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의 다비식을 마치고 불일암에 올랐다. 1975년 불일암을 짓기 시작할때 출가한 나는 불일암 낙성식때 수계하여 불일암과 나이가 같다.
그때 불일암에서 앞산을 바라보며 묵주를 돌리며 기도하는 젊은 남자가 있었다.
그는 초당대 군사학과 문현철교수라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자신만이 간직한 법정스님과의 인연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고등학교 시절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나는 상담교사를 통해 산방한담이란 책을 받았다. 밤새 책을 다 읽은 나는 법정스님을 보고 싶었다. 음악을 좋아했던 나는 광주 충장로에 있는 베토벤 음악감상실을 찾아갔다.
그곳에 마침 법정스님이 계셨다. 나는 스님께서 쓰신책을 밤새 읽었다고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당돌한 질문을 하였다.
스님께서는 선생님이 되시지 않고 왜 스님이 되셨습니까? 나의 질문에 웃음으로 답변한 스님께서는 나에게 이것 저것 물으셨다. 그리고 장래희망도 물으셨다. 군인도 되고 싶고 교수도 되고 싶은데 뭐가 될지는 모르겠다고 하였다. 내 얘기를 들은 스님께서는 무엇이 될것이냐 보다 어떻게 살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답을 찾을수 있을것 이라고 하였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할머니 뒷바라지로 학교를 다녔다. 조선대 법대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학업을 포기하려고 하였다. 불일암으로 법정스님을 찾아가 고민을 말했더니 등록금 고지서를 베토벤에 맡겨 두고 가라고 하였다. 그때 부터 졸업할때 까지 빠짐없이 등록금을 보내주었다. 나는 법정스님이 보내주신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오늘 초당대 교수가 될수 있었다. 한번씩 찾아가서 감사인사 드리면 일체 그런 말은 입밖에 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리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소개하고 등록금 고지서를 베토벤에 갖다 놓으라는 말씀도 덧붙였다. 나는 세명의 친구들을 소개했고 그들은 법정스님께서 학기마다 보내준 장학금으로 졸업을 할수 있었다.
그들은 대학교수가 되고 의사가 되었지만 이제껏 법정스님과 약속을 지켜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다비식을 모시고 불일암에 와서 처음으로 공개한다고 하였다.
대학 다닐때 광주 남동성당에서 가토릭 예비신자 교리를 받고 빅토리노라는 이름으로 영세를 받았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혼수상태로 3주간을 보내고 5개월 동안 병원치료를 받았다. 너무나 하느님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병원에서 퇴원하는 길로 불일암을 찾아갔다. 법정스님은 홀쭉해진 나의 몸을 보고 어디 아팠어? 하고 물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영세 받은 날 교통사고를 당해 3주간 혼수상태로 헤매다가 5개월간 치료를 받았다. 하느님이 계시다면 영세 받은 날 교통사고를 나게 할수 있느냐? 나도 앞으로는 스님처럼 불교를 믿고 싶다.
나의 말을 들은 스님께서는 크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야.임마 천주님은 그런 만화같은 일을 하는 분이 아니다. 현철이가 이런 아픔을 통해 더욱 성숙해져서 더 큰 시련도 이겨낼수 있는 지혜와 힘을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천주님의 사랑이나 부처님의 자비나 모두 한 보따리에 있는 것이니 종교를 바꿀 생각은 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는 지금도 가토릭 신자로서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다.
초당대학교 군사학과 교수인 김현철은 스님께서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로 가신뒤에는 한번도 뵙지 못하고 오늘에사 소식을 듣고 다비장에 왔다고 목이 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