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버지니아울프를 두려워하랴 / 허 열 웅
‘사랑한다’는 말이 넘쳐나는데 세상은 왜 이리 갈등과 반목이 많은지 모르겠다. 여자가 남자와 행복하게 살려면 반드시 최대한 많이 그 남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사랑은 조금만 해야 된다, 남자가 여자와 편안하게 살려면 그녀를 많이 사랑하되 절대 그녀를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여자는 결혼 후 남자가 변하길 바라지만 남자는 변하지 않는다. 남자는 결혼해서 여자가 변하지 않길 바라지만 여자는 변하게 되어 있다.
사랑은 인격체로서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아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인격이나 인성으로 그 사람이 갖추고 있는 장점을 발견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상대를 자기와 비교하게 되는 경우 사랑은 이미 식어가고 있을 느껴야 한다. 전 세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영국 촬스 황태자와 평민 출신 다이에나의 결혼 생활, 우리나라 삼성가의 맏딸 B양과 평사원 출신 L씨, S,K기업 사장 아들과 대통령 딸 N의 파경은 이미 예고된 사랑의 종말이었다. 세 쌍 전부가 신분이나 재력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일종의 과대평가의 감정을 수반한다. 한마디로 말해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에는 상대방이 일종의 유일신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소중하다고 생각해왔던 부모, 친구, 심지어 조국마저도 그들 눈에는 들어올 리가 없다. 이렇듯 뜨거웠든 사랑이 언제 떠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기를 알 수 있는 감지할 때가 있다. 상대방이 더 이상 내 삶에서 주인공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비교 가능한 사람이 되는 순간이다.
사랑의 비극은 미움으로 변할 때이다. 사랑에 수반되었던 ‘과대평가’의 감정은 이제 멸시의 감정으로 변하게 된다. 과대평가가 상대방을 이세상의 유일한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감정이라면, 멸시는 상대방을 평범한 사람보다도 못한 사람, 한 마디로 무가치한 사람으로 만드는 감정이다. 남들이 평가하는 것 이하로 여겨지는 시기다.
눈에 씌웠던 콩깍지가 벗어지기 시작하면서 부와 권력을 갖고 있던 한 쪽에선 인격의 비교가 아닌 신분의 비교가 떠오를 것이다. 그 동안 그들이 기대한 미모나 서민적 참신함은 몇 년이 지나고 보니 별것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는 순간 과대평가했던 것들이 무너지고 멸시의 감정으로 변하게 된다. 이와 비슷한 미국 영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서 보여주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극작가가 ‘에드워드 올비의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비롯한 5개 부분에 수상하여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였다.
대학 총장 딸과 결혼한 그 대학교 교수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다. 주인공 조지와 마사는 금슬이 좋은 듯 하면서도 서로를 향해 독기 어린 말을 거침없이 내뿜는 특이한 중년 부부다. 사학과 교수인 조지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의 총장인 장인이 주최한 파티에 갔다 밤늦게 돌아오는 길에 마사가 자신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대학에 새로 부임한 생물학과의 젊은 교수 부부 닉과 하니를 집에 초대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불같이 화를 낸다.
그러나 마사는 조지의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닉과 하니가 찾아오자 반갑게 맞으며 조지를 무시하는 말들은 퍼붓는다. 처음엔 두 사람의 독기 어린 대화에 어쩔 줄 몰라 하던 닉과 하니는 술이 점점 오르자 거기에 동화되고, 마사와 닉은 마치 조지와 허니가 장님이라도 되는 양 서로에 대한 성적인 관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상황은 점점 더 극으로 치닫는다. 이<버지니아울프를 두려워하랴>는 워낙 연극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연기 공부하는 학생이나 배우는 다 봐야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연극의 원전, 미국 연극의 바이블, 에드위드 올비가 이 연극으로 퓰리처상 을 탈 정도로 거의 모든 연기 지망생들이 관람하는 공부용 텍스트 작품이라고 한다.
2020년 5월에 방영된 JTBC의 연속극 “부부의 세계”가 비지상파 드라마 시청률 신기록을 세웠다. 그만큼 부부관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는 증거다. 물론 불륜의 문제가 주요 줄거리였지만 이혼의 가장 많은 요인은 성격차이와 불륜에 따른 문제라고 한다. ‘삶의 대부분을 나누어 가진 부부 사이에 한 사람을 도려내는 건 내 한 몸을 내줘야한다는 것, 그 고통이 서로에게 고스란히 이어진다는 것, 부부간의 일이란 결국 일방적 가해자도, 완전무결한 피해자도 성립될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한 천주교 신부는 세상에서 가장 고된 수도 생활이 결혼일 수 있다며, 서로 다른 두 존재가 ‘나’ 나 ‘너’가 아닌 ‘우리’의 정체성을 만든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드라마는 ‘부부’라는 관계를 완전한 형태로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깨지기 쉬우며 깨진다고 끝나는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절실한 심리묘사로 이끌어 나갔다.
결국 평탄하게 부부로 오래 산다는 것은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내력도 성격도 다른 남녀가 고락苦樂을 함께하며 아주 조금씩 닮아가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말투, 얼굴까지 비슷해져간다. 서로의 결함과 상처까지도 받아들이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교감이 쌓이게 된다. 결혼은 일생을 함께 거는 아슬아슬한 게임일 수도 있다. 남녀가 3주 연구하고, 3개월 사랑하고 3년 싸움하고, 30년을 훌쩍넘게 참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