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만 원짜리 돈의 모델
노병철
아버진 붓글씨를 잘 쓰셨다. 어머니는 한문에 많이 약했다. 그래서 자주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이게 무슨 글자인지를 물었고 아버지는 힐껏 어머니를 쳐다보곤 조금은 거만한 자세로 가르쳐 주셨다. 당시엔 한자 사용이 일반화 되어 있었고 상점 간판뿐 아니라 편지 봉투에도 주소를 한문으로 갈기는 게 유행이었고 집배원을 잘하려면 어느 정도 한문은 알아야 할 정도였다. 요즘은 내가 붓글씨 공부를 한다. 열심히 흉내를 내어 보지만 영 마음에 차지 않는다. 그래도 아버지처럼 집사람에겐 좀 뻐대는 정도는 된다. 집사람은 학교 다닐 때 한문 공부를 하지 않은 세대란다. 그래서 한자에 약하다고 늘 핑계 삼아 이야기한다. 그래서 ‘祝結婚’‘賻儀’ 같은 글자가 필요할 땐 내게 부탁하곤 했는데 요즘은 예식장이나 장례식장에 다 비치해 두어 거만 떨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 잘난 척 하는 게 영 기분 더러웠는지 요즘은 잘 묻지도 않는다.
조선 시대 성리학의 대가를 이야기하라면 율곡 이이 선생과 퇴계 이황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1536년생으로 9번이나 장원급제한 율곡 이이 선생은 타고난 천재이다. 율곡 선생보다 35살이나 많은 퇴계 이황 선생은 이이 선생보다 한참 인생 선배이다. 백 원짜리 동전 모델은 막내인 이순신 장군이 있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천원은 이황 선생, 오천 원은 이이 선생이다. 나이상 서열이 안 맞다. 만원은 세종대왕이고 오만 원은 신사임당이 모델이다. 우리가 다 알듯이 신사임당은 이이 선생의 어머니다. 왜 오만원에 신사임당이 모델로 발탁되었을까? 왜 돈 모델은 전부 이 씨 집안일까? 난 항상 배가 고프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좋아한 단어 ‘현모양처’, 일본에서는 ‘양처현모’라고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아 일본강점기 때 들어온 말 같은데 어진 어머니이자 착한 아내의 대명사인 신사임당은 지폐 최고봉의 모델이다. 남편 이원수는 아는 사람이 없어도 아들을 잘 둔 어머니라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어도 그 영광은 삐까 번쩍하다. 근데 성리학이라면 이이 선생도 유명하지만, 국내외적으로 퇴계 이황 선생이 더 하면 더 했지 전혀 딸리지 않는 분인데 조금은 푸대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돈 모델 선정에 관여한 분 중에 덕수 이씨가 많았나 보다. 이순신 장군도 덕수 이씨고 율곡 선생도 같은 본관이다. 퇴계 선생 집안인 진성 이씨도 민족시인 육사 선생까지 내려오는 빵빵한 집안임에도 좀 밀렸나 보다.
나의 진짜 배고픔은 돈 모델을 한 이 씨 집안을 보는 것이 아니라 퇴계 이황 선생의 어머니가 누구인가였다. 이황 선생 같은 불세출의 아들을 둔 어머니이시면 당연히 신사임당처럼 존경받을만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런데 도무지 아는 이가 없다. 심지어는 그걸 알아서 뭐 하려느냐는 핀잔만 돌아온다. 여기서 되새겨 보면 신사임당은 당시 잘나가는 여인이었다. 그림 잘 그렸지 글과 시를 지어내는 능력 또한 뛰어난 여인이었다. 아이에겐 따끔한 훈육을 하는 어머니였고 남편에게 직설적인 잔소리를 서슴지 않은 여인이었다. 현모양처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분이었다. 신사임당의 페미니즘 성향은 지금도 논란꺼리다.
반면에 이황 선생의 어머니는 춘천 박 씨라고만 알려져 있다. 신사임당과 같은 강원도 출신이다. 퇴계 선생의 아버지인 이식(李埴)은 7남 1녀의 자식을 두었는데 춘천 박 씨는 이식의 계실(繼室), 즉 둘째 부인이다. 이황은 그 자식 중 막내이다. 이황이 태어난 지 7개월에 아버지의 상(喪)을 당한다. 졸지에 춘천 박 씨는 여덟 자식과 시부모 모시는 과부가 된 것이다. 32세에 홀로된 퇴계의 어머니는 남편의 삼년상을 마치자 제사 일은 맏이에게 맡기고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면서 집안일을 경영하고 자식들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독려하고 다들 학자금을 마련해 글방에 보냈다고 한다.
“몸가짐과 행실을 삼가는 것을 중하게 여겨서 항상 재삼 간절히 타이르기를 세상에서는 보통 과부의 자식을 옳게 가르치지 못하였다고 욕을 할 것이니 너희들이 남보다 백배 더 공부에 힘쓰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런 비평을 면할 수 있겠느냐.”
누에를 먹인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한치의 게으름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 누에 먹이는 일이다. 세심한 정성이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7개월 된 젖먹이 이황 선생에게 젖을 물리며 대학자로 키워낸다. 글 그림을 할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대학자의 어머니임에도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이분의 초상화를 한번 그리고 싶다. 10만 원짜리 돈이 나오면 이분을 추천하고 싶다. 우리가 아는 진정한 어머니상이 바로 이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김부겸이 빨갱이라면서? 그런 인간을 왜 국무총리를 시키노."
어머니가 어디서 또 이상한 유튜브를 보신 모양이다.
첫댓글 "연배로 보나 학덕으로 보나 퇴계 선생이 율곡 선생보다 더 어른이시니
마땅히 오천원권에는 퇴계 선생이 일천원권에는 율곡 선생이 있어야 한다."
한때 실지로 이렇게 항의한 사람이 있었다고 해요.
거기가 한국은행이었는지 한국조패공사였는지는 모르겠는데,
당시 담당자의 답변이 걸작이었습니다.
아, 퇴계 선생님이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많은 사람들 가까이 계시면서 사랑을 받으시라고
저희들이 천원권에 모셨습니다-.
아하~~~~ㅎ 말이 되는것도 같습니다.
돈의 역사를 한눈에 보는것 같습니다. 기발한 생각 입니다. 오늘도 국장님의 작품을 읽으며 웃다가 무릎치다가 합니다.
사무국장님
애국자세요.
박학다식도 하십니다.늘 글이 재밌습니다.
저는 십만원짜리 모텔인줄 알고 제목이 수상해 읽지 않았습니다. 소진회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저를 요상한 눈으로 보시지 않겠습니까. 십만원짜리 돈의 모델인데 뭔 말인냐고 ㅋ. 가끔 저도 오독을 ㅋ
참 국장님 너무 많이 알고 계십니다.
저의 지적 능력이 향상됩니다..
재미도 있고, 지식도 있고
시원하게 웃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