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걸 사명(使命)을 찾아라
사명(使命)이란 하늘이 내 인생에 주신 명령이다. 하나님이 “너는 이것을 해라. 이것이 평생 네가 붙잡고 살아야 될 일이야!”라고 말씀하시면 그 사명을 붙잡게 된다. 이때부터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그전까지는 누구나 이리저리 헤매는 인생이다.
사도 바울(Apostle Paul)은 사명을 붙잡고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福音)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 20장 24절)”
그대의 인생에 달려갈 길이 있는가? 누구에게나 각자만의 고유한 ‘나의 길’이 있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하나님이 내게만 주시는 인생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영원히 달리는 것이 아니라 마침이 있다. 이처럼 달려가고 마칠 때까지 내 인생을 인생 되게 만드는 것이 있으니, 그것을 사명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사명이 바람직하고 유익한 것은 다 안다. 그러나 문제는 사명을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代價)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사명을 이루는 경우는 없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생명을 대가로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사명을 팔아서 이익을 사고 권력을 사고 명성(名聲)을 산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사명을 팔아서 내 이익을 도모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판사들이 권력에 아부하여 양심을 속이고 편향된 판결을 하는 경우가 대표적일 것이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가 주(主)이신 줄 믿습니까? 그리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救贖)해주지 않으시면 이미 죽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믿습니까? 구속해주신 주님께서는 한 번밖에 못 사는 내 생애를 위해 가장 훌륭한 설계도를 준비하시고 내 인생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사명에 충성하는 사람을 보면 그 인생이 빛이 난다. 땅에 코를 박고 살던 인생에 사명이라는 날개가 달리면, 창공(蒼空)을 날아오르는 인생이 된다. 인생을 가장 훌륭하고 가장 보람 있게 만드는 것이 사명인 것이다.
하나님의 사명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의 손길이 끊기는 법은 절대로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명은 풍요 그 자체이며 인생의 강한 보루(堡壘)이다. 이 사명만 붙잡고 나가면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 베드로(Peter)는 일생의 사명을 붙잡자마자 뭍에 올라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좇았다. 잡은 고기들도, 고기를 잡던 도구인 배와 그물도, 그리고 지금까지 애쓰고 수고했던 경험과 경력까지 모두 버렸다. 그가 의지했던 모든 것을 던져버릴 만큼 예수 그리스도는 그에게 절대적이고 가장 소중한 분이 되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누가복음 5장 10-11절)”
자신의 일생을 걸 사명을 발견하고 일로매진(一路邁進)하는 인생의 참으로 복 받은 인생이다. 일생의 사명이 없이 그럭저럭 눈앞의 쾌락이나 쫓으며 사는 인생은 얼마 못가서 삶에 염증을 느끼면서 나태하지고 타락하며 자살의 충동(衝動)까지도 느끼곤 하는 것이다.
생각건대, 우리가 지신의 일생을 걸 사명을 찾고자하면 반드시 타고난 재능이나 특질 그리고 태어날 때의 배경과 명분 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은 이미 그대의 일생에 주실 사명을 작정하시고 태어날 때부터 이 사명을 감당할 재능이나 특질 등을 부여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에서(Esau)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長子)의 명분을 동생 야곱(Jacob)에게 팔아넘김으로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진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역사에 영조대왕의 옹립이라는 필생(畢生)의 사명을 위해 목숨을 버렸던 한포재 이건명 선생의 마지막을 보자. 신임사화 때 노론사대신 중 한 분인 한포재 이건명 선생은 역신(逆臣)들의 모함으로 다음과 같은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억울하게 참수형을 당했다.
허국단심재 (許國丹心在) 나라를 위한 일편단심은 여전하니
사생임피창 (死生任彼蒼) 죽고 사는 것은 저 하늘에 맡기노라
고신금일통 (孤臣今日慟) 외로운 신하가 오늘도 애통하니
무면배선왕 (無面拜先王) 선왕을 뵈올 면목이 없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영조·정조의 부흥시대를 여는 기폭제가 되었고, 이후 국가의 정신적인 기둥이 되었다. 그의 영혼은 분명히 천국에서 하나님의 복락(福樂)을 누릴 것이다.
2026. 7.28.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