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0828g | 임옥상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7_0830_수요일_05:00pm
입장료 / 성인 3,000원 / 소인 2,000원* 단체 20명 이상 20% 할인* 7세 이하, 64세 이상, 장애 3급이상 무료입장* 빌레스토랑 식사시 무료입장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센터Gana Art Center서울 종로구 평창30길 28(평창동 97번지)Tel. +82.(0)2.720.1020www.ganaart.com
임옥상, 흙으로 흙을 말하다. ● 임옥상은 민중미술 1세대 작가로 화단에 데뷔하여 지금까지 왕성하게 작업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작가이다. 대표적 민중미술가답게 문명비판적, 정치고발적, 사회참여적 작품으로 정평을 얻고 있는 그는 정통 유화물감을 비롯해 종이 쇠 흙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다매체 작가, 페인팅 조각 설치를 넘나드는 다장르 작가로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동시에 예술을 삶의 근저에 작동시키며 생활환경의 변화를 꾀하는 공공미술가,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질문을 던지며 집단참여와 대중소통을 도모하는 문화 액티비스트로서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임옥상의 이번 개인전 『바람 일다』展는 평면 작품이 주를 이루며 회화가 대표 장르였던 80년대 민중미술 전시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개별 작품들이 담보하는 정치적 내용과 리얼리즘 양식에서도 역사적 민중미술을 계승하는 듯하다. 그러나 다수의 신작을 발표하고 있는 이번 전시에서는 과거의 자신이나 기존의 민중미술과 차별화되는, 지금/여기의 임옥상을 직시케하는 현재성과 참신성이 감지되고 있다. 그러한 느낌은 시의적이고 동시대적인 화두를 다루는 주제의식, 재료발굴과 방법론적 실험에 의거하는 새로운 조형의지에서 비롯되는 듯 하다. 특히 이번 출품작들이 보여주듯이, 흙 재료에 대한 사유와 성찰, 이와 함께 본격화된 흙 작업이 눈길을 끈다. 이전에도 그는 땅을 주제로 흙을 매체로 다수의 작품을 제작해 왔지만 이번 흙 작업은 흙을 물질적 재료 이상의 개념적 매체로 파악하는 작가의 인식론적 태도에서 달라 보인다. "매체는 메시지"라는 마셜 맥루언의 경구를 환기시키듯, 그는 흙이라는 매체로 흙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예술 차원의 흙 작업을 선보이는 것이다.
흙은 땅을 만드는 물질적 요소이지만 물질성을 초월하는 우주적 상징성과 문명비판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만물이 흙에서 소생하고 흙으로 되돌아가듯이 흙은 우주의 순환적 원리를 암시하는 지구의 살이자 뼈로 은유될 수 있다. 동시에 흙은 현대 도시문명과 대비되는 농촌문화, 민족적 저항과 민중적 힘으로 표상되는 까닭에 민중미술을 비롯한 리얼리즘 계열의 미술가들은 물론, 인간의 존엄과 소외, 낭만적 사랑과 생명사상을 중시하는 계몽주의, 민족주의 문학가들의 영감을 자극하는 으뜸 소재로 꼽혀왔다. 예컨대 이광수의 「흙」, 박경리의 「토지」, 펄 벅의 「대지」는 모두 흙과 땅에 대한 집착과 사랑을 그리며 흙, 토지, 대지에 뿌리 내린 농민과 서민들의 강인한 삶,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불가항력적 역사의 질곡 속에 내던져진 그들의 개인적 운명을 서사화한다. ● 임옥상의 흙 작업에도 위의 문학작품과 같은 역사적, 민족적, 사회적, 개인적 내러티브가 내재해 있다. 그러나 최근 그의 흙 작업은 강한 신체적 암시를 풍기며 뇌지적인 문학과는 다른 미술 장르 특유의 시각적, 촉각적 특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논점은 그가 사용하는 흙이 작업용 점토가 아니라 정제되지 않은 생흙, 벌거숭이 같은 맨흙이라는 점에서 뒷받침된다. 맨흙을 사용하는 까닭에 그의 흙 그림, 특히 1층 전시장 벽면을 장식한 흙 초상화는 흙의 끈질긴 생명력을 의인화하듯 거칠고 억세고 강인해 보인다. 영국의 혁명적 사회주의 공예운동가 윌리엄 모리스, 미술을 사회와 결부시키며 서구 소비사회의 시각문화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영국의 미술비평가 존 버거 등, 자신이 존경하는 두 역사적 인물들을 그린 '오마주' 초상화는 물론, 세대와 나라는 달라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의식적, 사상적 절실함과 실천적 과제의 절박함으로 한국 군사독재정권에 통렬하게 맞섰던 임옥상 자신의 자화상 모두가 생흙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원초적 생경함으로 단호하고 비장한 아우라를 발산하며 관객의 오감에 어필한다.
흙 초상화 연작이 걸린 1층 전시장 중앙 공간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김일성, 김정은, 트럼프, 아베 등 국내외 13인의 국가 원수들의 초상을 자이언트 종이 가면으로 희화화하여 공중에 매달아 놓은 설치작품 「가면무도회」로 채워져 있다. 코믹한 만화 캐릭터 같은 이 가면 연작은 침울할 정도로 심각해 보이는 상기 문화적 인물들과 극심한 대비를 이루며 2층의 혼합매체 평면작품 「가면 박물관 - 남한」과 「가면 박물관 - 북한」과 함께 초상화의 미장센을 연출한다. ● 흙과 함께 그가 즐겨 사용하는 재료는 곡식, 꽃씨 등 흙, 땅과 관련된 자연적이고 비예술적 인 재료들이다. 2층 전시장에 진열된 노무현과 문재인 두 전/현직 대통령의 초상화 「민들레 꽃씨, 당신I」, 「민들레 꽃씨, 당신 II」는 민들레 꽃씨로 제작되었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행복과 희망을 뜻하지만 흔하고 익숙해 눈에 띄지 않는 야생화 민들레를 의인화하듯, 실루엣으로 재현된 이 상징적 초상화는 촛불 혁명을 주제화한 소위 '광화문 역사화' 「광장에, 서」와 마주하며 의미론적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108개의 현장 기록사진으로 구성된 커다란 배경면에 흙으로 조형화한 무수한 원형 패턴으로 촛불파도를 묘사하고 있다. 촛불을 흙불로 환원시키며 광장의 기적과 땅의 기적, 민중의 저항과 토지의 저항을 동일시하고 있는 「광장에, 서」는 각각 용산 화재와 물대포 사건을 재현한 「삼계화택(三界火宅)」과 「상선약수(上善若水)」, 이전 정권의 적폐를 풍자적으로 재현, 비판한 유화 작품 「물밑 창조경제」와 함께 시의적, 시사적 작품군을 이루고 있다.
임옥상은 억압적 현실과 사회적 모순을 직시하고 그에 대해 발언하는 도발적이고 고발적인 민중미술가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꿈을 좇는 비저너리이자 환상적 작품의 창조자이기도 한다. 2층 전시장 두 방에서 선보이고 있는 벽화 크기의 흙 풍경화 세 점이 바로 작가의 강렬하고 직설적인 리얼리즘 작품군과 대비되는, 초월적 숭고미학으로 관조의 여운을 남기는 환상적 알레고리화를 예증한다. 「여기, 노란꽃」, 「여기, 무릉도원」. 「여기, 흰꽃」에서 작가는 작품 상단을 청와대 뒷산 산세를 선묘로 재현하고 있지만 하단은 산 밑으로 펼쳐지는 도시 경관을 무화시키듯 만발한 꽃들로 가득 채우고 있다. 실제 풍경을 풍유적으로 번안한 일종의 관념적 실경화이자 현대판 무릉도원으로서 이 작품들은 암울한 현재를 극복하고 희망찬 내일로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의 신세계를 향한 작가의 유토피안 드림을 대변한다. ● 이번 전시 『바람 일다』展에서 작가는 흙을 주매체로 회화사, 특히 리얼리즘 미술의 두 대표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인물화와 풍경화를 집중적으로 제작, 발표하고 있다. 그의 인물화는 실제 역사적 인물을 재현하는 점에서 인물화이기보다는 초상화이며. 그의 풍경화는 역사적 사실이나 정치적 사건 혹은 실제 장면을 대상화하고 있는 만큼 실경화이다. 이번 전시 『바람 일다』展는 초상화로 시작되고 실경화로 끝을 맺는다. 전술한 흙 초상화 연작이 전시를 여는 프롤로그라면 흙 실경화 연작은 전시를 맺는 에필로그에 해당된다.
임옥상은 땅, 대지, 자연, 역사에 천착하는 민중미술가답게, 흙으로 초상화를, 실경화를 그린다. 그에게 흙은 정치사회적 의식과 민중적 저항의 기표로 의미화되고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현실과 이상, 실재와 상상의 세계를 왕래하는 그 자체가 환상적 매트릭스가 된다. 공격적이기보다는 방어적이고 수용적인 매트릭스로서의 흙, 땅, 토지, 대지는 라틴어 어머니 mater와 자궁 ix의 합성어인 매트릭스가 시사하듯이, 국가, 민족, 사회, 개인이 태어나고 성장, 발전하는 생명의 젖줄이자 모성적 태반이다. 작가는 흙에 대한 경의로 모체적 매트릭스로 회귀하고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자 한다. 그리하여 흙의 자정능력으로 스스로 깨어있는 작가, 행동하는 인간이기를 갈구하며, 객토客土의 고행으로 자신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혁신하고자 한다. ■ 김홍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