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謝良佐,『上蔡語錄』,三卷(朱熹刪定),共125條
2026년 8월 21일
북송 신종(神宗) 연간의 왕안석 개혁을 놓고 찬반이 갈라서고 철종 연간에는 신구(新舊) 양당의 당쟁이 치열하였습니다. 장재, 소옹, 주돈이, 정명도의 활동 시기를 기준으로 보면 신종 연간에 성리학이 건립되었고 또는 정이천과 문인들이 소동파와 싸운 상황을 기준으로 보면 철종 연간에는 성리학이 확실하게 건립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정(二程 : 程明道, 程伊川)의 학술뿐만 아니라 이정 문하의 여러 학자의 학술 특징과 학술 주장의 변천 과정을 이해하려면 사량좌(謝良佐, 1050-1103)는 중요한 학자입니다. 사량좌는 이정 문하의 4대 문인 가운데 한 명이며 학생들이 학술에 입문할 때 계발(啓發) 역할이 뛰어났다고 평가받았습니다. 다시 말해 학생이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길을 찾아가도록 열어주는 좋은 선생님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그래서 청나라 황종희는 사량좌를 이정 문하에서 제일 뛰어난 학자라고 꼽았습니다. 더구나 남송 시기에 호안국(胡安國)과 호굉(胡宏) 및 장식(張栻) 중심의 호상학파(湖湘學派)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주희(朱熹, 1130-1200)는 62살(1191) 겨울에 지은 「사량좌 사당기(應城縣上蔡謝先生祠記)」에서 “어려서 학교에 다니면서 사량좌의 어록을 오랫동안 깊이 읽은 뒤에 공부하겠다(以發其趣)는 결심이 생겨서 학술에 입문하였다.”라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더구나 주희는 사량좌가 마음을 넓게 갖고 꺾이지 않고 꼿꼿하게 살았던(處之浩然,未嘗少挫) 행실을 보고 감명받았다고 찬양하였습니다. 주희가 62살 늙어서 병들고 가까웠던 벗들도 세상을 떠나 홀로 외로울 때 사량좌 선생의 학술과 유적이 사라질까 크게 걱정하였습니다.
주희는 어려서부터 사량좌의 어록을 읽고 이해하려고 무척 애썼습니다. 수없이 읽었으면서도 다시 꼼꼼하게 따져가며 가만히 생각하였습니다. 30살(1159)에 사량좌 어록을 교정하여 3편을 내놓을 때는 더욱 꼼꼼하게 읽고 따졌습니다. 처음 볼 때는 붉은색(朱筆), 두 번째에는 분필(粉筆), 나중에는 흑필(黑筆)로 표기하였다고 합니다. 주희는 어록을 몇 번이나 교정하는 동안에 소리 내어 읽었다(讀誦)고 표현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어록의 조목마다 내용이 마음에 저절로 떠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따져서 생각하였다(觀之)고 표현하였습니다. 주희는 사량좌 어록을 읽고 교정하는 데 정말로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주희가 사량좌를 어떻게 평가하였는지는 사고전서 「제요(提要)」에서도 상세하게 언급하였습니다. 『주자어류』를 보면 주희가 젊었을 때는 사량좌 학술이 불교를 닮아 선학(禪學)이라고 배척하였으나, 62살에 쓴 「사량좌 사당기」를 보면 그의 학술 특징 몇 가지를 잘 요약하여 칭찬하고 또 정명도를 가장 잘 계승하였다고 최고의 찬사를 썼습니다.
(如以生意論仁,以實理論誠,以常惺論敬,以求是論窮理,其命理皆精當,而直指窮理、居敬爲入德之門,則於夫子(明道)教人之法,又最爲得其綱領。)
주희가 젊었을 때는 여러 학자와 경쟁하면서 이기려는 마음(勝心)이 많았습니다. 현재 주희의 몇몇 서신을 보면 억지도 많이 부리고 고집도 지나쳤습니다. 늙은 뒤에는 다투던 벗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났고 홀로 남아 싸울 상대도 없어지자 많이 외로워하였답니다. 주희가 늙어서야 자신을 바라볼 때 누구와 비교하지 않게 되자 사량좌를 높이 재평가하였습니다.
북송이 멸망 당하고 남송이 건립되는 시기 소위 양송의 교체 시기(兩宋之際)에 전란 기간과 또 피난하여 남쪽으로 이주하는 동안에 북쪽 지역의 많은 서적이 분실되었습니다. 따라서 남송 시기에는 북송 시기의 서적을 구하여 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희가 사량좌의 어록을 몇 번이나 산정(刪定)하였습니다. 이순보(李純甫, 1177-1223)의 『명도집설(鳴道集說)』에 인용된 북송 학자들의 기록을 보면 금나라 점령지역에서도 여러 판본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현재 주희가 교정한 사량좌 어록을 다른 기록들과 비교하여 보면 고칠 곳이 더러 있습니다.
끝으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주희는 사량좌가 관심을 가졌던 지각(知覺)을 몹시 배척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주희는 사람들이 성즉리(性卽理) 본체를 충분히 이해하기를 바랐기에 격물치지를 설명하는 데 그치고 소위 인식론은 별로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는 결국 300년 뒤에 왕양명이 양지(良知)를 주장하여 정주학의 성즉리를 비판하고 성의와 격치 공부의 핵심 내용이 양지라고 제시하여 인식론 부족 문제에서 어느 정도 보완된 해결을 보았습니다.
왕양명은 48살(1519) 남창(南昌, 洪都)에 군사를 주둔하고 있었고 진구천(陳九川)이 북경에서 내려오다가 8월에 남창에 들러 인사하였습니다. 진구천은 왕양명 선생께 건의하였는데 성의(誠意) 공부에 앞서 격치(格致) 공부가 있어야 하는데 격치 공부에서 지각(知覺)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때 왕양명이 진구천의 건의를 받아들였으나 그다지 주의하지 않았고 49살 추석에 강서성 감주(贛州) 통천암에서 학생들과 끝장 토론을 거친 뒤 50-52살에야 널리 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傳習錄』,201條︰
(陳九川)己卯(1519)歸自京師,再見先生於洪都(南昌)。……九川曰:“後又體驗,覺得意之誠偽,必先知覺乃可,以顏子有不善未嘗知之,知之未嘗復行爲證,豁然若無疑。”先生曰:“指意之靈明處謂之知。……去其人欲而歸於天理,則良知之在此事者,無蔽而得致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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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四庫提要」
2、「德安府應城縣上蔡謝先生祠記」(朱熹)
3、『上蔡語錄』,跋文(3篇)
4、『上蔡縣志』,卷十四,「藝文」,七十八,跋文(3篇)
4-1、「書謝上蔡語錄後」(宋、朱熹)
4-2、「謝顯道語錄跋」(宋、胡憲)
4-3、「書謝顯道先生語錄後」(楊宏)
1、「四庫提要」︰
『上蔡語錄』三卷,宋曾恬、胡安國所錄謝良佐語,朱子又爲刪定者也。
良佐字顯道,上蔡人。登進士第。建中靖國初,官京師。召對忤旨,出監西京竹木場。復坐事廢爲民。事蹟具『宋史』「道學傳」。
恬字天隱,溫陵人。安國有『春秋傳』,已著錄。
是書成於紹興二十九年(1159),朱子年三十歲,監潭州南嶽廟時。生平論著,此爲最早。
據朱子「後序」稱,初得括蒼吳任寫本一篇,皆曾天隱(曾恬)所記。最後得胡文定公寫本二篇,凡書四篇,以相參校。胡氏上篇五十五章,記文定公問答。下篇四十九章,與版本、吳氏本略同,然時有小異。輒因其舊,定著爲二篇。獨版本所增多,猶百餘章,或失本旨,雜他書。其尤者五十餘章,至詆程氏以助佛學,輒放而絕之。其餘亦頗刊去,而得「先生遺語」三十餘章,別爲一篇,凡所定著書三篇云云。是朱子於此書芟薙特嚴。後乾道戊子(1168,朱子年三十九歲),重爲編次,益以良佐與安國手簡數條,定爲今本。又作「後記」,稱胡憲於呂祖謙家得江民表(江望)『辨道錄』,見所刪五十餘章,首尾次序,無一字之差。然後知果爲江氏所著,非謝氏之書,則去取亦爲精審。
觀『語錄』稱︰“某二十年前,得『上蔡語錄』觀之,初用朱筆畫出合處;及再觀則不同,乃用粉筆;三觀則又用墨筆。數過之後,全與原看時不同。”則精思熟讀,研究至深,非漫然而定也。
良佐之學,以切問近思爲要。其言論閎肆,足以啟發後進。惟才高意廣,不無過中之弊。
故『語錄』云:“看道理不可不仔細”。
程門高弟如謝上蔡、遊定夫、楊龜山,下梢皆入禪學去。
又云:上蔡「觀復齋記」中說道理皆是禪底意思。
又云:程子諸門人,上蔡有上蔡之病,龜山有龜山之病,和靖有和靖之病,也是合下見得不周偏差了。
其論皆頗以良佐近禪爲譏。
然爲良佐作「祠記」(紹熙辛亥冬十月,1191年,朱子年六十二歲),
則又云︰以生意論仁,以實理論誠,以常惺惺論敬,以求是論窮理,其命意皆精當。而直指窮理、居敬爲入德之門,尤得明道教人之綱領。
乃深相推重。
蓋良佐之學,醇疵相半,朱子於『語錄』舉其疵,於「祠記」舉其醇,似矛盾而非矛盾也。合而觀之,良佐之短長可見矣。
※ 「提要」 年度︰
紹興二十九年(1159),朱子年三十歲︰
「先生遺語」三十餘章,別爲一篇,凡所定著書三篇。
乾道戊子(1168),朱子年三十九歲︰
重爲編次,益以良佐與安國手簡數條,定爲今本(三卷)。
紹熙辛亥(1191)冬十月,朱子年六十二歲︰
朱熹,「德安府應城縣上蔡謝先生祠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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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德安府應城縣上蔡謝先生祠記」(朱熹)
『晦庵先生朱文公文集』,卷八十;『朱子文略』,卷三,「德安府應城縣上蔡謝先生祠記」(朱熹)︰
應城縣學,上蔡謝公先生之祠,今縣令建安劉炳(字韜仲)之所爲也。
先生名良佐(1050-1103),字顯道,學於河南程夫子兄弟之門。初頗以該洽自多,講貫之間,旁引傳記,至或終篇成誦,夫子(程明道)笑曰:“子可謂玩物喪志矣。”先生聞之,爽然自失,面熱汗下,若無所容,乃盡棄其所學而學焉。然其爲人,英果明决,强力不倦,克己復禮,日有程課。夫子蓋嘗許其有切問近思之功。所著『論語說』及門人所記『遺語』,皆行於世。如以生意論仁,以實理論誠,以常惺論敬,以求是論窮理,其命理皆精當,而直指窮理、居敬爲入德之門,則於夫子教人之法,又最爲得其綱領。
建中靖國中,詔對不合,得官書局。後復轉徙州縣,沈淪卑冗,以没其身,而處之浩然,未嘗少挫。中間嘗宰是邑,南陽胡文定公(胡安國)以典學使者行部過之,不敢問以職事,顧因紹介,請以弟子禮見。入門,見吏卒植立庭中,如士本偶人,肅然起敬,遂禀學焉。
其同時及門之士,亦皆稱其言論閎肆,善啓發人。今讀其書,尙可想見也。然先生之没,游公定夫(游酢,1053-1123)先生實識其墓,而喪亂之餘,兩家文字,皆不可見。應城寇暴尤劇,莽爲丘墟,其條教設施,固無復有傳者。
劉君(劉炳)之來,訪其遺跡,僅得題咏留刻數十字而已,爲之慨然永嘆,以爲先生之遺烈,不建於此邦,後之君子,不得不任其責。於是既新其學,乃即講堂之東偏,設位而祠焉。千里致書,求文以記。
熹自少時,妄意爲學,即賴先生之言,以發其趣,而平生行事(『文集』:平生所聞先生行事),又皆高邁卓絶,使人興起。衰病零落,廩然常懼其一旦泯滅而無傳也。劉君之請,乃適有會於予心者,於是不辭而記之如此,以示其學者云。
紹熙辛亥(二年,1191)冬十月丙子朔旦,新安朱熹記。
참고 자료 :
應城縣︰湖北省轄縣級市,由孝感市代管。
劉炳(生卒年不詳)︰南宋建寧府建陽(今屬福建)人,字韜仲,學者稱睦堂先生。
劉炳與兄俱受學於朱熹、呂祖謙。淳熙五年(1178)進士,授迪功郎,調劍浦縣丞。累官兵部郎中,以朝奉大夫奉祠閒居,自號悠然翁。與兄劉爚記述朱熹之語,編為『四書問目』。
『四書問目』︰為南宋朱熹門人劉炳(字韜仲,號悠然翁,睦堂先生)所記述的語錄類古籍,舊題朱熹講授、劉爚與劉炳共述,但學界多認為實出劉炳一人之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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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文 3篇
1、「跋」(朱熹,紹興二十九年,1159年,三月庚午)
2、「跋」(胡憲,紹興二十九年,1159年,四月十八日)
3、「跋」(朱熹,乾道戊子,1168年,四月壬申)
1、「跋」(朱熹,紹興二十九年,1159年,三月庚午)︰
右上蔡先生語録三篇。先生姓謝氏,名良佐,字顯道,學於程夫子昆弟之門,篤志力行,於從遊諸公間,所見甚爲超越。有『論語說』,行於世。而此書傳者蓋鮮焉。熹初得友人括蒼吳任寫本一篇[題曰『上蔡先生語録』],後得吳中版本一篇[題曰『逍遙先生語録』,陳晉江續之,作序云︰得之先生兄孫少卿及天隠(曾恬)之子希元者],三家之書皆温陵曾恬天隠所記。最後得胡文定公家寫本二篇,於公孫子籍溪先生(胡憲)[題曰『謝子雅宮』],凡書四篇,以相參較。胡氏上篇五十五章,記文定公問答,皆他書所無有,而提綱挈領,指示學者用力處,亦卓然非他書所及。下篇四十七章,與版本吳氏本略同,然時有小異,蓋損益曾氏所記而精約過之。輒因其舊,定著爲二篇,且著曾氏本語及吳本異同,悉註其下,以備參考。獨版本所增多猶百餘章,然或失本指,雜他書,其無者五十餘章,至詆程氏以助佛學,直以或者目程氏,而以“予曰”自起其辭,皆荒浪無根,非先生所宜言,亦不類答問記述之體。意近世學佛者私竊爲之,以伉其術。偶出於曾氏雜記異聞之書,而傳者弗深考,遂附之於先生,傳之久遠,疑誤後學,使先生爲得辠於程夫子,而曾氏爲得辠於先生者,則必是書之爲也。故竊不自知其固陋,輒放而絶之,雖或被之以僭妄之罪而不敢辭也。其餘所謂失本指、雜他書甚者亦頗刋去,而得先生『遺語』三十餘章,别爲一篇。然記録不精,僅存彷彿,非復前篇比矣。凡所定著書三篇已校定,可繕寫,因論其所以然之意附見其後,以俟知言。有道之君子考而擇焉。
紹興二十九年(1159)三月庚午,新安朱熹謹書。
2、「跋」(胡憲,紹興二十九年,1159年,四月十八日)
憲(胡憲,1086-1162,胡安國侄子)大觀(徽宗,1107-1110)初年在長沙,侍文定公(胡安國(1074-1138)左右,每聽說上蔡先生之學問,以爲其言善啟發人。其後在荆門學舍,從朱二丈子發(朱震,1072-1138,字子發)遊,甚款。子發所得話言及書疏必以相示,云︰先生監西竹木場日,自太學往見之,坐定,子發進曰:震願見先生久矣,今日之來無以發問,不知先生何以見教?先生曰:好與賢說一部『論語』。子發愕然意:日刻如此,何由款其講說?(子發私念:日刻如何由親欵其講說?)已而具飲酒五行(具飯,酒五行),只說他話。及茶罷,掀髯曰:聽說『論語』,首舉子見齊衰者,冕衣裳者與瞽者見之,雖少必作,過之必趨。又舉師冕見及階,子曰階也,及席,子曰席也。皆坐,子告之曰某在斯,某在斯。子張問曰︰與師言之道與?子曰然,固相師之道也。夫聖人之道,無顯無微,無内無外,由灑埽應對進退以至於天道,本末一貫,一部『論語』只恁地看。其後有書「答子發」云:竊承求志有味,道腴是嗜,信後當益佳。勝康侯謂公博洽,少輩未知。公既宅心道學之後,處之當何如。昔見明道先生讀『前漢書』,未嘗蹉過一字,至見他人有記問者,則曰:玩物喪志。此可以窺其意旨也。憲因讀朱元晦所定著『上蔡先生語録』三卷,得以詳觀其是正(是非),精審去取,不苟可傳信於久遠。竊歎其志尙如此,而自惟疇昔所聞,將恐零落,輒書以附於卷之末焉。
紹興二十九年(1159)四月十八日,籍溪胡憲跋。
3、「跋」(朱熹,乾道戊子,1168年,四月壬申)
熹頃年校定『上蔡先生語録』三篇,未及脫稿而或者傳去,遂鋟木於贑上。愚意每遺恨焉。比因閒暇,復爲定著此本,然亦未敢自以爲可傳也。因念往時削去版本五十餘章,特以理推知,其决非先生語。初未嘗有所考驗,亦不知其果出於何人也。後籍溪胡先生入都,於其學者呂祖謙(1137-1181)得江民表(江望,字民表,熙寧六年1073年進士,爲司馬光所賞識)『辨道録』一編,讀之則盡向所削去五十餘章者,首尾次序無一字之差,然後知其爲江公所著,而非謝氏之語,益以明白。夫江公行誼風節,固當世所推高,而陳忠肅公(陳瓘,1057-1124)文嘗稱其論明道先生,有足目相應之語,蓋亦略知吾道之可尊矣。而其爲言若此,豈差之毫釐則失千里之繆,有所必至而不能已者耶?因書以自警,且示讀者使毋疑。舊傳謝先生與胡文定公手柬,今并掇其精要之語,附三篇之後云。
乾道戊子(1168)四月壬申,熹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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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蔡縣志』,卷十四,「藝文」,七十八︰
1、「書謝上蔡語錄後」(宋、朱熹)
2、「謝顯道語錄跋」(宋、胡憲)
3、「書謝顯道先生語錄後」(楊宏)
1、「書謝上蔡語錄後」(宋、朱熹)︰
右『上蔡先生語錄』三篇。先生姓謝氏,名良佐,字顯道。學於程夫子昆弟之門,篤志立行,於從遊諸公間,所見最爲超越。有『論語說』,行於世,而此書傳者蓋鮮焉。熹初得友人括蒼吳任寫本一篇,後得吳中板本一篇。二家之書,皆温陵曾恬天隱所記。最後得胡文定公家寫本二篇,於公從子籍溪先生(胡憲)。凡書四篇,以相參校,胡氏上篇五十五章,記文定公問答,皆它書所無有,而提綱挈領,指示學者用力處,亦卓然非它書所及。下篇四十七章,與板本、吳氏本略同,然時有小異。蓋損益氏所記,而精約過之。輒因其舊,定著爲二篇,且著曾氏本語及吳氏之異同者於其下,以備參考。
獨板本所增多猶百餘章。至詆程氏以助佛學,直以或者目程氏,而以“予曰”自起,其辭皆荒浪無根,非先生所宜言,亦不類答間記述之體。意近世學佛者私竊爲之,以亢其術,偶出於曾氏雜記異聞之書,而傳者弗深考,遂附之於先生,傳之久遠,疑誤後學,使先生爲得睪於程夫子,而曾氏爲得皋於先生者,則必是書之爲也。故竊不自知其固陋,輒放而絶之,雖或被之以僭妄之罪,而不敢辭也。
其餘所謂失木指雜他書,甚者,亦頗刊去,而得先生遺語三十餘章,别爲一篇。然記錄不精,僅存彷佛,非復前篇比矣。凡所定著書三篇,已校定可繕寫,因論切所以然之意,附見其後,以俟知言有道之君子考而擇焉。
2、「謝顯道語錄跋」(宋、胡憲)︰
大觀初年,在長沙,侍文定公(胡安國)左右,每聽說上蔡先生之學問,以謂其言善啓發人。其後在荆門學舍,從朱二丈子發(朱震)遊,甚款。子發所得話言及書疏,必以相示云。先生監西竹木場日,自太學往見之。坐定,子發進曰:震願見先生久矣,今日之來,無以發間,不知先生何以見教?先生曰:好與賢說一部『論語』。子發愕然意日刻如此,何由款其講說?已而具飯,酒五行,只說他話。及荼罩,掀髯曰:聽說『論語』。首舉子見齊衰者,冕衣裳者與簪者見之,雖少必作,過之必趨。又舉師冕見及階,子日:階也。及席,子曰:席也。皆坐。子告之曰:茶在斯,某在斯。子張問:日與師言之道與?子曰:然。固相師之道也。夫聖人之道,無顯無微,無内無外,由灑排應對進退,以至于天道本末一貫。一部『論語』,只恁地看。其後有書「答子發」云:竊承求志有味,道腴是嗜,信後當益佳。勝康侯謂公博學,少輩未知。公既宅心道學之後,處處當何如?昔見明道先生,讀『前漢書』,未嘗聽過一字,至見他人有記聞者,則曰︰玩物喪志。此以窺其意旨也。憲因讀朱元晦所定著『上蔡先生語錄』三卷,得以詳觀其是非,精審去取,不苟可傳信久遠。竊歎其志尙如此,而自惟疇昔所聞,將恐零落,輒書以附於卷之末焉。
紹興二十九年(1159)四月十八日,籍溪胡憲跋
3、「書謝顯道先生語錄後」(楊宏)︰
六經子定於聖人。聖人之道原於天,天者,太虛而已。『易』曰:天下,何思何慮?遊於虛也。故不知道者,不可與讀聖人之書。聖至孔子而止矣,其言曰:一以貫之,舉物理還於太虛,故能無所不具。然則老、釋之徒,其教亦主於虛,而與儒氏異,何也?二氏虛於無爲,儒氏虛於有用,故殊途而異軌,士之(?)然不惑者,莫不欲闢。老、釋之徒闢之矣,而其說愈(?),是果不可闢耶?闢之者,未知道也,自孔子生,而經學明,自孟子没,而經學熄。自經學熄而語錄傳,宋儒之有語錄也,將以明道也,非期勝於人,而取於人也。沉潜者多切實之辭,高明者多無礙之解,則固勝於人而可取於人矣。後之學者,宜探其源流,晰其同異,講求而切究之,使大道昭然於世,不宜自安卑陋,僅尋摘章句已也。
予年少纔知讀書,得聞謝顯道先生名,與楊龜山、游定夫、尹和靖頡頏於程氏夫子之門。丙寅歲,從家君宦遊上蔡,得『先生語錄』一編,讀未竟輒疑,竟讀乃信,再四讀之,憮然若有所失,又若有所得。(?)知先生之言,本羽翼六經也,朱子之編輯先生語錄也,亦將以明道也。
先生以生意論仁,以實理論誠,以常惺惺論敬,以求是論窮理,抉孔孟之奥,續大道之傳,『遺書』具在,可束之高閣已哉!
以先生之道,假令得志於時,身秉國鈞,必能有所建樹,卓卓表見於世。即其歷仕州縣,吏卒植立中庭,狀如土木偶,令人肅然起敬。先生之所設施,大概可知矣。後卒以讒去歸,意者德盛則招尤,學成則生忌歟?雖然,禍患之作,庸俗人處之,則抑鬱不能自解;至傑出之士,則淡乎相遭,漠乎相遇,豈毫未增損於其間哉?
先生之學,與太虛渾合,惟太虛則無盡。舉天地間,榮悴忻戚不齊之境,以及讒謗危疑,忠臣孝子,所撫膺扼腕而長太息者,俱不足以動吾心,而適以全吾道。何也?其中常虛,其外不能攖也。先生曰:此心不用,則合於太虛,所謂道者,如斯而已。是故博聞强記,先生以虛受之,耳目玩好,先生以虛付之。灑掃應對進退,先生以虛體之。虛其所虛,無虛非實,無實無虛,名爲太虛。故能切(?)近思,如伊川之稱先生也,故能務實爲己,如直師之稱先生也,故能强力不倦,克己復禮,如考亭之稱先生也。先生之虛而有用,逈異於二氏之虛而無爲。故知先生之道者,始可與讀聖人之書;知先生之道者,始可與闢二氏之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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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蔡語錄』,三卷(朱熹刪定),目錄︰
卷一,卷二,卷三。
卷一
1、問:學佛者欲免輪迴超三界,於意云何?曰:是有利心私而已矣。輪迴之說信然否?曰:此心有止[凡人慮事心先困,故言有止],而太虛决,知其無盡,必爲輪迴。推之於始,何所付受,其終何時間斷也。且天下人物各有數矣。
2、孔子曰,天之將喪斯文也,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天之未喪斯文也,匡人其如予何。於天之將喪斯文下便言後死者,不得與於斯文,則是文之興喪在孔子,與天爲一矣。蓋聖人德盛,與天爲一,出此等語,自不覺耳。孟子地位未能到此,故曰天未欲平治天下也。如欲平治天下,當今之世舎我其誰?聽天所命,未能合一。[明道云]
3、問:孟子言盡其心者知其性,如何是盡其心?曰:昔有人問明道先生,何如斯可謂之恕心,先生曰充擴得去則爲恕心。如何是充擴得去底氣象?曰天地變化草木蕃充。擴不去時如何?曰天地閉賢人隠。察此可以見盡不盡矣。
4、敢問何謂浩然之氣?孟子曰難言也,明道先生云只他道箇難言也,便知這漢肚裏有爾許大事。若是不理會得底,便撐拄胡說將去。氣雖難言,即須教他識箇體段始得。故曰其爲氣也至大至剛,以直養而無害,則塞乎天地之間。配義與道者,將道義明出此事。
5、人有智愚之品不同,何也?曰:無氣稟異耳。聖人不忿疾於頑者,憫其所遇氣質偏駁,不足疾也。然則可變歟?曰:其性本一,何不可變之有?性本體也,目視耳聽手舉足運,見於作用者心也。自孟子沒,天下學者向外馳求,不識自家寳藏,被他佛氏窺見一斑半点,遂將擎拳竖脚底事把持在手,敢自尊大,輕視中國學士大夫,而世人莫敢與之争,又從而信向歸依之。使聖學有傳,豈至此乎!
6、心者何也?仁是已。仁者何也?活者爲仁,死者爲不仁。今人身體麻痺不知痛癢,謂之不仁。桃杏之核可種而生者謂之桃仁杏仁,言有生之意。推此,仁可見矣。學佛者知此謂之見性,遂以爲了,故終歸妄誕。聖門學者見此消息,必加功焉,故曰回雖不敏請事斯語矣,雍雖不敏請事斯語矣。仁操則存,舍則亡,故曾子曰,動容貎正顔色出辭氣。出辭氣者,從此廣大心中流出也。以私意發言,豈出辭氣之謂乎?夫人一日間顔色容貎,試自点檢,何嘗正何嘗動,怠慢而已。若夫大而化之,合於自然,則正動出不足言矣。
7、仁者天之理,非杜撰也。故哭死而哀,非爲生也;經德不回,非干禄也;言語必信,非正行也。天理當然而已矣。當然而爲之,是爲天之所爲也。聖門學者大要以克己爲本,克己復禮無私心焉,則天矣。孟子曰,仁人心也。盡其心者知其性也,知其性則知天矣。[語原本作行,人心原本作心人,今據孟子改正]
8、人之氣禀不同,顔子似弱,孟子似强。顔子具體而微,所謂具體者,合下來有恁地氣象,但未彰著耳。微如易知微知彰微顯闡幽之微。孟子强勇,以身任道,後車數十乗,從者數百人,所至王侯分庭抗禮,壁立萬仞,誰敢正覷著。非孟子恁地手脚,也撐拄此事不去。雖然,猶有大抵氣象,未能消磨得盡。不然,藐大人等語言不說出來。所以見他未至聖人地位。
9、孔子曰事君盡禮人以爲諂,當時諸國君相怎生當得聖人恁地禮數,是他只管行禮,又不與你計較長短,與上大夫言便誾誾如也,與下大夫言便侃侃如也,冕者瞽者見之便作過之便趨,蓋其德全盛,自然到此,不是勉强得出來氣象,與孟子渾别。孟子說大人則藐之,勿視其巍巍然,猶自参較彼我,未有合一底氣象。
10、顔子學得親切,如孟子仰之彌高鑽之彌堅,無限量也。以見聖人之道,大瞻之在前即不及,忽焉在後又蹉卻。以見聖人之道中觀此一段,即知顔子看得來親切,博我以文,便知識廣,約我以禮,歸宿處也。
11、横渠教人以禮爲先,大要欲得正容謹節,其意謂世人汗漫無守,便當以禮爲地教他,就上面做工夫。然其門人下稍頭溺於刑名度數之間,行得來困無所見處,如喫木札相似,更沒滋味,遂生厭倦。故其學無傳之者。明道先生則不然,先使學者有知識,卻從敬入。予問:横渠教人以禮爲先,與明道使學者從敬入,何故不同?謝曰:既有知識,窮得物理,卻從敬上涵養出來,自然是别。正容謹節,外面威儀,非禮之本。
12、横渠嘗言︰吾十五年學箇恭而安不成。明道曰,可知是學不成,有多少病在。謝子曰:凡恭謹必勉强不安,安肆必放縱不恭,恭如勿忘,安如勿助長。正當勿忘勿助長之間,須子細體認取。
13、所謂有知識須是窮物理,只如黄金天下至寶,先須辨認得他體性始得,不然被人將鍮石來喚作黄金,辨認不過便生疑惑,便執不定。故經曰,物格然後知至,知至然後意誠,所謂格物窮理,須是識得天理始得。所謂天理者,自然底道理,無毫髪杜撰。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皆有怵惕惻隱之心,方乍見時其心怵惕,所謂天理也。要譽於鄉黨朋友,内交於孺子父母兄弟,惡其聲而然,即人欲耳。天理與人欲相對,有一分人欲即滅卻一分天理,存一分天理即勝得一分人欲人欲纔肆,天理滅矣。任私用意,杜撰做事,所謂人欲肆矣。故莊子曰去智,與故循天之理。若在聖人分上,即說循字不著,勿忘又勿助長,正當恁地時,自家看取,天理見矣。所謂天者理而已,只如視聽動作,一切是天,天命有德便五服五章,天討有罪便五刑五用,渾不是杜撰做作來。學者直須明天理爲是,自然底道理移易不得。不然,諸子百家便人人自生出一般見解,欺誑衆生識得天理,然後能爲天之所爲。聖門學者爲天之所爲,故敢以天自處。佛氏卻不敢恁地做大。明道嘗曰,吾學雖有所受,天理二字卻是自家拈出來。
14、伊川才料大,使了大事,指顧而集,不動聲色。何以驗之?曰:只議論中便可見。陜西曾有議欲罷鑄銅錢者,以謂官中費一貫鑄得一貫爲無利,伊川曰:此便是公家之利,利多費省。私鑄者衆,費多利薄,盜鑄者息。盜鑄者息,權歸公上,非利而何?又曾有議解鹽抄欲高其價者,增六千爲八千,伊川曰:若增抄價,賣數須減。鹽出既衆,低價易之,人人食鹽,鹽不停積,嵗入必敷。已而增抄價,嵗額果虧,減之而嵗入溢。温公初起時欲用伊川,伊川曰:帶累人去。裏使韓富在時,吾猶可以成事。後來温公欲變法,伊川使人語之曰:切未可動著,即三五年不能定。疉去未幾變之,果紛紛不能定。
15、王荆公平生養得氣完,爲他不好做官,職作宰相,只喫魚羮飯,得受用底不受用,緣省便去就自在。嘗上殿進一劄子擬除人,神宗不允,對曰:阿除不得。又進一劄子擬除人,神宗亦不允,又曰:阿也除不得。下殿出來便乞去,更留不住。平生不屈也竒特。
16、問温公所學如何,謝曰:曾作中庸解,不曉處闕之。或語明道曰:闕甚處?曰:如强哉矯之類。明道笑曰:由自得裏,將謂從天命之謂性處便闕卻。呂微仲何如?謝子曰:他不合尙有貴賤相態在,不是。明道嘗曰:宰相呂微仲須做只是這漢俗。呂晉伯甚好,但處事太煩碎,如召賓客食,亦須臨時改換食次。吾嘗語之曰:每日早晩衙纔覆便令放者,只爲定故也。凡事皆有恁地簡易不易底道理,看得分明,何勞之有?易曰易簡,而天下之理得。晉伯甚好學,初理会仁字不透,吾因曰:世人說仁,只管著愛上,怎生見得仁?只如力行近乎仁,力行闗愛甚事?何故卻近乎仁?推此類具言之,晉伯因悟,曰:公說仁字,正與尊宿門說禪一般。晉伯兄弟中皆有見處,一人作詩詠曾点事,曰:函丈從容問且酬,展才無不至諸侯,可憐曾点唯鳴瑟,獨對春風詠不休。一人有詩曰:學如元凱方成癖,文到相如反類俳。獨立孔門無一伎,只傳顔子得心齋。
17、邵堯夫直是豪才,嘗有詩云:當年志氣欲横秋,今日看來甚可羞。事到强爲終屑屑,道非心得竟悠悠。鼎中龍虎忘看守,碁上山河廢講求。又有詩云:斟有淺深存燮理,飲無多少繫經綸。卷舒萬古興亡手,出入千重雲水身。此人在風塵時節,便是偏霸手段。學者須是天人合一始得。邵堯夫有詩云:萬物之中有一身,一身中有一乾坤,能知造化備於我,肯把天人别立根。天向一中分體用,人於心上起經綸,天人安有兩般義,道不虛行只在人。問此詩如何?曰:說得大體亦是,但不免有病,不合說一中分體用。又問曰:此句何故有病?謝子因曰:昔富彦國問堯夫云,一從甚處起?邵曰,公道從甚處起?富曰,一起於震。邵曰,一起於乾。問兩說如何?謝曰:兩說都得。震謂發生,乾探本也。若会得天理,更說甚一二。
18、問堯夫所學如何?謝曰:與聖門卻不同。問何故卻不同?曰:他也只要見物理到逼真處,不下工夫便差卻。何故卻不著工夫?曰:爲他見得天地進退萬物消息之理,便敢做大。於聖門下學上達底事,更不施工。堯夫精易之數,事物之成敗始終,人之禍福修短,算得來無毫髪差錯,如措此屋,便知起於何時,至某年月日而壞,無不如其言。然二程不貴其術,堯夫喫不過,一日問伊川曰:今嵗雷從甚處起?伊川曰:起處起。如堯夫必用推算,某更無許多事。邵即默然。邵精於數,知得天地萬物進退消長之理,便將此事來把在掌握中,直敢做大,以天自處。如富彦國身都將相,嚴重有威,衆人不敢仰視,他將做小兒樣看,直是不管你,也可謂豪傑之士[仰下原本有觀字,今從言行録]。
19、學者須是胷懷擺脫得開,始得有見。明道先生在鄠縣作簿時,有詩云:雲淡風輕近午天,傍花隨桺過前川。旁人不識予心樂,將謂偸閒學少年。看他胸懷,直是好與曾点底事一般。先生又有詩云:閒來無事不從容,睡覺東窗日已紅。萬物靜觀皆自得,四時佳興與人同。道通天地有形外,思入風雲變態中。富貴不淫貧賤樂,男兒到此是豪雄。問周恭叔恁地放開如何?謝曰:他不是擺脫得開,只爲立不住便放卻,忒早在裏。明道問擺脫得開,爲他所過者化。問見箇甚道理便能所過者化?謝曰:呂晉伯下得一轉語好,道所存者神,便能所過者化。所過者化,便能所存者神。横渠云:性性爲能存神,物物爲能過化。甚親切。
20、古詩即今之歌曲,今人唱曲往往能使人感動,至學詩卻無感動,興發處只爲泥卻章句故也。明道先生善言詩,他又渾不曾章解句釋,但優游玩味吟哦上下,便使人有得處。瞻彼日月悠悠我思,道之云遠曷云能來,思之切矣終曰百爾君子不知德行,不忮不求何用不臧。歸於正也。詩云:鳶飛戾天魚躍于淵,猶韓愈謂魚川泳而鳥雲飛,上下自然各得其所也。詩人之意言如此氣象,周王作人似之。子思之意言上下察也,猶孟子所謂必蓋世底功業,如太空中一点雲相似,他把做甚麼。如子路願乗肥馬衣輕裘與朋友共敝之無憾,亦是有要做好事底心。顔子早是參彼已。孔子便不然,老者合當養底便安之,少者不能立底便懐之,君君臣臣父父子子,自然合做底道理,便是天之所爲,更不作用。
21、余問:佛說直下便是動念即乖,如何?謝子曰:此是乍見孺子已前底事。乍見孺子底吾儒喚做心,他便喚做前塵妄想,當了是見得大高。吾儒要就上面體認做工夫,他卻一切埽除卻,那裏得地位進步?佛家說大乗頓教一聞便悟,將乍見孺子底心一切埽除,須是他顔雍已上底資質始得。顔子欲要請事斯語,今資質萬倍不如,他卻便要一切埽除,怎生得且如乍見孺子底心生出來?便有是自然底天理,怎生埽除得去?佛大槩自是爲私心,學佛者欲脫離生死,豈不是私?只如要度一切衆生,亦是爲自己發此心願。且看那一箇不拈香禮佛?儒者直是放得下無許多事。
22、謝子曰:術者處事之名,人涉世欲善處事,必先更歴天下之事,事既更歴不盡,必須觀古人凖則,只讀左傳亦可以見矣。如隱公欲爲依老之計,或勸之即真公以誠告之,其人不自安反見殺,隱公失之不早决斷耳。推此類可以見其餘。
23、謝子與伊川别一年,往見之,伊川曰:相别又一年,做得甚工夫?謝曰:也只是去箇矜字。曰:何故?曰:子細檢点,得來病痛盡在這裏。若按伏得這箇罪過,方有向進處。伊川点頭,因語在坐同志者曰:此人爲學切問近思者也。余問:矜字罪過,何故恁地大?謝子曰:今人做事,只管要誇耀别人耳目,渾不闗自家受用事。有底人食前方丈,便向人前喫只蔬食,菜羮卻去房裏喫,爲甚恁地。
24、游子問謝子曰:公於外物一切放得下否?謝子謂胡子曰:可謂切問矣。胡子曰:何以答之?謝子曰:實向他道,就上面做工夫來。胡子曰:如何做工夫?謝子曰:凡事須有根,屋柱無根折卻便倒,樹木有根雖翦枝條,相次又發。如人要富貴,要他做甚?必須有用處尋討要用處,病根將來斬斷便没事。
25、色欲想已去多時?曰:伊川則不絶,某則斷此二十來年矣。所以斷者,當初有爲之心多,欲有爲則當强盛方勝任得,故斷之。又用導引吐納之術,非爲長生如道家也,亦以助養吾浩然之氣耳。氣强則勝事,然色欲自别當作兩般理会。登徒子不好色而有淫行,色出於心,去不得。淫出於氣。又問於勢利如何?曰:打透此闗十餘年矣。當初大故做工夫,揀難捨底棄卻。後來漸漸輕,至今日於器物之類,置之只爲合要,卻並無健羡底心。
26、余問死生之說,謝子曰:人死時氣盡也。曰:有鬼神否?謝子曰:余當時亦曾問明道先生,明道曰︰待向你道無來,你怎生信得及?待向你道有來,你但去尋討看。謝氏曰:此便是答底語。又曰:横渠說得來别這箇,便是天地間妙用。須是將來做箇題目,入思議始得。講說不濟事。曰:沉魂滯魄影響底事如何?曰:須是自家看得破始得。張亢郡君化去,嘗來附語,亢所知事皆能言之。亢一日方與道士圍碁,又自外來,亢欲接之,道士封一碁子,令將去問之。張不知數,便道不得,乃曰︰許多時共你做夫婦,今日卻信一道士胡說,我今後更不來。又如紫姑神,不識字底把著寫不得,不信底把著寫不得。推此可以見矣。曰:先生祭享鬼神則甚?只是他意思别,三日齋五日戒,求諸隂陽四方上下,蓋是要集自家精神,所以格(假)有廟,必於「萃」與「渙」言之。如武王伐商,所過名山大川致禱,山川何知?武王禱之者以此。雖然如是以爲有亦不可,以爲無亦不可。這裏有妙理,於若有若無之間,須斷置得去始得。曰:如此卻是鶻突也。謝子曰:不是鶻突。自家要有便有,自家要無便無始得。鬼神在虛空中辟塞滿,觸目皆是,爲他是天地間妙用,祖考精神便是自家精神。
27、知命雖淺近也,要信得及,將來做田地,就上而下工夫。余初及第時,歲前夢入内庭,不見神宗而太子涕泣。及釋褐時,神宗晏駕哲廟嗣位,如此事直不把來草草看卻。萬事真實,有命人力計較不得。吾平生未嘗干人,在書局亦不謁執政,或勸之,吾對曰,他安能陶鑄,我自有命。若信不及,風吹草動便生恐懼憂喜,枉做卻閒工夫,枉用卻閒心力。信得命及,便養得氣不折挫。
28、謝子曰:道須是下學而上達始得。不見古人就灑埽應對上做起。曰:灑埽應對上學,卻似太瑣屑,不展拓。曰:凡事不必須要高遠,且從小處看,只如將一金與人與將天下,與人雖大小不同,其實一也。我若有輕物底心,將天下與人如一金與人相似;我若有吝底心,將一金與人如天下與人相似。又若行千尺臺邊,心便恐懼;行平地上,心卻安穩。我若去得恐懼底心,雖履千仞之險,亦只與行平地上一般。只如灑埽,不著此心怎灑埽得?應對不著此心怎應對得?故曾子欲動容貌正顔色出辭氣,爲此。古人須要就灑埽應對上養取誠意出来。
29、問︰求仁,如何下工夫?謝曰:如顔子視聽言動上做亦得,如曾子顏色容貌辭氣上做亦得。出辭氣者,猶佛所謂從此心中流出。今人唱一喏,不從心中出,便是不識痛癢。古人曰︰心不在焉,視而不見,聽而不聞,食而不知其味。不見不聞不知味,便是不仁,死漢不識痛癢了。又如仲弓出門如見大賓,使民如承大祭,但存得如見大賔如承大祭底心在,便是識痛癢。
30、子路百世之師,揀難割捨底要不做便不做,故孟子將來與舜禹作一處舉楊。
31、横渠以禮教人,明道以忠信爲先。
32、近道莫如静齋,戒以神明其德天下之至静也。心之窮物有盡而天者無静,如之何?包之此理,有言下悟者,有數年而悟者,有終身不悟者。
33、或問︰呂與叔,問常患思慮紛擾,程夫子答以心主於敬則自然不紛擾,何謂敬?謝子曰:事至應之,不與之往,非敬乎?萬變而此常存,奚紛擾之有?夫子曰事思敬,正謂此耳。
34、觀盥而不薦潔其誠矣,何必薦也。此所以爲神道設教,孔子不欲觀禘,自既灌而往者,此也。
35、食正欲飽,居正欲安。無求飽求安之心可也。敏於事則如天運而不息,慎於言則正辭氣而出之也。就有道而正焉,非忘我者不能。
36、顏子擴充其學,孟子能爲其大。孟子之才甚高,顏子之學粹美。
37、血氣之屬有隂陽牝牡之性,而釋氏絶之。何異也?釋氏所謂性,乃吾儒所謂天。釋氏以性爲日,以念爲雲,去念見性,猶披雲見日。釋氏之所去,正吾儒之當事者,吾儒以名利闗爲難透,釋氏以聲色闗爲難透,釋氏不窮理,以去念爲宗,釋氏指性於天,故蠢動含靈,與我同性。明道有言,以吾儒觀釋氏,終於無異,然而不同。
38、謝子曰:吾嘗習忘以養生。明道曰:施之養生則可,於道有害。習忘可以養生者,以其不留情也,學道則異於是。夫必有事焉而勿正,何謂乎?且出入起居寧無事者,正心以待之,則先事而迎,忘則涉乎去,念助則近於留情,故聖人之心如鑑,孟子所以異於釋氏心也。
39、子開有大臣氣象,不以言色假人。
40、動而不已其神乎,滯而有迹其鬼乎。徃來不息神也,摧仆歸根鬼也。致生之故其神,致死之故其鬼。不神何也?人以爲神則神,以爲不神則不神矣。知死而致生之不智,知生而致死之不仁。聖人所以神明之也。
41、禮者攝心之規矩循理而天,則動作語黙無非天也。内外如一,則視聽言動無非我矣。
42、德可以易言邪?動容周旋中禮,聖人之事也。止曰︰盛德之至具天下之至善,止曰︰有德爲天下之大惡,止曰︰失德故禮樂,皆得謂之有德鬼神之爲德盛矣乎。
43、養氣延年則人勝天矣,曰不外乎一氣耳。
44、『易』之「蒙」九二曰︰包蒙吉納婦吉子克家蔽,蒙不通者,包之順從者納之而不拒,子克家之道也。舜不藏怒宿怨,包蒙也。以愛兄之道來誠信而喜之,納婦也。
45、凡事只是積其誠意,自然動得。
46、苗履見伊川,語及一武帥。苗曰:此人舊日宣力至多,今官高而自愛,不肯向前。伊川曰:何自待之輕乎?位愈高則當愈思所以報國者,飢則爲用,飽則揚去,是以鷹犬自期也。
47、申顔自謂不可一日無侯無可,或問其故?曰:無可能攻人之過,一日不見,則吾不得聞吾過矣。
48、謝子曰:人不可與不勝己者處,鈍滯了人。
49、或問劉子進乎?曰:未見他有進處。所以不進者何?只爲未有根。因指庭前酴醿曰:此花只爲有根,故一年長盛如一年。何以見他未有進處,不道全不進,只他守得定,不變卻,亦早是好手。如康仲之徒,皆忘卻了。
50、事父母有輕重否?曰:無輕重。曰:父母所見不同,從父而母不悅,順母而父不悅,則如之何?曰:凡人子之所欲固有父母制之不得者矣,苟欲兩順之,獨無方便乎?若不以親之心爲心,非孝也。予曰:親之心或有逆於義理,則亦以親之心爲心乎?曰:未論到此,但只盡自家愛親之心。苟盡矣,或得罪於鄉黨州閭,則歸之,無可奈何耳。所以從兄者,爲愛親也。故從此推去,至於兼愛萬物。
51、問︰太虛無盡,心有止,安得合一?曰:心有止,只爲用他。若不用則何止?吾丈莫己不用否?曰:未到此地,除是聖人便不用。當初曾發此口,被伊川一句壊了二十年。曾往見伊川,伊川曰,近日事如何?某對曰,天下何思何慮?伊川曰,是則是有此理,賢卻發得太早。在問當初發此語時如何?曰,見得這箇事,經時無他念,接物亦應副得去。問如此卻何故被一句轉卻?曰,當了終須有不透處,當初若不得他一句救拔,便入禪家去矣。伊川直是会煅鍊得人,說了又卻道恰好著工夫也。問:聞此語後如何?曰:至此未敢道到何思何慮地位,始初進時速,後來遲,十數年過卻如夢。問何故遲?曰:如射弓到滿時便難開,然此二十年聞見知識卻煞長。明道曰賢看某如此,某煞用工夫,見理後須放開,不放開只是守,開又近於放倒,故有禮以節之,守幾於不自在,故有樂以樂之。樂即是放開也。
52、國史不特作詩序,凡詩皆經其手刪定。
53、明道初見謝,語人曰:此秀才展拓得開,將來可望。
卷二
54、仁是四肢不仁之仁,不仁是不識痛癢,仁是識痛癢。(曾氏本此下云,儒之仁佛之覺)
55、不知禮無以立。使人人皆能有立,天下有治而無亂。(曾本此下云,不知禮無以爲君子,非謂君子也,謂學爲君子者也。)
56、人須識其真心。見孺子將入井時是真心也,非思而得也,非勉而中也。予嘗學射,到一把處難去,半把處尤難去,則恁地放了底多。昔有人學射,模得鏃與把齊,然後放。學者纔有些所得,便住人多易住。唯顔子善學,故孔子有見其進未見其止之歎,須是百尺竿頭更進始得。(曾本云:予嘗學射到一把[去聲]處難去,半把尤難去。到一把放了底多,半把放了者尤多,少有鏃齊放者。人有學射,模得鏃與把齊,然後放。因舉伯淳語曰:射法具而不滿者,無志者也。學者纔少有所得,便住人多易住。伯淳常有語,學者如登山,平處孰不濶步,到峻處便往。佛家有小歇場大歇場,到孟子處更一作便是好歇,唯顔子善學,故孔子有見其進未見其止之歎,須是百尺竿頭更須進步始得。學者日毎進語相契,伯淳必曰更須勉力)
57、問子思曰小人之中庸,小人何故有中庸?曰:小人之中庸者,小人自以爲中庸,小人以他安常習,故處爲中庸,故無忌憚也。君子而時中,無往而不中也。中無定體,須是權以取中,執中無權,猶執一也。今人以變詐爲權,便不壊了權字?(曾本云:問君子中庸小人反中庸,又曰君子之中庸小人之中庸,不知小人何故有中庸?或曰小人自以中庸是否?曰:不須著反字。小人之中庸者,小人自以爲中庸。小人以能安常習,故處爲中庸,故無忌憚也。君子而時中,無往而非中也。中無定體。因指所執扇曰:以長短言之,則彼爲中;以輕重言之,則此爲中。須權輕重以取中[吳本云:因指所執扇曰:以扇頭爲中,則扇柄非中也。須是以輕重之中爲中]如此又卻是權執中無權猶執一也。今人以變詐爲權,便不壊了權字。)
58、學者且須是窮理,物物皆有理,窮理則能知天之所爲。知天之所爲,則與天爲一。與天爲一,無往而非理也。窮理則是尋箇是處,有我不能窮理,人誰識真我,何者爲我理,便是我窮理之至,自然不勉而中,不思而得,從容中道。曰:理必物物而窮之乎?曰:必窮其大者,理一而已。一處理窮,觸處皆通。恕其窮理之本歟?(曾本云:學者先須窮理,因搖扇曰:此亦理,物物皆有理,自然之理也,天也。窮理則能知天之所爲,知天之所爲則與天爲一,與天爲一無往而非理也。窮理只是尋箇是處。有我不能窮理,人誰識真我,何者爲我理,便是我格物窮理也。格物必至於知,至不知至是猶識金,安知其非鍮石也。故必知至,然後能意誠窮之,至自然不思而得,不勉而中,從容中道。問:理須物物窮否?曰:理一而已,一處理通,觸處皆通。物雖細者,亦有理也。)
59、今之學須是如飢之須食,寒之須衣始得。若只欲彼善於此則不得[一作不可]
60、釋與吾儒有非同非不同處,蓋理之精微處,纔有私意,便支離了。(曾本云:釋氏之與吾儒須認取精微處,有非同非不同處,須認得理之精微處。纔有私意,便支離了。)
61、問︰敬慎有異否?曰:執輕如不克,執虛如執盈,慎之至也。敬則慎在其中矣。敬則外物不能易。學者須去卻不合做底事,則於敬有功,敬換不得方其敬也。甚物事換得?因指所坐亭子曰:這箇亭子,須只換做白岡院亭子,卻著甚底換得?曰:學者未能便窮理,莫須先省事否?曰:非事上做不得工夫也。須就事上做工夫,如或人說動中有靜靜中有動,有此理,然靜而動者多,動而静者少,故多著静不妨。人須是卓立中塗,不得執一邊。(曾本云:問敬與慎同異,曰:執輕如不克,執虛如執盈,入虛如有人,慎之至也。敬則慎在其中矣。敬則外物不能易,坐如尸立如齋,出門如見大賔,使民如承大祭,非禮勿言動視聽,須是如顔子事斯語[吳本有始得字]。鄭氏云,坐如尸坐時習立如齋立時習,是不可須臾離也。曰:固是。昔日作課簿,以記日用言,動視聽是禮與非禮者,昔日學時只垂足坐,不敢盤足,因說伯淳終日坐如泥塑人,然接人則渾是一團和氣,所謂望之儼然即之也温。又云:昔日用工處甚多,但不敢說與諸公,恐諸公以謂須得如此[此下須去不合做底事至多著静不妨與胡氏本同]。昔伯淳先生教予,只管看他言語。伯淳曰,與賢說話,卻似扶醉漢,救得一邊,倒了一邊,只怕人執著一邊。)
62、或問:或曰我初學問事必不當,人必笑,然我未有所得,須直情言之。若掩藏畏人笑,徒自欺耳。此言何如?曰:是也。謂同坐諸子曰:亦須切記此語。
63、昔在二先生門下,伯淳最愛中立,正叔最愛定夫。觀二人氣象亦相似。
64、黙而識之,與書紳者異矣。
65、天理也,人亦理也,循理則與天爲一。與天爲一,我非我也,理也。理非理也,天也。唯文王有純德,故曰在帝左右。帝謂文王,帝是天之作用處。或曰:意必固我有一焉,則與天地不相似矣。曰:然。理上怎安得箇字。易曰與天地相似,故不違。相似猶自是語。
66、問︰敬之貌如何?曰:於儼若思時可以見敬之貌。問曰:學爲敬不免有矜持,如何?曰:矜持過當卻不是尋常作事,用心過當便有失。要在勿忘勿助長之間耳。曰:初學莫未能和樂否?曰:雖不能便和樂,亦須以和樂養之。(曾本云:問執輕如不克是慎之貌也,如何是敬之貌?毎遇事著心是否?曰:於儼若思時可以見敬之貌。問始學爲敬不免有矜持否?尋常矜持甚覺勞是否?曰:太矜持卻不是如尋常做事,用心過當卻有失。在勿忘勿助間耳。强有力者亦須做得徹然。人亦須量力,太强其心卻成狂妄念起也,且放去。又問佛氏有不怕念起只怕覺遲之說,曰:豈免念起?須識得念起時。又問中心斯須不和不樂,則鄙詐之心入之矣;外貌斯須,不莊不敬,則慢易之心入之矣。初學能至此否?曰:雖未能便至和樂,亦須以和樂養之。此交相養之道也。又問静時悠悠思多,如何去得?曰:能敬則悠悠思住不得自去。)
67、問:言動非禮,即可以止視聽如何得合禮?曰:四者皆不可易,易即多非禮。故仁者先難而後獲,所謂難者,以我視以我聽以我言以我動也。又曰:聖人以慎言語爲善學,君子之言聽之也厲,須存這箇氣味在胷中,朝夕玩味方可。(曾本云:問:顔子請事斯語非禮則勿視聽言動若言動非禮則止,甚分明。視聽如何得合禮?曰:視聽言動皆不可易,易則非禮,故仁者先難而後獲,所謂難者,以我視以我聽以我言以我動也,仰面貪看鳥回頭錯,應人視聽,不以我也,胥失之矣。又曰:聖人以慎言語爲善學,君子之言聽之也厲,須存這箇氣味在胷中,朝夕玩味,不須轉說與人。不說與人[吴本有不字]是吝,輕說與人人未必信,况[吴本無此上五字]使人生鄙悖之心。卻是自家不是。須留在胷中且看。尋常有些自得事在胷中,別纔說了,又別只看。不言不語底人,做得出惡来也毒)
68、問儒佛之辨,曰:吾儒下學而上達,窮理之至,自然見道,與天爲一。故孔子曰,知我者其天乎。以天爲我也。佛氏不從理来,故不自信,必待人證明然後信。(曾本云:問佛氏見得何故不肯就理?曰:既見了自是不肯就理。因舉正叔視伯淳墳侍行,問儒佛之辨。正叔指墳圍曰:吾儒從裏面做,豈有不見。佛氏只從墻外見了,卻不肯入来做。不可謂佛氏無見處,吾儒下學而上達,窮理之至,自然見道,與天爲一。故孔子曰,知我者其天乎。以天爲我也。故自理去則見得牢,亦自信得。及佛氏不從理来,故不自信,必待人證明然後信。)
69、問忠恕之別,曰:猶形影也。無忠做恕不出来,恕如心而已。恕天道也。(曾本云:問忠恕,曰:猶形影也,無忠做恕不出来,如己所不欲勿施於人,施諸己而不願,亦勿施諸人,說得自分明。恕如心而已。恕天道也。伯淳曰:天地變化草木蕃,是天地之恕。天地閉賢人隠,是天地之不恕。朱問天地何故亦有不恕?曰:天無意,天因人者也。若不因人,何故人能與天爲一?故有意必固我,則與天地不相似)
70、能窮理(理窮)[吴本無此上二字]則便盡性,性盡便知命,因指屋柱曰:此木可以爲柱者,理也。其曲直者,性也。所以爲曲直者,命。理性命一而已。
※『二程外書』,卷十一︰窮理,盡性,至命,一事也。才窮理便盡性,盡性便至命。因指柱曰:“此木可以爲柱,理也;其曲直者,性也;其所以曲直者,命也。”理,性,命,一而已。
71、門人有初見請教者,先生曰:人須先立志,志立則有根本。因指小樹子:須是先生根本,然後栽培。又曰:須是有諸己。有諸己之謂信。指小樹:有箇根本在,始培養灌溉,既成就爲合抱之木。若無根本,又培養箇甚麽?又曰:此學不可將以爲善,後學爲人[此下與胡氏本皆同]。
72、問︰視聽言動,合理而與禮不相合,如何?曰:言動猶可以禮,視聽有甚禮文?以斯視以斯聽,自然合理。合理便合禮文,循理便是復禮。(曾本云:問合視聽言動處。視聽言動只是理,何故得合禮?曰:怎生外面討得禮文来合?循禮便是復禮。言動猶可以有禮文,視聽有甚禮文?以斯視以斯聽,自然合理。合這箇理字,便合禮文,禮理之不可易者也,只是一箇敬字。)
73、問:言有物而行有常,如何是有物?曰:妄則無物。物則是箇實,存誠則有物。曰:敬是存誠之道否?曰:是也。須是體便見得。(曾本云:問言有物而行有常,如何是有物?曰:妄則無物,是不誠也。不誠無物,誠者物之終始。終始者有常之謂也。物則是箇實,存誠則有物。問敬是存誠之道否?曰:須是體便見得。)
74、學須是熟講。(曾本云:學不講,用盡工夫只是舊時人。學之不講,是吾憂也。仁亦在夫熟之而已。)
75、這箇人與這箇仁,相合爲一便是道。道立則仁與人之名亡矣。
76、問:孟子云知天事天,如何別?曰:今人莫不知有君,能事其君者少。存心養性便是事天處。曰:心性何别?曰:心是發用處,性是自性。(曾本云:石問:孟子所謂盡其心者,知其性知其性則知天,存其心養其性所以事天。知天事天如何?曰:事天又別。問:知天莫便能事天否?曰:不然。且如今人,莫不知有君父,能事君父者少,存心養心便是事天處。朱曰:事天工夫最難周。曰:事則是不違。又問:心與性是如何?曰:心是發用處,性是自然。)
77、學須先從理上學,盡人之理斯盡天之理,學斯達矣。下學而上達,其意如此,故曰知我者其天乎。人心與天地一般,只爲私心[一本作意]自小了,任理因物而已,無與焉天而已。豈止與天地一般,只便是天地。
78、李泌不娶妻,食肉,見他已甚,必不能久。亦自無此理。如今只是學箇依本分。
79、今人有明知此事義理有不可,尙吝惜不肯捨去,只是不勇。與月攘一雞何異?天下之達德三,智仁勇,如斯而已。
80、有所偏且克將去,尙恐不恰好,不須慮恐過甚。(曾本此下註云:矯揉就中之謂也。)
81、問:一日静坐,見一切事平等皆在我和氣中,此是仁否?曰:此只是静中工夫,只是心虛氣平也。須於應事時有此氣象方好。
82、義重於生則舍生取義,生重於義則當舍義取生。最要臨時權輕重以取中。
83、佛之論性,如儒之論心。佛之論心,如儒之論意。循天之理便是性,不可容些私意。纔有意,便不能與天爲一。(曾本此下云:便非天性。)
84、聞見之知非真知也,知水火自然不蹈,真知故也。真知自然行之不難。真知而行,未免有意,意有盡時。
85、孟子論性善,論之至也。性非不可爲不善,但非性之至。如水之就下,摶擊之非不可上,但非水之性。性雖可以爲不善,然善者依舊在,觀過斯知仁,既是過那得仁,然仁亦自在。
86、學者先學文,鮮有能至道。至如博觀泛覽,亦自爲害。故明道先生教予嘗曰:賢讀書慎勿尋行數墨。(曾本云:論楚州徐仲車所論,煞得中體,卻謂人不可不作文,猶且演義禮作詩賦,多是尋人意不到處,遶天十八遭走幾時。曾教在宅中學者先學文,鮮有能至道。又云:至如博觀泛覽,亦自爲害。因舉伯淳語云:賢讀書慎勿尋行數墨。黎云:古禪老有遮眼之說,蓋有所得,以經遮眼可也。無所得,所謂牛皮也,須穿透。)
87、或以誠爲専意,先生曰:誠是實理,不是専。(曾本云:誠是實理,不是専一。尋常人謂至誠至是謂専一,如惡惡臭好好色,不是安排来。)
88、鳶飛戾天魚躍于淵,無些私意。上下察以明道體無所不在,非指鳶魚而言也。若指鳶魚爲言,則上面更有天,下面更有地,在知勿忘勿助長則知此,知此則知夫子與点之意。(曾本此下云:季路冉求言志之事非大才[吴本作賢],做不得,然常懐此意在胷中。在曾点看著正可笑爾。學者不可著一事在胷中,纔著些事便不得其正,且道曾点有甚事,,列子御風事近之。然易做,只是無心近於忘。)
89、敬是常惺惺法,心齋是事事放下。其理不同,或以知言養氣爲一道事。先生曰:知言是智養氣是仁,浩然之氣須於心得其正時識取。(曾本云:問:養氣只是集義所生,亦須壯其氣,盛氣以作事否?曰:亦須壯著氣。如今人有氣,索時安能充其體?况塞天地。明道云:何謂浩然之氣?曰難言也,是孟子有此氣,其下旁說大綱。問:知言養氣,或謂辭氣是一道事。曰:知言是智養氣是仁。又問:行有不慊於心,或謂多不字。曰:慊是厭足之意。看不厭足時人氣如何?又曰:要識浩然之氣,於心得其正識取。又曰:志與氣交相養,故下面論心,然亦須外面養他。問:與元道相似否?曰:是氣與神合,只是能配義與道。又問:如今有盛氣人,作事不是卻無忌憚。[此係是吳本,卻有不是,事出於記義]能不慊否?曰:如此安能浩然?浩然是無虧欠時。)
90、或曰矜夸爲害最大。先生曰:舜傳位與禹是大小大事,只稱他不矜不伐。若無矜伐,更有甚事?人有己便有夸心立,已與物幾時到得與天爲一處?須是克己,纔覺時便克將去,從偏勝處克。克己之私則見理矣。曰:獨處時未必有此心,多是見人後如此。曰:子路衣敝緼袍與衣狐貉者立而不恥,許大子路,孔子卻只稱其如此,只爲他心下無事。此等事打疊過,不怕此心因事出来,正好著工夫。不見可欲,卻無下工夫處。曰:有人未必有所得,卻能守本分,何也?曰:亦有之人之病不一。此是賢病,人卻別有病處。(曾本云:問某有一病,且如作一簡,便須安排言語寫教如法,要人傳玩。飯一客便要器皿飲饌如法,教人感激。推此毎事皆然。先生曰:此夸心欲以勝人,皆私也。作簡請客如法,是合做底,只下面一句便是病根。此病根因甚有?只爲不合有己得人道好,於我何加?因說孟子就宫室之美妻妾之奉,所識窮乏者得我與皆是有物欲心。如今老郎家亦恐不免。又云:有人愛騎好馬,道長人精神。又思古人有自爲衣服制度者,推此多少般不可勝數。此所謂玩悅小兒家具。[吴本有曰然底此四字]因舉孟之反事,予曰今人亦有能此,又須要人知其不伐。先生笑曰:直如此巧[吳本有如是底]。又曰:舜傳位與禹,是大小大事,只稱他不矜不伐。若無矜伐更有甚事?夸勝爲矜,有其善爲伐。矜伐煞害事。又問:更有一病,稱好則溢美,稱不好則溢惡,此猶是好惡使然,且如今日泥濘只是五寸,須說一尺,有利害猶且得,無利害須要如此,此病在甚處?曰:欲以意氣加人,亦是夸心。有人做作說話,張筋弩脈,皆爲有已,立已與物,几時到得與天爲一處?須是克己,纔覺時便克將去,從偏勝處克,克者勝之之謂也。又問:獨處無事時未必有此心,纔遇事逢人此心便出,不能忘我。至末事,如見人著好衣便愛著好衣,未必是自家本意,多是爲人。曰:子路衣敝緼袍,許大子路,卻只以此稱他,只爲心下無此等事,打疊得過。又云:亦須就事上做工夫,不怕此心因事出来,正好處置,與心自爲賞罰,不見可欲,卻無下工夫處。又問:有一般人未必有所得,卻能守本分,不要夸勝人。曰:亦有之,然人之病不一,此賢病。人卻别有病處。)
91、或曰:無學之人,好惡直做得十分。儒者纔有道理,去不得處便住。先生曰:真儒不到得窒礙,不能變通,乃腐儒爾。此漢高所以慢罵者也(曾本云:問:堯夫論霍光周勃做得許大事,只爲無學問。無學問人做事,好惡直到十分。意謂儒者纔有道理去不得處,便住。更前面有甚大事也?不管不肯枉尺直尋,是否?先生曰:此亦一說。真儒不到得窒礙處,不能通變,乃腐儒爾。此高祖所慢罵者。因舉張良立太子,卻致四皓,所謂納約自牖,從人君明處納也)
92、問學詩之法,曰:詩須諷咏以得之,發乎情性止乎禮義,便是法。(曾本云:問學詩以何爲先?云:先識取六義體面。又問:莫須於小序中求否?云:小序亦不盡,更有詩中以下句證上句,不可泥訓詁,須諷咏以得之。發乎情性,止乎禮義,便是法。)
93、誠是無虧欠,忠是實有之理。忠近於誠,問聞見比昔日全別,唯是見義未能決烈,便爲未能得別如舊。謝子曰:使賢當初見二先生,革一革便別。須是有道理,革之不革,其舊安能從新。不見異人,當讀異書。
94、投壺非著意非不著意,莫知其所以然而中,此神之所爲也。但教毎事如此。
95、謝子見河南夫子,辭而歸。尹子送焉。問曰:何以教我?謝子曰:吾徒朝夕從先生,見行則學,聞言則識。譬如有人服烏頭者,方其服也顔色恱懌[一本作澤],筋力强盛,一旦烏頭力去,將如之何?尹子反以告夫子,夫子曰:可謂益友矣。
96、明道見謝子記問甚博,曰:賢卻記得許多,可謂玩物喪志。謝子被他折難,身汗面赤。先生曰:只此便是惻隠之心。[惻然有隠之心]
97、爲學必以聖人爲之則,志在天下必以宰相事業自期,降此寧足道乎。
98、元城曰:誠意積於中者既厚,則感動於外者亦深。故伯淳所在臨政,上下自然響應。
99、四十萬人死於長平,皆命乎?曰:可知皆是命,只被人眼孔小。
卷三
100、心本一支離,而去者乃意爾。
101、看文字須是一看過領得,方是理通。
102、克己須是從性偏難克去處克將去,克己之私,則心虛見理矣。
103、問︰思可去否?曰:思如何去?思曰睿,睿作聖,思豈可去?陳問:遇事出言,毎思而發,是否?曰:雖不中不遠矣。
104、釋氏所以不如吾儒,無義以方外一節。義以方外,便是窮理,釋氏卻以理爲障礙然。不可謂釋氏無見處,但見了不肻就理。諸公不須尋見處,但且敬與窮理,敬以直内,義以方外,然後成德,故曰德不孤。
105、昔從明道、伊川學者多有語録,唯某不曾録。常存著他這意思,寫在冊子上,失了他這意思。因言二劉各録得數冊,又云︰一段事纔録得,轉了一字便壊了一段。意思昔録五經語作一冊,伯淳見曰:玩物喪志。
106、伯淳謂正叔曰:異日能尊師道是二哥。若接引後學,隨人才而成就之,則不敢讓。
107、懐錮蔽自欺之心,長虛驕自大之氣,皆好名之故。
108、伯淳常談詩,並不下一字訓詁。有時只轉卻一兩字,点[平聲]掇地念過,便教人省悟。又曰:古人所以貴親炙之也。
109、邢七云:一日三点檢。伯淳曰:可哀也哉,其餘時勾當甚事?蓋傚三省之說錯了,可見不曾用工,又多逐人面上說一般話。伯淳責之,邢曰:無可說。伯淳曰:無可說,便不得不說。
110、張横渠著『正蒙』時,處處置硯筆,得意即書。伯淳云:子厚卻如此不熟。
111、堯夫易數甚精,自來推長厯者,至乆必差,惟堯夫不然,指一二近事,當面可驗。明道云:待要傳與某兄弟,某兄弟那得工夫要學?須是二十年工夫。或云邢七好學,明道云:邢七二十年裏頭待做多少事,豈肻學這底。或云邢七要學,堯夫不肯曰:徒長奸雄。謝云:恨某生不早,卻辨得弟子之禮。明道笑云:賢卻沒放過底事。堯夫初學於李挺之,師禮甚嚴,雖在一野店飯,必襴坐必拜。欲學堯夫,必亦如此。伯淳聞說甚熟,一日因監試無事,以其說推算之,皆合。出謂堯夫曰:堯夫之數只是加一倍法,以此知太玄都不濟事。堯夫驚撫其背曰:大哥,你怎恁他聰明。伊川謂堯夫:知易數爲知天,知易理爲知天,須還知理爲知天?因說今年雷起某處,伊川云:堯夫怎知某便知?又問甚處起,伊川云:起處起。堯夫愕然。他日伊川問明道曰:加倍之數如何?曰:卻忘之矣。因歎其心無偏繫如此。
112、聽其言也厲,須是有力。某尋常纔覺心不在時,語便無力。
113、敬只是與事爲一,未論得是不是。問:此有存主不逐彼去,是敬之理否?曰:先有存主,然後視聽言動卻汗漫了,且只認取與事爲一時,便是敬。其他說各是一理,從容中道,聖人也。方做一事,忘了其他,亦不免。顔子聞一知十人之才,猶自請事斯語。
114、問:多愛記事,如明日有件事,今日一日記著。往日有件事,只今不肯放下,至如事過,又須追思,知其非而無法以處之。又每遇事多急躁,常自訟之,云事之未來,不須預憂;事之方至,不須忙迫;事之過去,不須追悔。終之以一毫不立,唯覺而已。然終未得如願。先生云:須是這箇道理處之。某舊有疑疾,一件要如此又要如彼,後行一氣法,名五元化氣。素問有其說,而無其法,初傳時,云行之能於事無凝滯。某行一遍,兩月便覺其效。問云:所病心疾也,而此法何以能平之?答云:氣能動其心,和其氣。所以和其心也。喜怒衰樂失其節,皆是病。
115、端立問:暢論敬云正其衣冠,端坐儼然,自有一般氣象。某嘗以其說行之,果如其說。此是敬否?曰:不如執事上尋便更分明。事思敬,居處恭,執事敬。若只是靜坐時有之,卻只是坐如尸也。
116、舉明道云︰忠恕兩字,要除一箇不得。
117、敏是得理之速,明理而行。不期而速非是,手忙脚亂。
118、與其得罪於州閭鄉黨寧孰諫,是父母之過,未至此不可諫也。子曰煞有人爲孝弟。(按本子做:不能以義處,卻致父母兄弟不睦者甚多,極好笑。先生然之)
119、明道云︰病卧於牀,委之庸醫,比於不慈不孝。事親者亦不可不知醫。
120、一日克己復禮,天下歸仁焉。只就性上看。
121、必有事焉而勿正心,是持敬否?是矜持過當否?曰:近之。「答季向書」云:每聞進學甚力,湥慰此懐。兹承恩喻,尤見好悅,豈不欲傾盡所知,顧未識所疑安在,難以毫楮而泛論也。然秦漢以來,學雖不明,而爲善者不絶於天下,天下若能志於大者遠者,不爲目前移奪,雖是非小有失中,大體固已立矣。不失此心可也。
122、或問:天下多少事,如何見得是處?曰:窮理便見得。事不勝窮,理則一也。
123、「答胡康侯小簡」云:承進學之意浸灌,湥所望於左右。儒異於禪,正在下學。如顔子工夫,真百世轨範,舍此應無入路,無住宅,三二十年不覺便虛過了,可戒幸毋忽。朱君聞進學可喜,向亦嘗講仁敬之說,當不忘之。游於河南之門者甚多,不知從事於斯,則見功不遠。行之方可信此語也。
124、「又答簡」云:蓋如語録,只少卻三兩字,便血脈不貫,其語不活。如春秋之說正如此。幸亮之。春秋大約如法家断例也,折以中道耳。承諭進學加功處,甚善甚善。若欲少立得住,做自家物,須著如此。邇來學者何足道,能言真如鸚鵡也。富貴利達,今人少見出脫得者,所以全看不得。難以好事期待也。非是小事切須勉之,透得名利闗,便是小歇處。然須藉窮理工夫至此,方可望有入聖域之理。不然休說。
125、總老嘗問一官員云:默而識之,是識箇甚?無入而不自得,是得箇甚?

첫댓글 선생님 고맙습니다.
방대한 자료와 박학다식함에 충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단순한 번역의 차원을 넘어 자세한 설명에다 그 방대한 자료까지 제시해주셔서 이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여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더욱이 상채선생의 어록까지 올려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이 자료들은 괜찮으시다면 다운받아두었다가 참고자료로 활용하겠습니다.
저는 약 30년동안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지금은 공부와 운동을 겸하며 유유자적하는 위사라고합니다..
공직생활 중에 한문학에 관심이 있어 대학원과 몇몇 선생을 찾아가 공부며 주경야독으로 늦게 한문학에 입문하였습니다.
퇴직후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사서를 강독하면서 틈틈이 대학중용혹문을 읽던중 송대 학자들로 부터 본격화된 귀신론과 혼백론을 접하면서 선생님께 주제넘는 부탁을 드리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도 자주 방문하여 가르침을 받도록하여야 겠다는 생각은 너무 저의 일방적이고도 주제넘는 일이 아닐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드리겠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