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끝자락 팔월 넷째 토요일이었다. 전국동기회였다만 참여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울산과 부산에서 틈을 내지 못했다. 창원과 김해에서 주로 모였고 진주와 멀리 논산에서도 한 명 왔더랬다. 사백 명이 졸업하면서 주로 경남에 정착했다만 전국으로 흩어졌다. 상당수 동기는 대구와 부산으로도 갔다. 교감이나 장학사로 나가거나 자격을 가진 동기가 서른 명 가까이 된다고 들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 곁의 초등학교에서 열다섯 명이 모였다. 열 시에 만나 인사 반갑게 나누고 편을 갈라 수박조각 간식으로 세 시 가까이 배구를 했다. 동기가 교무를 맡은 학교라 미리 에어컨을 켜 놓아 그리 덮지 않았다. 여자동기들이 더 열성이고 배구를 잘했다. 공교롭게 내가 속한 팀이 연전연패였다. 무려 열 세트 정도 진행했을 무렵 마지막 판은 까까스로 한 번 이겨 보았다.
용무 바쁜 동기는 일부 가고 남은 친구들은 두부마을로 갔다. 보쌈두부 안주로 시원한 맥주와 소주로 잔을 비웠다. 운전에 얽매인 동기는 사이다를 채웠다. 중년을 지나면서 마음 편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다음 겨울방학 때 창원에서 모이기로 하고 헤어졌다. 아침에 갈 때도 그랬듯이 오후에 올 때도 여자 동기가 운전한 차로 창원터널을 넘나들었다. 개학이 가까운 팔월 하순이었다.
넷째 일요일이었다. 방학에 들어 반나절도 집에서 머무적거려 보지 않았다만 마음 두고도 못한 일이 하나 있다. 날씨 궂으면 도서관서 보내고 맑으면 산이나 들로 쏘다녔다. 물론 그 사이 며칠 연수 받은 날도 있다. 창원에서 버스 종점기행은 더러 다녔다. 불모산동이나 성주사언저리에서 서성거렸다. 석교마을이나 자여마을에 들려보았다. 강가 본포마을이나 명촌마을에도 나가보았다.
마산역에 나가면 구산이나 삼진으로 나가는 시내버스가 있다. 수정 지나 원전이나 구복 바닷가로는 나가본 적 있다. 여름방학에 들면서 창포 갯가에서 당항포 해안도로 따라 한 번 걷고 싶었다. 그런데 이 걸음을 할 시간이 나지 않았다. 나는 개학 앞둔 학생이 밀린 숙제 하듯 길을 나섰다. 마산역에 나가니 정곡행 시내버스는 하루 네 차례뿐이었다. 열두 시 사십분 버스로 출발했다.
버스는 진동 지나 진전초등학교에서 오서시장을 돌아 탑동마을에 닿았다. 다시 돌아 나와 창포에서 동진교 곁을 지났다. 고성 동해와 마산 진전을 잇는 다리가 동진교다. 잘록한 당항포구 주둥이 물길에 놓인 다리다. 목표하기론 그곳에서 걸어서 배둔까지 가려 했으나 반나절이 흘렀다. 그래서 버스로 소포와 시락을 지나 정곡마을 종점까지 갔다. 마을 뒤 고개를 넘으니 고성 회화였다.
당항포를 바라보며 가져간 도시락을 비웠다. 바다 건너편은 고성 동해 좌부천마을이었다. 장기마을 뒤로는 구절산이 우뚝했다. 당항포관광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동촌마을을 돌아갈 즈음 바지락 캐는 아낙의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갯벌엔 왜가리와 갈매기가 늦은 점심거리를 찾고 있었다. 해안도로엔 차량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걷기 좋았다. 가까이 공룡발자국화석 이정표가 보였다.
나는 바닷가로 내려서서 조개껍질을 주워보고 자연산 석화도 따 보았다. 그러다 닿은 곳이 당항포관광지 울타리였다. 마침 썰물이라 에둘러 돌아가 입장료 바치지 않아도 되었다. 해안의 시멘트 계단을 오르니 고성공룡세계엑스포 행사장이었다. 내 뜻과 관계없이 중생대와 백악기 공룡관을 둘러보았다. 지방자치단체의 친환경농업관을 살펴보았다. 한우와 흑돼지와 토종닭도 키웠다.
방학 막바지 자녀와 함께 온 젊은 부모들이 더러 보였다. 그들은 공룡열차도 함께 타고 야외수영장에서 물놀이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순신이 두 차례 승전한 기념탑이 서 있었다. 바다엔 퇴역한 전함을 띄워 분위기를 살렸다. 거북선체험관과 자연사박물과도 있었다. 당항포는 예전에도 찾은 곳이라 샅샅이 둘러볼 요량은 아니었다. 물 빠진 갯가를 걷다보니 덤으로 한 구경이었다. 09.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