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1.유불(有彿)
說話
“부처님 계신곳〔有佛處〕”이란 부처님도 있고 중생도 있다는 뜻이요,
“부처님 안 계신곳〔無佛處 〕”이란
부처님도 없고 중생도 없다는 뜻이다.
“머무르지 말라〔不得住〕”와
빨리 지나가라〔急走過〕“고 한 것에 대해
만송(萬松)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스님이 남쪽으로 가서 불법을 배우려고 마음먹을 때,
합당히 산승의 손에 들고 있던 방망이로 맞았어야 되었기에
조주가 ‘부처님 계신 곳에도〔有佛處〕......’라고 한 것이다.
또 그 스님이 무사(無事)하기를 탐내는 갑옷에 빠져서
깨끗한 공이나 치게 될까〔打淨潔毬〕걱정하였다.
그러므로 ‘부처님 안 계신 곳은 빨리 지나가라’고 한 것이니,
가히 치우치면 편위에서도
사물을 내 마음에 붙이지 않고〔偏不附物〕,
정위에서도 현묘함을 주장하지 않는다〔正不入玄〕하리라.“
“3 천리 밖〔三千里外〕”이라 함은 중간 구절인가?
3구(句)의 밖이다.
“잘못 이야기하지 말라〔莫錯擧〕”고 한 것은
3구 밖에 눈길을 주어도 잘못 든 것이요,
몸을 움직이거나 걸음을 옮기더라도 역시 잘못 든 것이다.
“사람을 만나거든〔逢人〕”이라고 한 데서
‘사람’이란 학인(學人) .종사(宗師).선지식(善知識)을
몽땅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면 떠나지 않겠습니다〔伊麽則不去也〕”란 것은
3구 안에서 몸을 온전히 한다는 뜻이다.
버들꽃을 꺾어라〔摘楊花〕......“고 함은
도잠(陶潛)의 시에
“아이들이 버들꽃을 꺾는데/
동쪽 서쪽으로 버드나무에 매달린다/
우습구나.저 늙은이여/
그들을 따르지 못하는구나“하였으니,
동쪽 서쪽으로 자재(自在)하다는 뜻인가?
여기서는 외마디 진언으로 쓰였다.
보녕(保寧)의 송에서
“마호(麻胡)”는 ,『광기(廣紀:太平廣紀)』에
“후조(後趙) 석륵(石勒)의 비장인 맞추(麻秋)는
태원(太原)지방 출신으로서 호인(胡人)이었는데,
성격이 거칠고 표독하여 아이들이 울 때 엄마들이
‘마호가 온다’고 하면 울음을 뚝 그쳤다“고 했는데,
지금껏 고사(故事)로 쓰이고 있다.
운문(雲門)의 송에
“무쇠로 된〔生鐵〕......”은 머물러 두면
좀벌레의 침범을 받는다는 뜻이요,
“숭산의......를 만나게 됐다〔撞着嵩山〕”고 함은
부처님 안 계신 곳에 머물러도 여시 옳지 않다는 뜻이다.
“두 개의 돌장승이〔兩箇石人〕......”는
주체와 객체 모두가 정식(情識)이 없다는 뜻이요,
“이 말은〔此語〕......”은
분명해서 화살 지나간 자리〔分明箭後路〕라는 뜻이며,
“옴〔唵〕......”은 외마디 진언이다.
천의(天衣)의 상당은 이 스님의 뜻을 자세히 살피건대
“3천리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든
잘못 이야기하지 말라”라고 함은 집착만을 깨뜨렸음을 알 수 있다.
지해(智海)의 상당에
“공연한 근심〔杞人之憂〕”이라 한 것은
기국(杞國)의 어떤 사람이 항상
“하늘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나”하고
근심을 품었던 고사이고,
“부처님 계신 곳에〔有佛處〕......”은
부처님 계신 곳인들 무슨 허물이 있으리요 함이니,
그렇다면 3천리 밖인들 이야기하기 어려움이 무엇이 겠는가 함이다.
천동(天童)의 염에
“공에 빠지거나 고요함에 걸리거나〔心空滯寂〕”라고 함은
부처가 없는 곳이요,
“손을 다치거나 바람에 상하는 것〔犯手傷風〕”이라 함은
부처님 계신 곳이다.
“사람들이 몰리는 저자〔行市〕”와
“평상이나 자리〔牀榻〕”도 두 구절에 짝지을 만하다.
“바른 자리〔正位〕에 있더라도 현묘함을 주장하지 않고,
치우친 자리〔偏位〕에 있더라도
물건을 내 마음에 붙이지 않는다“고 한 것은
사람을 만나도 잘못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잡았다 놓았다 하매〔把住放行〕......”는 바로
“버들꽃을 꺾어라,버들꽃을 꺾어라〔摘楊花摘楊花〕“라고 함을 말한 것이다.
조계(曺溪)의 상당에“부처님 계신 곳〔有佛處〕......”은
머물러 있어도 무방하다는 뜻이니,무슨까닭인가?
자기의 신령한 광채가 하늘과 땅을 덮었기 때문이다.
“부처님 안 계신 곳에도
헛되이 지나치지 말라〔無佛處莫空過〕”라고 함은
공연히 문득 지나친다고 이르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다음 구절에
“망망탕탕하여 재앙을 부른다〔莽莽蕩蕩招殃禍〕”하였다.
“......을 끊어 버리고 ......만 못하다〔不如劃斷〕......”라고 함은
중간을 잡은 것이니,
대의는 지해(智海)의 상당과 같다.
백운(白雲)의 상당은
3천리 안이나 밖이나 모두 놓쳐 버리지〔放過〕않는 다는 뜻이요,
“조를 심었는데 콩이 나왔도다〔種粟去生豆〕”함은
3 천리 밖에서 3 천리 안으로 들어온다는 뜻이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 한다는 말과 같다.
목암(牧庵)의 상당은 ,
노숙(老宿)의 뜻이 부처님 계신 곳이나
부처님 안 계신 곳에 낱낱이 편안히 안주(安住)한다는 것인데,
그 뜻과 같다.
“칠전팔도(七顚八倒)”는
“버들꽃을 꺾어라, 버들꽃을 꺾어라〔摘楊花摘楊花〕“라고
한 것과 같은 뜻이다.
송원(松源)의 상당에서
“은산(銀山)”은 희고 맑으니 3천리 박을 비유한 것이고,
“무쇠 산〔鐵山〕”은 순전히 검으니 3 천리 안을 비유한 것인데,
다시 3구(句)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누른다〔壓〕”라고 하였다.
“소반의 구슬을 구르게 하고〔盤走珠〕......”라고 한 것은
3구 안의 일이니,
곧 처음의 두 구절은 대혜의 뜻을 밝힌 것이요,
뒤의 두 구절은 자기의 뜻을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3천리 안이다.밖이다 하고 말하는가,
모두가 원앙새를 수 놓았을 뿐이다.
밀암(密庵)의 상당에“섬부(陝府)......”는 큰 역량이 있다는 뜻이요,
“남쪽나라의〔南海〕......”는
여전히 눈은 가로로 놓였고 모는 세로로 놓였다는 뜻이다.
“콩을 심은 곳엔 원래〔種豆由來〕......”는
콩을 심었는데 삼이 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데,
지금 원래〔由來〕라 하였으면 조주의 뜻에 허물이 없다.
“조주가 왔도다〔趙州來也〕”라고 함은
구절구절이 곧 조주라는 뜻이다.
지비(知非)의 문답에서 처음부터“지나쳐 버리다〔走過〕”까지는
몸과 걸음을 옮기는 것이 끝닿는 데로 향해 나아간다는 뜻이요,
“의발 밑에만 앉아 있다〔衣鉢下端坐〕”는 것은
자기에게 본래부터 있는 일을 궁구(窮究)해낸다는 뜻이요,
“먼동 틀 때쯤 이르러야 할 곳이라면〔投明須到〕......”은
단정히 앉은 쪽에서 보면 머무르지 않고
급히 달려 지나는 것이 곧 밤에 다니는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