 험한 계곡입니다
각종 식물 동물 물고기등 생태계의 보고이며
일명 지리산 죽음의계곡 이라고도 합니다
지리산에서 가장많은 조난자와 사망자가 생겼던곳 입니다
지금은 관리공단덕에 1년에 1-2명 정도의 사망사고가 발생된다고 합니다
80년대초에 이곳에서 예쁜처녀 2명이 조난당하여 사망한일이 있었는데
그해겨울 눈이 아주 많이온날 남자 대학생 2명을 데려갔다고 합니다
중산리에서 대학생3명이 폭설을 헤치고 천왕봉에 오르던중 힘에부쳐
1명이 탈진하여 못움직이자 2명이 장터목 산장으로 구조요청을 갔는데
천왕봉에서 직진을 잘하다가
왜? 우측 칠선계곡으로 들어가 동사했다고 합니다
이튿날 새벽에 기어오다싶이 장터목에 도착한 탈진했던 대학생의 이야기를듣고
구조대가 천왕봉에 오르다보니 칠선계곡 으로간 흔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흔적을 따라가보니 젊은대학생 시체두구가 나란히누워 있었다고 했습니다
모두들 그처녀 귀신이 총각 대학생을 데려간 것이라고 믿고 있답니다 (최화수 지리산 365일)
비박장소
이화령 정상 등산로 입구근처 한적한곳에서 하룻밤 잘잤습니다
저녁 먹고는 께스등을 두개밝히고 공용철님에게 내가좋아하는
황혼의노래와 비목등 주옥같은 가곡을 들려달라고 졸랐습니다
울산에서 근무할때부터 배우던 선생님한테 가곡을 배우러 매주 진주에서
울산까지 가곡을 배우러 다닌다는 공용철님이 참 대단해 보였습니다
공무원하다가 35세에 의대에가서 41세에 의사가된 그가 지리산 덕유산 설악산
곳곳에 대하여는 모르곳이 없을정도의 달인이기도 합니다
리더 이영진님과 쌍벽을 이루는 지리산등반 800 몇십번의 고수입니다
언제나처럼 간단한 준비물을 분배하였으나 10명이 먹을수 있는량의
많은 음식과 여러과일을 잔뜩 갖고온 이영진님과 공용철님을 나무랐습니다
이진터 설명판
임진왜란때 지금의 육군 참모총장이던 신립장군은 천혜의요세인
문경새재를 버리고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치고 왜군을 맞았으나
단한차례 전투에서 전멸하다싶이 패했다고 합니다
후퇴할곳이 없으면 죽자 살자하고 굳은각오로 싸워줄줄 알았던
바보천치 같은자가 지휘관 이었으니 패할수밖에 없었을것 같습니다
평지인 강가에서 조총으로 조준 사격하며 공격해오는 왜군들을
은폐할곳도없고 엄폐물도없는 모래밭에서 칼과 활로는 당할수가 없었던것 이었습니다
이조실록에는
어느 이름없는 문경 시골의 어떤 선비는 자기집에서 기르며 농사일에쓰는
황소의 꼬리에 기름바른 솜옷에 불을붙여 산아래서 꺼리낌없이 올라오는
왜군쪽으로 소를내몰아 왜군 수십명이 죽고 다치게 하였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병법을 알고 모르고보다 동인서인 노론소론등 당쟁이 우선이었던 그때
그래도 유성룡과 이순신장군이 있었던게 참으로 다행 이었던것 같습니다
임진왜란을 앞두고 풍신수길의 누나가 풍신수길에게 조선에가면은
소나무가많은 산으로는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정감록에도 利在松松 이있습니다
소나무가 많은 산속에 들어가면 이롭다는 뜻입니다
소나무길 입구와 출구를 막으면 말이 오도가도 못하고 다죽을수있고
소나무와 소나무 사이에 긴통나무를 말의 가슴닿게 높이로 밧줄로 묶어놨다가
말이 달려올때 밧줄을 내려트리면 말탄왜군은 인공위성이 되어버린다는것 입니다
풍신수길의 소나무길 가지말라는 경고로 임진왜란때 문경새재 말고는
소나무숲을 이용한 왜군이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깊은산 소나무숲으로 피난간 사람들은 왜군들의 피해를 안입었다고 합니다
신선대
김청룡의 3주기 추모제를 마치고 포대능선을 거쳐서 신선대에 올라갔습니다
자운봉에는 암벽장비를갖춘 고수들이 여러명이 올라가 있었습니다
자운봉 넘어 멀리는 수락산 입니다
군사학회 세미나
6.29.13:30 - 18:00 까지 참 좋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한반도의 전장환경변화와 우리군의대응 에대한
육 해 공군과 해병대의 현역 실무장군과 령관장교들의 당당한
자신감과 진지함에 흐뭇했습니다
사회: 한민구 전참모총장 전합참의장
참가인원: 180 명
저녁 : 한기호 의원 (국회국방위원, 예비역 중장, 철원, 화천, 양구, 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