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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빛의자녀님
님은 “마태복음 24:15 말씀이 이해가 안 되어 다니엘 9:25-27을 보았더니 더 난해합니다" 라고 하시면서 이에 대한 가르침을 원하셨습니다.
님은 마태복음 24장 15절인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바른 이해를 알고자 한 것입니다.
님의 이 질문은 마침 제가 자료실의 신약성경자료실에 올리고 있는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해서 사복음서에서의 예수님의 행적을 좇아 하나님의 복음을 소개하고 있는 것에서도 다루어질 것인데 먼저 이곳을 통하여 미리 설명을 드릴 수 있게 되어서 기쁩니다.
님은 마태복음 24장 15절 한 구절을 들어서 질문하였습니다만, 이 구절은 크게는 24장부터 시작되어 25장까지 계속되고 있는 예수님의 종말론 강화와 관련된 것이며, 좁게는 15-22절의 한 단원에서 말씀해주시고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서 그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할 내용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단지 한 구절만 가지고 이것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닌 앞 뒤 문장과 그 문맥 속에서 이것이 지닌 의미를 알고자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태복음 24장 15절이 있는 문장인 15-22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선지자가 말해온 바 구속(救贖)의 죽음을 당하시는 때가 임박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있을 때에 있은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사로 잡혀 이방인의 손에 넘겨져 사형 판결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신 후 삼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실 것인데,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맡겨진 구속 사역을 성취하실 때가 임박하여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받들어 순종하여 자신의 몸을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희생제물로 바치실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시기에 예수께서는 그분의 가르침으로서는 마지막인 종말론 강화를 하시게 됩니다. 이 종말론 강화는 제자들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앞서 마태복음 24장 1-14절에서 제자 중 한 사람이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며 예수께 ‘주님, 저 성전 건물을 보십시오! 얼마나 훌륭한 건물입니까? 저 견고한 돌에 조각하여 새겨 넣은 이 벽을 보십시오!“ 라며 예루살렘 성전을 보며 감탄해 하였습니다.
제자의 이 물음에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헤롯에 의해서 지어진 성전이기 때문에 헤롯 성전이라고도 불리웁니다. 그러므로 본 답글에서는 성전의 이름을 글의 흐름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 또는 헤롯 성전으로 병행하여 사용합니다)의 무너짐을 말씀하시면서 세상 종말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세상의 종말은 전쟁이나 기근이나 지진이나 이런 재난(재앙)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이 징조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이런 것이 있음으로 인해서 세상의 끝은 아닙니다.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면 그때가 세상의 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끝 날이 오기 전에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 갑니다.
본문은 천국 복음에서 증거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악함으로 인하여 받게 될 하나님의 심판이 어떠할 것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으로 재앙을 당할 유대인들을 통해서 알게 해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당하는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재앙은 이미 오래전에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15절에서 말씀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는 선지자 다니엘이 한 예언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된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가증한 것’은 다니엘의 예언에서 모두 세 번 나옵니다. 다니엘9장 27절, 11장 31절, 12장 11절에서 각각 ‘미운 물건’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 ‘가증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미운 물건’(가증한 것)을 말할 때마다 ‘멸망’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미운 물건은 멸망케 할 가증한 것이기 때문에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은 곧 ‘멸망케 할 가증한 것’입니다. 선지자 다니엘은 성전에서 제물도 바치지 못하게 하면서 그곳에 이 가증한 것인 ‘미운 물건’을 세운다고 하였습니다. 이 가증한 것인 미운 물건은 ‘우상’, 또는 ‘우상의 제단’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증한 것’이란 말은 우상이나 우상의 숭배 대상물을 가리킵니다. 현대어 성경도 다니엘에서 말씀하고 있는 ‘미운 물건’을 ‘우상’, 또는 ‘우상의 제단’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방 세력이 하나님의 성전을 훼파하고 하나님을 욕되게 할 것임을 예언한 것으로, 약 40년 후에 이 일은 성취되었습니다.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iochus Ⅳ Epipahnes) 왕이 성전의 제단 위에다 이방신 제우스(Zeus)를 위한 제단을 만들고 돼지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우는 것’으로 표현하였는데, 예수께서는 이 표현을 따다가 이방 세력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욕되게 할 것을 가리키시려고 사용하였습니다. 헤르만 리델보스(H. Ridderbos)는 이보다 좀더 포괄적으로 이해하였는데, “멸망케 할 가증한 것이란 말은 아마도 좀 더 일반적으로 예루살렘 함락 이전과 그 이후 동안 발생한 성전에 대한 모독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제 견해에 있어서는 이 모든 역사적 배경을 내다보시며 말씀하시는 이야기의 배경으로 깔고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는 유대인들의 악함이 성전에 채워져 더럽혀지는 것에서 그들이 겪게 될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재앙을 알려주시는 것이며, 이는 또한 후대의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될 것임을 예언하는 것으로 삼으신 것이라는 견해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헤롯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면서도, 이 제사의 실체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미워하고 배척을 하는 것에서 곧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배척하였던 그 악함으로 그들의 예루살렘 집이 불타 무너지고 예루살렘 성전이 훼파되어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무너지는 하나님의 심판을 당한 것처럼 동일한 이유로 온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들이 헤롯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는 성전 제사를 빌린 것에 불과할 뿐이지 사실은 우상의 제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가증한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예루살렘 집이 불타고 성전이 무너지는 것은 지극히 유대인에게 국한한 부분적인 것이지만, 앞으로 온 세상 사람들이 겪게 되는 하나님의 심판은 온전한 전체적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있어서 전개되고 있는 여러 사건들, 예컨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것에서나 또는 악한 소작인들을 진멸한 포도원 주인의 비유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조심할 것을 가르치신 것이나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에 앞서 의인들의 피 값이 그들에게로 돌아감으로 지나간 세대의 모든 죄에 대한 심판이 이 세대에 내려질 것을 말씀하신 것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선지자 다니엘이 예언한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멸망케 할 가증한 것’이라는 말로 하십니다. 그리고 말이죠. 이 ‘멸망케 할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 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거룩한 곳’은 ‘성전’을 뜻합니다. 따라서 멸망케 할 가증한 것이 성전에 서거든 그때 유대에 있는 사람은 산으로 도망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 있게 되는 것을 통해서 멸망케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증한 것들로 말미암은 결과로, 그래서 가증한 것에 의하여 성전이 더럽혀짐으로 말미암아 멸망케 되는 일을 당하는 것입니다.
멸망케 하는 가증한 것이 성전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때 유대에 있는 사람은 산으로 도망치라!. 그러면 이렇게 선지자 다니엘이 멸망케 할 ‘미운 물건’(우상, 또는 우상의 제단)으로 표현하여 묘사한 이것이 예수님 때에 어떻게 성취되는 것일까요? 선지자 다니엘에 의해서 예언된 이 가증한 것이 성전에 서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 자들로 하여금 다니엘의 이 예언에 특별히 주의하도록 하시고 있습니다.
선지자 다니엘이 예언한 가증한 것인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은 우상(의 제단)이었습니다. 그 예언은 지금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때에 어떻게, 곧 무엇으로 성취될 것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는 유대인들의 악함에서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가증한 것이 예루살렘 성전에 서는 것을 보게 되면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정작 하나님의 뜻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배척하고 멸망케 할 가증한 것이 가득한 예루살렘을 파괴할 것을 내다보시고서 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말입니다. 매 절기마다 헤롯 성전에 제사에 바칠 제물을 가져오지만, 그 제물이 갖는 성격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그리스도로 믿지 않습니다. 그런 그들은 다만 선지자 이사야가 말한 바와 같이 헛된 제물로 마당만 밟을 뿐인 성회와 더불어 악을 행하는 자입니다(사1:13). 이들이 성전에 드리는 제사는 우상 숭배에 불과할 뿐이며, 그러한 성전은 우상의 제단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그런 그들은 예루살렘이 포위되고 공격을 받을 때, 그들이 제사를 드리던 성전이 파괴될 것이며, 이때 성전 파괴와 함께 그들도 가장 먼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할 자들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그들이 제사를 드리는 헤롯 성전이 그들에게는 그들을 멸망시키는 하나님의 심판이 됩니다. 그러한 그들은 헤롯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듯이 그들 또한 철저하게 멸망을 당할 것인데 제사를 드리는 예루살렘 내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결코 그들의 생명을 안전히 보호받지를 못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들에게는 우선적으로 산으로 도망해야 할 것이 말씀되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들의 생명은 안전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그들이 받을 심판이 얼마나 크고 두려우며 무서울 것인지를 미리 알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어느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데, 미리 선전포고를 알려 준다면, 그래서 ”앞으로 일주일 후에 공격을 할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상황입니다“라고 알려준다면, 그 안에 다 도망하고 없겠죠. 그 도망도 말입니다. 자기가 할 수만 있으면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손에 쥐고 하면서 자기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다 지니고서 갈 것입니다. 금 은 보석 온갖 패물, 집문서, 통장, 어음 등..., 피난 가서도 그리고 또한 나중에 돌아오면 다시 쓸 수 있는 모든 재산을 가지고 갈 수 있는 만큼은 다 가지고 갈 것입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차를 몰고 또는 걸어서라도 여유 있게 가겠지요.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전혀 그럴 여유가 없는 것에서 말씀하십니다. 지붕위에 있는 사람은 집안에 이는 물건을 꺼내려고 내려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이죠. 그렇게 하기 전에 벌써 줄행랑 쳐서 산 위로 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밭에 있는 사람은 겉옷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시며, 아이를 밴 여자들과 갓난아기가 딸린 여자들은 그렇지 않은 여자들보다도 더 불행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럴 수 밖에요. 자기 뱃속에 있는 아기의 생명을, 갓난아기의 생명을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아이의 엄마 아닙니까? 그런데 자신만이 아니라 뱃 속에 있는 아이도, 엄마 품에서 세상모르게 평안한 얼굴로 젖을 먹고 있는 갓난아기도 엄마와 함께 죽임을 당하게 되었으니, 차라리 아이를 배지 않은 여자가 복있고 갓난아기가 딸리지 않은 여자가 복이 있게 여겨질 상황입니다. 도망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가 겪은 동족상잔인 6.25 전쟁의 경우 북한의 요청을 받은 중공군이 참전하여 인해전술을 써서 몰려올 때 1.4후퇴를 할 당시의 피난민은 한강물이 꽁꽁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 피난을 가며 죽음의 위험에 처하는 큰 고생을 하였습니다. 특히 아이를 밴 여자들과 갓난아기가 딸린 여자들은 그 고생이 더욱 심하였습니다. 그러니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은 겨울이 아닌 다른 철에 겪는 난리보다 그 겪는 고통과 고생이 클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도망하는 일이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에 그 당시의 안식일에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되면 그들이 도망하는 일이 여느 때보다 더욱 힘들고 어려울 것을 뜻하는 것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렇게 겪게 될 일은 ‘큰 환난’으로 말해질만합니다. 그것을 겪는 사람은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후에도 없을 일’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실제 이 큰 환란을 A.D. 70년에 당하였습니다.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쳐들어와 에워싸고 수년을 공격한 끝에 마침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멸망시킨 것입니다(눅21:20). 그런데 이때 예루살렘 백성들이 겪게 될 상황은 세상 마지막 날에 있을 상황인 종말론적인 성격을 담고서 말씀되어졌습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겪을 일은 그 자신들에게는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후에도 없을 일’인데,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서 겪게 될 고통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그러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겪을 일로 말해지는 예언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백성들이 겪었던 큰 환란은 장차 다가올 큰 환란의 예비적인 징조의 성격을 띠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의도는, 앞으로 예루살렘에 있게 될 일을 말씀하시는 것에서 창세 이후로 경험하지 못한 큰 환란이 예루살렘에 국한하지 않고 온 세상에 있는 모든 민족들에게 임할 재난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화가 미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피하여 안전하게 있으며, 저 산 밑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재난을 보면서 안도의 숨을 몰아쉴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저주의 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배척한 자들에게 임합니다. 저 옛날 예루살렘의 멸망에서 보는 것은 극히 작은 것에 불과하고 아주 제한된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온 세상의 모든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화를 당할 그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큰 위로가 있습니다. 그들은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고통과 죽임을 당하고 그렇게 미움을 받지만, 많은 사람이 그래서 배도와 배교하고 죄 가운데 다시 빠져 들어가 살며 사랑이 식어져 서로 배반하고 미워하며 미혹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는 가운데서도 끝까지 인내하고 참음으로 주님께 가진 믿음에 견고히 있어 구원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마침내 온전히 드러나는 순간이 다름 아닌 바로 세상의 끝 날입니다. 그러기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13절).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천국 복음으로 온 세상에 증거하여 전파되게 하시는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미움을 받게 되고 또한 죽임을 당하는 것 속에서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참게 하여서 그 이름을 의지함으로 구원을 얻게 하시는 능력을 행하십니다. 여기에 천국 복음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 복음의 능력은 이것으로 말해지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말이죠. 모든 사람에게 화(재난)로 미치는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는 이 환란이 감하여 없습니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인데,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지 못했으면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인데, 그래서 홈빡 다 뒤집어쓰고 꼼짝없이 당하여 영원히 멸망에 처할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택한 백성은 여기에서 구원 얻게 하시므로 그 큰 환란을 감하시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답글을 마칩니다.
본 답글이
성경을 읽으시며
하나님의 말씀의 바른 이해를 갖고자 하는 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함께 하심을 구합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