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전설이 그쯤에서 종친 것에 아쉬움을 표한다. 장용이는'메디슨카운티의 다리'에 나오는 모모 여자가 아닌 만큼 외도에 대한 면죄부를 만들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을 테지. 다같은 외도도 어떤 사람이 하면 순결한 사랑이어서 면죄부를 내리고, 다른 사람이 하면 추악한 외도라 쇠고랑을 채우고.
메디슨에 나오는 인물들이 외도를 했으니 쇠고랑을 채우라는 뜻은 아니니 오해없길. 하지만 사랑이란 것이 그런 짧은 시간 안에 그렇게 느닷없이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사그라들 수 있다는 것이 보통의 경우에 정말 가능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더구나 그런 중년의 아자씨 아주마이들이. 하긴 보통의 경우가 아니니까 소설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얘기하고싶은 건 결국 현실에서 벌어진 사실보다는 허구적인 것이 훨씬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이고, 이왕 추병(秋病)과 관련해 시작한 이야기였던 만큼 상상력이 가미되더라도 좀더 오래 저자요의 능수능란한 말잔치를 들었으면 했던 게 나의 이기적인 바람이었다.
그리고 천연덕스런 비유와 걸쭉한 입담을 가진 저자요 같은 인재가 소설가가 되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표하는 게 반드시 직업병 탓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옆구리 긁어 글쓰게 만드는 것이 편집쟁이의 직업병이긴 하지만 아무나 그렇게 하진 않는다. 이 바닥에 되도 않는 재능으로 세월 잘못 만난 탓만 하고 사는 어줍잖은 글쟁이가 얼마나 많은지 넌 모를 거다.
중언부언하다보니 이야기가 자꾸 샛길로 빠지고 말았다.
아무튼 오줌 누고 거시기 털 시간도 없는 바쁜 와중에 추병을 앓는 벗들을 위해 써준 글 재미있게 읽었다. 사변잡기의 야담이 가공되면 소설이 된다는 걸 늘 염두에 두고 시간나면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비오는 날 우산속의 남녀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역시 직업을 속일 수는 없나보다. ㅎㅎㅎ
그리고 필시 나라면 년, 놈, 연놈으로 표기했을 텐데 넌 역시 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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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그대로 사변잡기의 야담을 연애소설로 결부시켜 출판 어쩌구 저쩌구 하는 걸 보니 동주 너도 직업병에 걸린게 틀림없구나!
동주야 너의 '짱' 이란 단어가 맘에 들어 그 이후의 야그를 들려주마. 사실 별 내용도 없다.
그리고 참고로 밝혀두건대 이런 야그는 결코 돈 안된다
쇠주 한 잔 하면서 느그들 앞에서나 할 얘기다. 기냥 재미로 들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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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떠난 후 오래지 않아 나도 9번 버스를 탔단다. 이 버스는 여의도를 반바퀴 돌아 서강대교를 건너고 당산을 거쳐 우리집 앞에까지 직접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지. 나의 근무처가 굿모닝빌딩으로 일시 옮겨간 이후론 출퇴근시 큰 차를 이용하는 색다른 즐거움에 빠져있는 터였단다. 집에서 여의도까지 15분이면 닿는 이 거리가 아침이면 극심한 정체와 함께 1시간씩 걸리기도 하지. 물론 만원버스의 한 일원이 된 채로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버스를 타는 데에는 짜증만큼이나 흥미로움도 만끽할 수 있다는 데 그 이유가 있단다. 그 중 으뜸은 차창밖으로 바라보는 다른 차의 살풍경이라고나 할까! 나도 승용차를 손수 가지고 다닐 적엔 운전중 나의 버릇이나 행동에 별 신경을 안 썼어. 더우기 한평 남짓한 그 작고 독립된 공간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지.
운전하면서 입을 찢어버릴 듯 하품하는 ♂♀, 손가락과 콧구멍 싸이즈 대보는 ♂♀, 머리털 다리는 ♂♀, 담배연기 빡빡 피워 대는 ♂♀, 아침부터 핸펀으로 간밤을 생중계하는 ♂♀ 등은 기본이고, 면도하는 ♂, 화장고치는 ♀, 코털뽑는 ♂, 뾰로지 터트리는♂ ♀, ♀손목이 변속기인♂ , ♂허벅지가 안전벨트인♀, 신문보는 ♂, 도시락 까먹는 ♂옆에서 과일깍는 ♀, 의자 쭉빼고 반쯤 누워 발로 운전하는 ♂, 이어폰 끼고 흥얼거리는 ♀, 창 활짝 열어놓고 주둥질 하는 ♂♀, 운전하고 있는♂ 안마해 주는 ♀(이발소 출신인듯함), 기타 등등 천태만상이라.........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인상깊게 본 것은 운전대에 손올려 놓고 주행중에 능숙하게 뜨게질 하던 젊고 예쁘게 생긴 그 어느 ♀ 이었다. 아무튼 버스이야기만 가지고도 난 수일 밤을 까발릴 수 있다만 야그가 잠시 삼천포로 빠졌으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자)
버스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어두운 차장에 비치는 내 얼굴을 보았단다. 30대 중반으로 보기엔 너무나도 억울한 그 넘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지. 이 찬바람머리 쓸쓸한 계절에 새삼 나의 존재를 묻지 않을 수가 없더구다. 뒤돌아 볼 틈도 없이 오직 앞만 보고 바둥거리고 살아온 인생이었고, 그러면서도 결국 고단한 길을 재촉해야만 하는 창밖의 남자가 바로 나이더군.
'아, 운명도 허락해 준 거? 내가 감당해 낼 만큼의 작은 반란만 허용해 버릴까?'
'이 직선으로만 뻗은 무료하고 고단한 인생길에 그냥 갓길 혹은 에움길 정도로 짱박아 둬 버릴까?'
뭐 이런 생각도 사실 해보았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시든 나뭇잎처럼 온 몸의 기력이 '우수수'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후달리고 있는 모습에 스스로가 기가 차기도 했단다.
온종일 회사일에 시달리고, 끝나고 나서는 오랑캐말에 맛이 가고, 퇴근길엔 난 데없는 햇부르동에 완존히 가버린 이 불쌍한 즘생의 맨 낯이 차창에 붙박힌 채로 채찍비를 맞고 있었던거지.
다음날도 비는 계속 되었어. 밤새 뒤척이며 마음을 다잡은 나는 평상시대로 그녀가 있는 저녁이 아닌 점심타임을 들으러 갔구. 그녀를 보지 않는 것이 적어도 과거의 여자를 내 잠자리까지 데리고 오지 않는 길이라 믿었기에. (그리고 달랑 시간을 바꿔버리는 것도 좀 그렇찮아 나도 존심이 있는 넘인데!)
아무것도 진행된 것은 없지만 그냥 이 쯤에서 끝내는 것이 건강에 좋을 듯하여 어금니에 힘을 주고 택한 장엄한 결심이었지. 그러나 앞에서도 얘기했다만 단순무지한 나의 오판은 두번째로 그녀와 맞닥뜨리는 계기만 초래하고 말았어. 그것도 때마침 패티김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이 낮게 흐르던 어학원 복도에서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말이야. 가슴속 숨어 있던 風浪이 또다시 四肢를 뒤틀고 일어났지.
"어머, 안녕하세요?"
"아, 네에 ^^^^"
"저도 당분간 점심타임을 들으려구요. 오늘부터 저녁때 일찍 가봐야 할 일이 생겨서요"
묻지도 않은 답변을 해주는 걸 보니 그녀도 느닷없는 자신의 점심수강에 대해 뭔가 내게 고지해 주어야 할 미완의 구석이 있었나봐.
그녀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랴. 나는 다잡은 맘을 끝내 놓치지 않기 위해 엘레베이터 층표시등만 멀뚱히 바라보며 내려왔어.
자연히 그녀와 난 다시 나란히 서게 되었구 어제와 달라진 건 오늘은 내가 그녀의 머리 위에 우산을 올려 놔 줄 수 없다는 사실이었어. 그녀의 우산은 완전자동 완터치식이더군!
"그런데 어디 근무하세요 회사가 요 근처인가 봐요?"
"네어 저기, 은행에....." 차마 회사명까진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단다.
"어쩐지이.... 어, 근데 이렇게 낮에 나올 수도 있어요?"
도대체 뭐가 어쩐지란 말인가, 내 이마에 은행원이라고 써붙여 놓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면 내 차림새를 보고 전형적인 셀러리 맨의 대표격인 은행원 혹은 증권맨으로 낙점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녀도 혹시 어젯밤 나를 떠올리며 나름대로 내 실체에 대해 생각을 해
본건가?.....???
그 짧은 시간 각양각색의 생각들이 뇌하수체전엽을 흔들어 놓고 있었어
"저는 본점직원이라 고객하곤 별반 상관없거든요%$#^^%$%^"
"네에. 저는 요 앞 **빌딩에 있는 ***$%#$에 다녀요"
"거기가 뭐 하는 곳인데요?"
"그냥 무역 회사인데 전 사장 비서예요. 영어는 전공으로 했는데도 회화가 잘 안되서 금년말까지 사장님이 특별배려로 %$#*&^^%%$$......."
필요이상으로 많은 정보를 알려 주는 그녀가 전혀 얕잡아 보이지 않는 것은 당당하고 자신감있는 의사표현과 그 목소리의 청료함 때문인지도 몰랐어.
"제가 아는 선배가 있는데 넘 닮으셨어요! 물론 결혼은 하셨지요?"
"그럼요 애가 둘인 걸요. 딱 그렇게 보이죠?"
"아뇨. 와, 결혼 되게 일찍 하셨나 봐요. 그 정도 까진 안 봤는데....."
"에이, 비겁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말씀해 주시죠. 제 친구들은 요새 만날 때마다 중년아저씨 다 되었다고 하는 걸요"
그러면서도 난 이 여자가 지금 날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비록 비는 오고 있지만 엄연한 백주대낮에 여태 통틀어야 스무마디도 안 한 사람끼리의 대화치곤 좀 오버하는 감도 없지 않았거든.
한편으론 이렇게 낯선 사람끼리도 그럭저럭 대화가 되는 세상의 한 가운데에 지금 내가 그 주인공으로 서 있다는 사실이 혼미스럽기도 했구.
그렇게 동양증권 건물앞에 다다랐을 때 갈림길이 나왔고 그녀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으로 가야했기에 우린 거기서 헤어졌단다.
난 어제 보단 맘이 좀 누그러지는 것 같아 안도의 한 숨을 쉬었지만 길 양쪽 벤치에 앉아 에피타이져를 즐기던 사람들의 눈초리가 마치 내게 쏠리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면서 잠시 혈관이 팽창해 옴을 느꼈어
어제 5분, 오늘 5분 고작 그 10분이 나와 그녀와의 전부였건만 아주 오래된 선후배지간이라도 되는 듯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했지.
그러나 이런 느낌은 왠지 한편으론 서운한 듯한 느낌이었단다.
그 이유는 '나도 이젠 맛이 많이 갔구나' 라는 생각때문이었어.
'예전 같았으면 내가 이런 千載一遇의 기회를 그냥 담담히 받아들이고만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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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할께 다 들 일이나 열심히 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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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이의 가을 동화 혹은 가을날의 전설이 단1회의 연재를 끝으로 사라진다면 문86 카페는 쇠락한 공동묘지처럼 을씨년스러운 찬바람만 쌩쌩 불 것이다. 다년간 출판사에서 이러저러한 연애소설을 대해봤지만 느낌 팍이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표현이란 걸 새삼 실감한 글이었다.
사실 그랬다. 장용이가 시간이 별로 없는 은행원만 아니라면 내년 은행나무의 주요 출간 계획에 장용이의 연애소설을 제일 목록으로 올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장용아, 넌 아무래도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 같다. 소설을 썼으면 최소한 100만 부는 보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팬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이 있으니 장용아, 부디 연재를 중단하지 말아다오. 다음 이야기가 무장무장 기다려지는구나.
빗방울이 촉촉하게 튀는 횡단보도를 건넌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여자의 자취에서 희미해져만 가던 옛사랑의 그림자를 떠올린 우리의 정장용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