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27일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에서 있었던 모임 이야기입니다.
글 내용은 교수님의 강연중에서 밑줄 친 몇가지를 옮겼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와닿는 글이길 바라면서 .......
잃어버린 자투리 문화를 찾아서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
1.왜 자투리 문화인가?
자투리는 본래 한 몸이었지만 중요하게 쓰이고 남은 변두리 부분이나 끝자락을 일컫는 말이다. 자투리는 곧 배의 탯줄과 같다. 태는 생명 줄이기 때문에 요즘처럼 아이만 취하고 함부로 버리는 일이 없다. 밥상에 오른 고등어도 머리와 꼬리가 없으면 고등어로서 살아 생존할 수 없었다. 멸치가 중요한 영양식 인 것도 완전식이기 때문이다. 사과도 껍질이랑 같이먹어야 한다. 현미도 쌀눈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데 백미를 먹고 있다. 즉 버리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이런 것처럼 자투리문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문화의 편식을 극복할 수 있다.
*작은 것부터 관심을 기울일 것.
*약한 것부터 배려할 것
*모자라는 것부터 도울 것
*낮은 것부터 우선할 것
*못난 것부터 사랑할 것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잘난 것을 사랑하고 크고 강한 것을 따르며 가까이 하는 것은 사실상 사랑도 도움도 배려도 아니다. 귀여운 것을 귀여워하는 것이 사랑인가. 잘 나가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도 자비인가. 그것은 한갓 이기적 욕망이자 기득권을 누리기 위한 줄서기이자 편들기일 따름이다. 죄를 용서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적을 도울 때 진정한 자비라고 할 수 있다. 잘난 문화를 제쳐두고 자투리 문화에 눈길을 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공동선의 지향과 만나는 일이다.
+= 높은 자리, 훌륭한 사람에게 하는 인사는 줄서기??
정말 적에게 베풀 때 , 작은 것에 대한 관심, 배려가 더 중요하다
2.왜 국시가 아니고 국시꼬랭인가.
"자투리문화"가 개념적 진술이라면, "국시꼬랭이 동네"는 상징적 표현이다. "자투리 문화"와 같은 개념적 진술보다 "국시꼬랭이"와 같은 구체적인 문화 경험을 통한 상징적 표현이 더 정서적이고 더 효과적이다. "자투리문화"라고 하면 잘 돌아보지 않아도 " 국시꼬랭이 동네"라고 하면 기웃거리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개념적 진술이 아이큐를 자극한다면 상징적 표현은 이큐를 자극하는 까닭이다.
1970년대 아이들은 국시꼬랭이를 통해서 어머니 사랑을 느끼고 간식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국수 꼬리"라 하지 않고 국시꼬랭이라 하는 것은 지역의 토박이말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사람은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사람답게 인식된다. 토박이말과 토박이문화야 말고 한국인의 전형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문화자신이다. 세계화 시대일수록 독자적인 우리 전통문화를 잘 가꾸어야 한다.
※대중문화에 익숙하고 제도교육에 길들여져서 전통문화의 주체적 계승은커녕 전통문화를 알지 못해서 우리 아이들답게 성장하지 않는다. 투사적용어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쓰고 있다. 전투적인 말도 문제지만 아무에게나 사랑한다는 정서적인 말도 문제이다. 대중문화가 이를 쓰도록 강권하고 있다.
남을 응원하는 말로 파이팅~보다는 "힘내세요!" "잘 하세요." 이 좋다."사랑해요"보다는 "아버님 뵙고 싶어요." "어머님 잘 모시겠습니다." 가 더 우리문화의 정서에 더 맞다.
어린이 교육의 목표는 우리 아이들을 우리 아이들답게 기르는 데 있다. 학교교육이 지식교육에 빠지고 사회교육이 상품화되면서, 인간교육 또는 문화교육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편해문 선생님께 전래동요 몇 가지와 이춘희 작가님의 '똥떡''고무신 기차'
등의 이야기를 들었구요. 떡도 먹고 욕심이 많은
저는 녹차와 복숭아차 두 잔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쌈닭(이춘희저 강동훈그림.언어세상펴냄)'을 한 권 받아
입과 귀와 눈이 즐거웠던 시간을 보냈습니다.
첫댓글 저도 그날 가보려고 했는데, 한우리 수업이 있는 날이라서 못갔습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죠? 부러워요.. ^^*
^^*못오셔서 섭섭하셨겠어요. 수업이 많을 땐 거기에 정열적으로 매달려서 하시구요. 수업이 한가해지시거든 '나에게 채워넣을 시간을 주시는구나' 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