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오피니언 입력 2023-02-23 03:00
[김도연 칼럼]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대학교육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지금으로부터 꼭 3년 전 번지기 시작한 코로나19로 우리 사회는 패닉에 빠져 있었다. 2020년 동아일보 2월 21일 자 1면 헤드라인은 ‘코로나 국내 첫 사망…확진자 100명 넘었다’였고, 그다음 날은 ‘하루 103명 폭증…신천지 동선 따라 전국 확산’이었다. 그리고 2월 24에는 ‘위기경보 ‘심각’ 격상…모든 학교 개학 연기’였다. 통상 3월 2일이던 개학을 일주일 미룬다고 정부가 발표한 것인데, 그 후에도 개학은 두 번이나 더 미뤄졌다. 그러나 결국 개학은 없었고 모든 학교가 폐쇄되면서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아무런 준비도 없었기에 교육담당자 모두가 당황하고 허둥댄 것은 당연했다. 전국 초중등생들은 대부분 EBS 온라인 클래스에 의존했고, 대학에서는 교수들이 강의를 급하게 동영상으로 만들어 일방 송출했다. 모니터에서 학생들이 서로 얼굴을 보면서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긴 했지만 교육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인성교육은 물론이고 지식 전달의 측면에서도 학습 의욕을 고취하기 어려워 학생들 간 학업성취 격차가 심해졌다. 그러나 이번 봄에는 드디어 팬데믹 공포에서 벗어나며 새 학기를 맞는다. 3년 만에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이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크게 아쉬운 점은 우리 교육계 대부분이 지난 3년 동안 쌓은 소중한 경험은 모두 버리고 코로나 팬데믹 이전과 똑같은 모습의 학기를 예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학생들을 교실에 모아 일정 시간 가르치고 획일적으로 평가해 성적을 내주는 산업 문명시대 교육이 과연 정답일까? 물론 전통 속에는 지키고 더욱 가꾸어야 할 장점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디지털 문명시대다. 특히 세계와 경쟁해야 하는 우리 대학교육에는 지킬 것보다 바꿔야 할 것이 더 많은 듯싶다.
미국의 하버드대는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를 이끄는 고등교육 기관이다. 하버드 역시 여느 대학과 마찬가지로 2020년 3월부터 캠퍼스가 폐쇄되면서 모든 학생을 온라인으로 교육해야 하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상황을 맞았다. 당연히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코로나19로 인해 교수와 학생이 온라인 세상에서 가꾼 대단히 값진 2년간의 교육경험을 분석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하버드의 미래교육 및 학습’이란 연구보고서를 작년에 발간했다.
보고서의 결론은 팬데믹과 관계없이 앞으로의 대학교육은 온라인을 더욱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려 82%의 교수들도 과거와 같은 강의실 교육 일변도에서 벗어나 온라인을 함께 이용하는, 소위 블렌딩(Blending) 교육이 학생과의 연대감 및 교육 효과를 높이는 교육방식이라는 사실에 동감했다. 여기서 온라인 교육이란 단순하게 강의 동영상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온라인에서는 소그룹 토론이나 학생들의 학습 의욕을 크게 고취할 수 있는 능동학습(Active Learning)이 더욱 용이하다는 점에 초점을 둔 것이다. 사실 블렌딩 교육은 교수들이 부담을 더 짊어져야 하는 일이다.
개인이나 조직 모두에게 위기는 또 다른 도약의 기회임이 분명하다. 대학교육에 큰 위기를 몰고 왔던 코로나 팬데믹을 그냥 잊고 넘어가면 이는 결국 도약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성큼 다가왔던 디지털 문명시대의 새로운 교육방식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최근, 인문학 전공의 교수 한 분은 그간 학생들에게 출제했던 시험 문제를 챗GPT에 주었더니, 즉각 나오는 답변들이 적어도 B+의 성적을 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학생이 직접 작성한 답안과 인공지능의 그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챗GPT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했는데, 그 마지막은 교수가 학생을 만나 직접 토론해 보라는 것이었다.
세상은 이렇게 바뀌고 있는데, 우리 대학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21세기 대학은 누구라도(Anyone), 편한 시간에(Anytime) 그리고 원하는 장소(Anyplace)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소위 3A 교육과 학습에 더 많은 정성을 쏟아야 한다. 특히 우리 사회 많은 대학들은 줄어드는 학령인구와 고령화사회에 대비해 평생교육 기관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머뭇거리면 완전히 낙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디지털 문명시대를 맞은 우리 대학들에 3A 교육을 가꾸는 일은 발전전략이 아니다. 생존전략 그 자체다.
* 오늘의 묵상 (220704)
‘손’이라는 단어에 주목해 봅니다.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예수님께서 ……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우리에게 두 가지의 손을 소개합니다. 하나는 ‘사람의 손’입니다. 간절함과 믿음으로 ‘손’을 내미는 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아픔을 인정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기에 그렇습니다. 혈루증을 앓는 여자의 ‘열두 해’가 그 손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손’으로 사람을 살리는 손입니다. 성전에서 솟아나는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살아나듯(에제 47,9 참조), 예수님의 손이 닿은 소녀가 살아납니다. 예수님의 손에서 사람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손’이 보입니다. 단순히 건강을 회복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고 하신(창세 1,31 참조) 새로운 창조가 오늘 예수님의 손에서 시작됩니다.
여인의 간절함과 믿음은 그가 예수님의 옷을 만지게 하고, 회당장의 간절함과 믿음은 예수님의 손을 움직이게 합니다. 오늘 저마다 삶의 자리에서 겸손과 용기의 손으로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 그분을 만지고, 하느님의 손이 내 삶에 닿아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기를 청해 봅시다.
(김인호 루카 신부 대전교구도룡동성당주임)
* 친절한 말 (230523)
우리는 아주 쉽게 이 세상의 행복수치를 증가시킬 수 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외롭거나 용기를 잃은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존중하는 몇 마디의 말을 건네는 것,
그것으로 충분 하다.
오늘 누군가에게 무심코 건넨 친절한 말을, 당신은 내일이면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일생 동안 그것을 소중하게 기억할 것이다.
-데일 카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