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생활의 힘 / 서암 큰스님
우리가 참선을 생활화 한다고 이것저것 노력하는데
사실 참선이란 그대로 생활이어야 합니다.
생활을 여위고서
참선이고 불법이고 그 가르침을 어디에 써먹겠습니까?
한가하고 마음 편한 사람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답답하고 급한 사람이 하는 것이 공부입니다.
중생 살이란 것이 우리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우선 그 물에서 기어 나오는 방법, 그것이 참선입니다.
따라서 생활을 여윈 참선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사실 불법에 접한 초년생들은 금방 참선의 세계에 들어가지지 않습니다.
첫 숟갈에 배부르지 않듯이 금방 되지는 않지만 노력하다 보면
서서히 그 길에 들어서게 되지요.
가령 누가 화를 돋우면 종전에 하던 습관대로 화가 나서 끌려가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공부하자고 마음먹고 조금만 마음을 가라앉혀도 ‘아차’ 하면서
내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반성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의 커다란 의심을 가지고 몰두해서
화두를 할 때 믿고 의지하는 스승이
“뜰 앞의 잣나무가 부처다.”라고 한마디 하면 목에 탁 막힙니다.
나에게는 잣나무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뜰 앞의 잣나무를 부처라 하니
그 선지식이 거짓말을 할 턱은 없고, 뜰 앞의 잣나무가
부처는 부처일 테니, 의심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지요.
그런데 이런 큰 의심에 부딪혀서도 대개는 주변경계에 끄달려
그 의심을 놓치기가 쉽습니다.
그러니깐 울리면 울고 웃기면 웃으며 그만 그 의심을 놓쳐 버리고
다시 붙잡았다가도 또 놓쳐버립니다.
물론 깊이 몰두해 왔던 끝이라
곧 ‘아! 내가 놓쳤구나.’하고 깨닫기는 합니다.
생활이 참선이 된다는 것이 이렇듯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안 되는 것이 쌓여질 때 비로소 되는 것이지
않는 것 없이 순조롭게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자전거를 배울 때도 어떻습니까?
단번에 잘 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처음에는 자꾸 넘어집니다.
그러면서 무릎도 깨고 핸들도 부러뜨리며 배우는 그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만약 이렇게 안 된다고 해서 중간에 집어 던지고 포기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자전거를 못 타겠지요.
그러나 그 안 되는 과정을 자꾸 반복해서 노력하다 보면
나중에는 결국 잘 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 되는 과정 과정이 거듭 쌓일 때 결국에는 되는 것이니,
사실 안 되는 것이 곧 되는 것이라 하겠지요.
참선수행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항상 근본을 집중해서 생각을 한다 해도
하루 24시간은커녕 몇 분도 제대로 안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게 아무리 애를 써도 잘 안 되는 것이 하루 이틀 하면 좀 달라집니다.
사흘 하면 좀 다르고 나흘 하면 또 다르고 자꾸 할수록 달라지지요.
그렇게 꾸준히 노력하여 어느 정도 그 안 되는 것이 쌓여가게 되면
저절로 그 생각을 놓을 래야 놓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언젠가 만난 한 운전기사 분이
“운전하는 사람은 잠시라도 생각을 놓으면 사고를 일으키게 되는데
우리 같은 사람도 참선을 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묻더군요.
그래서 “아, 그렇다면 운전 기사일수록 더욱 참선을 해야 합니다.”고 대답했지요.
참선을 하게 되면 이 모든 육체가 눈이 됩니다.
참선을 안 하면 밖에서 일을 하면서도 집안 걱정이나 친구 생각 등이
죽 끓듯 생겨나지만 참선을 하게 되면 그 흩어진 생각이
하나로 집중되어서 동서남북이 다 마음의 눈에 비치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날 래야 일어날 수가 없는 이치입니다.
후에 그 운전기사 분이 참선공부를 하여
그런 경지를 스스로 경험하고 나서는
정말 사고도 없고 생활에 힘이 생긴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참선은 별스러운 게 아닙니다.
모든 생각을 집중하면 마음이 밝아오고 정신이 맑아져
매사에 판단도 빠르고 정확해집니다.
그러나 평소 우리 마음은 탐/진/치 삼독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모든 판단도 더디고 사고가 흐려져 있는 것이지요.
마음이 맑으면 마치 맑은 거울에 검은 것은 검게, 붉은 것은 붉게,
나타나는 그대로 순간순간 비춰보이듯이, 자신의 흐르는 생각과
바깥상황을 아무 구애 없이 정확하게 비춰줍니다.
거울이 물건을 비출 때 이리저리 생각해서 비추는 것은 아닙니다.
정신의 힘이 크다는 것도 이런데 있습니다.
이렇게 참선을 해서 집중하게 되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흐린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밝은 생각이 뒤통수도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참선이지요.
참선을 늘 하여 익숙해지면 자연히 화두에 생각을 집중하게 됩니다.
참선하기 전에는 누기 화를 좀 돋구면 금방 독사같이 파르르 해가지고
그저 너 한 주먹 나 한 주먹 식으로 대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루 24시간 내내 일상생활을 그대로 참선하는 노력으로 채운다면
화살을 막는 방패처럼 여러 갈래로 흩어진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마음의 빛과 여유가 생깁니다.
화를 돋구어도 웃을 수 있고 급할 때도 고요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참선하는 마음이지요.
참선이란 그만큼 우리 실생활에 이익이 되는 것이지
현실을 여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너무 복잡하게 매일 바깥으로 달리니까
신경쇠약에 걸리고 노이로제로 괴로워하며 온갖 청량제를 먹고
약을 먹기를 반복합니다.
또 밤에 잠을 잘 때 보면 어떤가요.
그 짧은 시간에 온갖 생각에 사방으로 흩어져 별별 꿈을 다 꿉니다.
그렇게 한참 꿈을 꾸고 일어나면 몸이 찌뿌둥하지요.
잠을 많이 잔다고 해도 어지럽고 뭔가 기분이 상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상생활 속에서 참선을 하게 되면 모든 마음이
하나로 집중되어서 잠깐 앉아서 졸아도 머릿속이 시원합니다.
이렇게 머리가 항상 상쾌하면 모든 산란심이 가라앉아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세상 어떠한 물건도 한 자리에 동시에 놓을 수 없습니다.
한쪽으로 밀어붙여 놓고 자리를 비워야 그 자리에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이치로 화두를 하나 점령해 놓으면 어디에든 망상이
침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화두라는 것이 마음의 광명이지요.
참선이 익숙해지면 생각이 화두 하나로 모아지기 때문에
마음이 밝고 늘 한가합니다.
참선의 이치는 생활의 순간순간이 바로 그렇게 밝고 시원하게
진행되는 데 있습니다.
이 이치를 알아 우리의 생활이 그대로 참선이 되도록 합시다.
출처: 영주암 시민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