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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회] 오바마 시대와 한반도 |
북핵은 북-미 정상화 문제, 6자회담으론 해결 못해 |
좌 : 권용립 교수(경성대 정치외교학과) / 우 : 이철호 교수(부산대 국제전문대학원)
2008년 11월 미국에서 등장한 첫 흑인 대통령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특히 지난 8년간 세계를 휩쓴 미국의 패권적 일방주의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핵 문제 등으로 얽힌 한반도 정세가 오바마 정권의 출현으로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 전문가 시각을 통해 진단했다.
사회(김기진 국제팀장)=미국에서 오바마 정권이 곧 출범합니다.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권용립 교수(이하 권)=오바마의 당선은 '민주당 후보'의 당선입니다. '흑인'이란 특성은 언론이 좋아할 선정적인 부분이지 이번 선거의 본질은 민주당 후보의 당선이라고 봐야 합니다. 미국은 부시 정권 8년 동안 도덕성과 위상이 추락했고 이것이 오바마 정권 탄생에 크게 작용했죠.
이철호 교수(이하 이)=그런 의미에서 오바마의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의 도덕성 회복'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오바마 정권의 출범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이 힘을 바탕으로 한 일방주의에서 '다자주의'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높아졌어요.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건 무리겠지만 당면과제인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다자주의로 갈 수 밖에 없어요. 다자주의는 오바마 정권에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사회=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뜻입니까?
권=부시 대통령은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였습니다. 미국의 네오콘들은 극도의 이상주의자들이죠. 부시 정권이 이라크에 군사력을 동원한 것은 전형적인 이상주의자적 행동입니다. 자신의 이상과 이념을 전 세계에 전파하려는 행위는 일종의 메시아니즘(Messianism)입니다. 그런데 이상주의는 원류는 민주당에 있어요. 그래서 민주당은 '공화당이 자신의 것을 도용했다'고 느낍니다. 오바마는 부시의 이상주의를 '현실주의'로 되돌려 놓을 것입니다. 현실주의는 다자주의, 동맹과의 협력중시, 협상을 통한 외교적 접근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오바마 외교 참모 라인 중 원로급에 클린턴 정권의 국무장관 매들린 울브라이트나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 등이 포진한 것을 보면 차기 미국 정부가 '현실적 이상주의'를 추구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외교정책에서 추구하는 바는 크게 다를 게 없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에서 부시 정권과 차이가 날 것입니다. 이상주의자인 부시가 '힘'을 바탕으로 한 일방주의였다면 오바마는 '대화'라는 보다 현실적인 접근법을 택할 것입니다.
사회=오바마가 현실주의를 추구한다면 한반도, 특히 북·미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이=북한은 클린턴 대통령 시절 임기를 3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제1부위원장인 조명록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특사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와 같은 상황이 재연되길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북한도 오바마 정권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게 매우 제한적이란 사실을 잘 압니다. 일종의 '불안정성의 심화과정'이라 볼 수 있는데, 북한은 미국이 어떤 명분과 실익을 자신들에게 줄 수 있는지 일정기간 타진해 볼 거예요.
권=우리와 미국의 시각에서 보면 북한의 연착륙은 곧 '개방'을 뜻하는데, 개방은 북한 체제의 속성과는 맞지 않습니다. 개방을 하더라도 북한을 지켜줄 마지막 보루가 핵무기입니다. 중국에도, 일본에도 사용할 수 없는 북한의 핵무기는 상징적 존재입니다. 북한은 아직까지도 오바마의 미국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한 상태입니다. 북한의 핵 검증 합의서 거부는 이것을 노린 전략적 판단으로 풀이됩니다. 누군가 먼저 사인을 줘야 하는, 일종의 게임이라 볼 수 있죠.
사회=북핵 문제가 오바마 정권에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뜻인가요?
권=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과연 있는지 알아보려면 오바마 정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날 수 있는 '급'이 되는 사람을 특사로 파견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이 특사를 파견하는 데는 전제조건이 있어요. 특사를 보냈을 때 성공할 수 있다는 북측의 사인이죠. 김 위원장이 특사를 만나겠다면 그것은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다는 뜻이에요. 오바마 정부가 특사를 보내고 김 위원장과 대화가 이뤄진다면 의외로 쉽게 북핵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이=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한국이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일본이 과거 일본인 납치문제로 6자회담에서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않고 있는데 만일 북일관계가 급진전 될 경우 한국의 입지가 위축될 수 밖에 없습니다. 대북정책에 있어 이명박 정부의 미숙함이 위험수준입니다.
사회=얘기가 남북관계로 넘어가는데, 뭐가 문제라고 생각합니까.
권='국제관계'로서의 남북관계를 보면 결코 정상적인 경우가 아니었습니다. 국제관계는 상호주의가 원칙인데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남북관계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북한 정권이 외세저항적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자존심 하나로 유지되고 있는데 북한의 이런 속성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일반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이었습니다. 남북관계는 엄연한 국제관계입니다. 정서적으로야 '민족'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엄연히 '다른 국가'거든요. 민족이 아니라 '국가대 국가'의 현실적 관계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극심한 진통을 겪었던 유럽통합에서 보듯이 남북관계는 쉽게 해결될 사안이 아닙니다. 어떤 외부적 계기가 없으면 남북이 정치적으로 극복해 결합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변화 속에서 기능주의로 돌파할 수 있어야 해요. 오바마 당선인이 표현하는 '방법의 변화'가 필요한거죠.
사회=최근 6차 회담 결렬을 지켜본 국제사회가 6자회담이 동력을 상실했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한국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없는데요.
권=미국과 북한이 서로 사인을 주고받아 고위급 회담을 가질 경우 미국이 6자회담의 틀을 손질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 오바마 당선인이 크리스토퍼 힐에게 북한 문제를 전담할 자리를 맡길 수도 있습니다.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6자회담에 외형적인 손질이 가해 질 수는 있겠지만 핵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을 배제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핵처럼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는 금방 해결할 것처럼 접근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에요. 지난해 6월 영변 냉각탑이 폭파될 당시 마치 북핵 문제가 끝난 것처럼 소란스러웠지만 결국 지나친 낙관이었음이 드러났잖아요. 6자회담은 성급하게 판단할 대상이 아닙니다.
권=북핵은 그 자체가 아니라 '북미관계 정상화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북핵은 북미관계의 종속변수일 뿐이란 말입니다. 6자회담으로는 북미관계가 해결될 수 없어요. 당초 3자회담에서 6자회담으로 확대한 것은 일종의 포위작전이었는데 북한은 그 틀 속에서도 핵실험을 했잖습니까. 결국 북핵 문제는 북한과 미국, 중국과의 사이에서 타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이 주역이 되겠다는 것은 꿈인 게 현실입니다. 한국이야말로 '이상주의적인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 반대로 가는 것이 '현실주의'라고 판단했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도 어차피 이명박 정부가 물려받은 '현실'입니다. 과거 정부의 대북 정책을 정서적으로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방향을 서서히 현실주의로 틀어나갔다면 남북관계도 지금과는 달랐을 겁니다.
사회=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문제가 자주 거론됐습니다. 오바마 정권 때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권=북한의 '포스트(post) 김'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일이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린 것과 관련해 얄타밀약설이 지난 반세기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한반도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북한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얄타밀약에 해당될 만한 미국과 중국의 사전 양해가 이뤄질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이=위기상황에선 네트워크가 중요합니다.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사람'이 '영토'보다 중요한 시대가 됐어요. 이런 측면에서 '시장'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오늘날의 시장은 세상을 탈(脫)영토로 보기 때문입니다. 지난 10년간의 경험을 잘 살려서 소통하며 포스트 김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주도하지는 못하더라도 일방적으로 당하는 일은 막을 수 있습니다.
정리=김기진 기자 kkj99@busanilbo.com
△ 일시·장소=2008년 12월 29일 부산일보사 회의실
△ 참가자=권용립 경성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철호 부산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