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 저촉행위 한 '촉법소년'은 주로 '부모가 관리하라' 1호 처분 폭행 저지르면 20시간 수강명령 소년원 송치는 0.4%밖에 안돼
지난달 21일 집에 일부러 불을 질러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을 숨지게 한 이모(13)군 사건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패륜(悖倫) 사건이었다. 가족을 죽게 하고도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 이군을 보면서 사람들은 무너지는 가정, 점점 흉포해지는
청소년범죄의 한 극단을 목격하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이군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경찰은 이군을 검찰 대신
서울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했고, 가정법원은 판결에 앞서 이군을 소년분류심사원에 위탁했다. 경기 안양에 있는 소년분류심사원은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가정과 학교 환경 조사, 학교생활기록부, 심리·적성검사, 건강상태, 행동관찰 등을 종합 분석해
비행원인과 재비행 가능성 정도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도 지침을 마련하는 기관이다.
이군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이유는 이군이 촉법소년(觸法少年)이기 때문이다. 촉법소년은 형법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소년을 뜻한다. 일본이
2007년 소년법을 개정해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춘 데 이어 우리나라도 2008년에 소년법을 개정해 촉법소년의 나이를 만 12세
이상 14세 미만에서 10세 이상 14세 미만으로 낮췄다. 형법 제9조에 따라 촉법소년은 형사미성년자로서 소년형사사건이 아닌
'소년보호사건'으로 분류된다. 형사 처벌 대신 교정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촉법소년의 흉포한 범죄가 잇따르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어리다는 이유로 무조건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 것은 해법이 아니다"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촉법소년에 대한
보호·교정만을 고려해 피해자 및 피해자의 가족의 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잇따르고 있다.
▲ 그래픽= 오어진 기자 polpm@chosun.com
갈수록 늘고 흉포화되는 촉법소년 범죄
법원행정처가 발간하는 사법연감에 따르면 촉법소년 범죄는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보호처분을 받은 14세 미만의 소년범은 2006년 3175명, 2007년 4104명, 2008년
4486명에서 지난해에는 5299명으로 증가했다. 최근 3년간 서울 가정법원에 접수된 2만 7816건의 소년보호 사건 중 촉법소년
사건은 7897건으로 전체의 28.4%를 차지했다.
촉법소년의 범죄 중 강도, 강간, 방화, 상해 등 강력
범죄비율은 전체의 13.1%(검찰청 집계)에 이르는 등 범죄의 내용도 나날이 흉포화되고 있다. 지난 6월 15일 울산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 2명은 학교 내 옥상 앞 계단과 빈 교실 등에서 동급생인 장애 여학생을 성폭행했다. 울산교육청 관계자는
"두 남학생은 다른 학교로 전학 가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30일 경기도
안양에서는 중학교 1학년 A군(13)이 같은 학교 B군(13)을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학교는
학부모·경찰·교사로 구성된 자치위원회를 열어 A군에 대해 권고전학을 결정했고, A군은 현재 소년분류심사원에 머물며 법원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달 15일에는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C(12)군이 흉기로 동료 학생 D군을 수차례 찌르고 둔기로 때려 상처를 입혔다. C군은 경찰 조사에서 "D군
때문에 전학조치돼 화가 나서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시교육청 관계자에 따르면 C군은 현재 학교로부터 아직
전학 처리 등 처벌을 받지 않았으며 법원으로부터 보호관찰 2년 처분만을 받은 상태다. 보호관찰 처분을 받게 되면, 일상생활에는
전혀 지장 없이 1~2개월에 한 번씩 보호관찰관과 1~3시간의 상담을 하게 된다. 형사정책연구원 박경래 박사는 "촉법소년에
대해서도 범죄 형태의 경중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처벌 강도 낮고 집행기관은 예산 부족 호소
범
죄를 저지른 촉법소년은 소년법 32조에 따라 보호처분을 받게 된다. 보호처분에는 보호자 또는 보호자를 대신하여 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에게 위탁, 수강명령, 보호관찰, 소년보호시설 위탁, 소년원 송치가 있지만 대부분의 촉법소년은 보호자 등에게 위탁을 하는
1호 처분을 받고 있다. 1호 처분은 쉽게 말하면 '부모나 친지가 잘 관리하라'는 뜻이다. 최근 3년간 서울 가정법원에서
보호처분을 받은 촉법소년 중 1호 처분의 비율은 51.8%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소년원으로 송치되는 9호 처분(6개월 이내)과
10호 처분(12세 이상 2년 이내)을 받은 촉법소년의 비율은 0.4%에 불과했다.
서울 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수차례 범행을 저질렀거나 중한 범죄를 저지른 촉법소년에 한해서 보호관찰이나 소년원 송치를 결정한다"며 "나이만 보고 처분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보호관찰소 관계자는 "보호관찰을 받는 인원 중 촉법소년의 비율은 수치화하기 힘들
정도로 적다"며 "판사들이 나이가 어린 소년범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유(柔)한 판결을 내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폭
행 사건을 저지른 촉법소년 중 상당수는 20시간 동안 강의를 듣는 수강명령 처분을 받는다. 20시간의 강의는 매주 2회씩 약 한 달
동안 진행된다. 소년법 체계에 대한 강의(2시간), 자기 이해 시간(6시간), 풍선을 터뜨리는 등의 분노조절 시간(3~4시간),
피해자에게 사과편지를 쓰는 등의 피해자 공감 시간(4~6시간)을 거친 후 진로를 상담하고 스스로 다짐을 하는 것으로 수강명령은
종료된다. 촉법소년 10명을 한 조(組)로 구성해 2명의 상담전문가가 지도한다. 3차례 이상 강의에 결석할 경우 유급돼 다음에
시작되는 조와 함께 교육을 받고, 결석이 잦을 경우 가정법원에 처분변경 신청을 한다. 서울 가정법원 산하의 한 수강명령 집행기관
관계자는 "20시간 교육이 턱없이 부족한 촉법소년도 있다"고 말했다.
소년 보호의 '질'적인 면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예산 부족 때문이다. 수강명령을 집행하는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은 올해 초 서울가정법원에 "장소가 협소해 가정법원에서 보내는 소년범을 모두 받을 수는 없다"고 공식통보했다.
보
호관찰관의 인력 부족으로 심도 있는 관리가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한나라당 이은재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보호관찰관 1인당 관찰대상자 수는 지난해 223명. 2007년 180명, 2008년 202명에서 더 늘어난 수치다. 선진국의
보호관찰관 1인당 관찰대상자 수는 영국 23명, 호주 53명, 미국 75명, 일본 70명이다.
선진국은 소년범 처벌 강화 추세
소년범을 처벌할 것이냐, 교화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는 법조계의 오랜 논란. 성신여대
조준현 교수는 "계몽주의·엄벌주의에 입각,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처벌을 해야 한다는 고전학파와 인도주의에 따라 범죄를 저지른
환경과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교정·교화를 선행해야 한다는 근대학파가 맞선다"고 말했다. 고전학파는 '피해를 준 자는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인 반면 근대학파는 '어린 나이에 미숙한 판단을 내린 것을 두고 낙인을 찍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는 입장인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최근 죄질이 나쁜 소년범에 대해서는 처벌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형사정책연구원
김한균 박사는 "선진국에서는 나이가 아닌 범죄의 경중(輕重)에 따라 처벌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범죄가 중한 경우
소년범은 형사지방법원이나 일반치안판사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다. 중한 범죄를 범한 소년범에 대해서는 성인범의 형기에 상응하는 기간
동안 구금할 수 있다. 10세 이상 18세 미만의 소년범에 대한 법정최고형은 무기구금처분(detention for life)이다.
김
박사는 "미국은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중범죄를 저지른 소년범죄자에 대한 처벌강화 현상이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독일에서도 소년범죄 증가에 따라 소년의 형사책임범위와 처벌 연령에 대한 조정논의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