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성산읍은 아침부터 부슬부슬 가을비가 촉촉합니다. 이번 연휴동안에는 맑은 날씨의 연속이라고 방송에서 들었는데 제가 잘못 들었는지 기상청이 틀린 것인지 암튼 가을비를 기화로 기온이 확 내려갔습니다. 드디어 긴팔 옷을 꺼내입어야 될 듯한 추연한 분위기입니다.
성산펜션은 무성히 자라 산뜻한 잔디밭의 면모가 사그러든지 한참, 기온마저 내려가버리면 잡초무성과 스산이 합쳐져서 뭐 '폭풍의 언덕'이나 '테이킹 얼라이브' 영화 속 버려진 외딴집처럼 그런 모양새로 가는 건 아닐지 걱정됩니다.
멋들어진 정원수 사이에 삐죽히 자라나버린 잡초들을 보니 참 제 성격도 왠간히 무던하거나 무심하다 싶습니다. 내일은 잡초라도 뽑아야 되겠다 마음먹지만 내일은 내일, 오늘도 아이들 데리고 열심히 자연감통지를 찾아 떠나야 합니다.
비가 오니 오름에 가기도, 바다에 가기도 어렵고 핑크뮬리나 억새장관이나 보러갈 겸 표선 허브동산에 왔으나 얼른 지켜본 풍경은 인위적 정원가꾸기 모양새라 선뜻 들어서게 되질 않습니다. 다시 돌아서 낙타체험장에서 색다른 체험을 해볼까 했더니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주차장에 꾸역꾸역 몰려드는 관광버스들이 꽤 많아서 긴 연휴 제주도는 관광성업 중 인듯 합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낙타체험장을 빠져나오다 정 궁하다싶으면 산굼부리 억새밭이라도 가야되겠다싶어 접어든 길 초입에 핑크뮬리 물결이 눈을 확 사로잡습니다. 꽤 드넓게 보이는 핑크뮬리 물결인데 제목은 카페 글렌코.
스코틀랜드 지명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하는데 스코틀랜드 곳곳을 돌아다닌 경험이 있는 태균이와 저는 Glen(광활한 협곡)들의 풍경을 잊지 못합니다. 황량한 드넓은 협곡들 사이로 고사리밭도 꽤 있어 제주도 풍경과 유사한 부분도 있고... 과거 사진을 들춰보니 태균이도 이 때에 비하면 많이 늙었네요. 2007년 사진이니 16년 전 사진입니다.
글렌코는 스코틀랜드에 분포된 여러 개의 글렌 중의 하나. 그 광활하고 협곡 사이사이 휘몰아치던 강렬한 바람에 긴 야생초들이 쉼없이 흔들리던 그 갈색풍경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그 갈색풍경은 제주도에서 글랜코라는 카페에서 핑크뮬리의 물결로 대체되어있습니다. 물론 규모는 비교할 수도 없고 비교해서도 안되겠지요.
비싼 커피나 음료를 1인당 1개씩 구매해야 입장이 가능한 그 곳. 많은 사람들이 박실거려도 다 수용할만큼 넓어서 좋기는 합니다. 제법 큰 트렘폴린도 있어 완이도 한참 뛰놀게 해주고.
제주도 방문한다면 한번쯤 들러봐도 좋겠다 싶기는 합니다. 가을에는 핑크뮬리 물결이지만 여름에는 수국을, 봄에는 메밀꽃으로 단장한다고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자연 억새밭 하나 발견. 송당에서 가시리로 가는 2차선 도로는 오늘 처음 타보았는데 드라이브길로 꽤 근사합니다. 그 중간에 놓여있는 거대한 억새밭. 아직 억새는 덜 매말라 가을 느낌은 좀 모자라지만, 현재 속도로 기온이 떨어지고 나면 조만간 메마르고 아슬하게 바람을 견디는 솜털들을 하얗게 매달고는 대규모로 춤을 춰댈겁니다. 그런 풍경들을 볼 날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여름을 지나 가을로 가면서 우리는 새로운 계절이 주는 풍경들에 취해 또 제주도를 즐길 예정입니다. 무엇보다 오늘 완이가 여러가지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이것 또한 큰 기쁨이었습니다. 대기인원이 많다보니 커피받는데만도 10분 이상 소요되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는데도 비록 몸은 열심히 움직였으나 자리에서 엉덩이는 한번도 떼지않고 기다려주었다는 기특한 스토리는 큰 변화라면 변화라고 해야 되겠습니다.
첫댓글 준이씨는 태균 형님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완이가 기특한 순간을 선물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