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트머리 시간을 파는 사내
창가를 서성이다가 한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무심한 눈빛이 방충망을 사이에 두고 내 눈을 훑고 지나갔다. 언제였는지 내 집 창문 아래 길가에 좌판이 벌어졌다. 길게 늘어놓은 빨갛고 노란 플라스틱 바구니들. 없는 게 없다. 빨래집게, 솔, 테이프, 슬리퍼, 변기 뻥 뚫어, 드라이버… 다시 눈이 마주치고, 나는 괜히 죄지은 것 같아 목이 움츠러든다. 방충망 이쪽과 저쪽. 어느 쪽이 벌레일까? 이쪽에서는 저쪽이, 저쪽에서는 이쪽이 벌레일 것이다. 방충망이 있으니 안심이다.
시간이 벗어낸 허물은 좌판 위에 얹힌다. 많지 않게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저 먼 풍경처럼 바라보고, 하릴없어 펼쳐든 신문이나 흔드는 바람조차 심심하다. 그래도 가끔은 플라스틱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는 늙은이들. 빨래집게 한 줄, 때밀이 수건 두 장, 그렇게 사들고 뒷짐 지고 걸어간다. 잠시 굴러가던 사내의 눈은 다시 무심해진다. '변기 뻥 뚫어'로 두 눈을 뻥 뻥 뚫어주고 싶도록.
모르고 있다, 사내는. 시간의 허물이 질기게 제 목을 감는다는 것을. 하긴 나도 몰랐었다. 내가 방충망에 갇힌 한 마리 벌레였다는 것을. 다시 창문으로 내다보았을 때 사내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빵을 뜯어먹고 있다. 벌레가 먹이를 파먹듯이. 지나가던 여자가 물건을 골라도 아귀아귀 먹이만 몰아넣는다.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여자가 집어든 건 다리미판이다. 아마도 제 생을 다림질하고 싶은 것일 게다. 제 생을 다림질하고픈 여자에게 사내가 파는 건 자신이 살아온 끄트머리 시간들이다. 나도 안다. 내가 늘 허덕거리며 끄트머리 시간들을 살아왔듯이 사내가 끄트머리 시간들을 살아왔으리라는 걸.
자꾸만 주저앉는 시간들. 해가 기울고 어둠이 내리면서 사내의 눈은 그나마의 광채마저 잃어간다. 제 눈에 잃은 광채 때문인가. 플라스틱 바구니 사이사이에 불이 밝혀진다. 드디어 꽃이 핀다. 빨갛고, 노랗고, 파랗고, 그렇게 진작부터 꽃이었던 것들, 수세미, 비눗갑, 욕실 슬리퍼… 사내가 틀어놓은 용달차의 라디오에서 '내 생애에 단 한 번'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단 한 번이라도 꽃처럼 피어나고 싶었던 날들. 지나간 시간 속에 사내는 그 꿈을 묻었을 것이다.
내 집 창문 아래 그렇게 꽃이 필 때, 나는 티브이를 틀고 따뜻한 밥을 먹었다. '내 생애에 단 한 번'과 티브이 소리가 제멋대로 섞인다. 티브이 화면에 눈 박고, 식탁에 코 박는데 느닷없이 재채기가 터진다. 흩어져 날아간 밥알들. 그런데 왜 꽃이 되지 않는지. 그것들이 죽어도 꽃이 되지 않을 때 문득, '내 생애에 단 한 번'은 들려오지 않는다. 창문을 열자 어느 틈엔지 피었던 꽃들은 사라지고 바람만 남았다. 사내가 팔다가 흘리고 간 끄트머리 시간 한 줌, 내 정수리로 모래 되어 쏟아진다.♧
첫댓글
검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이 바다의 번지는
어청도인가요
해국이 정말 멋져요