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투혼의 역사가 깃든 옛 대전형무소
2022.6.12(일) 국립대전현충원 참배후 12:00 인근 방일해장국에서 점심식사후
두번째 역사탐방 일정으로 대전광역시 중구 목중로 34에 위치하고 있는 옛 대전형무소를 찾는다.
이곳은 대전출입국사무소와 선병원, 그리고 중촌동 상점가로 둘러쌓인 곳이라 찾기가 쉽지 않다.
옛 대전형무소는 ‘옛 대전형무소 관광자원화 조성공사’를 통해
"대전형무소 기념 평화의 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난 장소로
일제강점기때 항일독립투사들이 옥고를 치른 곳이다.
1919년 대전감옥으로 개소했고, 1923년 대전형무소로, 1961년 대전교도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84년 유성구 대정동으로 이전하면서 대부분 철거가 되었고,
1987년 아파트가 들어오면서 지금은 우물 1기와 망루 1기만 남아있다.
대전형무소는 지역사적 의미 외에도 도산 안창호 선생과 몽양 여운형 선생 등
한국독립운동사의 거목들이 거쳐 간 곳이라는 점,
광복 후에는 이응노·윤이상·신영복 선생 등 민주화운동 관련 인사가 수형됐던 곳이라는 점에서 가치와 의미를 갖는다.
옛 대전형무소에는 우물이 4개가 있었는데 유일하게 남아있는 하나로
옛 대전형무소 우물은 3·1운동으로 소위 정치범 수용자 수가 폭증하면서
1919년 5월 대전 중촌동에 설치된 대전감옥소(1923년 대전형무소로 개칭)의 취사장 우물로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해 이곳에 수감되어 있던 민간인 다수의 171구의 시신이 수장된 곳으로 알려졌다.
옛 대전형무소 터 반공애국지사영령추모탑
한밭 넓은 벌 이 자리는 1950년 9월 공산 괴뢰의 만행으로 처참하게 학살당한
반공 애국동포 2857위 가운데 1300위의 순절 영령이 원통하게 잠들어 있는 현장이다.
옛 대전형무소 터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 수호신 같은 평화의 왕버들 나무
이 왕버들 나무는 약 70여년 이상 되는 것으로 추정되며,
1984년 대전교도소가 유성구 대정동으로 이전하면서 교도소안 연못가에 있던 것을 옮겨 심었다고 한다.
신영복 선생의 옥중 서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하게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삼십 칠도의 열 덩어리로 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대전 감옥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
나의 사랑하는 아내 혜련!
내가 이 경우에 처한 것을 위하여 근심하지 말고 모든 것을 자연에 맡기고 집안일을 돌아보면
아이들을 교양하는데 수고하는 것으로 낙을 삼으시요.
당신이 만일 수심하는 빛을 띠우고 있으면 집안에 화기가 없어지고
따라서 아이들의 신체발육과 정신발달에 큰 영향을 줄 터이니
내게 관한 모든 것은 아주 없어진 양으로 일소하여 버리고
가정에 유쾌한 공기와 아이들의 활발한 기상을 만들기로 주의하시오.
중략
아내 혼자 다섯명의 아이를 키우고 고생하는 것에 대해 미안함과
특히 자식을 잘 키우기를 소망하는 아버지의 마음과
모든 사람을 대할 때 사랑이 제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일제강점기때의 대전형무소의 역사와 인물들과 사건의 기록
대전 중촌동 옛 대전형무소 망루
대전 문화재자료 47호로 지정되어 있눈 망루는 높이 약 7.85m이며 4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망루는 동서남북에 각각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1개의 망루만이 남아 있다.
망루 상단에는 철제난간을 설치해 사방을 감시하도록 하였다.
망루는 형무소 수감자를 감시하고 탈옥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과거에는 여러 개의 망루가 이곳에 있었지만 현재는 남쪽의 망루만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망루가 있는 곳에 계단이 있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면 옛 대전 형무소 부지를 밟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