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한국의 탈춤 고성오광대와 양주별산대놀이 봉산탈춤 통영오광대 동래야류 강령탈춤 북청사자놀음과 여려 탈춤들을 소개 해봤는데요 이번에는 사라진 탈춤 다섯번째이자 마지막인 김해오광대에서 옛날에 쓰던 탈들을 소개 해볼까 합니다 그럼 김해오광대에서 쓰던 옛날 탈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볼까요?
김해오광대 : 경상남도 김해시에서 전승 된 오광대로 2015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 37호로 지정 되었다 가면극이 확산•정착한 경남 지역은 크게 보아 읍치邑治, 군진軍鎭, 그리고 포구浦口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서 김해 오광대의 전승지 죽림마을이 포구로서 중요한 곳에 정착한 것에 해당한다. 군진의 대부분이 포구이기도 했으므로 경남 일원에서 수운은 탈춤의 확산과 정착에 매우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김해 오광대는 19세기 후반에 죽림竹林마을 주민들에 의하여 연행되어 온 후 1937년까지 지속되었다. 죽림마을은 현재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에 편입되어 있으나 원래는 김해군에 속했다. 죽림은 현재의 서낙동강 자리에 과거 김해도호부의 대변청待變廳이 1646년(인조 24)에 설치된 군사 요지이기도 했고, 더욱이 국가의 해창海倉도 1649년(효종 원년)에 설치되었다. 이곳은 김해의 가장 중요한 유통 중심지인 동시에 군사적•행정적 요지로서 김해부라고 하는 관치官治 중심의 질서가 작동하는 곳이기도 했다. 가면극이 죽림마을에 정착할 당시만 하더라도 이곳에서는 김해가락오광대라고도 불렸는데, 1984년부터 전 김해문화원장인 고故 류필현의 주도로 복원하였으며, 그 후 오광대보존회가 결성되어 연행을 이어 왔다. 가락駕洛은 김해의 아칭雅稱이라는 점에서, 곧 김해 지역을 대표하는 탈놀이임을 지칭하는 것이다 송석하는 이곳을 1930년대에 방문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당시 이미 죽림 마을은 쇠퇴하고 있었다 연행을 조직화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환경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아 1937년을 마지막으로 김해 오광대의 전승이 중단되었다고 생각된다. 김해 오광대 연행의 역사를 보여 주는 문헌 자료들은 사실상 찾을 수 없지만, 당시의 탈이 남아 있고 연행자로부터 대사도 채록하였으며 나아가 복원 과정에서 과거 연희자들로부터 연행을 전승할 수 있었다 김해 오광대의 탈은 송석하가 수합한 열두 점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이후 1984년 최상수는 과거의 연행자들을 만나 대사를 직접 채록한 대본을 남겼다. 송석하가 수합한 탈들과 최상수가 채록한 대본은 1984년 이후 김해 오광대를 복원하여 재현, 전승하는 기초가 되고 있다 김해 오광대는 경남 지역의 다른 탈춤들과 마찬가지로 상원에 연행했으며, 이를 위하여 정월초사흘부터 걸립乞粒을 하여 경비를 조달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가면을 제작하고 연습을 한 후 낮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줄다리기를 하고 밤에는 태평안녕과 벽사진경을 기원하는 오광대를 연행했다 김해오광대는 제 1과장 중 놀이 제 2과장 노름꾼 놀이 제 3과장 양반 과장 제 4과장 영노 제 5과장 할미 영감 과장 제 6과장 사자무 과장으로 구성된다일제강점기 당시의 탈이 남아 있고 과거 연희자들에게 채록한 대본도 남아 있는 등 탈춤 연행의 재현과 전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모두 갖춘 경우는 경남 일원의 가면극 가운데 매우 드문데 김해 오광대는 이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적 의미가 작지 않다 한편 김해 오광대의 중요 특징의 하나를 중 과장에서 찾을 수 있다 중 과장은 매우 민감할 수 있는 남성들 사이의 성애를 다루었다. 다른 탈춤의 경우 대사에는 나오지만 실제로 연행되는 사례는 없다. 사회적 비판이나 풍자는 있을 수 있으나 이렇듯 사회적 금기를 깨는 노골적인 배치는 김해 오광대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 외에 노름꾼 과장의 극 중 비중이다. 진주 오광대와 가산 오광대는 노름꾼을 문둥이로 설정하고 있는 반면 김해 오광대는 그렇지 않다 같은 노름꾼 과장에 대해 가산 오광대나 진주 오광대와 비교할 때 다소 차이는 있지만, 노름꾼 과장이 유독 두드러지는 것이 김해 오광대의 중요 특징이다 남부형 가면극은 할미•영감 과장에서 할미가 죽는 데 비해 김해 오광대에서는 화풀이하는 영감이 죽는다. 이처럼 유사한 내용과 장르에도 불구하고 지역별로 작지만 미묘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덧배기 가락은 김해의 경우 쇠가락이라고 하며 경상도만의 독특한 가락으로 주로 풍물놀이에 쓰인다 김해 지역은 풍물놀이를 매구치기, 건립치기, 걸궁치기, 농악놀이 등으로 부른다 김해오광대의 경우 김해 자체의 덧배기 가락을 연희자들의 오랜 노력 끝에 채보하여, 이것을 기초로 연행•전승하여 오고 있다 한편 탈의 경우 노장중, 상좌중, 노름꾼1, 노름꾼2, 노름꾼3, 노름꾼4, 주색탈, 어딩이, 포졸, 종가양반, 모양반, 애기양반, 말뚝이, 상주선산양반, 영노, 영감, 큰이, 작은이, 사자, 담비 등 스무 개가 있다. 김해 오광대는 전부 박으로 만들었으며 사자탈과 담비탈은 대소쿠리로 만들었다. 탈의 색상은 적색. 흑색, 백색이 주종을 이룬다 연행에 사용하고 있는 탈은 송석하가 수집한 열두 점과 그리고 과거 연희자나 연희를 목격한 사람들의 고증 아래 연희자들이 직접 제작해 재현한 것이다
사진 : 국립민속박물관 & 국립중앙박물관
김해오광대 옛날 탈들 : 나무와 바가지로 만듬
포졸
어딩이
영노
말뚝이
도령양반
노름꾼 (1)
노름꾼 (2)
주색
작은이 (각시)
큰이 (할미)
상주선산양반
노름꾼 (3) & 노름꾼 (2)
첫댓글 그 동안 제가 작성한 한국의 옛날 탈 시리즈를 감상하신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