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류시대의 개막
미개한 시절 우주에서 온 짱가가 지구를 지켜주던 때가 있었다. 이후 지구인은 과학기술의 눔부신 발전으로 마징가Z와 태권V를 비롯한 다종의 메카들을 연구개발해 스스로 지구를 지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들 로봇에도 기술의 제한이 따라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마징가의 예를 들자. 인간과 기계가 하나가 된다고는 하지만 로봇이 움직이기까진 인간이 생각하고 조종하는 시간의 갭이 있어 완벽한 싱크로라할 순 없었다. 또한 어떠한 충격에도 견딜 수 있는 특수 재질의〈초합금Z〉가 쓰인 곳도 국한적이라 제아무리 튼튼한 무쇠팔 무쇠다리라도 재질이 '쇠' 이다보니 부식의 위험이 따랐다. 악당이 이런 약점을 이용해 초강산성 부식액이라도 쓰는 날에는 마징가는 팔 다리를 접은 거북이와 같은 꼴이 된다. 이 얼마나 댄져러스한 일이 아닌가! 거기다 한 번 대파하면 재료비, 수리비 마련을 위해 연구소 임직원 일동이 구슬꿰기, 인형 눈달기 등 부업을 뗘야할 판이었으니 좀 더 미래 지향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결국 지구방위사령부에서 각국의 박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짜낸 것이 스피드와 싱크로율 100%를 자랑하는 최초의 파어풀 인간특공대, 바로 '피닉스 프로젝트'였다. 최고 책임자로 남궁박사를 지목해 그에게 모든 지휘와 권한을 맡겼고 남박사는 정예 5명을 엄선 색출, 독수리 5형제라는 걸쭈칸 팀을 창출해낸다.
"이세상 어디라도 악이 있는 곳이라면 소리없이 하얀 날개를 펼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건팀이념.
악의 무리와 싸우기 위해 날마다 개인 트레이닝과 주 1회 팀스피리트 (팀정신건강운동)를 통해 심신을 단련해왔다. 강인한 정신력과 용기로 무장한 회오리 바람, 회전 점프상승, 날쌘 번개킥 등 다양하고 현란한 테크닉을 구사, 라스트로 5명이 일심으로 뭉쳐 졸라 뜨건 불싸조가 되어 바람을 가르며 적괴수를 불싸질러 버린다. 이쯤되면 결과는 대성공, 부실한 로봇 단계를 넘어 초인간 시대를 연 것이다.
그렇게 지구에 독수리 파이터가 있는 한 태양은 어김없이 떳다.
"난 커서 독수리 5형제가 될테야..." 동네 애덜에게도 5형제의 인기는 짱이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그들에게도 언제까지나 태양이 비춰지진 않았다. 인간이라 나이를 먹게 됨에 따라 행동반경도 좁아지며 굼뜨게 되자 더이상 팀을 기대치 만큼 운영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짤렸다....
이후 수퍼맨, 후라쉬맨, 우트라맨, 등등 기라성같은 맨들이 출현하며 독수리 5형제는 제 1전선에서 물러서게 된다. 그들이 은퇴한 후, 바가지 디비쓰고 보자기 둘렀던 애덜이 이젠 후라쉬 들고 설치며 꿈이 후라쉬맨으로 바뀌었고 청년들은 앞다퉈 수퍼에 취직하려고 혈안이었다 (이때가 수퍼맨의 호황기). 한 때 지구방위에 청춘을 바쳤던 독수리 5형제! 그들은 지금 어디서 멀하고 있는가. 아무도 모른다.
오로지 초록빛 대지의 평화를 위한 일념으로 불새가 되어 졸라 뜨거워도 참고 싸워온 그들이었는데 지금은 세인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다.
오늘은 그 첫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독수리 5형제의 재조명과 일개시민으로 전락하기까지의 설움과 애환이 담긴 초울트라 비하인드 감덩 스토리를 펴볼까 한다.
독수리 5형제 그 후
피닉스 특공대는 악을 소탕하기위해 눔부신 하얀 날개를 쉴 새없이 파닥거려야만 했다. 매일저녁 5시 30분에 출근해 40분쯤이면 어김없이 악당이 일을 꾸며 출동해 싸우고 복귀하면 6시 퇴근. 최장 전투시간으로 한 번은 싸우다 싸우다 끝이나지 않아 6시되서 일단 퇴근하고 다음날 5시 30분부터 이어서 싸운적도 있다. 간만에 좀 쎈 괴수가 나온 모양이다.
이렇듯 하루도 안빼먹고 싸우느라 지쳐 피로가 축적되어 갔지만 남박사에겐 내색 한 번하지 않은 건 저변에 지구를 지키려는 원초적 인류 봉사애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일주일에 이틀은 쉬었지만 언제나 경계를 늦추지 않고 남박사의 호출에 대기상태였다.
필자는 당시 독수리 5형제였던 맴버를 찾아 험난한 여행과 수소문 끝에 간신히 전직 독수리 2호였던 혁을 만나는데 성공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옌날 기똥차게 머쪄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초췌하기 그지없는 그의 모습에서 세월의 무정함을 느꼈다. 처음엔 인터뷰를 완강히 거부했지만 거금 500원에 그를 꺾었다.
혁도 다른 멤버들과 소식이 끊긴지 오래전이라고 했다. 우린 신천에있는 기지촌에서 피쳐3000에 과일사라다를 시키고 과거의 화려했던 이야기 보따리를 시간가는 줄 모르게 하나쓱 두개쓱 풀어내렸는데 대충 혁의 심중을 필역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고아원에서 자란것도 서러운데 인상 드럽고 쌈 잘한단 이유로 남박사가 자신을 끌고가 지구를 지키라는 명분하에 졸라 부렸겠다. 둘째, 목숨바쳐 지구를 지키는데도 위험수당 하나 없으니 호주머니가 심심했겠지. 세째로 늙고 체력이 딸리니 널린게 젊은 넘들인데 자연 정리해고요, 거기다 헌신적인 공로에 돌아오는 건 헌신짝 버리듯 하는 세상 인심이니... 허~어...
그럼 그에 야그를 직접 들어보도록 하자.
"그땐 졸라 힘들었었죠. 하지만 맘 편히 쉴 수 없었던 건 지구의 미래가 우리손에 달렸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웠기 때문였죠.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그날의 피로는 "삐리리"로 푼다 곤 하지만 누적된 피로엔 장사가 없죠. 1호였던 건의 경우 쓰러 진 적도 있어요. 닝게루(링겔주사)꼽고 싸운 사람은 아마 세상에 그친구 밖에 없을걸요? 그리고 저는 밤에 자면서 헛소리를 많이 했죠. 한 번은 자다가 발딱 인나 케비넷 문을 열더니 느닷없이 그러더래요. "추이똥이닷!" 그러곤 다시 디비 자더래요. 나원 참~ 말 다했죠. 다른 친구들은 그나마 괜찮아 좀 어질어질한 정도였구요. 하이튼 데미지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어요.
지난일이니까 까노코 말하는데~ 막판에 우리 보약먹고 약기운에 싸웠어요. 씨바, 안그랬음 알렉터구 지랄이구 대박 깨졌쪼오~. 보약이 달리 비싼게 아니더만요.
사실 서럽고 아쉽기도 했어요... 우리들을 쉽게 잊은 사람들이... 늘~상 밥먹고 하는 일이라곤 허리꺾기, 목 따기, 관절 뽑기였기 때문에 따로 배워둔 기술도 없고 막상 짤리고 나니 할 일이 없는 겁니다. 그냥 연금 쪼금 나오는 걸루 술과 더불어 살아왔죠 머...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3호도 여자의 몸으로 고생이 보통이 아니었었지..."
독수리 2호의 이야기를 듣고있는 동안 나도 모르게 뻥튀기를 집은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일종의 배신이라 할 수 있는 것. 필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시간이 허락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싶었지만 그와의 대화는 그 정도로 마쳐야 했다. 자리를 일어나며 측은함에 그의 손에 1000원을 쥐어주었고 넙쭉 절하는 그를 뒤로하며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무릇 살면서 고마움의 대상은 많다. 그러나 우리는 그 대상에 대해 얼마나 감덩하고 가슴 깊이 감사해 하는가? 여유가 생겨도 뒤돌아보지 않는 것들이 많아진 지금이다. 한 번쯤 껍떼기 벗고 진실하게 반성의 시간을 가져볼 필요를 느낀다.
아는가! 어제 그대 뒷자리에서 등을 맞대며 술을 마신 이가 한 때 우리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던 주역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