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을 언제부터 ‘삼신산’ 영주산으로 불렀을까?
조선 후기 17세기 들어 문헌과 고지도에 한라산에 영주산 표기 보여
제주도 한라산을 흔히 중국 전설 속의 삼신산 중의 하나인 영주산이라 부른다.
금강산을 봉래, 지리산을 방장산, 한라산을 영주산이라 한다.
이 세 산은 명실상부 명산 중의 명산이다.
하지만 실상 우리나라 고지도나 지리지에 삼신산으로 지칭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특히 한라산은 지리산이나 금강산보다 훨씬 뒤에 명산반열로 올라선다.
아마 육지 밖의 섬산이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고적편에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중략) 한라산 동북쪽에 영주산(瀛洲山)이 있으므로 세상에서 탐라를 일컬어 동영주
(東瀛洲)라 한다. (후략)’
한라산을 가리켜 영주산이라 명기한 최초의 기록이다.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에서는 오히려 변산을 영주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조선 중·후기 들어 한라산이 유산록에 등장하면서 명산반열로 올라선 것으로 보인다.
<탐라지> ‘김치의 유한라산기에 세상에서 말하는 영주산이 곧 한라산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이중환의 <택리지>(1751년),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에 잇달아 등장한다.
조선 전기 지도에서는 제주도나 한라산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중기부터 한라산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다가 조선 후기 들어 <여지도>, <팔도총도>, <지도서> 등에 한라산
옆에 ‘영주’라고 조그맣게 병기돼 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할 때 한라산이 삼신산 중의 하나인 영주산으로 불린 것은 불과 300여 년 전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지리산은 한라산보다 훨씬 이른 조선 초기부터 방장산으로 불리고 고지도에도 병기돼 나온다.
반면 우리나라보다 오래된 중국 역사서에는 한라산을 지칭했는지 알 수 없지만, 삼신산 지명이 몇 차례 언급
된다.
사마천 <사기(史記)>(B.C 100년 전후)에 ‘바다 가운데 삼신산이 있는데, 봉래·방장·영주라 한다’고 돼 있다.
역시 기원 전 역사서이자 신화집인 중국 <산해경(山海經)> 해내북경편에 ‘봉래산은 바다 가운데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말 전설 속의 산인지 실재하는 산을 확인하고 썼는지는 알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영주산이 한라산인지도 알 수 없다.
그리고 중국의 삼신산이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단지 지리산은 한라산보다 더 오래 전부터 방장산으로 불려 왔던 사실은 문헌상으로 파악된다.
영주산이란 명칭을 풀어 쓰면 ‘바다 가운데 있는 섬 산’이 된다.
조선 후기에 바다 가운데 있는 섬 산이라고 해서 한라산을 영주산이라 갖다 붙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측면이다.
또한 우리나라 삼신산은 조선 선비들의 유산이 본격화되는 조선 후기 들어 일반화된 사실을 문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따라서 한라산이 영주산으로 불리게 된 시기는 역사적 기록으로 볼 때 대략 1700년대 들어서부터라고 보는게
정확할 것 같다.
월간 山 [561호] (2016.07) [한국의 산신(山神)|<7>제주 한라산]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