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무총리를 지낸 이수성씨는 「사랑 만한 교육은 없다」라는 책에서 자기 어머니가 자기를 축복했던 경험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수성이는 지도력이 뛰어나서'라는 말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자녀들은 반은 타고난 성품대로, 나머지 반은 부모님의 덕담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신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의 장점을 크게 부각시켜 지나가는 말처럼, 주술처럼 아이들의 뇌리에 박히도록 심어주시곤 했습니다.
자녀를 축복하는 것은 부모의 특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녀를 양육할 때, 축복함으로 기른다고 합니다. 부모가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큰 행사였습니다. 그들은 어떤 특별한 일이 있어도 축복했습니다. 전쟁에 나가게 되어도 축복했고, 사업을 시작해도 축복했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축복했습니다.
축복과 격려 속에 자란 사람이 큰 일을 합니다. 이스라엘은 2000년 동안 나라가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에서 지대한 공헌을 하거나 영향을 미친 사람들 중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노벨상을 받은 사람의 10% 이상이 유대인입니다. 미국이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 살고 있는 유대인의 인구 비율은 전체 미국 인구의 3%미만이지만, 전국 대학 교수의 30%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많은 학자들은 유대인의 독특한 교육방법에서 그 이유를 찾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자녀를 축복하며, 격려하며 길렀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로 자라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딸이 함께 여행을 하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자동차가 언덕 아래로 글러 떨어지는 큰 사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가벼운 상처를 입었으나 아버지와 딸은 모두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습니다. 특히 딸의 상처가 깊어서 오랫동안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치료를 했으나 평생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할 신세가 되었습니다. 딸보다 먼저 퇴원한 아버지의 신세도 딸과 다름이 없다고 알려졌습니다.
사고 당시 사춘기에 이었던 딸은 무엇보다 마음의 상처가 깊었습니다. 학교가 파하면 다른 친구들이 조잘거리며 신나게 몰려다닐 때도 그 딸은 늘 혼자 목발을 짚고 외로이 집으로 와야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같은 목발 신세인 아버지가 말동무처럼 딸에게 다가와 다정하게 대해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주어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딸은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투정을 부리는 딸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아버지가 나서서 말없이 그 투정을 받아 주었습니다. 딸에게는 아버지와 공원 벤치에 나란히 목발을 기대어놓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었습니다.
어려운 사춘기를 잘 넘기고 딸은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입학식 날 아버지가 학교에 같이 참석하여 딸을 껴안아 주며 말했습니다. "네가 내 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구나. 너는 나의 자랑이며 보람이란다" 딸은 정말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 해 어느 날이었습니다. 세 식구가 나란히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아버지와 딸은 목발을 집고 가야 했습니다. 길을 걷는 그들 앞에서는 작은 꼬마 하나가 공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이 큰길로 굴러갔습니다. 꼬마는 앞뒤를 살피지도 않고 공을 주우러 큰 길로 뛰어들었습니다. 길모퉁이에서 큰 트럭이 전 속력으로 달려 나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딸의 아버지가 목발을 내던지고는 길로 뛰어들어 꼬마를 안고 뒹굴어 위험의 순간을 넘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꼬마를 안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길을 건너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순간적인 행동은 너무나 날쌨고 자연스러웠습니다. 목발 집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동작이었습니다. 딸은 자기 눈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가 다가와서 딸을 꼭 껴안고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얘야, 이제 말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사실 너의 아버지는 다리가 다 나았단다. 퇴원 후에 곧 정상이 되었거든.
그러나 네가 목발을 짚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버지도 목발을 짚고 다니기로 작정하셨던 거야. 내가 말렸지만 너랑 아픔을 같이 해야 한다고 고집하셨던 거야. 그러니까 그게 벌써 오 년이 되었구나. 이 사실을 아버지 회사원도, 우리 친척도 아무도 모르지. 나와 아버지밖에 모르는 비밀이었지." 길 건너에서 손을 흔드는 아버지를 보며 딸은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아버지는 5년을 목발로 딸의 아픔에 동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고 죄인처럼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도널드 데이튼」이라는 신학자가 말하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은 복을 비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복을 빌어주는 마음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요, 베풀어주는 마음이며, 사랑의 마음이기 때문에 복을 빌어주는 마음이 가장 아름답고 선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화니 크로스비」라고 하는 유명한 찬송가 작사가가 있습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오 놀라운 구세 주 예수 내 주>,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등, 약 2천여 편의 찬송가를 쓴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생후 6 개월 만에 시력을 잃고 평생 앞을 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는 항상 활기차고, 희망적이고, 밝습니다. 그의 시를 읽은 사람은 누구도 그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놀란다고 합니다. 저렇게 빛을 보지 못하고 캄캄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어떻게 그렇게 밝은 노래가 나올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비결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꼭 이렇게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당신의 영혼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즉 축복을 하는 인사가 그의 인사였다는 것입니다. 92세까지 살았는데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렇게 인사함으로 복을 받은 사람은 바로 나였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축복을 하면 그가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결국은 내가 복을 받는 비결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남을 축복만 하십시오. 절대로 남을 괴롭히지 말고, 사랑을 주고, 은혜를 끼치고, 평안을 전하고, 복음을 전해 주십시오.
나의 입에서는 축복의 말만 나오게 하시고, 축복의 기도만 나오게 하시고, 축복의 노래만 나오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
이렇게 하는 것이 내가 살고,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복을 빌어주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그들을 위해 복을 빌고 저주하지 마십시오.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십시오. <로마서 12장 14~15절>
첫댓글 영혼의 양식으로 이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