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아일보가 오는 31일 종교개혁 기념일을 앞두고 한국 선교 50주년을 기념하는 기독교한국루터회총회장 엄현섭 목사를 만나 인터뷰한 것을 신문에 올린 일이 있었다.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후암동 루터센터에서 이루어진 엄목사의 인터뷰는 그 가운데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으며, 종교개혁의 횃불을 치켜든 마틴 루터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말들로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신문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엄목사는 “교회의 분열은 가장 큰 비극이자 문제입니다. 가톨릭을 개혁한다며 출발한 개신교단이 이제 개혁의 대상이라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루터교회는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일치 속에서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개신교계가 개혁의 대상이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엄목사가 이러한 현실에 빗대어 은밀히 추켜세운 카톨릭은 교회가 아니다.) 엄목사는 교회의 분열에 대한 기독교한국루터회式 대안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다양성 속의 일치, 일치 속의 다양성’이었다. 이것은 전형적인 뉴에이지 사상이다. 모두가 한 ‘하나님(God)’을 믿지만, 그에 이르는 길은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이 수많은 교파들이 있는 기독교계로 유입되면서 교파를 초월한 교회연합이 역설되었고, 궁극적으로는 ‘구교’라 칭해지는 카톨릭으로의 회귀를 말하게 된다. 진리는 하나이지만 그것을 제시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는 논리 하에 비성경적인 교단 교리를 가르치는 교회들이 하나로 모여든 것인데, 루터교회는 애초부터 바로 이러한 일을 추구해왔다는 것이다. 마틴 루터도 그러했을까?
둘째, 엄목사는 선교에 대해 “국내 선교 50주년은 1월이었지만 종교개혁 주일에 맞춰 행사를 준비해 왔습니다. 우리는 선교를 하면서도 우리 교회로 오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싶으면 가까운 교회로 가십시오’라고 했죠. 그래서 교단의 규모는 작지만 ‘작은 거인’으로 불리죠.”라고 하였다.
엄목사는 ‘예수를 믿고 싶으면 가까운 교회로 가라’고 한 것을 선교라고 말한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타국이나 오지로 떠나는 진정한 선교의 의미도 모르는 발상이다. ‘가까운 교회’란 어떤 교회를 말하는가? 선택된 사람만 구원받고 나머지는 믿고 싶어도 믿지 못한다는 칼빈주의 5대 강령의 장로교회로 가라는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견뎌야 구원받는다는 감리교회나 성결교회로 가라는 것인가? 아니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또다시 성령을 받아야 하며, 성령침례의 증거가 방언이라는 비성경적인 교리를 가르치는 은사주의 교회로 가라는 것인가? 마틴 루터라면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확신했던 루터에게는 지옥에 갈 혼들에 대한 끓어오르는 연민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고 싶으면 아무 교회나 가라는 것. 이것은 혼들에 대한 열정도 없고, 죄와 지옥의 실체도 모르고, 무엇보다도 선교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가까운 교회에 가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셋째, 엄목사는 루터의 정신에 대해 “루터와 추종자들은 교회를 세우기보다 ‘믿음만으로, 은총만으로, 성서만으로!’란 3대 기치 아래 교회개혁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교회 수만 늘리는 것은 루터의 정신에 맞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마틴 루터는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즉 “오직 성경!”을 외침으로 종교개혁의 횃불을 들어올렸다. 그는 자유주의자들이 코란 등 기타 종교 경전들과 동급으로 놓는 ‘성서’가 아닌 “성경”을 최종권위로 삼았다. 종교개혁의 구호는 엄목사의 ‘믿음만으로, 은총만으로, 성서만으로!’가 아니라, “솔라 피데! 솔라 그라티아!. 솔라 스크립투라!” 즉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이었다. 그런데 어떤 성경을 말하는 것인가? 마틴 루터가 말한 “오직 성경!”은 어떤 성경인가? 변개된 한글개역성경의 근간이 된 카톨릭성경인가? 카톨릭 사제였던 루터는 그가 보던 카톨릭 성경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서 독일어로 된 <루터성경>(1534)을 번역해 내었다. <루터성경>은 <킹제임스성경>과 맥을 같이 하는 올바른 원문에서 번역된 바른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이것이 “오직 성경!”의 바로 그 “성경”이다. 엄목사는 마틴 루터가 틀린 성경으로 취급한 카톨릭 성경에 바탕한 한글개역성경을 쓰면서 “솔라 스크립투라”를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 “루터의 정신”은 구호를 외친다고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루터가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 삼았던 바로 그 성경을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 삼을 때 발휘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엄목사는 교회의 분열에 대해 “교회의 분열은 성경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됐지만 교계에도 지방색이 존재할 정도로 사람 때문에 빚어진 원인이 많다. 스님들이 빛나지 않는 겸손한 색이기 때문에 잿빛 승복을 입는 것처럼 목회자들도 누구보다 낮은 자세로 세상을 만나야 한다.”고 말하였다.
마틴 루터라면 절간의 승려들에게서 겸손을 배우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겸손을 배울 곳이 없어 이교도 승려들에게로 가야 하는 것인가?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다. 그가 겸손을 배울 곳은 어디인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에 쉼을 얻으리라』(마 11:29). 겸손은 예수님에게서 배우라고 하셨다. 그것을 “솔라 스크립투라!” “오직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여왕 마리아를 숭배하고 온갖 이교도들의 우상숭배를 통합해 놓은 로마카톨릭과 1999년 칭의론 공동선언을 한 루터교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엄목사의 인터뷰에서 그들의 영적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마틴 루터라는 한 사람을 기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현재, 내가, 바른 성경을 따라서, 그것도 성경대로 정확하게 주님을 섬기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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