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18.木. 흐림
오늘의 이름은 08월17일 水요일.
응? 영락零落없이 日요일인줄 알았다.
“여보, 내일 아침에 몇 시에 출발해요?” 아내가 물어보았다. “몇 시요? 그야 평소대로 7시에 출발하면 되지 않겠소?” 아내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7시에 출발하면 좀 바쁘지 않겠어요? 백중이라 신도 분들도 먼저 절에 와있을 테고, 상단과 영단에 준비해가는 과일도 괴어야 할 텐데요.” 나도 고개를 들어 아내를 쳐다보았다. “그래요? 그러면 몇 시에 출발할까요?” 아내가 말했다. “6시면 어때요?” ‘응, 6시? 6시 출발이면 8시30분 전에 절에 도착을 할 텐데 좀 빠르지 않나? 9시정도 도착을 하려면 6시30분이면 충분할 듯한데.’ 하고 나는 잠깐 생각을 해보다가 대충 말했다. “응, 그럼 6시30분에 출발합시다.” 그러자 아내가 복창을 하듯이 말했다. “네, 그럼 6시30분이요.” “예.” 무더운 火요일 저녁, 우리 부부의 짤막한 회의가 끝났다. 그런데 왜 내일 절에 가는 출발시간을 새삼스레 아내가 신경을 쓰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항상 하는 대로 7시에 출발을 하면 절에 도착을 해서도 여유시간이 충분할 텐데, 우리가 가져가는 공양물이 있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돌려 얼굴을 책으로 옮겼다. 그렇게 어제는 뭔가 허전한 듯한 저녁이고 밤이었다. 그래서 아내의 아침6시 출발시간 제안에도 나는 술렁술렁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술렁술렁 속에는 아직 따끈따끈한 허전함이 옴싹하게 들어있었던 모양이다. 지난 7월 중순 경에 휴가를 나왔던 아들아이가 한 달여의 휴가를 마치고 어제 오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휴가가 한 달이랬자 가족이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한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집안 모임이 예정된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보통 집에 느지막하게 들어와서 잠을 자고 씻은 후 옷만 갈아입고 다시 외출을 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미리 잡아놓은 미팅이나 모임을 일정에 맞춰가며 휴가기간 동안 소화를 하고 있는 아들아이를 보면서 요즘 젊은 아이들은 저렇게 일을 하나보다고 생각을 했다. 휴가와 일이 잘 구분이 되지 않는 근무분위기하며 일과 놀이가 공존하는 듯한 업무스타일이 나로서는 생소한 것이지만 30대 초반 아들아이 또래에게는 매우 일상적日常的인 일인 듯했다. 그리고 대개 새벽 한두 시경에는 미국으로 화상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야 미국 서부나 동부와의 시차時差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한국의 낮은 낮으로 사용을 하고, 한국의 밤은 미국의 낮으로 활용을 하는 아들아이의 이중구조의 두뇌활동을 지켜보면서 저렇게 활동을 하면 몸과 생각이 바빠지고 목적하는 결과물도 분명 뛰어나겠지만 거기에 즐겁기까지 한 모양이군! 하는 생각에 내가 벌써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나. 하는 다소 우울한 생각도 고개를 슬그머니 치켜들었다.
거실에 누운 채 손가락을 꼬무락거려 읽고 있던 책 페이지를 다시 펼쳤다. ‘주제 사라마구’의 <수도원의 비망록>이었다.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다가 오십대 후반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포르투칼 출신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의 <수도원의 비망록>은 어떻게 이런 내용을 이렇게 재미있고 끈적하게 써낼 수 있었는지 과연 노벨문학상 수상의 대가大家답다는 생각을 했다. 독서를 하기에는 안성맞춤으로 에어컨에서 시원한 바람이 퐁~퐁~ 쏟아져 나와 거실 안을 시원하게 다스리고 있었지만 전기료 누진세累進稅를 생각하면 그렇게 마음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에어컨 바람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선풍기도 있고 부채도 있어서 아내의 요청이 아니면 그저 마음이 선선한 것을 낙樂으로 삼아 여름을 보내고 했는데, 올 여름은 덥기도 하거니와 샌프란시스코 상춘常春의 날씨에 익숙한 아들아이가 한국 여름의 매운 맛에 펄쩍 뛰는 반응을 보이자 아내가 부랴부랴 밤이고 낮이고 에어컨을 세게 켜놓은 바람에 나도 어찌어찌 하다가 어중쩡한 에어컨 찬양론자가 되어버린 듯했다. 그래서 밤중과 새벽에는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어도 되련만 거의 하루 내내 문이란 문은 모두 꽁꽁 닫혀놓고 에어컨 냉冷 바람과 아들아이의 신바람, 그리고 아내의 치마 바람에 묻혀서 여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백중날 아침 애당초 6시 출발을 예상했던 아내와 7시 출발을 예상하고 있던 나와는 출발을 준비하는 자세와 속도감이 조금씩 달랐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속도가 느린 사람에게 시간이 맞추어질 수밖에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보니 막상 집에서 출발을 한 시각은 아침 6시40분이었다. 탄천 길을 돌아나가 양재로에 들어섰는데 왠지 도로에 평소보다 많은 차량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엉, 아직 휴가행렬이 끝나지 않은 모양인데...’ 언덕길을 부드럽게 내리달리면서 저 먼 도로에 길게 늘어선 차량들을 쳐다보며 왠지 오늘 아침 도로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가져보았다. 그래서 과천-의왕 외곽도로를 달려가면서 평소 일요일처럼 서수원으로 빠지지 않고 길을 조금 앞당겨 의왕으로 빠져나가 일찌감치 인천방향 영동고속국도로 올라탔다. 서수원에서 서해안 고속도로 진입로인 매송IC까지 가는 길은 2차선인데 비해 역시 의왕을 지나 서해안 고속도로 진입로인 둔대IC까지 가는 영동고속도로는 4차선이라 아무래도 그쪽이 덜 붐빌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그건 그런데 평소에 잔머리를 굴리는 일에 서툰 사람은 어쩌다 한 번 잔머리를 굴려도 별로 재미 보는 일이 많지가 않은 듯했다. 4.6Km 둔대IC까지의 영동고속도로 길도 꽉 막혀 정체停滯는 아니었으나 심한 지체遲滯상황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아내가 이러다가는 백중법회시간도 못 맞추는 것 아니냐면서 왜 오늘 아침에는 6시 출발이 중요한지에 대해서 잔소리를 할 시점을 고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슬렁슬렁 가다보니 인천 방향 영동고속도로 지체 이유가 드디어 밝혀졌다. 갓길로 끌어내놓은 추돌차량 너덧 대가 안타까운 모습으로 견인차에 매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 연거푸 쿵;쿵;쿵~ 들이받은 듯했다. 차창車窓 밖으로 사고처리현장을 보면서 “일요일 아침이 왠지 어수선하고 복잡하군.” 하고 말했더니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내가 드디어 말할 시점을 잡았다고 판단을 했던지 대답을 해왔다. “오늘은 일요일이 아니거든요.” 그 말을 듣고 내가 아내를 흘끗 돌아보았다. ‘응? 저게 무슨 말이지?’ “오늘은 백중법회를 보러가는 것이지 일요법회를 보러가는 것이 아니거든요. 어제가 火요일이었으니 오늘은 水요일이라고요.” 아하, 그때서야 아내가 아침6시에 출발을 하자고 했던 일이나 아침 이 시간에 차량으로 도로가 붐비는 이유가 한순간에 머릿속에서 쌈박하게 정리가 되어버렸다. 그렇구나! 오늘이 영락零落없이 日요일인줄만 알았지 뭡니까?
(- 응? 영락零落없이 日요일인줄 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