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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경에 대한 올바른 접근
2.1 성경에 대한 그릇된 접근 - 성경에 대한 오해.
2.1.1 인간의 행위를 강조하는 도덕적 책으로 오해되어 왔다.--율법주의
기독교 역사 가운데 오랫동안 성경을 도덕적 책으로 오해한 경우가 많았다. 즉 성경의 말씀을 성도생활의 도덕적 규범으로 이해하는 경우이다. 특히 구약의 율법을 성도의 도덕적인 규범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되면 성경에서 생명과 복의 근원이 되는 그리스도가 사라진다. 그 결과 성도 생활은 복음의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고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 율법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가 성취하실 언약으로서 신약의 성도에게는 성령께서 성취하실 사랑의 법이다.
2.1.2 세속적 복을 받는 책으로 왜곡되기도 했다.--세속주의
두 번째 성경의 오해는 성경을 세속적인 복을 받는 비결이 담긴 책으로 오해해온 경우이다. 성경의 신령한 복(엡 1:3)은 세상에 속한 복의 내용이 아니다. 그것은 하늘에 속한 복으로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하나님나라의 복이다. 즉 죄인이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얻게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이다. 이는 인간의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세전 예정과 전적인 은혜에 의하여 주어진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3~7)
따라서 성경은 세상에 속한 세속적인 복을 약속한 것이 없다. 구약에 땅에 속한 복을 약속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모형적이고 그림자적인 차원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될 신령한 복의 모형일 뿐 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복은 그리스도안에서 주어진 신령한 하나님 나라의 복을 증거한다.
2.2 올바른 접근 -- 계시적 접근
# 성경은 “성경전체의 구조와 주제”를 알 때 본래의 계시적 진리를 알 수 있다.
성경은 원칙적으로 한권의 책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여러 권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원칙적으로 의미상 한 주제를 다룬다. 구약과 신약을 언약과 성취의 논리적 구조를 가진다. 이를 통해 언약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계시하신다. 구약은 여호와 하나님이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증거하신다. 신약은 오신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다. 따라서 의미상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통일성을 가진 책이다. 이렇게 이해할 때 복음을 복음답게 알 수 있다. 즉 성경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의미를 가진 책이며 그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이 살아있으며, 어떠하신 분이신가를 계시하신다. 언제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신다.
성경은 전체의 큰 그림을 알고 나면 쉬운 책이다. 그러나 전체의 큰 그림을 알지 못 하게 되면 매우 어려운 책이다. 이는 눈먼 사람이 코끼리를 만지는 비유에 해당한다. 눈먼 장님이 코끼리의 부분은 만지고서 그것을 코끼리의 모습이라고 강하게 주장 하면 할수록 코끼리의 진정한 모습과 의미는 왜곡될 것이다. 성경의 계시적 진리는 성경 전체의 구조와 주제를 올바르게 이해할 때이다.
# 중간 결론
성경은 오해되어온 책이다.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성경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점이며, 둘째는 성경을 부분적으로 대하는 문제점이다.
성경은 세상의 어떤 책과도 다르다.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의 책이다. 이는 죄인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 쓰였다. 그러므로 죄인 심령으로라야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마음의 눈을 열려주셔야 가능하다.
또한 성경의 전체 그림과 주제를 올바르게 확인하는 것 이야 말로 너무도 중요하다. 성경은 66권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의미상 한 권의 책이다. 오직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하나님이 여호와 되심을 드러낸다. 그 안에 죄인을 향한 구원과 하나님 나라가 있으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속성의 영광이 드러난다. 성경은 도덕책이 아니며 세상의 복을 약속하는 책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나라 복음이 담겨 있고,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다. 성경의 복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의 영광을 계시하신다. 이를 증거하는 것이 이번 강의의 핵심이다.
3. 구약 역사서에 계시된 하나님
위에서 밝힌 대로 성경은 언약과 성취를 계시원리로 한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언약 성취의 원리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속성을 계시하셨다. 구약의 모든 언약은 장차 언약의 자손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하심으로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신다. 특별히 구약의 역사서는 이 계시원리가 역사 가운데 잘 드러난다. 그래서 성경에 역사서가 먼저 나온다.
이번 강의는 구약 역사서 전체를 개략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먼저, 왜 구약에 역사서가 먼저 나오는지, 그 중요성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두 번째, 구약의 역사서에 나타나는 언약들을 확인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구약은 어떻게 신약과 연결되는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3.1 구약 역사서의 중요성
구약의 역사서는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방편이다. 성경의 역사는 일반적인 역사와는 완전히 구분된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계시역사’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위대한 속성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역사는 단순히 인간들의 행위와 사실들을 기록해 놓은 결과물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언약이 역사를 통해 성취되게 하심으로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심을 드러내실 때 역사의 방식을 사용하시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역사적 사실을 통해 명료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어김없이 시공간의 객관적인 역사가운데 성취시키신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시며 살아계신 분이심을 확증하신다. 이점에서 언약이 역사를 통해 성취되는 것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이신 하나님을 가장 확실하게 계시하시는 방법이다.
또한 하나님은 죄인들의 한숨과 고통으로 가득한 역사의 현장에 찾아오신다. 하나님은 죄인들의 신음과 절망의 역사적 상황에 함께 하신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처소인 성전이 되신다. 죄악과 어둠으로 가득찬 역사 속에 생명과 빛으로 찾아오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을 실현하는 무대요 거룩한 현장이다. 역사서는 이를 가장 잘 보여준다.
하나님은 죄악과 고난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나라 복음을 깨닫게 하신다. 그러므로 역사는 가장 기본적인 하나님의 계시 방편이다. 이 때문에 역사서는 구약에서 가장 먼저 나온다. 이런 역사서는 그다음 나오는 시가서의 찬양을 만드는 토대가 된다. 이는 지혜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놀라운 계시 방법이다.
3.2 역사서의 언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시되 언약의 방식으로 행하신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다음, 6일째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담에게 명령의 방식으로 최초의 복을 베푸셨다.(창 1:28) 우리는 이 복을 언약이라고 해석한다. 이것이 영원하신 하나님이 역사 내에 처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인 아담에게 자신을 계시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이를 ‘하나님나라 언약’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언약이다.
첫 아담에게 하신 하나님나라 언약은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에게 계승되었고, 궁극적으로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최종 성취된다. 이 강의에서는 구약에 나타나는 여섯 가지 언약들, 즉 아담언약, 노아언약, 아브라함언약, 모세언약, 다윗언약, 새언약을 살펴보기로 한다. 구약의 모든 언약들의 근거로서 창세전 작정과 예정(창세전 영원한 언약)에 기초한다.
3.2.1 아담언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
하나님이 아담과 맺은 언약은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창 1:28이며 둘째는, 창 2:16~17이다. 셋째, 창 3:15이다. 세 가지 아담언약은 이후에 나오는 모든 구약언약의 원형이다. 창 1:28은 하나님나라 언약이며 창 2:16~17은 하나님나라의 통치법으로서의 율법언약이다. 창 3:15은 아담 타락이후에 주신 구속언약이다.
첫째,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은 언약(창 1:28)은 하나의 나라를 이루는 세 가지 요소를 담고 있다. 즉 자손번성, 땅정복, 만물통치이다. 그래서 이를 “하나님나라 언약”으로 부른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아담을 창조하셨다. 아담은 그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왕적 권한을 가진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에게 복을 베푸셨다. 그 복의 내용이 하나님나라이다. 이는 창 2장의 에덴동산에서 역사적으로 성취된다. 첫 아담은 장차 신령한 하나님나라를 다스릴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의 모형적 인물이다.
두번째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은 언약은 창 2:16~17에 나타난다. 즉 선악과 율법언약이다. 이 언약 역시 하나님의 명령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명령을 어길 때 죽게 될 것이라는 선언이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6~17)
이는 하나님나라 언약이 실현되는 에덴동산에서 주어진 하나님나라의 율법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나라의 통치법으로서 율법언약이다. 한 나라에는 나라의 정체성과 통치이념을 밝히는 헌법이 존재하듯이, 하나님나라에도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방법으로서의 통치법이 있다. 그것이 에덴동산에서 주어진 선악과 율법이다. 이 율법언약은 창 3장에서 역사적으로 성취된다. 모형적으로는 모세언약에서 나타나고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가 성취할 것이다.
창 2장에 나오는 율법언약은 선악과와 생명과, 둘 다를 포함한다. 선악과는 먹으면 죽게 됨을 의미한다. 반대로 생명과는 먹으면 살게 되는 나무이다. 에덴에서의 하나님의 명령은 표면적으로는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 율법이 나온다. 그 명령을 어기면 죽게 될 것이라는 선언이다. 그러나 심층적으로 볼 때, 율법언약은 먹으면 살게 되는 생명과를 포함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사망과 생명 모두를 주관하시는 통치자요 심판자이심을 드러내신다. 하나님께는 빛과 어둠이 일반이다.(시 139: 12) 하나님은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시려고 사망 가운데 두신 것이다. 이점에서 에덴 동산은 성전의 원형이다. 성전은 죄와 사망의 권세아래 있는 언약 백성에게 생명과 빛을 전달한다. 이점에서 에덴동산은 이후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이 되는 성전의 기원이 된다.
타락이전 아담에게 주신 두 가지 언약은 성경 전체를 이끌고 가는 복음의 계시적 원리를 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창 1~3장에 나오는 언약의 복음을 원형이라고 부른다. 전자(창 1:28)는 하나님나라에 관한 언약이며 후자(창 2:16~17)는 그 나라의 통치법으로서의 율법언약이다. 후자는 전자의 하나님나라 언약에 포함된다.
요컨대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나라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은 그 과정에서 통치법인 율법언약을 사용하신다. 통치법은 사망과 생명의 원리를 모두 포함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사망과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나라의 통치자이시다. 하나님은 선악과율법을 통해 인간을 불순종하는 가운데 가두시고, 인간이 불의함을 드러내신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언약백성을 의롭다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 여호와는 사망과 생명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실 뿐 아니라 불의와 의를 주관하시는 심판자이시기도 하다. 이 모두는 장차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고 삼 일만에 살아나실 주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는 언약의 말씀이다.
창 3장에는 아담의 타락과 구속의 언약이 나타난다. 아담은 타락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통치권을 상실하고 그 결과 하나님나라의 안식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장차 여자의 후손을 보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함으로써 사단의 권세를 부수게 될 것을 약속하셨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단의 노예상태로부터 구속해 낼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이점에서 구속언약이라고 말할 수 있다. 로마서의 다음과 같은 말씀은 이를 확증하고 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롬 16:20)
다시 말해, 구속은 하나님나라의 통치권의 회복이라는 큰 맥락에서 정당하게 설명된다. 구속은 오직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다. 즉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치르심으로 이루어진다. 궁극적으로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의 신실성과 사랑을 확증한다.
더 나아가 아담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즉, 생명)라고 부름으로써 모든 산자의 어머니가 됨을 선포하였다. 이는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죽은 자기 백성, 즉 자기 신부를 살려내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을 예표한다. 그 후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힌다. 이는 장차 그리스도가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고 살아나심으로 그리스도로 옷 입게 하실 것을 모형적으로 보여주신다. 즉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죄악을 덮어 용서해주실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에서 추방시키신다. 이는 깊으신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의 섭리이다. 영적으로 죽은 아담이 만약 생명나무의 열매, 즉 생명과를 먹는다면, 죽은 상태로 영원히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이 스스로의 힘으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하시려고 에덴에서 추방시킨 것이다. 아담의 추방은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깨닫고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나님 여호와는 영적으로 죽었던 아담에게 에덴에서 추방시키지만 다시 회복시키신다. 하나님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아담(엡 2:1)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 자신의 살과 피를 영생의 양식으로 주실 것이다. 이는 새하늘과 새땅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히 먹게 될 생명나무의 열매(생명과)이다.
창 1~3장은 성경 전체의 하나님나라 복음의 원형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나님나라 언약을 맺으시고 역사가운데 그대로 성취하심으로 하나님이 여호와 되심, 즉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위대하신 속성을 드러내신다. 하나님나라 언약으로서의 아담언약은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에게 그대로 계승된다.
3.2.2 노아언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
아담의 타락 후 전 인류가 죄악가운데 있는 중에 하나님은 노아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언약을 맺으신다. 이것이 노아언약이다. 하나님이 노아와 언약을 맺는 역사적 상황은 창 6장에 잘 나타난다.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한 것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창 6:6). 하나님은 죄악 중에 살아가는 인류를 홍수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는 이미 아담과 맺은 언약 때문에 심판은 하시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을 반드시 구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홍수 심판 선언 후에 노아와 언약을 맺으실 것을 말씀하신다(창 6:18).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창 6:17~18)
이 같은 노아언약은 아담 타락이후 모든 인류가 범죄하였어도 아담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신실하게 성취됨을 보여주신다. 이점에서 노아언약은 아담언약을 신실하게 계승하는 언약이다. 이 언약 때문에 노아는 홍수심판에서 구원을 얻는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홍수 심판을 행하시고 그 가운데서 노아 여덟 가족만을 살리신다. 그들은 홍수 심판에서 구원을 얻고, 노아는 하나님께 번제를 통해 제사를 드린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 8:20~22)
이는 나중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죄한 이후에 언제나 나타나는 제사제도의 최초의 모습이다. 인간이 죄를 범한다하더라도 하나님의 언약은 제사제도, 즉 속죄의 과정을 거쳐 신실하게 이루어진다.
홍수심판 이후 하나님은 실제 노아와 언약을 맺으신다(창 9장). 이 언약은 이미 아담과 맺은 언약과 동일한 형식의 언약이다. 즉 두 번째로 주어지는 하나님나라 언약이다. 이 때의 언약은 타락 후에 주어지는 모형적 언약이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창 9:1~2)
이상의 노아언약은 아담언약과 내용이 동일하다. 약간의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원리는 동일하다. 하나님은 아담처럼 노아에게도 복을 베푸실 것에 대해 언약하신다. 그 복의 내용은 자손, 땅, 통치의 의미가 들어 있는 하나님나라 언약이다. 아담 타락이후에 맺은 노아언약은 모형적 차원의 언약이다. 이 역시 장차 그리스도가 성취하실 실체적인 하나님나라를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노아언약은 아담의 타락이후에도 하나님께서 은혜언약으로서 아담과 맺으신 하나님나라 언약은 폐기되지 않음을 확증한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범죄한 언약백성을 여전히 사랑하시는 여호와이심을 계시하신다.
3.2.3 아브라함 언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
아브라함언약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기 위하여 아담언약과 노아언약 이후에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다. 아브라함 언약은 아담과 맺은 원형적 하나님나라 언약을 계승한다. 이는 모형적 하나님나라인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언약이다.
하나님께서는 전 인류가 홍수 심판을 거치고서도 여전히 죄악 가운데 있는 상황에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다. 창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은 인간 죄악의 극치를 보여준다. 즉 홍수 심판을 거치고도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죄인된 인류는 하나님의 영광을 저버리고 인간 자신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간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1~4)
하나님은 바벨탑을 쌓았던 그들을 온 땅에 흩으신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숭배하며 살아가는 죄인인 아브라함에게 찾아가신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실 것이며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1~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의 나라인 이스라엘 나라를 세워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이스라엘나라는 구약 역사에서 나타나는 모형적 하나님나라이다. 이 언약은 원형으로 주어진 실체적 아담언약의 계승이다.
이 약속에 근거하여 15장과 17장에 구체적으로 세 가지 언약을 하신다. 세 가지 언약이란 아담에게 하신 언약의 내용과 동일하다. 즉 자손, 땅, 통치자에 관한 것이다. 첫째, 창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손에 대한 언약을 맺으신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4~5)
이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99세가 되고 사라가 90세가 되어 도저히 자손을 낳을수 없는 상황까지 인도하신다. 이는 자손언약의 성취가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불가능함을 보여주신다. 즉 아브라함에게서 자손이 생겨나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말미암음을 보여준다.
둘째,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실 것에 대해 약속하신다. 아브라함이 땅에 대한 약속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하나님께 묻는다. 하나님은 제물들을 쪼갤 것을 명령하시고 쪼갠 것 사이로 횃불이 지나가게 하신다. 이는 타는 횃불로 상징되는 여호와 하나님이 홀로 이루실 것에 대한 증거이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에 관한 언약을 하신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창 15:18~21)
셋째, 창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면서 그에게서 앞으로 왕들이 나타나게 될 것을 언약하신다.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창 17:4~6)
이처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왕이 나올 것을 언약하신 다음 언약의 징표로서 할례를 받게 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에게도 나타나서 그녀에게서 왕들이 나올 것을 다음과 같이 언약하신다.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창 17:16)
이처럼 아브라함 언약은 한 나라의 세요소인 자손, 땅, 통치(왕)에 대한 약속을 포함한다. 이는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다. 이는 이스라엘 나라는 “모형적인 하나님 나라”로서 장차 언약의 자손, 그리스도가 성취할 하나님 나라를 미리 보여준다. 이를 통해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속성의 영광을 계시한다.
3.2.4 모세언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
모세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언약이 성취되는 과정에 주어진 언약이다. 따라서 모세언약은 그 이전에 주어진 아브라함 언약과 무관하게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언약대로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시되 그 백성들을 애굽 땅으로 인도하시는 섭리를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애굽 땅에서 결코 해방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켰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킨 후 광야로 이끌어 내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 있는 시내산까지 인도하시고 그곳에서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한 백성, 혹은 제사장 나라가 됨을 말씀하셨다. 제사장 나라는 이스라엘 나라의 새로운 정체성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음과 같이 “제사장 나라”라고 규정해주셨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살아가던 백성들을 제사장 나라, 혹은 거룩한 백성을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제사장나라로 세우시고 통치하신다. 제사장 나라라는 것은 하나님이 율법이 규정하는 제사제도를 통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는 제사가 이루어지는 성막을 중심으로 통치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를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다음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다. 모세가 받은 율법 언약의 체결 방식은 출 24장에 잘 나온다.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 24:3~8)
이와 같이 모세언약은 피로 세운 언약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겠다고 응답하지만 얼마 못가서 지킬 수 없음을 보여준다. 모세가 하나님께 율법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간 사이에 그들은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악을 저지른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결코 지킬 수 없음이 증명된 셈이다.
언약 체결당시에 백성에게 뿌린 언약의 피는 생명을 상징한다. 이는 장차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피를 흘려 생명을 대속해 주실 것을 예표한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코 지킬 수 없으며 장차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음으로써 성취한다. 따라서 율법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될 언약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율법언약이라고 한다
이 같은 율법언약으로서의 모세언약은 이스라엘 나라를 통치하기 위한 방법이다. 즉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통치법이다. 세상의 나라에도 다스리기 위한 헌법이 있듯이 이스라엘 나라에도 나라의 통치법으로서 율법이 있다.
모세가 받은 율법은 “계명, 법규, 그리고 규례”로 이루어진다. 첫째,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이스라엘 나라의 근본적인 통치 원리를 가르쳐주신다. 둘째, 법규(개역성경은 ‘율례’로 번역됨)는 배상법과 동해보복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그 나라를 통치하는 원칙으로서 정의를 가르쳐 주신다. 정의란 행위대로 갚는 원칙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규례는 제사제도와 관련한 법이다. 규례에 들어있는 성막에서의 제사법을 통해 하나님나라의 용서와 사랑의 법을 가르쳐주신다.
먼저,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의 기본법인 십계명을 주신다. 십계명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임을 천명한 셈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십계명 앞에서 죄인임이 드러나며 스스로의 힘으로는 거룩한 나라를 세워갈 능력 없음이 확증되었다. 두 번째 법규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정의의 원리이다. 법규에 의하면, 범죄한 행위대로 배상해야하며,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동일하게 갚아야 한다. 이런 정의의 법대로 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결코 살아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으로 드러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사제도인 규례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신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정의로운 법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값대로 죄인들로 드러나며 사망의 선고를 하지만, 규례를 통해서 속죄와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다. 규례에서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성막이다. 성막은 회막이라고도 한다. 즉 죄인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이다. 출애굽기 후반부터 레위기 전부가 이와 같은 제사법에 관한 규례이다.
위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은 거룩한 계명을 통해 제사장 나라의 거룩한 이상을 드러내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계명 앞에 그들의 죄가 드러나며 정의로운 법규에 의해 죄의 심판이 확정된다. 그러나 사죄의 은혜를 담고 있는 규례의 제사제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오게 하신다. 하나님은 성막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시고 용서하신다. 한 마디로 말해 이스라엘 나라는 성막을 중심으로 하는 제사장나라인 셈이다. 이 같은 제사장나라의 통치의 방법이 율법언약이다.
구약에서의 율법언약은 장차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될 것이다. 장차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려 오셨다. 그리스도가 세우시는 하나님나라는 구약의 율법을 성취하는 방식으로 이루신다. 하나님은 때가 차매 그리스도를 율법아래 나게 하사 율법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신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하나님나라의 왕이신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대로 세속적인 힘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으시고 율법아래 오셔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아 죽으신다. 그리고 삼 일만에 부활하사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롭다 하신다. 이 같이 그리스도는 율법언약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하나님나라를 성취하신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율법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잘 지켜서 의롭다함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율법, 특히 계명을 주심은 모든 인류가 선악과를 먹고 이미 죄인이 되어 있음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19~20)
더 나아가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죄를 폭로하시고,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하신다. 이는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게 하려함이라고 증언한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롬 5:20~21)
결론적으로 율법언약으로 규정되는 모세언약은 하나님나라의 통치법이다. 하나님은 구약에 율법을 통해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린 것처럼 신약에 와서는 율법을 성취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나라를 통치하신다. 즉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저주받아 죽으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롭다하시려고 살아나신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된다. 그리스도는 언약 백성의 죄를 걸머지시고 하나님의 정의로운 법규대로 정죄의 심판을 받는다. 이는 십자가상에서 이루어지는 대속의 죽음이며 이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참 성전이 되신다.
3.2.5 다윗언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삼하 7:8~17)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대로 이스라엘나라를 세워주셨다. 이스라엘 나라의 절정의 모습이 다윗왕국이다. 하나님은 유다지파에서 난 다윗을 통해 다윗 왕국을 세우신 후 다윗 생전에 성취될 약속을 다음과 같이 하신다.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삼하 7:8~11)
이 약속은 첫째, 모든 원수를 멸하게 함으로 다윗의 이름이 위대하게 될 것이며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안전히 거주하게 될 것이고, 셋째, 참 안식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장차 다윗보다 우월하신 왕 중의 왕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로 승리하심으로 모든 사단 권세를 멸하신다. 이를 통해 언약백성으로 하여금 죄악으로부터 참 안식을 얻게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하는 하나님나라는 죄로부터 해방된 안식의 나라이다.
더 나아가 세워진 다윗 왕국이 영원히 견고하게 될 것을 다음과 같이 언약하셨다. 말하자면 다윗언약은 다윗 왕국의 영원성을 보장하는 언약이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 7:13~16)
위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세워진 다윗왕국이 앞으로도 보존되며 견고하게 될 것이라고 다윗과 언약을 맺으셨다. 하나님은 다윗왕가의 왕들과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보신다. 이것처럼 견고하고 친밀한 언약관계는 없다. 따라서 다윗왕의 후손들이 나중 범죄 할 때 하나님은 아비가 자식에게 하듯이 사랑의 징계를 하신다. 그러나 그들을 아주 멸망케 하시지는 않으시고 그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다윗언약의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은 그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짓게 하실 것이라는 내용이다. 본래 다윗 왕국이 든든히 선 이후 다윗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지어드릴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제안을 거절하시고 나단 선지자를 통해 그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지으실 것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삼하 7:12~13)
위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다윗이 성전을 지어드리려는 제안을 거절하시고 그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짓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이런 다윗언약의 내용은 매우 중요한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다. 열왕기상하나 역대기상하는 다윗언약대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짓게 되는 성전 건축에 대해 자세하게 증언하고 있다. 솔로몬은 자신이 성전을 건축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다윗언약대로 성전이 지어졌음을 보고한다.
내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그러나 너는 그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허리에서 나올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셨도다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일어나 이스라엘 왕위에 앉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내가 또 그 곳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넣은 궤를 두었노라 하니라(대하 6:7~12)
이처럼 다윗의 아들을 통해 성전이 건축될 것이라는 것은 다윗언약의 핵심 내용이다. 솔로몬 성전은 여호와의 이름의 영광을 드러내는 장소이며 언약대로 세워진 이스라엘나라가 영원히 존속할 것에 대한 확실한 징표이다. 성전이야말로 이스라엘나라가 하나님의 은혜로만 존속하는 제사장나라가 됨을 증거한다.
이 같이 다윗 언약에 나오는 성전의 주제는 그리스도안에서 온전히 성취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나라의 왕이면서 동시에 성전이 되신다.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시되 자신이 십자가에서 영원한 제물이 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참 성전이 되신다. 요한복음의 다음의 말씀은 이를 증언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2: 19~21)
이는 다윗언약의 실체적 성취이다. 다윗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는 부활을 통해 참 성전이 되신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건물성전은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온전히 성취되었다.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오심으로 성도들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신다. 새하늘과 새땅에서도 하나님과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가 성전이 되심을 증언한다.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계 21:22)
이를 통해 보건대 다윗 왕국과 솔로몬 성전은 별개의 의미가 아니다. 양자는 다윗 언약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계시의 방편들이다. 신약에 와서는 한분 그리스도안에서 통합적으로 성취된다. 그리스도는 다윗보다 크신 왕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실 뿐 아니라 솔로몬보다 크신 분으로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참 성전이 되신다. 그리스도는 다윗언약의 진정한 성취자이시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고 나서 간절히 기도한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중에 범죄하여 성전을 향해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서 용서해주실 것을 간구한다.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그들이 주께 범죄하므로 주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적국에게 넘기시매 적국이 그들을 사로잡아 땅의 원근을 막론하고 끌고 간 후에 그들이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들을 사로잡은 자들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패역을 행하며 악을 행하였나이다 하며 자기들을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과 주께서 택하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보시오며 주께 범죄한 주의 백성을 용서하옵소서(대하 6:36~39)
하나님은 다윗 이후의 이스라엘 왕들의 연약성을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그들은 이후의 역사에서 다시 범죄하게 될 것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그들이 범죄하며 어리석음에 빠지게 될 때 다시 용서받고 회복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다윗언약 안에 솔로몬 성전 건축을 약속하셨다.
실제 솔로몬 왕은 그의 말기에 다시 범죄하게 된다. 그 후 이스라엘 나라가 분열 된다. 분열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모두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범죄를 저지른다. 우상을 숭배하며 강대한 이방대적을 의지한다. 그래서 다윗 왕조를 떠난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아주 망한다. 그러나 다윗 왕조를 계승하는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일시적으로 망하지만 다시 돌아와 회복된다.
이것이 영원히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할 것이라는 다윗언약의 성취이다. 남 유다는 70년 포로이후 다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한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어리석게 범죄했지만 다윗언약의 중요한 측면인 성전에서 용서를 구하며, 하나님은 성전제사를 통해서 그들을 용서하신다. 다윗언약에 근거한 솔로몬의 기도가 성취된 것이다.
이같이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다윗언약은 장차 오실 영원한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된다. 그리스도는 왕으로 오시지만 그는 마침내 십자가 죽음으로써 영원한 제사직분을 수행하실 것을 예고하신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다음과 같이 기도하신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1~17)
그리스도는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이시다. 위에 인용한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기도는 대적들이 존재하는 세상가운데 있는 제자들을 진리로 보존케 해달라는 것이다. 이 같은 그리스도의 기도는 마침내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오심으로 성취된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모두 흩어진다. 그러나 오순절에 성령이 오심으로 제자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게 된다. 제자들은 진리 안에 하나되어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게 된다.
요약하자면, 다윗언약은 아브라함언약의 성취인 다윗왕국이 영원하게 견고하게 될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 있다. 그 약속 안에는 성전사상을 담고 있다. 성전이야 말로 범죄하는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회복의 근거이다. 다윗 이후 왕조가 여전히 범죄하게 될 것이지만 성전은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 용서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수 있는 장치이다. 이것이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변함 없는 사랑이시다. 이런 다윗 언약은 그리스도안에서 온전히 성취된다.
3.2.6 새언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
구약에 나오는 마지막 언약이 새 언약이다. 새 언약은 구약의 마지막 언약이면서 동시에 신약으로 이어지는 매우 중요한 언약이다. 새 언약이 주어지는 배경은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파괴당하는 멸망의 시점이다.
솔로몬 이후 나라가 분열되었고, 먼저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했다. 남 유다는 북이스라엘보다 여러 해를 더 존속하지만 여전히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결과 바벨론에 의해 침공당한다. 바벨론에 의한 나라와 성전 파괴의 참혹한 현실을 눈으로 목도한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남 유다의 범죄를 고발한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
남 유다는 우상을 숭배하며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완전히 저버렸다. 이 같은 남 유다의 범죄를 보면서 예레미야는 이전의 언약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언약을 언급한다. 그것이 새 언약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1~34)
위의 말씀대로 새 언약은 시내산에서 주신 옛 언약과 다른 차원의 언약이다. 그것은 돌비에 새긴 언약이 아니라 심비에 새겨질 언약이라는 것이다. 새 언약은 옛 언약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다. 옛 언약이나 새 언약은 모두 동일한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이다. 단지 새 언약은 옛 언약의 진정한 성취로서 옛 언약의 방식과는 다른 차원일 뿐이다.
옛 언약인 시내산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제인 것이다. 그들은 죄인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옛 언약을 지킬 수 없다. 아무리 거룩한 언약을 받았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언약을 지킬 능력과 지혜가 없다. 그래서 범죄하게 되며 그 때문에 바벨론에 의해 파멸되게 된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연약성과 무능력을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로운 차원의 언약을 주신다. 하나님의 법, 혹은 진리가 돌비에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기록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다. 더 나아가서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이를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인용하여 증언한다.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히 8:7~13)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는 새언약의 성취자로 오셨고 성령을 보내심으로 성도의 마음에 법을 새겨 하나님을 알게 하며 경외하게 하신다고 하신다. 옛 언약의 방식으로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길 수 없기에 새언약의 필요성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도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고후 3:6~8)
이처럼 새언약은 율법 조문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영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새언약은 신약의 성도의 마음에 진리가 새겨지고 깨닫게 하시는 사역이다. 그리스도는 새언약의 성취사건이시며 이는 성령을 통해 성취될 것이다. 성령이 오시면 진리가 율법의 조문으로 외부에서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진리가 새겨지고 깨닫게 하셔서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게 하신다. 결론적으로 새언약은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성도의 마음속에 역사하는 진리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의 영광을 계시하신다.
# 이 장의 결론
구약의 역사는 일반적 역사가 아니다. 구약의 역사는 하나님이 어떤 분 이신가를 드러내는 계시의 역사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언약의 방편을 사용하신다. 즉, 하나님의 자신의 존재와 속성을 계시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언약을 맺으시고 역사가운데 성취하신다. 이점에서 구약의 역사는 언약적 역사이다.
하나님은 창조 후 아담과 언약을 맺으신다. 이때 하나님은 명령의 방식으로 복을 베푸신다. 그것이 자손, 번창, 땅 정복, 만물 통치이다. 이는 한 나라를 구성하는 삼요소이다. 그러므로 이 언약을 우리는 하나님 나라 언약이라고 부른다. 아담의 하나님 나라 언약은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에게 자세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른바 이스라엘 나라를 세워주시겠다는 언약이다. 이는 모형적 하나님 나라에 관한 언약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언약 이후 이스라엘 나라의 통치법으로서 모세의 율법언약을 주신다. 이것이 시내산에서 주신 언약의 말씀이다. 이후 하나님이 세우시는 이스라엘 나라는 율법의 통치를 통해 이루어지는 제사장 나라이다. 그 후 하나님은 다윗언약을 통해 나라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게 될 것을 언약하신다. 마지막으로 구약의 옛 언약과는 차원이 다른 새언약을 주신다. 새언약은 장차 그리스도가 오시고 성령이 오셔서 진리를 신약의 성도의 마음에 새겨 하나님을 자발적으로 경외하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결론적으로 구약의 역사서는 언약-성취의 역사로서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목적한다. 즉 하나님이 언약을 신실하게 성취하시는 여호와 되심을 증거한다. 달리 말해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계시하신다. 이 모든 구약의 역사 섭리로서의 언약은 장차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실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구약의 언약대로 이 땅위에 하나님나라를 성취하심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속성의 영광을 계시하신다. 이를 깨닫게 경외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이다.
4. 신약과의 연결성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