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귀성과 귀경 차량에 휩쓸려 고속도로를 왕복하고 나니 심신이 피로합니다. 그래도 예년 추석땐 견딜만 했습니다. 추석이 지나면 자연이 주는 반가운 선물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바로 모기 없는 밤입니다. 그런데 올 추석은 다들 아시다시피 아직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리기는커녕 추워지기 전에 피를 빨아야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아는 모기들과 밤마다 사투를 벌입니다. 아아~ 추석은 갔지만 모기는 아직 가지 않았습니다.
이 시가 떠오른 것은 오늘 아침, 아내가 화장실에서 큰 소리로 “자기, 모기채!”라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른 화장실에서 이를 닦다 말고 얼른 전기충격 모기채를 찾아내 아내가 있는 화장실 문을 노크도 없이 열고 들이밀었습니다. 화장실에서 앉아있는 것보다도, 이를 닦는 것보다도 급하고 중요한 것, 그것은 모기퇴치입니다. 그놈을 살려뒀다간 오늘 저녁 우리 아이들이 피를 빨리고 피부를 긁으며 괴로워하게 될테니까요.
부부가 된다는 것은 연애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뜻이란 것쯤, 문정희 시인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압니다. 결혼할 땐 몰랐지만 살아보니 알게 됐습니다. 그래도 연애할 때처럼 쉽게 헤어질 수는 없습니다. 같은 생각을 하는 경험이 쌓여 유대의 쇠사슬이 두사람을 단단히 묶어두니까요.
모기채를 들고 안방 화장실로 뛰어가 아내에게 건낼 때, 저와 아내는 똑같은 생각을 합니다. 같은 생각 하는지 어떻게 아냐구요? 아내는 문을 안에서 당기고 저는 문을 밖에서 밀었기 때문입니다. 모기가 탈출 못하도록 문을 닫으며 우리는 아직 자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부부는 생각만 같은 커플일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인 커플이기도 합니다. 한 경제학과 교수가 이 시에 나오는 부부의 행동을 경제적 관점에서 풀이했습니다. 모기에 물려 부은 곳에 연고를 바를 때 실수로 연고를 많이 짰어도 아내가 있다면 버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내가 자기도 모기에 물렸다며 부어오른 배꼽을 들이밀테니까요. 부부는 연고를 나누어 바르면서 경제적 효용을 끌어올리는 사이인거죠.
문정희 시인은 남녀의 사랑을 테마로 시를 여러 편 썼습니다. 삶의 진솔한 국면들을 포착해 특유의 다부지고 힘찬 어조로 제시하는 맛이 일품이어서 여러 사람 입에 즐겨 오릅니다. 문 시인이 최근 타계한 김종철 시인에 이어 한국시인협회장을 맡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를 쓰듯 당차게 한국 시단에 새 바람을 불어넣어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