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 입원기간 일주일과 1인 일반병실 트랜스 당일까지의 중간계산서를 확인한지가 정확히 삼일 전이었다. 보다 빠르다는 한방치료차 타병원 후송을 의뢰하고 가퇴원을 결정, 퇴원비를 계산하려던 내 시야에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띄었다. 환자는 주말 이틀동안 콧속으로 미음만 넣지 않았던가. 삼일 전의 중간계산서와 120만원의 갭이 있었고, 1인실 하루 병실료를 십오만원씩 삼일만 따지더라도 무언가 문제가 있어 보였다. 요양급여측에 게재되었던 산출액이 비급여 쪽으로 왕창 몰려있더니 본인부담금에 한꺼번에 누산되어 있었다. 맞지도 않고 먹지도 않은 주사료와 조제약 처방 목록이 시야를 아리송하게 자극해 오는 것이었다.
의사, 약사들은 모두 도둑놈이요,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앉아 돈을 잃어버리게 되는 곳이 바로 병원이라던 엊그제 퇴원수속을 마쳤던 옆방의 보호자가 상기되었다. 정확히 어느 부분 어디쯤에서 잃어버렸는지도 알 수 없으며, 알았다손 치더라도 따지려 드는 것은 나날이 미욱해지는 환자의 존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꿰어다 맞춘듯한 숫자놀음은 너무 지나친 처사가 아니던가.
입퇴원계로 가서 계산서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의뢰를 하자 담당과장이 나타날때까지 기다리라며 점심시간이라는 팻말을 들이밀었다. 병원측에서 가장 달가워하지 않는 인간형이 있다면 퇴원시 입원비의 컴플레인을 호소하는 보호자이며, 의료비를 납부하지 않고 이스케이프한 환자들이란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의뢰하는 순간 설명한들 알아듣겠느냐는 식의 원무과 직원의 태도가 더욱 내 심기를 자극했던 것이다. 모든 환자나 보호자들을 그저 일자무식의 봉으로 다루는듯한 병원측의 행태에 그 옛날 동료들과 함께 했던 치기가 다시 상기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병동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간병인을 의뢰중이었으며, 어렵게 시간맞춘 보호자측의 면담이 의사진료 마감시간이라는 이유로 수차례 거절되어 오고 있어 매우 불편했던 심기였다. 간호과 측에 어렵게 넣은 면담전달이 촉박한 점심시간과 맞닥들여졌고, 병동의 기다림을 무시한 채 토요 외래진료를 마친 의사는 정확히 12시를 맞춰 일어서 버렸었다. 밥을 먹지 못하고 기다린 보호자측의 의뢰를 무시한 채 밥을 먹으러 일어서 버리는 의료인들에게 의료인으로써의 기본적 소양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던 터였다. 별도의 면담시간을 요청한 것도 아니지 않던가.
▲의사는 환자가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와 담당 의사의 진료방법에 대하여 알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한다...<<의사 윤리 선언 ...장 ...절>>
보험숫가를 담당한다던 여과장과의 면담이 이루어졌고 현저하게 차이가 나있는 계산서를 재물대에 올렸다. 처방전에 따른 시술제가 의료보험 혜택의 범주에 벗어나는 종류이며, 중간계산서는 말 그대로 어느 싯점까지의 대략적인 계산이므로 그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답변과 함께 정퇴원의 계산서에 촛점을 맞추며 보호자측의 컴플레인에 매우 의아해하고 있었다.
보호자측에서의 중간계산서란 의미는 환자가 퇴원할당시 대략적인 퇴원비를 준비하려는 차원이 아니던가. 병원측에 그저 일거리 하나 제공하는 차원의 의뢰가 아니므로 처방받지도 않은 채 이틀만에 뒤바뀌어진 요양급여와 비급여측의 의료숫가에 보다 명확한 납득이 갈만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다시 간호스테이션으로 전화가 돌려졌고 유선을 통한 간호과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챠트를 살펴보겠다는 메시지를 남긴 몇분 경과 후 보험 숫가 담당과장으로부터 사전에 보호자측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부족했던 점이 사과되어지며 병원측의 미스를 인정,60만원을 절감시킬 수 있었다. 의무기록과 측의 처방제 상병코드의 문제였다.
▲의사는 환자의 질병상태와 예후, 수행하려는 시술의 효과와 위험성, 진료비 등에 대하여 환자나 보호자에게 신중,정확,친절하게 알림으로써 환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환자의 적극적인 역할을 제고하여야 한다.. <<의사윤리 선언 ..장...절>>
물론 의사나 간호사 보기를 돌멩이처럼 여기는 내게도 문제가 있기는 했다. 과거 이 병원의 통계 행정실에서 7년이란 불꽃튀는 시간을 지녔던 적이 있는 내겐 의사의 윤리강령이니 사랑과 봉사정신에 입각한 간호인의 투철한 의식 따위는 더이상 신선하지 않은 것이다.
어느 집단이나 마찬가지겠으나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집단의 블랙라인 만큼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노조회가 비밀리에 발단되어질 당시 재단이사장 이xx의 생일이 다가왔고 매년 그랬듯이 뷔페로 탈바꿈된 1층의 로비에서 "우리는 가족"이라는 구호로 만세삼창을 외쳤었다. 독신녀 이녀의 사촌이자 역시 독신남인 행정원장 이xx이 간호과와 행정업무측과의 리바이벌되는 회식을 강행했던 즈음이었는데 결속력있는 체제를 위해 여간 애를 쓰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만세삼창을 외친 그 이틀 후 노조결성으로 동분서주하던 혈우들이 하루아침에 양평과 철원쪽으로 발령이 나버렸고, 많은 이들이 어쩔 수 없이 유배의 쓴 잔을 마시기도 했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스스로 사퇴를 하기에 이르렀었다. 반 강제적 처사였던 것이었다.
외래의 간호조무사들은 군대의 서열과 흡사하게 간호사들에게 예를 갖추어야 했고, 캡을 쓰느냐 쓰지 않느냐로 마찰을 빚기도 했다. 간호사측은 다른 문양의 캡을 쓰겠다는 간호조무사측의 제안를 묵살한 채 절대 캡을 씌울수 없다는 결론을 단호히 내렸고 십자가를 지었던 독신녀이자 노조위원 주임 간호조무사는 스스로 약을 먹어 그 투철의식을 항변하게 되었다. 조무사들의 거세에도 불구하고 병원측의 불협조로 그녀의 장례는 병원측에서 행하지 못하고 쫓겨나게 되었었다. 대대적인 외래의 로테이션이 감행되었고 또 반 강제적 처사에 따른 실직자가 하루아침에 발생되게 되었다.
백의의 천사 병동의 나이팅게일들의 뒷면은 또한 어떠했던가. 병원내 금연이라던 규율을 어긴 채 그들의 당직 숙소에는 담뱃재가 그득한 재떨이가 수북했으며, 의대출신과 간호대 출신과의 서열 문제로 늘 아웅다웅 다투기가 일수였으며, 그러다 한쪽이라도 폭력을 당하기라도 하면 입원환자들의 불편은 차후문제로 술렁거려지며 외래 조무사들이 급히 충원되곤 했었다.
퇴사 후 여간해서는 찾지 않던 이 병원을 피검자의 입장이 되어 꼭 찾아야만 했을때 3층 임상병리실의 창구에는 낯익은 얼굴이 앉아있었다. 영양사 보조였던 아무개였다. 한달 전 심전도실에서 로테이션되어 왔다며 주사기를 갖고 와 내 팔뚝에서 채혈을 했다. 아찔하기까지 했던 순간이었다. 처방된 접수증을 갖고 방사선과를 찾았을 땐 거구의 경비 아무개씨가 흰가운을 입고 있었다. 유도와 태권도 합이 상당한 수준이라던 그가 숨을 멎고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을 했다. 할만 하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이 흰 가운을 입으니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자신을 불러주어 기분은 좋다고 말했던 기억이다.
높은 수준의 윤리적인 의술을 펼치며 지역사회, 국가, 인류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생명 보전, 건강 증진,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으로 바람직한 사회복지제도의 확립에 앞장서겠다는 지침은 더이상 없어 보였다. 그저 환자의 질병을 담보로 한 저임금 체제를 위한 얄팍한 병원측의 상술이 돈벌이에만 급급한 채 여전히 혈안되어 진행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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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다른 곳은 어떠한가?
인천지방 최대의 의료시설이라는 이곳을 벗어나 대한민국 최대라는 서울대병원에서의 기억을 문득 떠올리며 대한민국 소아외과 의료진 기술의 1위라던 머리가 희끗희끗한 고령의 아무개 교수를 생각해본다.
▲의사는 환자를 질병의 예방,진료,재활과 의학연구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인격을 가진 존엄한 존재로 대하며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이루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의사윤리 선언 ..장....절>>
소아외과적 문제를 안고 있는 환자들은 대부분이 신체 내부의 장기적 문제이며 장기의 문제는 아이의 식욕과 영양상태까지 관할되므로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소아를 거느린 부모의 입장에선 매우 치명적인 문제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금지옥엽 애지중지하는 아이의 배를 절개해 장을 뒤적거려도 좋다는 수술청약서에 사인을 하기까지의 그 부모의 심기는 생지옥과 다름없는 것이므로 의사는 환자의 시술에 앞서 보호자측의 심리도 사랑과 이해로써 돌보아야 명의다운 명의란 생각이다.
그러나 이이는 소아영역의 특성상 필요한 심리술은 철저히 배격시킨 채 오직 자신의 외과적 의료기술의 명예와 자부심에만 급급해 보이는 자였다. 주중 2번, 오전의 단 30분간의 외래진료의 스케줄을 지닌 이이에게 시간을 맞추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하고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그 기세를 더해주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진료마감 시간을 앞세워 돌아서는 그를 붙잡아세우다 보면 분한 마음에 눈물 한번 흘려보지 않은 엄마들이 없을 정도로 그의 텃세라면 텃세인 자부심은 대단했었다. 고스란히 예약 진료비만 날린 채 대기실에서 울고 앉아있는 광경을 목격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당신들 아이들 몸을 열어 정상적 사회활동을 돕는 사람이지, 내가 당신들 시간에 맞추어 당신들을 기다리는 신이 아니잖소!"
▲의사는 그러한 숭고하고 명예로운 사명을 인류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았음을 명심하여 모든 의학 지식과 기술을 오직 인류와 국민의 복리 증진을 위하여 사용한다...<<의사 윤리 선언 ..장 ..절>>
무언가 자신의 뒷스케줄이 꼬여보이던 어느 날 충주에서 서둘러 올라온 어느 보호자가 바람처럼 휑하니 시간 맞추어 일어서는 이이에게 항변하자 소란이 피워지며 그가 내뱉은 말이다. 이 교수가 병동에 회진 차 나타나기라도 할 시엔 병동이 초비상 사태로 돌입되어지며, 모든 의료진들과 보호자들이 바짝 긴장을 했어야만 했다. 아이가 무엇이 어땠었느냐고 질문할 시 대답을 얼버무리거나 얼쩡거리기라도 할 양이면 불호령같은 호통이 폭풍처럼 쏟아져 눈물을 흘리게 되는 연약한 보호자들이 수없이 많았었다. 강자와 약자의 아수라장 속에서도 생명은 존엄하고 위대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레지던트의 처방대로 아이에게 행하는 순간이 목격당하면 교수는 그자리서 보호자를 어린 아이 다루듯 호통을 쳐댔고, 레지던트의 처방에 따른 것이라 고하노라면 보호자 앞에서 레지던트에게 쌍욕을 해대기가 일수였다. 교수가 떠나고 나면 그 레지던트는 병실로 되돌아와 다시 또 보호자를 일자무식의 하수인으로 다루듯 했으나 보호자측의 입장에서는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의 연속을 토로하기 보다는 오직 아이의 회복에 따른 일념으로만 그저 묵묵히 덮어두었어야만 했다.
물론 그들 인턴이나 레지던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그같은 학식의 고통이 수반되는 수습기간을 거쳐 명의가 되고 명예를 얻게 되는 것이 분명하겠으나 그런 파장은 가뜩이나 몸살을 앓고 있는 보호자들 가슴에 이중의 칼날을 들이대는 행위나 마찬가지이므로 의사의 본분이기 전에 말없는 폭력배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들이 다녀가고 나면 회진의 기운은 늘상 폭탄이 투하된 서늘함을 드리웠고 그런 미잔한 슬픔은 늘 병실의 스산함과 함께 했었다.
▲의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최고의 의학실력과 윤리수준으로 의술을 행함으로써 의사로서의 품위와 명예를 지킨다....<<의사윤리선언 ..장...절>>
우리 동네 조그마한 개인병원의 함소아과 원장을 떠올려 본다. 대체적으로 어른을 상대하게 되는 내과나 신경외과, 정형외과등의 경우는 다르겠지만 유소아들을 상대하게 되는 소아과 내에서의 이같은 상황은 매우 흔한 편이다.
함소아과 원장의 경우에도 모든 엄마들에게 존댓말이란 없으며 모두가 손아랫 사람처럼 말하려 들어서 엄마들의 컴플레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그 의료기술의 노하우가 독특해 멀리서도 환자들이 몰리는 추세이며 금번에 병원을 확장 이주한 상태이다. 이이의 약처방에는 이틀분이란 거의 없는 편이다. 주말의 경우에도 야간진료에 따른 진료비의 숫가가 병원의 높이를 더해 주고 있는 형편이다.
"엄마! 여기가 약국인줄 알어? 엄마는 왜 올때마다 그래?"
"내가 어떻게 니 엄마냐!!"
언젠가 직장 업무로 바쁘게 외출한 보호자가 이틀분의 약처방을 원하자 대뜸 짜증나는 말투로 함원장이 내뱉은 말에 황당함에 참다못한 여자는 맞불로 화를 냈고 나는 그 광경을 목격하면서 매우 유쾌하고 흔쾌한 대리만족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의사는 환자와 국민을 수동적인 의료수혜자가 아니라 국민건강권과 의사의 진료권 확보 등 의료환경의 개선을 향하여 함께 노력하는 동반자로 인정하며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으뜸으로 여겨 진료 등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의사윤리 선언 ..장...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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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속계에 앉아 지난 날의 잠시의 상념에 이같은 도리질을 하고 있을 때 띵동 벨이 울리며 호출하고 있었다. 문득 돌아본 왼편의 외래에 그득 앉아 있는 환자들이 난민촌의 이주민들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내 동공을 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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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선 이 땅에 어이해 돈과 질병, 이같은 공존의 그늘을 함께 드리우셨는가. 시트에 덮혀 울부짖는 보호자들 사이로 빠져나가는 영체 위로 전지전능하신 신의 위엄보다는 없는 자의 통한이 서슬퍼렇게 앉아있음을 며칠 전 밤 보았다. 수술비 마련이 힘들어 2차 수술이 어렵다고 울먹이던 중환자가족 대기실의 그 여자도 결국은 침상의 뒤를 좇다 실신하듯 쓰러졌었다.
구석진 곳, 면회시간에 때맞추어 아무도 찾지 않던 고령의 할머니는 처치곤란의 입장이 되어 간호사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고, 애타게 간호사를 향해 손짓하는 통에 그 부름을 대신 전달해 주자 늘상 그러니 그대로 내버려 두라는 차가운 대답과 함께 녹색가운이 할머니 뺨의 멍자욱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떠먹여 주어야만 먹을 수 있는 밥그릇을 눈앞에 두고 할머니는 어서 떠먹여 달라고 애원한 것인지, 치워달라고 말하려 했던 것인지 그 아무도 귀기울여 알려하지 않았다. 멀뚱멀뚱 곁에선 내 눈빛으로 할머니의 눈에 그렁한 눈물이 보였다. 할머니가 소리내어 무언가 중얼거리며 몸을 틀자, 몰핀 라인에 피가 올랐고 간호사가 달려와 대뜸 할머니를 야단치며 억세게 바로 잡았다. 할머니는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뼈만 남은 동물같았다.
꺼져가는 생명을 바로 세워준다는 것. 절대적 봉사정신과 투철한 희생정신이 수반되는 시간들 속에서 인간을 위한 생명의 구제와 더이상 갈 곳 없는 동물 수용의 갈림길들이 중엄한 불빛과 함께 혈투를 벌이던 며칠간이었다.
투병을 함께 하는 영혼들의 추상적,현실적 고통이여...아듀....
녹십자고, 적십자고... 십자가가 매달려 있는 집들을 그토록 싫어하던 나도 어쩔수 없이 두 십자가에 매달려 기생해야만 했던 나약한 존재임을 절실히 깨닫던 시간이었다.
★의사는 국민의 건강을 위하여 최선의 의료환경 조성을 국가와 사회에 요구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의료행위에 대하여 국가와 사회로부터 정당하고 적절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의사윤리선언...장...절>>
이 땅의 모든 의료진들에게 의약분업 등에 따른 국가와 사회에 정당하고 적절한 대우를 요구하기 전 보다 헌신적인 자세에 입각된 인간존엄의 윤리강령을 요구해본다.
*^^* 그렇군요... 참으로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각오를 늘 하게 되지요. 병원측으로부터의 부당한 경험은 이미 익숙해서 항변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지요. 의사가 神의 자리인양 군림하던 시절도 있었으니... 마음도 몸도 건강하시기를... 조은 글 읽으며 한참 머물러 봅니다!
물론 다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저도 부당대우의 몇 기억에 머물러 보네요. 하지만 나도 아프면 어쩔수없이 그들에게 가야겠지요. 그래서 더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것 같아요. 건강이 재산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아프지 않는것이 돈버는 길이라던 할머니 말씀도.오랜만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이비님께서 이곳에 링크등록을 한번 하셨었죠? 우연히 클릭했다가 그곳이 님의 서재겸 홈이란걸 알았고 그곳의 한켠에 연약하게 웃고 있는 님의 사진을 보았습니다......그 후부터 팬이 됬죠..*^^* 그런데 저녁에 보니 링크등록이 삭제되었더군요....아쉬워라..ㅎㅎ 힘내시길..
첫댓글 너무 오랜만에 들어오니 못올 곳을 온것 같습니다...ㅎㅎ 틈틈히 노트북을 갖고 다니며 옮겨본건데..사정이 여유로워지면 자주 접속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모두들 건강하시고요..^^
*^^* 그렇군요... 참으로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각오를 늘 하게 되지요. 병원측으로부터의 부당한 경험은 이미 익숙해서 항변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지요. 의사가 神의 자리인양 군림하던 시절도 있었으니... 마음도 몸도 건강하시기를... 조은 글 읽으며 한참 머물러 봅니다!
의사나 간호인이기전에 그들도 사람이겠지요. 저희 할머니는 경희대 의료원에서 뇌경색의 치료를 받으셨었는데 한달만에 약 천만원 돈이 나왔더군요. 고스란히 달라는대로 모두 주긴 했지만 여간 억울한 것이 아니었어요.
물론 다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저도 부당대우의 몇 기억에 머물러 보네요. 하지만 나도 아프면 어쩔수없이 그들에게 가야겠지요. 그래서 더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것 같아요. 건강이 재산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아프지 않는것이 돈버는 길이라던 할머니 말씀도.오랜만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역쉬~~~~~~~~ 이 에너지............*^ ^*
어제 읽었지만 오늘서야 몇자 끄적여 봅니다. 그러셨었군요. 그래서 안보이셨군요....주위에서 보면 중환자실에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호전은 힘들던데.....이비님이 슬픔을 마중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시는 것이 아니기를 바래봅니다..........
아주 오래전 이비님께서 이곳에 링크등록을 한번 하셨었죠? 우연히 클릭했다가 그곳이 님의 서재겸 홈이란걸 알았고 그곳의 한켠에 연약하게 웃고 있는 님의 사진을 보았습니다......그 후부터 팬이 됬죠..*^^* 그런데 저녁에 보니 링크등록이 삭제되었더군요....아쉬워라..ㅎㅎ 힘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