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묻지 않은 순수한 추억의 몽상과
물리적인 법칙을 역주행하기라도 하듯이
그곳은 숨어 있었다
그리고 쉽게 모습을 다시 보여주지 않았다
수많은 한강의 고수부지들
전국의 사대강을 기웃거려도 모두가 잘 차려입고
뽐내는 사람같은, 인위적으로 정리정돈된 모습들
물론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조화들이 그리고 짙은 화장의 여인이 아름답지
않은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이십여 년 전 한강의 고수부지들, 반포 고수부지와
가까운 두물머리, 정약용 생가, 백운호수
이곳들은 강앞으로 내려가 강물과 만날 수 있었다
정약용생가 앞 얼어붙은 강을 어머니와 걸었다
의왕시의 백운호수도 얼어붙은 호수를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걸었다
반포고수부지의 수수하고 고즈녁한 모습을
배경으로 어머니는 하얀 머리를 날리며 나물 한 주먹을
캐기도 하시고 나는 맞은편 남산을 바라보다가
기어이 남산타워를 들렸다 오곤 했다
혼자 모시고 다니다보니 자연스레 상계동에 계신
고모님을 함께 모시고 다니게 되었다
고모님이 상도역으로 오시기도 하고 위쪽으로의
방향이면 상계동으로 모시러 가기도 하고
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도란도란 옛이야기를 다시 꺼내시며 주무시기도
했던 지난날들이다
두 분이 건강하신 편이 아니기에 서울근교로
주로 모셨다
그때 본 「서울근교 갈만한 곳」 이라는
책과 지도가 너덜너덜 낡아지고
봄의 꽃들이 어느 지역에서 피고 그곳에서 지면
다음 어느 장소에서 어떤 꽃들이 피는지를 자동으로
알게되고 꽃들의 길들이 머릿속에 완전히 입력되었을
무렵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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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인간의 법칙아래 모든 것들을 바꾸며 지나갔다
철책과 댐과 돌로 만든 축대가 모든 물들을 가두어버렸다
물은 흙과 만나 서로의 온기를 나눔을 잃고
차가운 돌이나 시멘트에 몸을 서럽게 부딪혔다
퇴촌의 숨겨진 강으로 내려가는 길도
어느 날 출입금지로 발길을 돌려세웠다
까만밤을 등에 업고 달려가 푸른새벽을 영접하고
넘어오던 영월, 나의 연당역, 서강과 수수밭,
누런 벼이삭, 푸른 소나무도 산업도로의 무자비한
기둥이 먹어 치워버렸다
이 모든 것들을 짓밟고 올라가던 육중한
시멘트 다리를 보며 미친듯이 치오르던 위경련은
지금도 생생한 통증이다
전국의 다른 자연도 비슷한 모습으로
본래의 모습들을 잃어갔다
사람들은 멀리서 멀뚱거리며 이 강들이 이 숲들이
이 길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르게 되었다
눈멀고 귀멀어 숲과 나무와 강들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옛 파편을 찾아다니기를 언젠가부터 포기했다
도로가 생기고 산이 잘리고 바다가 매몰되어 달라지는
지도로부터 몸과 마음이 멀어져갔다
얼마전 옛정에서 당산고수부지를 갔다
나는 아직 소중하게 남겨져있는
숲이, 우거진 오솔길이 살랑거리며 강으로
내려가는 모습과 버드나무가 머리를 강에다 묻고
물들과 희희락락하는 모습과 흙이 강물과 찰랑이며
애무하는 옛날의 한강을 만날수 있었다
아니 한강이 아니라 앉아계시는 어머니를 찾아내었다
다음 날 다시 갔는데 방향을 반대로 잡아
어머니를 찾지 못했다 얼마전 다시 가서 찬찬히
제방향을 따라 걸어갔다
발끝을 적시는 강물과 강으로 가는 우거진 오솔길
한강은 어머니에게나 나에게나 고향의 물길이 아니던가
나는 사라진 영혼들은 무덤에도 납골당에도
일본의 개인사당처럼 만들어 놓은 내집에도
계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는 빗줄기로 때로는 눈발로 혹은 바람이
툭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그런 모습이거나 아니면
당신이 즐겨 다니던곳, 즐겨 앉아서 쉬던곳,
그런 장소에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고향 땅은 길도 집도 사람도 아무것도 없으니
그곳에는 앉을 곳이 없을 것이다
오래된 길이 남아 있는 곳
오래된 사람과 만날수 있는 곳
오래된 길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을 나는 사랑하고 그런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
이유없는 기쁨이나 편안함, 이유 없음은
바로 이유 있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